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멘탈리스트
해외에서 상 받았으니까 고급 예술이라는 논리 본문
상류층의 자신감이 아래 계급에까지 이어져 제임스 브라운의 “Living in America”와 같은 노래가 공감을 받을 수 있는 미국같은 국가와 반대로 흙수저의 인정 욕구가 국가 정체성의 원형이 되는 흙조선은 유독 해외에서 뭐 상탔다는 것에 과열 반응을 한다. 외국 유명인들에게 “두유 노 김치?”하며 매달리는 욕구와 일맥상통한다. 원래 권위에 약한 성향에 사대주의가 결합하니 해외 수상이 절대반지로 여겨지는 것이다. 심지어 대부분은 언급되는 상이 정말 권위가 있는지도 잘 모른다. 그냥 언론이 떠드는대로 그 상이 엄청나대요, 엄청난 거 받았으니 엄청난 사람이 맞겠죠 하고 떠드는 것이다.
피해자들의 고소와 <PD 수첩>의 일격으로 이미 예전의 위치를 잃었다지만 죽음을 계기로 일부에게 또 다시 상찬을 받고 있는 김기덕이 이런 해외 수상 이력으로 가장 큰 이익을 본 사람 중 한 명일 것이다. 김기덕의 영화는 딱 봐도 호감을 사거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영화가 아니다. 대중적으로 성공한 적도 별로 없다. 그럼에도 김기덕의 영화에 대해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압박에 억지로 좋아하는 척, 이해하는 척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암만 봐도 자기 눈에는 영 별로인데 말을 함부로 하면 안 되고 적어도 예술성은 인정한다 뭐 이렇게 말해야 된다는 공식이라도 있는 것 같다. 이미 명예고 뭐고 다 잃어버린 지금에 와서도 그런 사람들이 많다는 게 여러 인터넷 게시판을 둘러보면 느껴진다.
왜?
해외 영화제에서 상을 탔다는 것 때문에 그렇다. 김기덕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해외 영화제에서 상 탔으니까 님보다 유식하고 권위있는 전문가들이 인정한 거’라고 고장난 녹음기마냥 반복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예술을 자기 변명이나 욕구 분출의 수단으로 정의(이건 사실 포르노의 정의이지 예술의 정의가 아니지만 사회 주류층의 욕망은 그 자체로 사회 진리로 인정받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해당 시대의 한계가 그대로 드러나는 마스터베이션을 예술로 보는 이들은 어느 시대에든 존재한다)하는 특정 취향의 남자들 또는 이런 남자들의 의견에 자신을 끼워맞춰 예술 아는 여자로 인정받고 싶어하는 여자들이다. 그런 김기덕 팬들은 <82년생 김지영>이 타임지 선정 올해의 책 중 하나니까 명작으로 공식 인정받은 거라고 해도 받아들일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각종 수상 제도는 해당 업계가 업계 외부인을 대상으로 홍보 및 로비 활동을 벌이기 위한 잔치판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노벨상, 그래미, 오스카 다 마찬가지이다. 상을 받으면 무슨 영구적 까방권을 얻은 것이고 전혀 비판을 받을 가능성이 없고 약점도 없는 완벽한 작품으로 선정된 것인 양 착각하는 이들이 있는데 논리적으로 그런 상이 존재할 수 없다. 왜냐하면 상을 주는 인간들이 신이 아닐 뿐더러, 해당 업계의 이해타산적 계산에서 자유로운 수상 기관도 없기 때문이다. 올해 누구에게 상을 줄까 하는 결정의 기준은 누가 가장 뛰어난가가 아니라 이 사람한테 상을 줘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이미지가 무엇인가, 우리가 받을 수 있는 관심이 무엇인가, 대중에게 있어보이는 결정일까, 욕을 먹지는 않을까 그런 것들이다. 때문에 상의 권위가 조금만 떨어져도 유명한 사람한테 상 좀 받아달라고 읍소하는 꼴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당사자 포함 음악계마저도 떨떠름하게 만들었던 밥 딜런의 노벨 문학상 수상 같은 병크가 바로 이런 위원회 측의 속 보이는 계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아무리 권위있는 상이라 해도 상을 주는 쪽이나 받는 쪽이나 같은 업계의 비슷한 인간들이 돌아가면서 주거니 받거니 하는 방식으로 결정된다. 상식적으로 다른 방식이 있을 수가 없다. 해당 업계에 속하지 않은 이들이 볼 때는 무슨 신비로운 올림푸스의 대관식처럼 보이는지 모르겠는데, 실제로는 그냥 세상의 모든 다른 일처럼 그쪽 일도 다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수준에서 돌아간다. 여론에 휩쓸리고, 정치와 로비에도 휩쓸리고, 심사위원장이 SM 플레이에 꼴리는 성향인지 오늘 아침에 기분이 어떤지 등에도 당연히 영향을 받는다. 수상자를 결정하는 심사위원이 되는 것도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냥 해당 업계에서 일정 기간 구르다보면 어느 정도 결정할 수 있는 지분이 생긴다. 모두 인간이 하는 일이고, 현재 시점에서의 인간이 가진 통찰력 이상이 발휘되는 결정이 아니라는 것이다. 상 받았으니까 공식적인 인정을 받았다, 분명 뭔가가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건 누군가 대통령으로 뽑아놨으면 그 사람의 결정은 완벽하다고 믿는 것만큼이나 얼척없는 믿음이다.
사실 이런 설명이 필요한 분위기 자체가 웃기는 상황이다. 사회 진출 전인 10대 청소년이라면 모를까 어느 정도 자기 분야에서 일을 하다 보면 이런 보편적 원리를 알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모든 분야는 사회에서 자기 가치를 인정받아야 하고 여기에서 실패하면 인력 공급과 자본 공급이 끊어져 도태된다. 분야 특성에 따라 인정받아야 하는 주요 대상이 정부인 경우도 있고 대중인 경우도 있지만, 사회적 합의에 의해 필요없다고 눈 밖에 나면 업계 자체가 위험해지는 것은 공통적이다.
각종 수상 위원회는 해당 업계의 대중 소통, 공적 관계 관리를 담당하는 기관으로서 이런 눈치를 가장 치열하게 보는 곳이다. 어디까지나 업계 종사자 본인들 살아남고 이미지 관리하자고 하는 짓이다. 신급 판단력을 보유한 분들이 강림해서 옳은 답을 지정해주는 곳이 아니다. 어디에서 나왔는지도 모르는 권위를 무턱대고 숭배하는 자들이 '해외 영화제 수상=천재 인증'이라는 허상의 만능 공식을 만들어놓고, 시대와 대중 정서를 뛰어넘는 예술을 자기들만 알아본다고 우기니 코미디가 따로 없다. 주입식 교육의 흙조선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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