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멘탈리스트
흙멘탈 증상 - 피해자 비난 논리 본문
흔히 피해자 비난 논리는 가해자 시선에서의 논리, 가해자 입장에 대한 변호로 여겨진다. 맞는 말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가해자와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사람이거나 가해자와 유사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만이 주장한다는 오해가 생긴다.
실제로는 이 통념과 달리, 오히려 피해자와 이해관계나 정체성이 더 유사하고 근연 관계에 있는 사람들, 즉, 겉으로만 봤을 때는 피해자 편을 들어야 할 것 같은 이들이 더 앞장서서 피해자 비난 논리를 전개하는 경우도 많다.
“나도 유색인종이지만 미국에서 차별받은 적 한 번도 없는데 네가 문제 아냐?”
“나도 여자지만 성추행 한 번도 안 당해봤는데 네가 문제 아냐?”
“나도 흙수저지만 내 힘으로 성공했는데 네가 문제 아냐?”
“나도 왕년에 그런 상황에 처한 적 있었는데 너처럼 바보같지 않았거든?”
“나였으면 그 상황에서 일찌감치 도망쳤을텐데 네가 모자라서 못한 거 아냐?”
본인이 공유하는 정체성에 대한 위협이 가해졌는데 여기에 대한 문제의식 없이 피해자에게 이런 말을 하는 이들의 심리는 무엇일까?
이런 언사의 핵심은 계속해서 등장하는 나, 나, 나, 나 타령에서 볼 수 있는 자의식 폭발이다. 이 말들이 공통적으로 전달하는 메시지는 오직 하나다.
“나는 너보다 잘나서 그런 일 절대 안 당해.”
일전에 장정일은 미투 운동 초기에 피해자를 조롱하는 사람들을 ‘다른 (운동권) 동료들은 다 고문당했어도 나는 고문 안당했다’고 자랑하고 다녔던 김지하의 파렴치한 태도에 빗대 비웃는 칼럼을 쓴 적이 있다. 같은 피해자 그룹(?)의 피해자 비난 논리가 비록 가해자의 행위보다 죄가 무겁다고 할 수는 없지만, 가해자식 비난 논리보다 미학적으로 더 저열할 뿐 아니라 정신병적인 면모까지 보이기 때문에 일견 더 혐오스럽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어떤 사건이든 피해자가 피해자가 된 테크니컬한 이유는 있을 수 있다. 키가 작아서 선택됐을 수도 있고, 남의 말을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이라 선택됐을 수도 있다. 그 어떤 가혹한 연쇄살인범도 범죄 대상으로 드웨인 존슨같은 남자를 선택하지 않으며, 그 어떤 사기꾼도 멍청한 사람보다 똑똑한 사람을 1차 대상으로 선호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드웨인 존슨이 자신에게 굽신거리는 동네 양아치들을 만난 후 “아, 그 분들, 저한텐 하나같이 친절하던데요. 피해자들이 뭐 잘못한 거 아니예요?”라고 하면 우리는 그의 지능을 의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드웨인 존슨님 죄송합니다). 동네 양아치들이 그에게 굽신거린 이유는 명백히 그의 우월한 피지컬 때문일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본인이 당한 적 없으니 세상에 없는 것이라 우기고, 본인에게 잘해줬으니 나쁜 사람 아니라 우기며, 삼척동자도 틀린 걸 알아챌 피해자 비난 논리를 전개하는 사람들은 지능이 의심되는 수준의 비논리를 감수하고서라도 본인이 ‘가진 게 있고 우월한’ 존재이므로 안전하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확인받고 싶어서 저런 말을 하는 것이다.
실제로 피해자가 뭘 정말 잘못했다고 믿는다기보다는
너는 멸치지만 나는 드웨인 존슨이고 너랑은 질적으로 달라서 너같은 일 당하지 않는다고 자랑하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실제 드웨인 존슨의 체급이 멸치를 상대로 정말로 이런 말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일반적으로 드웨인 존슨급의 압도적 우월함을 가진 이들은 굳이 말 안해도 빤히 보이는 멸치와의 피지컬 차이를 '말'로 강조해서 얻을 수 있는 심리적 위안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말은 피해자와 비슷한 체급인데 운 좋게 피해를 당하지 않은 사람들이 피해자와 본인의 차이를 극대화함으로써 스스로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은 피해자와 자신이 비슷하기 때문에 더더욱 가열차게 피해자를 비난한다. 본인은 '같은 유색인종'이지만 이를 뛰어넘는 우월함이 있으니 차별을 당할 리 없고 이는 우연이 아닌 필연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말과 달리 사실은 잠재의식 속에 본인이 같은 입장이 될 수 있다는 공포감이 너무도 강렬하기 때문에 나오는 주장이다. 강렬한 공포심에 대한 해결로 선택한 것이 현실 부정과 정체성 해리인 것이다. 이는 미약하지만 정신 병리적인 현상이다.
세상에 피해자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다. 피해의 내용이 크면 클수록 그러한 상황에 내가 처할 수도 있음에 공포를 느끼는 것도 당연하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의 반응이 이와 같지는 않다.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현실 부정과 정체성 해리는 명백히 병리적인 선택이며, 멘탈이 건강한 사람일수록 이런 식의 방법을 택하지 않는다. 또한 그 역도 성립해, 이런 방법을 자주 선택할수록 멘탈은 점점 더 병들어간다.
나만은 예외이길 바라는 심리로 피해자 비난 논리를 펴며 스스로에게 피해자와 다른 정체성을 셀프 부여하는 것은, 무엇보다 그러한 비난을 가하는 당사자의 정신 건강에 치명상을 가한다. 혼자 상상의 나래로 만들어낸 "나는 특별하기 때문에 너같은 일 당하지 않는다"는 특권의식은 당장 당사자를 기분좋게 만들어줄 수는 있지만 실제 현실과는 무관하다. 결과적으로 이런 특권의식에 자주 사로잡힐수록 뇌가 망상을 하는 시간도 길어진다. 본인이 그것을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말이다.
이런 병리적 망상은 실제 당사자를 피해자가 되지 않도록 보호해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점점 더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으로 만든다. 또한 본인의 입지를 스스로 좁혀 숨막히는 인생을 자처하는 겁쟁이로 만든다. 자신과 유사한 누군가를 볼 때마다, 스스로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자신이 상대보다 상대적으로 우월하고 특별한 이유를 찾기 위해 자기 검열을 할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흙멘탈리스트 > 한국인의 행복과 불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착취자의 노하우 - 권력자가 되는 손쉬운 트릭 (3) | 2021.09.23 |
---|---|
정답 있는 문제에도 없다고 우기는 미국, 정답 없는 문제에도 있다고 우기는 한국 (3) | 2021.08.26 |
흙멘탈 증상 - 인과응보, 사필귀정, 권선징악에 대한 집착 (5) | 2021.07.22 |
흙조선의 거짓말: 환경을 극복할 수 있다 (2) | 2020.12.28 |
해외에서 상 받았으니까 고급 예술이라는 논리 (0) | 2020.12.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