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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멘탈리스트/한국인의 행복과 불행

흙멘탈 증상 - 강박적/당위적 사고

Dirt Mentalist 2021. 11. 14.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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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저는 대학생인 딸이 이해가 안 가요. 저는 정확히 11시면 잠자리에 들어서 530분에 깨거든요. 걔는 누굴 닮은 건지, 누구한테 배운 건지 새벽 2-3시에 잠들어서 내버려두면 아침 10시가 넘어서 일어나요. 일찍 수업이 있을 때는 아침에 굉장히 피곤한 상태로 대충 씻기만 하고 뛰어나가죠. 제발 일찍 잠자리에 들고 아침에 제깍 일어나서 가족 모두가 식사하고 나가는 풍경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딸이 말을 듣지 않아 그게 되지 않아요. 스트레스받아 죽겠어요. 어떻게 해야 말을 듣게 하죠?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면 걸릴 수 있는 큰 병 같은 거 없나요? 그걸로 협박하게.”

 

B: “딸이 그렇게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이유가 있나요?”

 

A: “본인은 체질이 그렇다고 우겨요. 밤에 일찍 잠이 오지 않고 공부가 가장 잘 된대요. 억지로 일찍 자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지가 않는대요.”

 

B: “그럼 그냥 존중해주시면 안 되나요?”

 

A: “안 되죠.”

 

B: “왜죠?”

 

A: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게 옳은 거잖아요.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게 그럼 잘하는 짓이란 건가요?”

 

B: “생활주기에 옳고 그른 건 없어요. 사실 올빼미형과 아침형 체질은 타고나는 것이고 정말로 밤에 일이나 공부가 잘 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A: “밤에 일이나 공부가 잘 되는 체질이면 그 체질을 고치도록 노력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B: “본인에게 그게 더 잘 맞는데 고쳐야 할 이유가 뭘까요?”

 

A: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게 옳다는 건 상식이잖아요.”

 

B: “상식이 아닙니다. 적어도 이제는 그래요. 생활주기가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은 과학자들도 인정한 사실입니다.”

 

A: “그래도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학생과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학생을 나란히 두고 보면 전자가 더 좋아보일 거 아녜요? 제 딸이 후자라고 하면 누가 칭찬하겠어요? 가족들 다 아침식사하는데 혼자 빠지고. 나중에 혼자 일어나서 따로 주섬주섬 차려먹고. 그림이 너무 보기 싫잖아요.”

 

B: “굳이 딸의 사생활에 대한 남의 시선까지 상상하실 필요가 있나요? 그리고 남들이 안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비난할 것 같지는 않은데요.”

 

A: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게 바지런하고 예쁜 아이로 보이진 않을 거잖아요. 남이 알면 욕할 수도 있다는 생각, 적어도 좋게 보이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면 기분이 너무 나빠서 견딜 수가 없어요. 당연하잖아요. 내 딸 어디 가서 흠잡히면 싫으니까 이왕이면 완벽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뭐 잘못된 건가요? 부모로서 그 정도 말은 할 수 있잖아요? 그게 다 교육 아닌가요? 어쨌든 결과적으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게 되면 겸사겸사 딸에게도 나쁠 건 없잖아요?”

 

 

한국에는 위의 대화 속 A와 같은 부모, 나아가 A와 같은 강박적/당위적 인간형이 매우 흔하다. 세상 만사에 대해서 무엇이 어떠해야 한다는 식의 틀을 정해 놓은 사람이 매우 많다는 뜻이다. 이런 사람들의 인생에는 큰일부터 작은일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대해 매우 세세한 규칙과 틀이 정해져 있어 지켜야 할 규칙의 수가 어마무지하게 많다. 심한 경우에는 젓가락질 방법은 물론이거니와 찰나의 표정 변화나 걸음걸이 모양의 미세한 특징까지도 그 사람의 가치를 결정짓는 큰 요인이 되어버린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본인이 숨막히게 당하는 입장일 땐 대부분 이를 싫어하면서도, 본인 역시 저런 강박적/당위적 사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본인과 안 맞는 남의 강박적/당위적 사고는 싫어하면서도, 본인이 가진 강박적/당위적 사고는 너무 당연한 상식이라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며 타협이나 양보가 불가능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위 대화 사례의 A 역시 단지 본인을 딸이 건강하고 올바른 생활주기로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진 평범한 엄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실제 한국인들이 많이 가지고 있는 인생이나 세상에 대한 강박적/당위적 사고는 외견상 대충 보았을 때 크게 놀랄 것 없이 당연해보이는 종류가 많다. 특히 부모들이 자식에게 적용하는 강박적/당위적 사고는 바람직한 가정교육의 외피를 두르고 나타난다. 대부분 공식적'으로는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도덕적으로 살아야 한다, 올바른 식습관을 가져야 한다, 주변인에게 친절하에 대해야 한다 등과 같이 상식적인 목표를 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포장한 모습만 보면 딱히 논리적으로 시비를 걸 만한 부분이 없어보이는 내용들이라는 것이다. 적어도 특정 신의 영광을 위해 어느 민족이 모두 말살되어야 한다든지, 나의 가문의 영광을 위해 원수의 가문을 절멸시켜야 한다든지 하는 극단성을 띠지 않기 때문에 범법의 영역도 아니고 비상식의 영역도 아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한국인들은 자신의 강박적/당위적 사고가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강박적/당위적 사고방식이 막상 실제 적용되는 모습을 살펴보면 멀쩡한 척 하는 목표로 위장된 정신병적 증상에 불과하다는 것이 단박에 드러난다. 문제의 근본 원인은 규칙의 내용이 아니라 강박적/당위적 사고 자체에 있다. 아무리 옳은 내용처럼 보이는 것도 강박적/당위적 사고의 대상이라면 옳지 못한 결과를 낸다. 강박적/당위적 사고 방식 자체가 문제적/병리적 사고 방식이기 때문이다. 대상이 무엇이든, 강박적/당위적으로 강요되는 규율은 그럴싸하게 보이는 겉포장지로 위장한 독성 물질이나 다름없다.

 

 

강박적/당위적 사고의 실체는 자기중심적인 불안 의탁 증상이다. 이는 사실상 대뇌와 이성의 판단 과정을 거치지 않고 자동반사적으로 진행되는 반응이다. 스스로 근거나 필요를 합리적으로 따져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이래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면서도 그 이유를 순환논리로밖에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 특징이다. 불안을 손쉽게 의탁하려는 반응적 사고이기 때문에 자발적인 판단력을 발휘하기보다는 사회 고정관념을 그냥 따르거나 외관상 그럴듯해 보이는 규칙을 그냥 덥썩 집어들고 집착의 대상으로 삼게 된다.

 

 

결국 이런 강박적/당위적 사고는 목적의 본질에서 사람을 도리어 멀어지게 만든다. 강박적/당위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은 어릴 때부터 세뇌된 사실을 아무런 비판 과정 없이 그냥 앵무새처럼 따르고 있거나, 외부적 처벌에 대한 공포 때문에 본인의 의사가 마비된 채 방어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세뇌로 인한 규칙 강박을 가진 이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자발적 판단에 의해 규칙을 준수하는 사람들에 비해 훨씬 더 완고하고 경직된 태도를 보이는데, 애초에 자발적 사고가 마비되어 있는 상태에서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자신의 생각을 업데이트할 여유도 없고 그 방법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런 완고함을 통해 이들은 본인이 절대적으로 옳은 답안에 정착했다는 심리적 안정감을 얻는다. 한 번 잘못된 세뇌를 교정하기 대단히 어려운 이유도 바로 숭배 대상이 사라지면 이 심리적 안정감이 함께 사라지기 때문이다. 세뇌를 통해 강박을 가지게 된 사람이 지키려고 하는 것은 자신의 심리적 안정감이며, 자신이 따르고 있는 규율이 정말 합당한지에 대한 시시비비는 부차적인 문제에 불과하다. 위 대화 사례 속 A의 마지막 말인 어쨌든 결과적으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게 되면 겸사겸사 딸에게도 나쁠 건 없잖아요?”에서도 드러나듯, 사실상 이런 사람들이 내세우는 공식적 사유는 명분일 뿐이며, 진짜 목적은 자신이 만든 틀 속에서 안전하다는 희망회로를 돌리는 것이다. 이런 사고 패턴은 세부 내용이 무엇이건간에 강한 수동성, 의존성의 산물이며 객관성이 결여된 현실 인식으로 이어진다. 당연히 이런 패턴에 사로잡혀 있으면 방향 설정이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노력하면 할수록 도리어 핵심에서 더욱 멀어지는 필패의 인생을 살 수밖에 없다.

 

 

한국의 문화는 긍정적인 방향의 동기 부여로 사람을 움직이기보다는 폭력, 협박, 공포 심리 조성 등 부정적인 감정을 모종의 동력으로 삼으려는 경향이 크다. 이런 문화로 인해 강박적/당위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매우 많을 뿐 아니라, 이런 강박적/당위적 사고가 심할수록 열심히 사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현실은 이런 착각과 반대로 돌아간다. 사소한 것에까지 매사에 경직된 세부 규칙을 적용하는 강박적/당위적 사고는 인생의 행복도, 효율성, 건강, 생산성 등 어떤 면에서도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 본질에서 거리가 먼 것에 모든 에너지를 낭비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아무리 죽을 힘을 다해 자기 검열을 하고 칼날 위를 걷는 듯 긴장하며 살아도, 강박적 사고 하에서는 이 모든 노력(?)이 엉뚱한 방향을 향하게 되기 때문에 결국 보상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도라고 할 수 있는 도는 도가 아니다.

-노자

 

 

본질에 집중하는 사고는 유연해야 하며, 유연할 수밖에 없다. 사람은 본질을 마주할 용기가 없을 때 쓸데없는 규칙와 부산함으로 스스로의 인식을 분산시킨다. 끝도 없이 자잘하고 사소하며 자의적인 규칙을 설정하고, 스스로에게만 유의미한 체크리스트를 열심히 확인해가면서 잘 살고 있다고 자족하게 된다. 이런 종류의 강박적/당위적 사고방식으로 스스로를 괴롭히며 느끼는 자기 만족감은 아무도 약속한 적 없는 추후의 보상을 기대하는 데서 오는 비합리적 만족 지연이라는 것이 두고두고 문제가 된다. 차라리 마음껏 놀고 먹으며 보내는 시간은 그 자체로 즉각적인 보상이 되므로 사람에게 쓸데없는 기대감과 스트레스를 심어주지 않지만, 강박적/당위적 사고의 자족감은 사람을 비합리적인 보상심리에 사로잡히게 만든다.

 

 

유명한 마시멜로 만족 지연 실험에서 마시멜로를 당장 먹지 않고 참은 아이들은 보상을 받았지만, 그건 나중에 마시멜로를 더 주겠다는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현명한 선택이었다. 아무도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없는데 괜히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참으면서 자신이 고통스러운 만큼 어디에선가 축복이 내려올 거라고 막연히 믿는다면 이는 더이상 현명함이 아니고 망상에 불과하다. 강박적/당위적 사고는 계약을 맺은 적도 없고 물리적인 인과관계도 없는데 혼자만의 망상 속에서 일방적인 계약을 설정하고 이를 수행하게 만드는 사고방식이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사람이 어때야 하는지에 대한 정해진 규칙은 없다. 규칙이 아닌 것을 규칙으로 착각하는 것은 세뇌의 결과이다. 또한 무의미한 규칙에 스스로 사로잡혀 인생을 낭비하고 제멋대로 보상을 기대하는 것은 불행으로 향하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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