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멘탈리스트
진짜 현실적으로 사고하는 법 본문
한국인들은 소위 ‘현실적’인 사고를 좋아한다. 뭐든 현실적으로 생각하라는 조언을 흔하게 하고, 뭔가에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딱지가 붙으면 부담 없이 쉽게 조롱하고 비난한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본인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진짜 현실적일까?
한국에서 흔하게 들을 수 있는 다음 대화를 살펴보자.
<대화 1>
아버지: 넌 앞으로 뭘 할 거냐?
아들: 사업을 해보려고요.
아버지: 그게 되겠냐? 요새 어려운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리고 우리 집안에 대대로 성공한 사업가가 없거든! 현실적으로 생각해라!
아들: 제가 생각해놓은 계획이 있어요. 철저히 준비했고 자본금도 얼마 안 들어서 리스크도 적어요.
아버지: 얘가 이렇게 현실을 모르네. 사업하다가 망한 사람이 더 많아!
위의 <대화 1>에서 아버지는 아들이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비난을 하고 있다. 그러나 아버지의 말에는 근거가 없다. 이 아버지의 의견은 구체성이 없고 세부 사항을 알지 못하는 사람의 인상비평에 불과하다. 아들의 계획에 현실성이 있는지 없는지는 아들의 사업 계획을 구체적으로 분석해봐야 알 수 있다. 또한 그 분석도 해당 분야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의 것이라면 온전히 신뢰하기 어렵다. 정말로 유의미한 피드백은 아들을 잘 알고 또한 해당 분야에 안목이 있는 사람이 사업 계획을 평가했을 경우에만 나올 수 있다. ‘우리 집안에 성공한 사업가가 없다’, ‘요새 어려운 사람이 많다’, ‘사업하다가 망한 사람이 더 많다’와 같은 말은 아들의 사업 계획 내용과 아무런 상관이 없으며, 이 사업 계획의 ‘현실’과도 무관하다.
한국에서 보통 ‘비현실적’이라고 백안시되는 선택은 불특정 다수의 매우 큰 모집단을 기준으로 했을 때 통계적 성공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아보이거나,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없는 드문 것이거나, 다수의 선호 라이프스타일에 맞지 않는 것들이다. 사람은 모두 다르고 따라서 그 사람이 처한 현실도 모두 다를 수밖에 없는데 놀랍게도 무엇이 ‘현실적’인가에 대해서 사회적 합의가 가능하다는 착각이 존재한다. 그렇다보니 남의 눈치를 많이 보고 리스크를 두려워하는 이들이 주변인 모두의 의견을 수렴하고 난 뒤 남는 진로 선택지란 기껏해야 ‘교대 가서 선생님 하기’, ‘공무원 철밥통 되기’ 정도밖에 없게 된다. 그 외의 모든 다른 선택은 대학원을 가는 것도, 유학을 가는 것도, 창업을 하는 것도, 중간에 재교육 기간을 거치는 것도, 이직을 하는 것도, 개인적 이유로 휴지기를 가지는 것도 어디에선가 누군가는 반드시 비난하거나 비웃게 되어 있다. ‘현실을 알라’는 주문과 함께.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하는 현실은 어딘가에서 주워들은 빅 데이터성 뉴스를 자기 입맛대로 취사 선택해서 구성한 투사적 현실이다.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단 1개의 현실이나 모두가 공유하는 동일한 상황 조건이라는 것은 없다. 따라서 개인의 특정 조건 및 상황과 해당 분야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은 본인이 바로 그 ‘현실’을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에 애초부터 뭐가 현실적이고 아닌지를 판단을 할 자격이 없다. 그리고 자격 조건도 안 되는 사람의 조언을 곧이곧대로 믿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주변에 고학력자도 없고 컴퓨터도 제대로 쓸 줄 모르는 60대가 TV에서 떠드는 ‘박사 학위 소지자가 환경 미화원 채용 시험을 보았다’는 식의 뉴스만 보고, 웬 20대 젊은이의 명문대 컴퓨터공학과 석박사 과정 진학 결정을 ‘비현실적’이라고 비난한다면 이건 코미디가 아닐 수 없지 않은가.
이제 다음 대화를 보자.
<대화 2>
시어머니: 딴 집 여자들은 삼시 세 끼 뜨신 밥 해서 유기농 반찬 직접 다 만들고 식구들 먹인다던데 넌 그렇게 못하면 미안해하기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니?
며느리: 전 맞벌이잖아요, 어머니. 회사에 있으면서 삼시 세 끼 밥을 어떻게 해요?
시어머니: 그래서 네가 잘했다는 거야? 부족한 게 있으면 잘못했습니다 하면 될 것이지!
며느리: 제가 회사다녀서 못 하는 건데 그게 잘못은 아니잖아요?
시어머니: 회사 다니는 게 유세냐? 회사를 다니건 말건 네가 모자란 건 모자란 거잖아!
한국인들은 현실적인 것을 참 좋아하는 것 같지만 막상 정말 현실적이 되어야 할 때는 그렇지 못하다. 위의 <대화 2>가 그것을 보여준다. 회사를 다니는 며느리가 전업주부처럼 삼시 세 끼를 직접 차려내지 못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당연한 현상이다. 시대가 변했고 어쩌고의 문제가 아니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한 사람이 동시에 두 장소에 존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물리적으로 불가항력인 상황은 주관적으로 달리 해석할 수가 없는 가장 강력한 ‘현실’이다. 그런데 이 대화 속 시어머니는 이를 부정하고 있다.
이런 게 진짜 문제가 되는 비현실성이다. <대화 1>에서의 아들은 사업을 실제로 성공시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 자체로 비현실적이라고 할 수 없지만, <대화 2>에서의 시어머니는 불가능한 상태를 기준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비현실적이다. 이게 정말 진심을 담은 주장이라면 치매나 조현병을 의심해야 한다. 물론 저런 사람들은 대부분의 경우에 본인의 말을 진짜 진심으로 받아 “어머니, 정신 어디 편찮으세요?”라고 물으면 화를 내고 길길이 뛸 것이다. 십중팔구 고의적인 과장법의 ‘깊은 뜻’만 알아들을 것을 요구하며, 본인은 바보도, 정신병자도 아니라고 주장할 것이다.
과장법인 걸 알고 쓴 거라면 비록 인격적인 문제는 제기할 수 있어도 정신적인 문제로부터는 자유로울 수 있는 걸까? 그렇지 않다. 인간 정신의 무서운 점은 본인이 다 알고 한 말이라 해도 틀린 말을 내뱉고 나면 현실 인식에 실제로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과장법을 쓴 이유가 뭘까? 기준을 최대한 가혹하게 잡아 상대의 죄(?)를 부풀리기 위함이며, 한국의 중장년층은 이런 어법을 즐겨 사용한다. 본인들 나름으로는 상대방만을 고립적으로 가스라이팅할 수 있을 거라고 자부하지만, 이렇게 얕은 수를 계속 사용하다 보면 본인의 인생도 그것에 의존하게 된다. 이성적으로는 ‘불가능한 거 다 알아’라고 생각해도 감정 체계와 신경 체계가 비현실적인 기대에 적응해버리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존이 습관화되면 처음에는 자신의 정치적 언사와 나름 명확하게 분리가 되었던 현실에 대한 이성적 판단도 점차 희미해진다. 본인의 이해관계가 논리 및 현실과 적대적 관계를 형성하면 인생에서 논리적/현실적 사고의 필요성은 점점 사라지게 되고, 효율성을 추구하는 뇌는 그러한 사고 능력을 퇴화시켜버린다. 무엇이 가능하고 불가능한지 정말로 판단을 할 수 없는 뇌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고의적으로 내세우는 비현실적인 기준은 결국 당사자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가며, 심할 경우 후천적 지능 저하나 인지 장애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늙었다는 것을 기득권 삼아 무리한 요구를 관철시키려고 자꾸 치매 환자같은 땡깡을 부리면 실제로 치매가 올 수 있다는 말이다.
현실은 내 앞에 물리적으로 펼쳐져 있는 실제 상황을 뜻한다. 현실적이라는 것은 물리적으로 가능한 사고를 한다는 뜻이며, 반대로 비현실적이라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사고를 한다는 뜻이다. 현실성은 목표의 높낮이 및 희소성과 무관하며, 겉으로 무난해보이는지 아닌지, 사회 통념에 부합하는 그림인지 아닌지와도 별 관련이 없다. 목표가 아무리 높아보여도 그것을 충분히 현실화할 수 있는 조건만 갖춰지면 이는 현실이 된다. 반대로 아무리 무난해 보이는 것도 물리적 조건이 갖춰지지 않으면 현실화될 수 없다.
예를 들어 현재 성적이 하위권인 고1 학생이 서울대 진학을 목표로 했다고 해서 이를 ‘비현실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제대로 된 계획이 따라준다면 불가능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반면에 하루에 15시간씩 노동을 해가며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겠다는 목표는 전자보다 훨씬 더 비현실적이다. 실질적으로 공부 시간 확보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생활 속에서 다수의 한국인들은 후자보다 전자에 더 많은 비난을 쏟아낸다. 후자는 건실한 청년으로 칭찬받겠지만 전자는 주제 모르는 고딩으로 폄하당할 가능성이 높다. 본인의 호감도와 현실성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자신의 가치관대로 구성한 당위적 환상과 혼동하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이 현실적인 것을 좋아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현실적이지 못한 이유이다.
현실적인 사고는 중요하다. 신기루는 인생을 낭비하게 만들 뿐이다. 모든 꿈은 현실화를 목표로 해야 하며, 비현실적인 기대는 하루 빨리 접어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정말 현실적인 것이고 비현실적인 것인지를 제대로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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