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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멘탈리스트
결혼과 출산을 주변 친구들보다 훨씬 일찍 한 부부가 있었다. 아이가 말귀를 알아듣는 나이가 되자 이 젊은 부부는 조기교육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는데 아이는 대부분의 아이가 그렇듯 공부에 큰 관심이 없었다. 부모가 열을 올리고 아이를 잡는 만큼 아이의 신경은 온통 그런 부모의 통제를 최대한 피하고 도망다니는 데 쏠리게 됐다. 부모와 완전히 동상이몽이 된 아이를 두고 부모는 속이 터져나갔고, 그들은 어느날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이런 답답한 심정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도대체가 애가 세상을 몰라. 부모가 죽도록 고생하면 뭐해. 진짜 학생 때부터 죽도록 공부하고 죽도록 노력해서 취업하고 죽도록 자식 새끼 먹여살리자고 뛰어다니면 뭐하냐고! 그 새끼는 하나도 몰라!" 순간 친구들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가 이내 불가항력..
한국에서는 부모-자식 관계를 부모가 자식에게 일방적으로 헌신하는 관계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실제로 대단한 애정과 헌신을 보여주는 모습을 근거로 그렇게 생각한다기보다는 자식을 낳고 길렀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이미 부모가 일방적인 희생을 한 것이라고 규정하는 것에 가깝다. 밥 굶기지 않고 학교 꼬박꼬박 보내줬으면 다른 것이야 어찌 됐든 부모로서 할 일은 다 한 것이며, 그것만으로도 자식으로서는 갚을 수 없는 어마어마한 은혜를 입은 것이라고 과대포장하는 경우도 흔하다. 사람마다 천양지차로 다른 부모-자식 관계를 이렇게만 설명하는 이유는 자식이 부모로 인해 얻는 이익은 큰 데 반해 부모가 자식으로 인해 얻는 이익은 없다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 인식은 자식이 어린 시절 부모가 제공한 기본 의식주 비용에 대..
한국 사회 내부에서 떠도는 외국, 해외 생활, 외국인, 해외 교포 등에 대한 이야기는 믿을 수 없는 것들이거나, 이미 시효가 끝난 이야기이거나, 한국인의 입맛과 맥락에 맞게 뒤틀린 것들이 많다. 물론 이는 한국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고 자신이 속한 커뮤니티가 아닌 외부 세상에 대한 인식은 누구나 어느 정도 자기중심적으로 편향되게 마련이다. 인터넷 세상이 되어서 예전보다는 많이 동기화되었는데도 그렇다. 사실 이런 문제는 단지 정보 부족으로 일어나지 않으며 감정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에 해결이 힘들다. 자신이 어떤 사심 가득한 시선으로 외부 사회를 보고 재단하는지에 대한 객관적 인지가 없다면 아무리 자기 생각과 다른 정보를 접하더라도 받아들이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서양 선진국에 대한 수많은 망상 중 하나..
전통적인 한국 문화에서 부모라는 존재는 성역이다. 이제 한국도 현대 사회에 진입한 지 반백년이 넘게 지나 조금씩 ‘나쁜 부모’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한 면은 있지만,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수준의 학대가 아닌 한, 한국 사회에서 부모를 ‘나쁘다’고 정의하는 것은 여전히 쉬운 일이 아니다. 사회 정서 전반이 부모에 대한 연민을 당연하게 깔고 있고, 부모를 심판의 대상으로 놓을 만한 문화적 틀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쁜 자식에 대해서는 불효자, 패륜아, 호로자식 등 다양한 어감의 낙인이 존재하지만 여기에 상응하는 부모를 지칭할 간편한 표현은 없다. 좋고 나쁜 것에 대한 판단이 본질적으로 주관적이고 문화권 및 시대상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점 때문에 ‘나쁜 부모’에 대한 논의는 의견이 잘 통합되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