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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멘탈리스트/한국인의 행복과 불행

팩트 폭행이라고? 정말로?

Dirt Mentalist 2021. 11. 2. 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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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상에서 한때 기세등등했던 깨시민/좌파의 인기가 식으면서 이제는 안티-PC/우파식 언행이 인기 상승세를 타고 있다. 뭐든 광신 대상이 되면 그렇지만 예전에 깨시민 코스프레를 하던 이들 중 태반이 사실 별로 깨어있지 않았던 것처럼, 지금 인터넷에서 인기를 얻는 우파 담론 역시 우파의 본질과 거리가 멀기는 마찬가지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전후해 정점을 찍었던 깨시민 광풍이나 지금의 우파 광풍은 다들 사적인 결핍을 특정 정치 과몰입과 희생양 찾기로 풀려 한다는 점에서 질적으로 매우 유사하며, 실제로 탄핵 시위 때 촛불 들고 나섰다가 지금은 극렬 반 문재인을 외치고 있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좌파/깨시민식 담론이 개인의 대화에 적용되었을 때 생기는 답답한 지점 또는 맹점이 분명 존재한다. 좌파식 담론은 이상적이고 멀리 있는 목표에 중점을 두고 이야기하거나 소수자의 시선까지 모두 아우르려 하다 보니 깔끔한 결론이 잘 나오지 않아 이야기가 한없이 복잡해지고, 당장 개인이 어떻게 생활하고 먹고 사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심지어 방해가 되는 경우도 많다. 이를테면 미국같은 나라에서 PC한 교육을 받고 자란 중산층 백인에게 당신이 사는 도시의 우범 지대는 어디인가요?”와 같은 질문을 하면 유용한 대답을 듣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미국의 특성상 우범 지대의 대부분이 유색인종(특히 흑인)이 몰려 있는 곳이 많은데 이를 곧이곧대로 대답하면 인종차별처럼 느껴져 확답을 피하려 하기 때문이다. 사실 유색인종이 사는 곳이 우범 지역이 되는 원인은 인종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종별 경제 격차로 인한 것이고, 따라서 우범 지역을 우범 지역이라 말하는 것 자체가 인종차별이라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특정 인종과 범죄 사이에는 연관성이 없다라는 본질적 원칙에만 집중한 나머지, 특정 인종과 범죄 간 연관성이 강하게 나타나는 현상 자체를 부정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다.

 

 

근래 한국에서 우파를 자처하는 이들이 PC한 태도에 질렸다면서 선호하는 대화 방식 중 하나가 소위 팩트 폭행이라는 것이다. 팩트를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는 것은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대화의 기본으로 매우 중요하다. 사회에서 진행되는 중요한 논의 중 팩트를 기초로 하지 않는 것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좌파라고 해서 팩트를 중시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우파들이 좀 더 팩트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은 사실인데 기존 시스템을 유지하고 이미 증명된 것의 효용을 중시하는 경향으로 인해 이미 발생한 일의 통계 등을 더 많이 인용하고 의존하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좌파는 기존 시스템의 단점과 문제점 해결에 더 무게를 두고 새로움을 도입하려 하기 때문에 정책 방향이 과거의 통계에 덜 의존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인터넷에서 남용되는 팩트 폭행을 보면 사실상 팩트가 아닌 걸 주장하면서 본인이 팩트 폭행 중이라고 정신승리하는 경우가 매우 많아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와 같은 자극적 우파 리더로 인해 오해가 더 심화된 듯한데, 사실 도널드 트럼프의 자극적 언사는 팩트와 아무 상관이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힐러리 트럼프는 재수없는 여자다.”, “바이든은 멍청하다.”, “연방 금리는 무조건 내려야 한다.”, “내 덕분에 주식 시장이 최고점을 찍었고 경제가 활황이다.”와 같은 그의 말은 팩트가 아니라 본인의 의견일 뿐이다. 그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이를 팩트라고 주장하고 싶겠지만 본인의 주관적 세계관을 팩트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 요컨대 팩트내 기준 사이다가 아니고 팩트 폭행역시 절대로 내가 하고 싶은 말 내멋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이 오해가 심화되다 보니 오히려 팩트의 정의가 정반대로 뒤집히는 것 같은 인상까지 받는다. 팩트는 내 기준에서 속 시원한 말이 아니라 내 기준과 무관하게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을 말할 뿐이다. 팩트를 기초로 한 개인의 판단, 해석 역시 팩트가 될 수는 없다. 때문에 정치에서 정책 논쟁을 하는 것은 엄밀히 말해 팩트 논쟁이 아니다. 정치 논쟁은 팩트를 기초로 한 다양한 해석 중 어느 것이 더 합당해 보이느냐를 놓고 벌이는 가치 판단의 싸움이다.

 

 

자극적인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실망스럽겠지만 팩트는 원래 재미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증명이 완료된 팩트는 지구가 공전과 자전을 한다, DNA4가지 종류 염기로 이루어졌다와 같이 특정인들의 특정 이해관계에 봉사할 수 없는 딱딱한 사실이 대부분이며, 본질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인간의 지식에는 한계가 있고 학문은 계속해서 수정 및 발전을 해나가기 때문에 지금 현재 팩트로 알려져 있는 것도 향후 언제나 바뀔 가능성이 있다. 과학자나 의사들에게 어떤 질문을 하면 지금은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러한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아직 밝혀진 바는 없습니다.”와 같은 재미없는(?) 대답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팩트를 기반으로 하는 과학적 논쟁의 특징이다.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왜 저렇게 아는 게 없냐, 그래서 이게 맞다는 거냐 틀리다는 거냐, 확실한 게 왜 이렇게 없냐라며 화를 내는 경우가 있다. 이런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코로나, 제가 6개월 안에 반드시 끝장냅니다!”, “백신 이거, 효과 전~혀 없다고 제가 장담합니다!” 이런 말들이다. 그리고 이런 말을 가장 많이 들려주는 두 종류의 인간은 사기꾼과 정치인이다. 한국이 사기 공화국이고 정치병 중증 환자 천국인 이유 중 하나는 사람들이 재미없는 팩트는 싱겁다고 던져버리고 자극적인 말에 잘 끌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재 남용되는 팩트 폭행트렌드는 사기꾼의 이런 자극적 언사를 팩트로 착각하는 경향이 날로 심해지고 있다.

 

 

다음은 팩트가 아닌 것을 팩트라고 우기는, 잘못된 팩트 폭행의 대표적 유형이다.

 

 

1.     본인의 주관적 가치 평가를 팩트라고 우기는 경우

 

A: “, 이 못생긴 년아. 너 인생 X나 살기 싫겠다.”

B: “? 내가 어때서? 그리고 나 살기 싫지 않은데?”

A: “팩트를 부정할 수 있을 거 같냐? 팩트 폭행 당하니까 부들부들거리네.”

 

여기에서 A의 말에는 팩트가 1%도 없다. 외모 평가는 본질적으로 주관적이며, 외모로 인해 상대방이 살기 싫을 것이라는 것 역시 명백히 본인 가치관이지 증명 가능한 부분이 아니다. 이런 건 그냥 상대방에게 언어 폭력을 가하며 우월감을 느끼고자 하는 케이스이며, 팩트 폭행을 가했다고 볼 수 없다. 이런 걸 팩트 폭행이라고 주장하는 많은 사람들은 증명 따위는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본인이 사전을 새로 펴낼 게 아니라면 그런 주장은 무리수다. B가 정말 100명의 사람 중 100명이 못생겼다고 합의하는 외모를 가졌다 해도 마찬가지이다. 외모는 인간의 정성적인 가치 평가 영역이며, 가치 평가 영역의 합의는 증명이 아니고, 따라서 만장일치를 거쳐도 팩트가 될 수 없다.

 

 

2.     다수의 취향과 팩트를 혼동하는 경우

 

A: “난 그 영화 별로 안 좋아해.”

B: “ㅋㅋ 니가 뭔데 아카데미 상 탄 영화를 싫으네 뭐네 하냐?”

A: “그냥 내가 개인적으로 재미없다니까.”

B: “그래봤자 그 영화 흥행 엄청 성공한 게 팩트거든?”

 

한국은 대세를 따르지 않는 것을 죄악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다수의 취향은 팩트가 아님에도 팩트와 동일한 지위를 갖는다. 특정 영화가 흥행에 성공을 하건 말건 싫어하는 사람은 싫어할 수 있으며, 이것은 애초부터 팩트 폭행의 대상이 될 수가 없다. 그런데 여기에서 B는 영화가 개인적으로 싫다는 A의 의견에 대해 팩트를 들이댄다면서 반박 아닌 반박을 하고 있다. 특정 영화가 흥행에 성공했다는 것 자체는 팩트가 맞지만 그 팩트는 A의 의견에 대한 반박이 되지 못한다. 본인이 싫다는데 남들은 좋아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적절한 반박이 될 수 있다면, 이 말은 남들이 좋아하는 걸 너는 감히 혼자 싫어할 자격이 없다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이는 취향까지 다수결로 옳은 방식을 결정해주려는 한국식의 획일적 사고에서 자주 나오는 폭력적 발상이다. 다수의 취향에 따르지 않는 것이 팩트를 부정하는 것과 동급의 잘못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3.     본인의 예측과 추정을 팩트라고 우기는 경우

 

A: “전 제 방식대로 일하겠습니다.”

B: “내가 너같은 애들 많이 봤는데, 너같은 것들이 꼭 일 망치고 인생도 망치더라.”

A: “무슨 말씀을 그렇게 심하게 하시죠?”

B: “? 팩트 폭행 당하니까 무섭냐?”

 

이 대화에서 B의 말은 그냥 저주성 인신 공격이다. 저주는 본인의 희망사항이지 팩트가 아니다. 미래의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증명도 불가능하고, 심지어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 반증도 불가능하다. 이렇게 형식상 증명과 반증 자체가 아예 불가능한 명제는 사기꾼들이 매우 즐겨 쓰는 말이다. 맞다는 증거가 없지만 아니라는 증거도 없기 때문에 뱉어놓으면 단 몇 사람이라도 믿어주는 사람이 생기고, 결국 사기꾼 입장에서는 조금의 노력도 없이 세 치 혀로 없는 현실을 창조해낸 꼴이 되어 효율(?)이 대단히 좋기 때문이다. 반대로 과학계에서는 증명/반증의 가능성이 원천차단된 이런 명제는 아예 취급하지 않으며, 따라서 논쟁의 대상조차 되지 못한다. 팩트로서 인정받기에는 형식적 결격 사유가 뚜렷한 이런 말에 팩트를 운운하는 경향은 사람들이 팩트를 상대방이 듣기 싫어하는 언어 폭력과 혼동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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