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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애들은 18살 되면 바로 독립한다는 말은 정말일까?

Dirt Mentalist 2021. 12. 17. 0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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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 내부에서 떠도는 외국, 해외 생활, 외국인, 해외 교포 등에 대한 이야기는 믿을 수 없는 것들이거나, 이미 시효가 끝난 이야기이거나, 한국인의 입맛과 맥락에 맞게 뒤틀린 것들이 많다. 물론 이는 한국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고 자신이 속한 커뮤니티가 아닌 외부 세상에 대한 인식은 누구나 어느 정도 자기중심적으로 편향되게 마련이다. 인터넷 세상이 되어서 예전보다는 많이 동기화되었는데도 그렇다. 사실 이런 문제는 단지 정보 부족으로 일어나지 않으며 감정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에 해결이 힘들다. 자신이 어떤 사심 가득한 시선으로 외부 사회를 보고 재단하는지에 대한 객관적 인지가 없다면 아무리 자기 생각과 다른 정보를 접하더라도 받아들이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서양 선진국에 대한 수많은 망상 중 하나가 바로 '미국 애들은 성년 되면 바로 독립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한국인들이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시기가 늦고, 부모 의존도가 높다는 것을 비교해서 지적할 때 사용된다. 즉, 한국의 부모가 더 위대한 이유, 한국의 자식들이 더 죄인인 이유의 근거로 사용된다는 것이다. 많은 부모들이 이 말을 진실로 받아들이고 외국의 부모들에 비해 한국 부모인 자신은 자식에게 더 많은 것을 투자하고 희생했다고 주장한다. 스무 살 넘은 자식과 함께 사는 것만으로도 자신은 미국 부모에 비해 더 많은 부담을 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논리에는 많은 문제가 있다. 일단 첫 번째로, 미국에서조차 더 이상 만 18세에 부모로부터 독립을 하는 젊은이는 흔치 않다. 1960년대라면 현상적으로 이 말이 사실이었을 수 있지만 2020년대의 현실은 전혀 다르다. 모든 선진국이 그렇듯 미국 역시 자녀를 사회인으로 길러내기 위한 평균 교육 연한이 길어졌기 때문에 20대 초중반 정도의 젊은이가 부모와 함께 사는 것은 전혀 이상한 풍경이 아니게 되었다. 물론 집과 대학 간 거리가 멀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하므로 부모와 떨어지게 되지만 대학이 가까운 곳에 있을 경우에는 부모 집에서 그대로 거주하며 학교를 다니는 것이 매우 일반적인 풍경이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젊은이라 해도 20대 초반 정도에는 부모 집에 그대로 거주하는 경우가 많다. 자본주의 역사가 길어지면서 자산이 노동 가치를 압도하게 되어 자식 세대가 부모 세대의 부를 따라잡지 못하는 현상은 미국에서도 동일하게 발생 중이며, 이는 사회에서 젊은이들이 이른 나이에 독립하기 힘들게 되었다는 뜻이다. 실제적으로 경제력이 안 따라주는데 '미국 젊은이니까' 의지만으로 18세 되자마자 독립할 것이라는 것은 그냥 근거없는 환상이다.

 

 

두 번째로, 미국 젊은이들이 만 18세에 독립해나간다는 것은 한국에서의 독립과는 많은 면에서 맥락과 조건이 다르다. 미국인들이 순전히 '독립심' 때문에 18세만 되면 딱 독립해 나간다는 편견은 상당 부분이 한국인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미국인의 라이프스타일을 겉만 보고 판단했기 때문에 생긴 오해이다. 그나마 미국인들의 독립이 빨랐던 수십 년 전 기준으로 하면, 미국인들은 대학 진학 시 기숙사 등으로 가기 위해 집을 떠났다가 대학 졸업 시기에 취업을 하게 되면 바로 자신의 거주지를 따로 구해 직장 근처에서 사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도 취업만 바로 된다면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를 보고 부모에게 손 벌리지 않겠다는 강인한 의지나 효심 때문이라고 감탄한다면 미국인들의 삶에 대해 전혀 모르는 것이다. 미국인들이 대학 진학 시부터 부모와 거주지를 따로 두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한국과 달리 미국은 땅이 넓고 시설 간 거리가 매우 멀기 때문에 부모 집에서 새 학교나 새 직장을 다니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아서이다. 또한 이렇게 넓은 땅에서 사는 라이프스타일로 인해 집과 차의 가격이 한국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에서 형성되기 때문에 독립이 훨씬 용이하게 된다. 전 인구의 1/4, 젊은이 기준으로 하면 훨씬 더 높은 퍼센테이지가 수도권에 거주하면서 지하철로 웬만한 곳을 한 시간만에 주파하는 생활권에 사는 한국인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생활이다. 물리적 조건이 천양지차이기 때문에 일대일 비교가 불가능하다.

 

 

세 번째로, 미국 젊은이들이 18세나 20대 극초반에 한다는 '독립'은 거의 대부분이 거주지의 분리를 의미하지 완전한 경제적 독립을 의미하지 않는다. 단지 거주지가 분리된 형태의 독립을 했다고 해서 미국인들이 부모로부터 경제적/정서적 지원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오해이다. 미국 부모들이 자식에게 18세 이후로 전혀 경제적 지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냥 낭설에 불과하다. 진짜 돈이 없어서 주고 싶어도 못 주는 경우가 아니라면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경제적 수준이 중간 정도만 되어도 대학 등록금 등은 당연히 부모가 책임진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결혼 시에도 많은 부모가 결혼 선물로 집, 차, 현금 등을 지원한다. 다만 이를 한국처럼 '도리' 등으로 묶어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얼마를 해 줘야 한다는 사회적 부담이 덜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 만큼 줄 때도 '선물'로서 흔쾌히 주지, 이를 거래 조건으로 해석해 질척거리는 관계의 기반으로 삼으려 드는 경우는 별로 없다. 단지 돈을 지원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자식에게 자신의 인맥이나 사회적 위치 등을 물려주는 경우도 매우 많다. 한국인들은 흔히 미국에서 인맥이 중요하지 않다고 착각을 하는데 인맥은 미국 생활에서 월등하게 더 중요한 요인이다. 단지 그 인맥이 한국처럼 혈연/지연/학연으로만 연결되는 것이 아니고 어느 정도 의지가 있는 이들에게 열려있는 네트워크라는 것 뿐이지 혈연을 통해서라도 먼저 접근할 수 있다면 유리한 것은 명백한 현실이다. 미국인들은 이런 태생적 조건의 유리함을 활용하는 데 한국인들보다 오히려 훨씬 더 당당하며, 한국에서처럼 이를 사회 부조리로 인식해 지탄해야 한다는 의식이 별로 없다. 오히려 이런 문제에 대해 지나치게 분개하면 괜히 뒷담화하는 사람으로 찍히기 십상이다.

 

 

네 번째로, 미국인들이 부모에 대한 자식의 물리적 의존도가 낮은 만큼 부모나 노인 세대의 젊은이에 대한 물리적 의존도 역시 낮다. 어떤 의미로든 미국인들이 상대적으로 부모와 빨리 떨어지는만큼, 비록 경제적 지원은 받더라도 일상생활 속에서 부모 의존도가 낮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독립성은 상호적이라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미국인들은 효자라서 오로지 부모의 편의를 위해, 부모의 일을 덜어주기 위해 독립을 하는 것이 아니다. 미국인들의 상호 거리 두기와 독립성은 누구보다도 본인 자신의 자유를 위해 좋은 것으로 여겨지며, 따라서 만인에게 적용되고 모든 관계에 적용된다. '미국 애들은 18세 되면 다 독립한다'는 말이 전가의 보도처럼 쓰이는 동안 미국의 노인들 역시 자식과 함께 사는 경우가 별로 없고 그렇게 하고 싶어하는 경우도 드물다는 사실은 상대적으로 한국에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았다. 미국의 노인들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자기 집에서 어떻게든 독립된 생활을 유지하려 하고, 자식이든 노인 복지 시설이든 다른 누군가의 손을 빌려야 하는 상황을 오히려 인정하기 싫은 치욕이나 슬픔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이는 한국 노인들과는 매우 다른 모습이다. 이런 미국 문화 전체의 양상을 보지 않고 오로지 젊은이들에게만 초점을 맞추어 한국 부모만 자식에게 일방적으로 희생한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다섯 번째로, 상호 독립성이 강하다는 사실은 곧 상호 영향력이 낮다는 것을 간과하는 한국인들이 많다. 자식의 독립성을 단지 본인의 편익 관점에서만 생각하는 부모들은 자식이 경제적으로는 독립하되, 정신적으로는 아직도 자기 말이라면 벌벌 떠는 종속된 존재로 남기를 원한다. 모든 것을 '효심'이라는 자기중심적 필터로 보기 때문에 시시때때로 자기 입맛에 맞게 독립적이었다 종속적이었다 하는 변화무쌍한 자식을 바라게 되는 것이다. 이런 부모들 입장에서 '독립'한 미국 성인들이 부모에게 가지는 태도는 거의 패륜으로 보일 것이다. 미국 성인들은 진로 결정이나 결혼 생활 등에서 부모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으며, 간섭을 당연하게 여기지도 않는다. 본질적으로 성인을 두고 자기 입맛에 맞는 부분만 독립시키겠다는 야무진 소망 자체가 비현실적이다. 그러나 '미국 애들은 일찍 독립'을 운운하는 한국의 부모들은 대개 이런 비현실적인 소망을 심중에 두고 비교를 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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