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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멘탈리스트/한국인의 행복과 불행

정답 있는 문제에도 없다고 우기는 미국, 정답 없는 문제에도 있다고 우기는 한국

Dirt Mentalist 2021. 8. 26. 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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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 전후로 유럽, 미국 등지의 서구 선진국의 민낯을 봤다, 실망했다는 한국인들이 많다. 엄연히 한국도 선진국이 된 마당에 굳이 ‘서구 선진국’의 모습 하나하나에 집착하는 관점 자체가 민망하고 좀스러운 일이나, 급격한 발전 과정으로 인해 아직 깨지지 않았던 그들에 대한 근거 없는 환상이 사라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대주의의 소멸과는 별개로 다른 문화권에 대한 오해, 나아가 문화가 작동하는 방식 자체에 대한 오해는 짚고 넘어갈 만하다. 헬조선 타령에 익숙한 한국인들이 쉽게 자국 비판을 하기 위한 비교 대상으로 끌려오는 ‘서구 선진국’이 유토피아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것은 중요하지만, 팬데믹 선언 이후 국가 통제 정책에 잘 따라오지 않는 그들의 무질서한 면모를 보고 ‘알고 보니 후진국이다’, ‘저 정도면 우리가 금방 따라잡겠다’라며 우습게 싸잡는 것은 별로 합리적인 판단이 아니다.

점잖고 깨끗한 매너의 사회구성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질서를 지키고 합의된 상식에 의거해 행동하는 등 주로 일본식 모델에 근거해 한국인들이 선입견으로 가지고 있는 ‘선진국 문화’는 서구 선진국에는 애초부터 존재한 적이 없다. 각 나라에는 그 나라에 맞는 문화적 동력이 따로 있으며 강력한 질서 유지는 서구 선진국들의 문화적 강점이 아니다. 만약 서구 선진국의 최고 강점이 사회 질서 유지력에 있었다면 미국은 중국, 아니 그 전에 이미 일본에 따라잡혀 패권국 자리를 내려놓았을 것이다. 동아시아의 한중일에서는 사회 질서의 강력한 유지가 큰 강점으로 작용해 지금까지의 성장을 추동한 면이 크나, 서구 선진국을 움직이는 동력은 이와 다르다.

서구 선진국이 경제와 문화를 발전시키는 동력은 한국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질서보다는 무질서에서 나온다. 특히 미국같은 나라에서는 무질서에서 나오는 다양성과 생산성이 발전의 가장 큰 동력이 된다. 무질서가 외교, 정치, 경제 분야를 지배한다면 이는 전형적인 후진국의 모습이겠지만, 미국은 그런 거시적인 부분에서는 안정성을 유지하면서 오직 문화, 학문 분야에서만 생산적 카오스를 추구하기 때문에 생산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것이다. 개인주의적이다, 서로 비교를 덜 한다, 본인이 행복하면 그만이다 식으로 알려진 미국 문화의 특징도 그래서 가능하다. 무질서하다는 것은 사회적 기준이 경직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고 그래서 본인 생각하고 싶을대로 생각하면 그만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문화는 개인이 기존 관념이나 타인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소수 의견을 내거나 새로운 도전을 하기 쉽게 만들어준다.

물론 이 긍정적인 점의 이면에는 그만큼의 반대 급부가 있고 팬데믹 상황에서 ‘말을 잘 안 듣는’ 국민성으로 인해 감염 통제가 잘 되지 않는 것도 그런 손해의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하도 다양성이 창궐하다 보니 빤히 답이 있는 문제에서도 죄다 제각각의 답을 주장하는 경향이 생기는 것이다. 한국인의 시선으로 봤을 때 미국에 이해 못할 온갖 괴짜가 많아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인들은 한국인들에 비해 무엇이 맞고, 옳고, 바르고, 반듯한지에 대한 강박 자체가 매우 느슨하다. 본인이 싫고 불편하면 객관적인 데이터건, 사회의 여론이건, 범세계적 유행이건 신경쓰지 않는 경향이 크다. 이게 영화 취향 문제 정도에 국한되면 사회적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겠지만 문화라는 것이 꼭 그렇게만 작동하지는 않는다. 어떤 문제에 단 하나의 정답이 있다는 생각 자체가 강하지 않고, 있다 한들 본인이 그것을 알아내거나 준수해야 한다는 의무감도 별로 없기 때문에 명백한 과학적 팩트 앞에서도 이런저런 이유로 수용을 잘 하지 않는 경향이 생기는 것이다. 수용하지 않는 정도와 이유조차도 제각각이라 의견을 하나로 통일해서 대처하는 것도 상당히 힘들다.

반면에 한국인들은 무언가 하나가 맞다는 생각이 들면 그쪽으로 통일이 매우 잘 되는 경향이 있다. 사회 대다수가 합의했다고 여겨지는 기준에서 어긋나면 순식간에 무개념, 민폐, 사회악, 매국노로 찍히고 조리돌림당하는 정도도 심하기 때문에 알아서 자신을 통제하는 경향이 강하다. 덕분에 국가 단위에서 시행해야 하는 교육이나 절차가 있을 때 국민들이 이것을 빠르게 익히고 철저하게 준수하도록 하기가 쉽다. 국민적 상식 또는 국민 정서라는 것이 존재하므로 사회적 안정도가 높고 국민 통제도 용이하다. 그러한 면에서 사회적 비용이 크게 절약되고, 정해진 규칙이 있는 태스크를 빠르게 완수할 수 있다는 강점을 가진다.

그러나 당연히 한국 문화의 이면에도 부정적인 면은 있다. 미국 문화가 정답 있는 문제에서도 없다고 우기는 게 문제라면, 한국 문화는 이와 반대로 정답 없는 문제에서도 정답이 있다고 우기는 게 문제다. 정답에 대한 합의가 빠르고 이를 준수하려는 의지도 높아 일이 효율적으로 진행될 때도 많지만, 본질적으로 정답이 없는 문제에서는 이 정답 의존증이 오히려 쓸데없는 혼란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미국인들이라면 별 생각 없이 넘어갈 일상생활에서의 모든 의견 차이, 충돌, 갈등이 한국에서는 쓸데없이 심각한 검열과 종교 재판의 대상이 되어 사회 피로도를 심각하게 높이는 경향이 있다. 옳은 세계관, 반듯한 인생관, 맞는 의견이 딱 하나만 있다고 생각하면 다른 건 모두 오답이 되기 때문에 당연히 일어나는 현상이다. 때문에 한국 사회에서는 비교적 사소한 대상을 두고 벌어지는 논란조차도 캐삭빵 극딜이 되는 경우가 많다. 상대방의 의견이 오답이 아니라면 내 의견이 오답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존재론적인 차원에서 절대로 물러설 수가 없는 것이다. 정치 문제는 물론이거니와 온갖 종류의 사회 문제에 대한 의견, 심지어 연예인 옷차림과 화장법에 대한 감정 차이까지 모두 다 ‘단 하나’의 올바른 세계관 자리를 놓고 벌이는 극한의 결투로 이어진다.

모든 문화는 각자만의 특징이 있고 모든 장점과 단점도 그 동일한 특성에서 연유한다. 다양성이 넘치는 미국 사회에서 합리적 소통이나 논쟁을 하기 위한 공통 전제의 결여가 문제가 되는 만큼, 획일적인 한국 사회에서는 사람들을 무의미하고 소모적인 논쟁으로 이끄는 정답 의존증이 문제가 된다.


이 글을 읽고 ‘그래서 어느 문화가 맞는 거냐’는 결론을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전형적인 한국인 되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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