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멘탈리스트
부모라는 완전체 본문
한때 지상파 방송에서 곧잘 내보냈던 <인간극장> 류의 휴먼다큐로 대표되는 서민층의 자기 연민 플롯은 영화, 드라마, 문학 등 한국 문화 콘텐츠 전반을 지배했던 가장 흔한 플롯 중 하나이며, 한국 장년층들의 잠재의식에 깊게 새겨진 자기 인식이기도 하다. 모든 면에서 완전무결한 주인공과 모든 면에서 완전히 사악한 주변 요소의 결합은 이 자기 연민 포르노의 기본 공식이다.
이런 플롯에서 현실을 반영한다는 핑계로 고문 포르노처럼 늘어놓은 외부 요소들은 그게 경제적 빈곤이든, 정치적 폭압이든, 개인적 악연이든, 외관상으로는 심각해보여도 사실상 '이토록 완벽한 나'라는 감정이입 대상으로 만들어놓은 주인공이 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지를 억지로 설명하려다 보니 기계적으로 소환되는 핑곗거리에 불과하다. 전지적 자아도취자의 희뿌연 시야 속에서 강제 소환된 갈등 요소가 제대로 그려질리는 만무하다. 대개 이런 플롯은 외관상 자극적인 설정으로 심각한 사회 비판이나 인생의 진리를 담고 있는 척 하지만 결정적인 부분을 누락/왜곡하거나 둥글려서 앞뒤가 안 맞고,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이들의 자기 연민을 모두 충족시키려다 보니 예민한 부분은 모조리 피해가 결국 핵심은 건드리지도 못한다.
어금니 아빠가 희대의 천사로 위장해 시청자의 주머니를 털어가고, 본인 사생활과 다를 바 없는 수준의 영화 창작을 핑계로 본인만의 강간의 왕국을 차려 많은 피해자를 양산한 김기덕이 대단히 엄숙한 사회고발 예술가인 양 행세할 수 있었던 건 우연이 아니다. 위험 신호는 민망하리만치 뻔뻔하게 드러나 있었지만 전 국민이 자기 연민 포르노에 중독된 상태였기 때문에 인식이 되지 않은 것이다.
한국에서 이런 자기 연민 플롯의 최강 캐릭터 요소 중 하나가 바로 '부모'라는 정체성이다. 유교 사상은 다른 문화권의 종교에서 신이 차지하는 자리에 부모와 조상을 갖다놓았고, 때문에 한국 사회에서 부모라는 지위는 각별하다. 모든 문화권이 나름대로 부모를 존중하도록 가르치지만, 한국의 문화는 단순히 부모를 존중/존경하는 것을 넘어서 절대자의 위치에 놓는다. 이런 문화 속에서 부모-자식 관계는 종종 현대 사회의 상식과 법률이 적용되지 않는 일종의 치외법권이 된다. 한 사람이 자연인일 때와 '부모'일 때 받는 평가는 크게 차이가 난다.
사회 속의 한 개인으로서는 좋지 못한 평가를 받을 요인들도 자식을 가진 부모라는 맥락에 집어넣으면 갑자기 동정받을 요인으로 돌변한다. 동일한 인물의 동일한 특징이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낳아 생물학적으로 부모가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갑자기 사회적 지지와 연민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일개 개인일 때는 경멸과 무시의 이유밖에 되지 않는 경제적 무능은 어깨가 무거운 가장의 경제적 고달픔으로, 몰상식함은 배우지 못한 자의 슬픔으로, 판단력 부족으로 인한 잘못된 결정은 인생의 고단함으로 업그레이드된다. 개인으로서는 변한 게 없어도 사회적 내러티브가 달라진다.
한마디로 한국 사회에서 부모가 되면, 한때 본인의 자질 부족으로 재단당했던 본인 인생의 무수한 문제들이 더이상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오로지 자식을 위한 인생을 사는 부모의 희생'으로 예쁘게 포장되는 추가 내러티브에 대한 액세스를 획득할 수 있다. 사회 속 개인의 인격과 능력은 천차만별로 다른데, 자식 앞에서의 부모라는 존재는 놀라울 정도로 동질적으로 묘사된다.
이건 현실이 아니라 사회 통념을 좌지우지하는 장년층 기득권들이 만들어낸 나르시시즘적인 판타지다. 실제 현실에서는 부모로서의 역할 수준도 사회 속 개인의 역량만큼이나 천차만별로 차이가 난다. 형편없는 개인이 자식 앞에서만 슈퍼맨으로 변신하는 마법 따위는 없다. 사회에서 판단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자식 일에서도 똑같이 판단력이 떨어지고, 사회에서 폭력적으로 구는 사람은 자식에게도 폭력적으로 굴며, 저차원의 방어 기제로 인생을 땜빵질하며 사는 사람은 자식과의 관계에서도 똑같이 행동한다. 흙수저들이 부모와 사이가 안 좋은 경우가 많은 이유는 경제적 빈곤함 자체 때문이 아니라, 그 빈곤함의 원인 중 개인에 귀속되는 부분이 자식과의 관계에서도 똑같이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자기 반성은 모든 변화와 발전의 첫 단계이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은 나이가 먹을수록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기보다 사회 통념상 자신의 이해관계와 가장 맞아 떨어지는 내러티브를 찾아 거기에 마약처럼 의지하게 된다. 한국 사회에는 부모가 부모라는 신분 자체로 인정받을 수 있는 내러티브가 넘쳐난다. 완전체가 되기에 너무도 쉽다.
한때 한국에서 결혼과 출산은 통과의례였다. 앞뒤 따지지도 않고 그냥 덮어놓고 출산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니냐는 사회 압력 속에서 남이 시킨 숙제하듯 자식을 낳았는데 아무도 상을 주지 않는 자신의 인생에 당황스러워하며 그 책임을 자식에게 청구하는 철부지 부모가 매우 많다. 떠넘기는 김에 자식과 전혀 무관한 본인의 문제로 인한 결과도 여기저기 끼워넣어 도매금으로 넘겨버린다. 이런 철없음은 젊은 부모가 아닌 50대 이상 중년/노년층 부모에게 더 심하게 나타난다. 현대 사회 시민이 아니라 유교 철학의 신민인 이들은 자식을 낳는 것 자체가 도덕적 의무라 생각하고, 태어난 자식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효도하는 게 자동 의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흙조선 유교 사상에서 부모-자식 관계는 자식의 출산으로 시작되는 관계가 아니고, 출산과 동시에 이미 정해진 도덕적 의무로 자동 완성되어있는 관계이다. 이들에게 자식에 대한 책임이란 자식이 아니라 내 부모나 죽은 조상님들과의 관계 속에서 그들이 내준 숙제 도장 깨기로 완수하는 것이다. 의무가 아래에서 위로만 향하기에 윗사람은 연쇄적으로 자동 완전체가 되는 시스템이다.
사회통념에 순응해 인정받고자 한 것, 자식을 낳아 자신도 자동으로 완전체 윗사람이 되고자 했던 인생 계획은 자식과는 상관없는 본인의 선택이다. 이걸 인정하는 게 버겁다고 울부짖는 미성숙한 중장년층 때문에 자기 연민 플롯은 아직도 한국에서 맹위를 떨친다. 조삼모사식 포퓰리즘 정책에 놀아나는 사람이 많은 건 자기 연민에 중독된 자들의 눈에 현실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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