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멘탈리스트
훌륭한 가장 조두순과 강호순 본문
결혼과 출산을 주변 친구들보다 훨씬 일찍 한 부부가 있었다. 아이가 말귀를 알아듣는 나이가 되자 이 젊은 부부는 조기교육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는데 아이는 대부분의 아이가 그렇듯 공부에 큰 관심이 없었다. 부모가 열을 올리고 아이를 잡는 만큼 아이의 신경은 온통 그런 부모의 통제를 최대한 피하고 도망다니는 데 쏠리게 됐다. 부모와 완전히 동상이몽이 된 아이를 두고 부모는 속이 터져나갔고, 그들은 어느날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이런 답답한 심정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도대체가 애가 세상을 몰라. 부모가 죽도록 고생하면 뭐해. 진짜 학생 때부터 죽도록 공부하고 죽도록 노력해서 취업하고 죽도록 자식 새끼 먹여살리자고 뛰어다니면 뭐하냐고! 그 새끼는 하나도 몰라!"
순간 친구들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가 이내 불가항력적인 웃음이 터져나왔다. 왜냐하면 학생 시절부터 그들을 보아온 친구들은 그들이 '죽도록 공부하고 죽도록 노력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 부부는 그냥 최대한 꾀를 부리면서 살아왔고 인생에서 별다른 노력을 한 적이 없는, 사실은 너무나도 흔해빠진 인간 유형에 불과했다. 갑자기 부모가 됐다고 기억이 달라진 것인가? 친구들은 엊그제까지만 해도 뺀질거리던 자신들의 친구가 갑자기 비장한 열사 모드가 된 것에 적응할 수가 없었다.
아마도 위의 부부가 주변 친구들도 모두 부모가 된 상태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면 결과를 사뭇 달랐을 수도 있다. 이미 모두 부모의 멘탈리티를 장착한 상태에서는 이해관계에 공통적인 부분이 생겼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경우에도 이미 고정된 과거가 세탁되는 것은 아니지만 '부모'로서의 정체성으로 자식에게 권위를 세우고 자식에게 원하는 바를 요구할 권리를 주장하려는 욕망을 공유할 수 있게 되면, 아닌 걸 뻔히 알면서도 저런 웃기는 과거 세탁에 기꺼이 동참해줄 또래들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위의 상황에서 부부는 너무 일찍 자신들만 부모가 되는 바람에 또래 집단에서 욕망의 동승자를 찾을 수 없었다.
공통적 이해관계로 인한 이런 정서적 담합과 협잡은 사적으로 서로 잘 알지 못하는 익명의 집단에서 더욱 강해지고 공고해지는 면도 있다. 그리고 그렇게 형성된 한 사회의 집단적 잠재의식은 막강한 고정관념을 형성한다. 당장 TV 프로그램 등에서 재현하고 해석하는 부모-자식 관계를 관찰해보라. 십중팔구 '현명한 부모'와 '철딱서니 없는 자식'의 구도를 아무 생각 없이 답습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덮어놓고 '부모'는 다 현명하고 사랑이 깊고 성실하고 윤리적인 것으로 그려진다. 이게 사실이라면 거의 대부분의 결혼하고 출산해서 부모가 된 기성세대 중에서는 실패자/범죄자/악인이 한 명도 없어야 할 텐데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럼 허름한 동네에서 허름한 집만 골라 연쇄살인을 저지른 자들은 누구이며, 직장에서 부하 직원을 성추행하고 괴롭힌 수많은 상사들은 누구이며, 현재 부조리한 사회 관습을 만들고 유지해 온 자들은 다 누구인가?
그런 사람들은 그냥 특수한 소수의 악인이고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선량하다고 믿고 싶은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조두순이 출소했을 때 여전히 그를 '집에서는 잘하는 남편'이라며 두둔한 그의 아내의 모습, 아들을 위해 책을 내고 인세를 받겠다던 강호순의 모습 등에서 정말 소름끼치는 부분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감히 자격도 없는 자들이 '평범하고 성실하고 선량한 모범 시민'인 자신들처럼 신성한 가정의 일상성과 정상성을 누리려 한다는 점에 공분하는 듯하다. 하지만 애초에 장삼이사 국평오들이 믿어 의심치 않듯 주류 사회에서의 정상성이 모범 시민들에게 주어지는 합리적 보상이자 모범적 시민의 증표라면, 그 잘난 보상/증명 체계는 왜 조두순과 강호순을 애초부터 걸러내지 못했을까?
그만큼 근본적인 인륜과는 이미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고 기만과 협잡만으로도 아무렇지 않게 손아귀에 넣을 수 있으며, 심지어 악행을 가장 효과적으로 지원하고 돕기까지 하는 게 바로 사회 주류의 '정상성'이라는 것이다. '훌륭한 가장' 조두순과 강호순의 모습이 진짜 소름끼치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그들이 피해자들에게 어떻게 했는지와 관계 없이, 부모의 권위와 가정 중심의 우물 안 개구리 되기를 강요하는 한국 윤리 체계에서 그들은 '훌륭한 가장'이 맞다. 상당수의 '모범 시민'들이 그들의 그런 정상인 흉내에 분개하는 주요 이유 중에는 자신들의 의지해 온 '정상인' 정체성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그들이 본의아니게 폭로해버렸다는 괘씸함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그나마 근대 흉내를 낼 수 있게 해주는 형법이 있어 다행이지, 수박 겉핥기식으로 배운 가정 내 삼강오륜 질서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한국 주류 정서의 윤리 체계에는 그들을 걸러낼 기준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게 무서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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