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멘탈리스트

지는 게임만 하는 피학증은 자기계발이 아니다 본문

흙멘탈리스트/한국인의 행복과 불행

지는 게임만 하는 피학증은 자기계발이 아니다

Dirt Mentalist 2023. 8. 10. 04:17
반응형

A는 뛰어난 육상 선수이다. 신체 조건도 타고났지만 늘 겸손하게 자신을 모니터링하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훈련에 매진하는 뛰어난 자기 성찰 능력도 갖추었다. 타고난 재능에 노력하는 기질이 더해져 A는 그야말로 승승장구의 길을 걸었다. 모두가 A에게 기대를 걸기 시작했다. 그의 주니어 기록은 세계 정상급 수준이었고 많은 이들이 A의 미래에 대해 올림픽 메달리스트의 자리를 점쳤다. 
 
그런데 땅 위에서는 그토록 출중한 A는 물에서는 맥을 못 춘다. 그는 수영을 하지 못한다. 타고난 물 공포증도 있다. 한때 체력 훈련의 일환으로 수영을 고려해 수영을 배워보려 했으나 실패했다. 땅 위에서는 잘 발휘되던 운동 신경도 물 속에서는 물 공포증으로 인해 무용지물이 되었다. A의 지인 중 한 명이 말했다.
 
"다들 수영 잘만 배우는데 명색이 운동 선수라는 네가 물에서 평균도 안 되는 건 문제 아냐? 그 정도로 공포증이 있는 거면 멘탈에 문제가 있는 거 같아. 네가 잘 하는 일이라고 달리기만 자꾸 내세우면서 너의 뒤떨어지는 모습을 위장할 게 아니라 너의 가장 큰 약점인 물 공포를 인정하고 이겨내야 네가 참된 운동 선수의 길을 갈 수 있지 않을까?"
 
A는 그 말이 그럴 듯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조언을 들을 날로부터 바로 수영 배우기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물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자신을 다그쳐보기도 하고 정신 치료도 받았다. 느리긴 했지만 끊임없이 노력한 결과 A는 서서히 물 공포를 이겨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수영도 배울 수 있었다. 그러나 수영 극복에 너무 많은 시간을 쏟는 바람에 A는 육상 훈련을 소홀히 하게 되었고, 결국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자신의 종전 기록보다 형편없는 결과를 기록하며 미끄러지고 말았다.
 
---------------------------------------------------------------
 
평균과 정상성에 대한 집착이 심하고 타인의 피드백에 민감한 한국인들은 위와 같은 실수를 자주 저지른다. 바로 자신이 뛰어야 할 경기를 잘못 선택하는 실수다. 
 
자신의 인생과 커리어를 걸 경기를 선정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당연히 자신이 가장 잘 하는 종목을 선택해야 하고 거기에 집중해야 한다. 약점을 보완한답시고 가장 못 하는 종목을 선택해서 훈련한다면 이런 선택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이는 자학 또는 자멸이라는 표현으로도 충분치가 않은 어리석음이다. 당신이 농구에서 마이클 조던 뺨치는 재능을 가지고 있는데 리듬 체조 대회에 나간다면 과연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증명할 수 있을까? 가끔씩 두 종목 이상에서 눈에 띄는 활약을 보이는 천재적 선수들이 있지만 이런 사례는 매우 드물고, 있다 해도 서로 연관성이 매우 강한 종목들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 뿐이다. 수영 8관왕이 갑자기 높이뛰기 세계신기록을 세운다거나, 탁구 황제가 갑자기 레슬링 종목에서 메달을 따는 경우 같은 건 없다. 세상에는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천리안을 가진 양 염불을 외는 머저리들이 많지만, 단언컨대 피겨 스케이팅장에서 차세대 우사인 볼트를 선별해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이건 운동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사람은 자신에게 적합한 커리어, 적합한 장소, 적합한 커뮤니티를 찾아내야 한다. IQ 170인 사람은 똑똑하니까 어딜 가든 소속 집단에 상관 없이 인정받을 것 같은가? 그 사람이 평균 지능 100 이하인 사람들 속에 섞여 있으면 왕처럼 군림하며 편하게 살 것 같은가? 현실은 정반대에 가깝다. 목표와 세계관이 상이한 사람들은 평가 기준과 가치관도 서로 다르다. 농구 선수가 피겨 스케이팅 점수 기준으로 평가될 수 없는 것과 같다. 사람은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경기장에 있으면 지옥을 맛보게 된다.
 
자신에 대한 탐색이라는 것은 자신에게 어울리는 종목, 자신이 있어야 할 경기장을 찾는 과정이다. 이 세상에 단 한 가지의 게임만이 존재하며 그 결과로 모든 사람을 일렬로 줄 세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자기 탐색을 게을리 하게 된다. 이들은 자신의 종목을 정하지 못한 채 그저 남들이 뛰라면 뛰고 점프하라면 점프하고 물에 뛰어들라면 뛰어들면서 본인이 무슨 게임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산다. 자신만의 계획 없이 그저 순간 순간 주어진 것 위주로 열심히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옆에서 들리는 가장 큰 소리에 따라 반사적으로 움직이면서 생각 없는 동작을 반복하니 늘 기록이 형편없고 심지어는 기록이 아예 안 나오기도 한다. 당연하다. 출발 신호총 소리에 반사적으로 100m 경기를 뛰다가 50m 지점에서 갑자기 들리는 확성기 안내에 놀라 이번에는 갑자기 투포환을 던지러 가는 식이니 기록이 나올 리가 만무하지 않은가.
 
세상은 무한한 작은 세계로 쪼개져 있고, 사람들 역시 무한하게 다양하다. 나는 모든 일을 할 수 없고 모든 장소에 있을 수도 없으며 모든 사람을 만날 수도 없다. 그럴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다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는 것 같아도 사람은 자기 수준과 취향에 따라 천차만별로 다른 우주 속에 산다. 그리고 서로 다른 우주에 속한 이들끼리는 생각보다 소통이 잘 되지 않는다.
 
살다 보면 때로 약점을 보완하라거나 자기 고집만 피우지 말라거나 자기계발을 위한 도전을 하라거나 하는 그럴싸한 말로 마음 약한 사람들을 꼬드겨 패배가 뻔한 남의 경기장으로 유인하는 이들을 볼 수 있다. 약점 보완과 자기계발은 자신이 택한 게임의 목표에 따라 계획해야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농구 선수가 점프력을 키우는 것은 어디까지나 농구 경기에 도움이 되는 맥락에서만 유의미하다. 농구 선수가 쿼드러플 악셀 점프를 못 한다고 깎아내리며 스케이트장으로 유도하는 것은 조언이 아니라 커리어 테러이다. 
 
평균과 정상성에 집착하는 세계관은 세상의 다양하고 다층적인 모습을 인지하지 못한다. 이런 세계관을 가지고 있으면 세상이 오직 단 하나의 통일된 가치관과 정답을 기준으로 수직 서열화된 단일한 광장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나의 경기만이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니 자신이 본 누군가의 순간적이고 일면적인 모습이 그 사람의 전부라고 생각하게 되고, 이것이 성급한 일반화라는 생각은 하지 못한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거나 '집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와 같은 한국 속담을 잘못 소화하면 이런 오해는 한층 더 강화된다. 맥락도 없이 A를 잘하려면 B도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나, C를 못 하면 D도 못 한다고 생각하는 등 A, B, C, D 간의 실제적 연관성은 따져보지도 않고 멋대로 모든 것을 연결짓게 된다. 그런 엉터리 추론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개똥철학과 쓰레기 조언을 낳는다.
 
게임에서 이기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기에 앞서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맞는 경기장에 들어가는 것, 자신에게 맞지 않는 경기장에는 들어가지 않는 것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경기장이 있다. 그 중에는 그야말로 현대사회의 기본 규칙도 없이 목숨이 수시로 날아가는 정글 같은 경기장도 있고 최후의 1인이 되어봤자 아무런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 경기장도 있다. 운이 나쁜 경우에는 그런 곳에서 태어나기도 한다. 그럴 때 당신의 목표는 그곳을 탈출하는 것이어야지 그곳에서 인정받고 승리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하물며 약점을 보완한다거나 모두에게 인정받아야 한다는 강박에 그곳을 제 발로 걸어들어가는 짓이 어리석다는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진로 선택과 같이 중차대한 사례에서는 실수를 안 하는 이들도, 일상 생활 속에서 자기 경기장을 버리고 남의 경기장에 들어가 쓸데 없이 얻어맞는 피학증을 발현하는 경우가 있다. 비록 상대적으로 작은 사례라 하더라도 이런 어리석은 선택이 축적되면 인생에 적지 않은 부담을 준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상황들을 예로 들 수 있다.
 
- 믿을 수 없는 사람에게 조언 구하기: 좆문가가 넘쳐나는 인터넷 커뮤 등에 함부로 자신의 중요한 문제를 의논하려 드는 것도 비슷한 행동이다. 한국인들은 근거도 없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디폴트로 후려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믿을 수 없는 사람들 앞에 자신의 고민을 전시해봤자 사안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을 찾기도 힘들고 먹잇감으로 물어뜯는 사람들만 많을 수밖에 없다. 상대방이 근거도 없이 나를 얕잡아볼 때의 문제는 단지 나를 기분나쁘게 만든다는 것보다 나의 상황에 맞는 조언이 나올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굳이 그런 말들을 꾸역꾸역 들으며 기분 상하는 것을 자기계발의 노력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 근거 없는 부정적 피드백을 무차별적으로 반영하기: 반짝이는 모든 것이 금은 아니듯, 입에 쓰다고 모든 게 약은 아니다. 세상에는 영혼 없는 칭찬만큼이나 근거 없는 비난도 넘쳐난다. 근거 없는 비난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잘못된 지도로 길을 찾는 것과 동일하다. 애초에 상대방을 음해하고 피해를 끼치겠다는 목적밖에 없는 피드백을 신경 쓰는 것은 백전백패의 길이다. 이런 패배는 건설적 목표가 없는 비난에 반응한 결과에 불과하므로 유용한 경험도 되지 못한다. 
 
-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이해받으려고 집착하기: 타인을 통제하는 일은 이 세상에서 노력 대비 성취도가 가장 형편없는 일 중 하나이다. 세상 모두에게 그렇다. 제아무리 할리우드 탑 배우 뺨치는 매력 덩어리라고 해도 나에 대한 타인의 생각과 감정을 나만의 노력으로 바꾸는 일은 노력 대비 성과의 효율이 최하위에 속하는 일이다. 내가 내 인생을 살면서 우연히 타인의 생각이 바뀐다면 모를까, 순전히 타인에게 인정받고 이해받겠다는 목적만으로 나 스스로에게 추가 부담을 지우는 것은 이길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게임에 무모하게 뛰어드는 짓이다. 괜히 게임 전적에 의미 없는 패배만 더하는 일이다. 그럴 시간에 내가 이길 수 있는 경기에 집중하는 것이 낫다.
 
- 자신의 단점만 생각하기: 자기를 객관화한다면서 주구장창 자기비하만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이는 타인에게 욕은 덜 먹을지 몰라도 자기 객관화라는 면에서는 주구장창 자기 자랑만 하는 사람과 다를 바가 없다. 자신의 장점이나 강점은 생각하지 않고 단점에만 집중하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온전한 모습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 자기가 무슨 경기를 뛰어야 할지 제대로 선택할 수가 없다. 아무리 본인이 못난 것 같아도 상대적으로 조금이라도 잘 하는 것을 찾아내야 진로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한국인들이 겸손하게 자기 객관화를 한답시고 자신의 단점만 주워섬기는 것은 대개 주변 사람들에게 무해하게 보이려는 비굴한 태도 때문인데, 이게 내면화되면 이유도 없이 스스로의 능력을 억누르는 어리석은 인생을 살게 된다. 나중에 억울해해봤자 돌아오는 대답은 '누칼협'밖에 없을 것이다.
 
*뱀발: 이길 수 있는 경기에 집중하라는 말은 현재 잘하는 일, 쉽게 할 수 있는 일만 도전 없이 계속 하라는 말이 아니다. 이를테면 피아니스트를 목표로 하는 사람이 잘 치는 곡만 계속 치고 못 치는 곡은 연습하기 싫다고 안 치는 것은 자신의 본 경기를 회피하는 것이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다. 내 주요 목표 성취에 필수적인 일들은 못 하는 것 위주로 단점과 약점을 보완해야 하는 것이 맞다. 다만 피아니스트 지망생이 어쩌다 잠깐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는데 주변에서 '일머리가 없다'는 소리를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의기소침해하며 자기 자신을 의심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반응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