목록흙부모 (32)
흙멘탈리스트
엄마: “얘, 이거 먹으면 몸에 그렇게 좋대. 암도 낫는다더라.” 딸: “엄마, 그거 근거 없대. 암 낫는다는 소린 어디에서 들었어?” 엄마: “다 믿을 만한 데서 들었어! 잔소리 말고 먹어!” 딸: “이거 봐봐. 의사가 신문에 쓴 칼럼인데 확인된 게 없다잖아. 소문만 있는 거지.” 엄마: “넌 신문에 나온 말이면 다 믿니? 넌 아주 언론에서 작정하고 선동하면 다 넘어가겠다?” 딸: “그런 말이 아니잖아!” 엄마: “그런 말이 아니면 뭔 말이야? 넌 그럼 앞으로 무조건 신문이 시키는대로만 살아!” --------------------------------------------------------- 위의 엄마가 저지르고 있는 것은 논리적 오류 중 ‘허수아비와의 싸움’으로 불리는 것으로, 자신이 공격하기 ..
당신과 함께 갇혀 있는 굶주린 사자들의 목적은 단 한 가지, 당신을 잡아먹는 것 뿐이다. 정신적 뱀파이어인 나르시시스트의 목적 역시 단 한 가지, 주변인이 가진 것을 빼앗는 것이다. 나르시시스트에게 주변 사람은 먹잇감이지 동등한 소통 대상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르시시스트와 ‘관계’를 지속하려면 그만큼 빼앗기는 게 있어야 한다. 아무것도 빼앗기지 않으면 관계도 지속되지 않는다. 결국 ‘나르시시스트와 잘 지내면서 피해 안 당하는 방법’이라는 것은 ‘빼앗기면서 빼앗기지 않는 방법’이라는 형용모순과 같다. 애초에 논리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나르시시스트 앞에서 당당하게 굴고 똑똑하다는 것을 보여주면 피해를 안 당할 거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당당하고 똑똑하게 보이면 나르시시스트의 면전에서 막말을 듣고..
과학계에서의 이론 논쟁을 제외한 다른 종류의 논쟁, 특히 사회적 관계에서의 가치관 논쟁에서는 사실상 합의된 논리 체계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 즉, 사회적 사안에 대한 논쟁이나 일상 대화 속에서는 논리라는 게 별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저마다 자기 주장이 논리적이며 상대방은 감정적이라고 비난하기 바쁘지만 사회적 문제는 실험적 검증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고 사람마다 다른 가치 평가 기준을 통일시킬 수 없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무엇이 정말 논리적인지 따지기 어렵다. 사회적 관계에서의 논쟁은 논리보다 어떤 가치관이 더 인정받느냐의 문제이며, 여기에서 논리가 수행하는 역할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대화 속에서 논리의 기능과 효과를 과대평가한다. 이런 기대는 굉장한 시간 및 에너비 낭비를 야기한다...
한국인들은 소위 ‘현실적’인 사고를 좋아한다. 뭐든 현실적으로 생각하라는 조언을 흔하게 하고, 뭔가에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딱지가 붙으면 부담 없이 쉽게 조롱하고 비난한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본인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진짜 현실적일까? 한국에서 흔하게 들을 수 있는 다음 대화를 살펴보자. 아버지: 넌 앞으로 뭘 할 거냐? 아들: 사업을 해보려고요. 아버지: 그게 되겠냐? 요새 어려운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리고 우리 집안에 대대로 성공한 사업가가 없거든! 현실적으로 생각해라! 아들: 제가 생각해놓은 계획이 있어요. 철저히 준비했고 자본금도 얼마 안 들어서 리스크도 적어요. 아버지: 얘가 이렇게 현실을 모르네. 사업하다가 망한 사람이 더 많아! 위의 에서 아버지는 아들이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비난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