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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멘탈리스트/한국인의 행복과 불행

욕먹어 싼 X 욕하는 게 뭐가 문제죠? - 명분충 한국인

Dirt Mentalist 2021. 11. 2.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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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의 정신 건강은 다른 OECD 국가에 비해 평균적으로 매우 좋지 않은 편이며 고속 성장 시기에 미비했던 시민 교육 때문에 이를 위장할 매너조차도 취약한 편이다. 그래서 사회 정규 분포 그래프상으로는 그다지 극단적인 편이 아님에도(, 상대적으로는 평범축에 속해도) 명백히 임상학적으로 진단명 하나 이상이 나오겠다 싶은 사람을 발견하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다. 모든 인터넷 게시판에는 당연히 다양한 종류의 이상한 사람들이 출몰한다. 그런 인터넷의 여러 공개 대형 게시판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정신병자가 유독 많은 것처럼 느껴지는 곳이 있는데, 소위 극렬 대깨문성향으로 분류되는 중노년 여성들이 모인 82*ook 게시판이다. 이 게시판 사용자들의 정신병적 징후는 한두가지가 아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괴기스러웠던 현상은 몇 년 전 고유정 사건에 대해 유저들이 보인 반응이었다. 아마도 평균 40-60대일 것이라 추정되는 이 아주머니들은 고유정 사건에 이상하리만치 사적으로 흥분해 욕설을 쏟아냈는데, 그 중 상당수는 고유정과 자신을 비교하며 내가 고유정보다 훨씬 예쁘다고 강조하고 있었다.

 

 

실로 기이한 반응이 아닐 수가 없다. 이에 같은 사이트 회원 중에서도 불쾌했던 사람들이 있었는지 본인이 고유정보다 예쁘다는 말은 뭐하러 하냐. 그만 좀 해라. 사이코 같다.”는 의견도 종종 나왔지만 놀랍게도 이 사이트에서는 그러한 의견이 오히려 다구리를 당하는 쪽에 속했다. 본인이 고유정보다 예쁘다고 자부심을 나타내는 아주머니들은 그 수가 상당했으며, 도리어 자신들을 지적하는 이들을 향해 왜 고유정 편을 드냐. 욕 먹어 싼 년 욕하는 게 뭐가 문제냐. 너 메갈이냐.”고 아주 당당하게 일갈했다. 고유정은 엄연히 살인자이고 자신은 여성의 도리를 다 하며 사는 주부이니, 고유정 따위를 상대로 무슨 말을 하고 무슨 짓을 하든 모두 정상적으로 보일 것이라 기대하는 듯 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자신이 고유정보다 예쁘다고 자부하는 것을 고유정에 대한 정당한 비판이라고 주장한 저 아주머니들은 정신 건강 또는 지능 또는 둘 모두에 매우 심각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다. 자신이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하는 다른 상황에서는 다소 억압되어 있더라도, 긴장이 풀리거나 건수/명분이 하나 잡히는 상황에서는 자기의 본질을 숨기지 못하고 광기에 빠지는 유형이라 할 수 있다. 타고난 기질도 무시는 못하겠지만, 이런 사람들이 뭔가 건수가 잡혔다 싶은 상황에서만 유별나게 광기를 발현시키는 것은 한국의 명분 중시 문화와 관련이 있다. 한국인들은 뭐든 명분이 없으면 아주 간단한 의사 표현도 어려워하지만, 명분만 확보되었다 싶으면 온갖 기이한 행태까지도 관대하게 용서하는 명분충기질이 다분하다.

 

고유정보다 예쁜이 아주머니들 역시 아마도 평소에 거의 신경쇠약 수준으로 타인의 시선에 신경을 쓰고, 남에게 인정받을 만한 명분 없이는 자기 표현을 거의 하지 못할 만큼 눈치를 심하게 보는 타입이었을 것이다. 또한 외모에 대한 칭찬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였을 것이다. 그래서 남과 자신의 외모를 수시로 비교하는 게 버릇이 되다 못해 고유정과 자신을 비교하는 데까지 이른 것이고, 주변의 인정에 너무 목마르다 못해 '고유정보다 내가 낫다'는 이상한 어필까지 동원해 자기도 모르게 인정을 구걸하는 정신 상태가 된 것이다. 고유정과 자신이 동반 미팅이라도 나가 남성의 시선을 두고 경쟁을 하고 있는 듯한 구도를 상상했던 것 같다. 아마도 이 아주머니들은 평소에 다른 멀쩡한 주변인을 놓고도 수시로 이런 생각을 했겠지만 입 밖으로 이를 꺼내놓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모두가 욕해도 된다고 허락한 듯한 대상이 나타나자 마치 수영장에서 몰래 소변을 보듯 숨겨왔던 광기를 풀어헤친 것이다. 당연히 정상적인 몇몇 사람들의 눈에 이상성이 포착되자, 그들에게는 강제로 '너 고유정 편', '너 메갈'이라는 낙인을 찍어 재갈을 물리기까지 했다. '누구보다 예쁘다'는 식의 칭찬을 너무나 듣고 싶은데, 고유정은 아무도 편들어주지 않을테니 고유정과 자신을 비교하면 승률 100%라는 계산속을 깔고 있는 것이다.

 

 

저 정도는 아닐지라도 다수의 한국인들은 이 명분충 기질 때문에 평소에는 억눌렸다가 뭔가 명분이 확보됐다 싶은 순간에 광기에 사로잡히는 경우가 자주 있다. 누구 하나 만만하게 욕할 사람이 생기면 자기의 평소 스트레스까지 다 담아서 사적으로 비난에 가세한다. 마치 '하고 싶었던 말 마음껏 해도 되는 날'로 지정된 것마냥 이를 사적으로 활용한다. '명분'을 핑계삼아야 하니 명분을 강화하기 위해 거짓으로 명분을 창조하는 일까지 심심찮게 벌어진다. 상대방에게 자기 멋대로 정체성을 뒤집어 씌우는 것이다. 유명 범죄자가 뉴스에 등장했을 때 '그 놈이 일베냐, 오유냐'를 놓고 네티즌끼리 신경전을 벌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해당인이 일베 또는 오유라면 그 이유 때문에 욕할 명분이 더 확실하게 확보되고, 그만큼 더 마음껏 광기를 표출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욕 먹을 만한 '행위'에 대해 욕을 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아닌 척하면서 실은 욕을 지나치게 사적으로 활용하려는 게 문제다. 명분 강화를 위해 명분 조작까지 하고 나면 더 이상 비난은 그 행위에 대한 것이 아니게 된다. 박근혜가 대통령에 막 당선되었던 시절에는 인터넷에서 깨시민들이 사실상 박근혜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본인의 사적 대인관계 문제에서조차 타인의 공감을 얻어내기 위해 박근혜를 명분으로 쓰는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를테면 마음에 안 드는 직장 상사 욕을 하기 위해 그 사람 박근혜 뽑은 것 같다.”고 추정하고 그게 맞을 거라고 억지로 갖다붙이는 논리를 만드는 식이었다. 이렇게 하면 수많은 깨시민들은 열광하며 입에 담지 못할 욕을 같이 해주곤 했다. 정치 문제가 끼지 않았다면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남의 직장 상사에게 하기는 힘들었을 욕도 박근혜 뽑았을 것이라는 말 한 마디에 그래도 된다는 명분이 생겼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쯤 되면 더 이상 사람들이 비난하는 대상을 제대로 보고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사적 울분을 풀기 위한 자리가 되고 나면 욕하는 대상은 이미 자연인이 아니라 '내가 욕하고 싶은 모든 것의 상징'이 되어야만 한다. 박근혜를 뽑아서 욕하는 게 아니고, 욕하고 싶으니까 박근혜를 뽑았다고 우기게 되는 것이다. 박근혜가 아닌 그 무엇이라 해도 마찬가지이다. 특정 커뮤니티에서 자기 마음에 안 드는 의견만 나오면 그 커뮤니티와 적대적인 타 커뮤니티를 들먹이며 근거 없이 '너 거기 출신'으로 낙인 찍는 경우는 매우 많다. 손쉽게 제압하기 위해 상대방에게 자기가 생각하는 최악의 정체성을 뒤집어씌우고 '욕해도 되는 X'로 만드는 것이다. 똑같은 내용의 말을 해도 이런 명분충의 심기를 건드리면 일베에서는 클리앙으로, 클리앙에서는 일베로 몰릴 수 있다. 일베같은 말을 해서, 클리앙같은 말을 해서가 아니라 욕하고 싶은데 가장 좋은 '명분'이 그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집단의 희생양으로 찍히면 정말로 가혹한 상황을 당하게 되는 이유가 그래서이다. 일단 욕해도 된다는 표지판이 세워지면 갑자기 여론의 힘으로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치외법권이 생겨버린다. 모두가 자신의 정신적 쓰레기를 불법으로 투기하기 위해 찾아온다. 범죄 경력이나 정신 상태가 심각하게 의심되는 수준의 저주성 욕설이나 상상을 써갈겨놓고도 자신이 무슨 바닥을 보였는지에 대한 인지가 놀라우리만치 없다. 다들 욕할 놈/년 욕하는데 못할 말이 뭐 있냐는 식으로 당당하다.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대상이 실제로 하지도 않은 언행도 마구 뒤집어씌운다. 명분 강화 목적이다. 겉으로는 대상의 행동을 비판하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은 평소에 하고 싶었던 자기 어필 원맨쇼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적어도 저거보단 낫지, 그러니까 난 무슨 말을 해도 돼, 난 남을 일방적으로 비난해도 될 만한 자격과 권력이 있어, 내가 이런 사람이야.

 

 

인간의 잠재의식은 이런 비난이 사실은 사회 공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알량한 자의식을 달래기 위한 비열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잠재의식적으로는 모두가 자신도 크거나 작게 그러한 종류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으며 이를 두려워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두려움은 오히려 비난을 종종 더욱 가열차게 만든다. 남을 욕하고 있는 그 순간만큼은 욕을 하면 할수록 자신이 그에서 멀어진다는 착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려운만큼 그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비난의 강도를 높이게 된다. 순간적으로는 안심이 될지 모르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집단 자체의 정신 건강을 저하시키는 원인이 된다.

 

 

욕먹어 싼 X 욕하는 게 뭐가 문제예요?”

 

 

다시 말하지만 욕먹을 만한 짓에 대해 욕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X가 얼마나 욕 먹을 만한 짓을 했는지와 무관하게 남에 대한 광적인 비난으로 본인의 인생 탈주를 감행하는 것이 저열하고 소모적이며 정신을 병들게 하는 짓이라는 말이다. '어차피 쓰레기'인 손쉬운 대상을 욕하는 거라고 해서 그 순간 자신의 비합리적 행동에 대한 면책이 적용된다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누군가를 욕하는 이유를 대부분 "그 X가 욕 쳐먹을 짓을 했으니까"라고 말하지만 실제 이보다 훨씬 더 직접적인 이유는 첫 번째, 본인이 욕을 하고 싶기 때문이고, 두 번째, 욕을 할 수 있는 시간과 수단이 있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쳐죽일 짓을 한 X라 해도 두 가지가 충족되지 않으면 사람들은 욕을 하지 않는다. 요컨대, 누군가를 욕하는 것은 불가항력적인 자연 현상이 아니라 명백히 자신이 결정하고 행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행위의 책임자는 여전히 나 자신이다. 대상과 상관없이 내 행동은 내 것이며 책임 소재도 나에게 있다

 

남은 남이고 나는 나이다. 남의 악덕이 나의 면죄부나 정상성의 증거가 되지 않는다. 명분이 있으니 괜찮다고 생각하거나, 남을 욕하면 욕할수록 본인 스스로는 괜찮은 존재가 된 것 같아 안심이 된다면 당신은 자신과 타인을 구분하지 못하는 상태에 빠져 있는 것이다. 정체성에 독립성이 결여된 타인 의존적인 상태, 쉬운 말로 '유리 멘탈' 상태인 것이다. 남에 대한 비난으로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는 행위는 의존적 행위이다. 강한 사람일수록 타인 비난하기 스포츠에 눈 뒤집는 경우가 별로 없는 이유는 바로 이 의존성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도덕적 규율로 스스로를 강제하려 해도 정신이 건강해지지 못한다면 남을 과도하게 사적으로 비난하는 습관을 버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약한 정신은 외부의 제물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이 나약함을 해결하지 않으면 눈을 희번덕거리며 또 쉬운 욕할 거리가 없나 찾아다니는 소모적인 인생을 피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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