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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멘탈리스트/한국인의 행복과 불행

트럼프, 루저들을 위한 권력 포르노

Dirt Mentalist 2020. 11. 11. 0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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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미국 대선에서는 한국에서 예전에 볼 수 없었던 특정 후보에 대한 팬덤 현상이 나타났다. 평소 견원지간으로 보였던 일베/가세연으로 대표되는 인터넷 극우 진영과 클리앙/김어준 세력으로 대표되는 깨시민 진영은 미국 대선에서 모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며 이례적인 일치단결을 보여줬다. 

 

한국도 아닌 미국 대통령 후보에 대한 전례 없는 이 팬덤의 의미에 대해서는 매일경제의 이와 같은 칼럼([노원명 칼럼] 트럼프 패배에 절망한 일부 한국인들에게)이 상당히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해당 칼럼의 내용을 요약하면, 깨시민 진영은 문재인 정권의 대북 정책에 트럼프의 기조가 도움이 되어 지지하는 것이고, 극우 진영은 트럼프가 정치적 올바름(PC)을 중시하는 문화와 중국을 깨부숴줄 것이라는 ‘환상’ 때문에 지지한다는 것이다. 해당 칼럼의 글쓴이는 전자는 정치공학상 맞는 판단이지만 후자는 말 그대로 환상일 뿐이므로, (한국 보수를 에둘러 지지하는 입장에서) 우파들에게 트럼프 지지를 거둘 것을 요청하는 결론을 내고 있다. 

 

대부분 맞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정치공학적 계산 또는 계산 오류만으로 트럼프 팬덤을 설명할 수는 없다. 분명 깨시민 진영의 트럼프 지지 심리에는 문 정부의 대북정책이라는 계산이 들어가 있고 극우 진영의 지지 심리에도 역시 한국 민주당과 친중 세력 돌려차기라는 나름의 (잘못된) 정치적 계산이 숨어있다. 그러나 극우/깨시민 진영의 공통적 트럼프 지지에는 정치공학과 무관하게 한국 흙멘탈들이 공유하는 비합리적이고 야만적인 정서가 숨어있다. 상당수의 트럼프 팬들에게는 오히려 이런 기저 야만성이야말로 그들이 트럼프를 지지하는 핵심적인 이유이고, 정치공학은 그나마 합리적인 척 하기 위한 가면일지도 모른다.

 

위의 칼럼에서도 지적했듯 ‘비정상’이라는 단어는 트럼프를 가장 잘 포착할 수 있는 표현이다. 공화당 내부나 정통 보수 세력 내부에서 의외로 그를 좋아하지 않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은 한국에도 어느 정도 알려져 있다. 그는 진보적 기준에서 당연히 결격 사유가 많은 인물이지만, 보수적 입장에서도 별로 적합한 인물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부유함을 망설임 없이 자랑하고, 사유재산을 광적으로 소중히 여긴 나머지 탈세도 서슴지 않는 자본주의의 화신처럼 보이지만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사업은 방해하지 못해 안달을 냈다. 아마존 CEO 제프 베조스에 대해 그가 보여준 내로남불식 공격은 소수 기업의 시장 독점이나 노동권 침해를 우려하는 민주당의 진보적 사상과도 무관하고, 기업 문화와 국부 창출을 장려하는 공화당의 사상과도 거리가 멀다. 

 

또한 미국의 강한 군사력과 문화적 영향력 유지는 미국 보수가 사활을 건 사안이지만, 그는 군인 영웅을 모독하고 세계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을 축소하는 정책을 펼치면서 이것이 어떤 다른 비전을 위한 것인지 보여준 적이 없다.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 사태에 대한 분풀이로 WHO를 탈퇴해버린 것 역시 그의 비전 없는 감정적 결정의 전형적 사례이다. 그는 탈퇴 후에 세계 질서 재편을 위한 다른 기관의 설립을 천명하지도 않았고, 동맹국에게 다른 질서의 청사진을 제시하지도 않았다. 그는 그렇게 선대 조상들이 장기간 일구어놓은 미국의 권위를 곶감처럼 빼먹기만 했다. 보수는 말 그대로 가진 것을 지키는 것인데 그가 보수라면 단어의 정의를 바꿔야 할 판이다. 문제는 보수와 진보의 미덕 중 어떤 것도 갖추지 못한 그의 야만적 비정상성이 팬들에게는 최고의 매력 포인트로 작용해 그를 지지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트럼프의 공격성은 대부분 순간적인 자기 만족감 외에 다른 목적이 없었다. 그는 건수가 없어서 공격할 대상이 없을 때는 적대시할 이유가 1도 없는 캐나다 정부에마저도 쓸데없는 막말을 일삼았다. 쉬지 않고 누군가를 막말로 욕하는 것이 그의 ‘강한(?) 남자’ 캐릭터의 핵심이었던지라, 눈에 띄면 누구라도 공격했다. 형제 수준의 동맹마저 공격하고 국제 정치 경기장을 그냥 떠나버리는 것이 미국 및 그 우방국의 미래에 어떤 도움이 될까? 코로나바이러스를 줄창 차이나바이러스라고 불러대면서 미국 내 아시아인을 기분나쁘게 하면 중국의 야욕이 저절로 꺾어질까?

 

트럼프는 문제를 실제로 해결하지 않고 말로만 짖어댔다. 그가 어느 가치관에도 부합하지 않았던 이유는 매순간 자신의 감정과 특권의식을 충족시키기 위해 제멋대로 행동했기 때문이다. 금수저로 태어나 한평생 특권의식을 누리기에만 바빴을 뿐 자신만의 능력으로 뭔가를 성공시켜 본 적 없는 그의 깡통같은 사업 이력처럼, 대통령으로서의 그 역시 미국의 지위로 호가호위하는 대통령 코스프레를 하는 데 머물렀다.

 

요컨대 트럼프에게 미국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지상 최고의 권력을 이용해 자기 만족을 채울 수 있는 무제한 뷔페 식당 이용권이었다. 이런 인물을 지지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그의 흙멘탈 팬들은 최고의 권좌에 앉아 GTA 게임을 하는 그에게 개인적인 대리만족감을 느꼈다. 그의 언행이 정당한지, 정책이 유효한지는 따져보지도 않고 트럼프의 인생이 멋지다, 살맛나겠다, 나도 저렇게 맘대로 갑질하고 싶다, 상위 0.xxx%의 인생이다 등등 그를 정치계의 만수르로 만들어놓고 덕질하는 그의 팬들과 이성적 논쟁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국의 좌우단결 트럼프 지지는 현실에서의 욕구 불만을 끊임없는 남탓과 말초적 콘텐츠 탐닉으로 해소하는 루저들의 저질 취향의 연장선상에 있다.

 

한국의 정치 과잉 양상에는 지나치게 사적인 면이 있다. 이 과잉의 기저에는 ‘내 인생이 힘든 이유는 다 반대 진영의 문제 때문’이며 상대만 궤멸시키면 천년왕국이 올 것이라는 사적이면서도 기복신앙적인 믿음이 깔려있다. 이렇게 사심 가득한 정치적 지지는 철학이나 가치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과잉된 자의식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사상은 껍데기일 뿐, 그러한 지지의 내적 실체는 세상이 나 중심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비현실적이고도 유치한 사적 탐욕이다. 

 

사실상 보수/진보 진영의 가치 중 어느 것도 가지지 못한 결격 인물인 트럼프가 보수/진보를 모두 능가하는 능력자로 둔갑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트럼프는 진영과 무관하게 양극단의 과잉 환자들이 가진 병적 욕망을 정확히 꿰뚫고 그들이 원하는 권력자 포르노를 보여줬다. 극과 극이 통하는 이유는 극단적 과잉이 언제나 병든 자아의 의탁 양상이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그런 흙멘탈들을 위한 최적의 거짓 선지자였다. 거짓 선지자 추종의 끝은 언제나 순장이다. 본인의 자아를 거짓 선지자의 자아에 통합시켰으니 당연한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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