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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멘탈리스트
가난해도 인성 좋은 사람, 가난해도 화목한 가정, 가난해도 사랑을 듬뿍 주는 부모 등에 대한 한국 서민들의 클리셰적 환상은 강고하다. 강고하다 못해 가난이 역조건이 아니라 오히려 훌륭한 인격, 화목한 가정, 사랑 넘치는 부모의 필수 요건이자 전구체로 여겨질 정도이다. 가난하지만 올바른 사람과 부유하지만 인격이 파탄난 사람, 가난하지만 행복한 가정과 부유하지만 불행한 가정의 대립 구도는 한국 서민들이 자동반사적으로 떠올리는 방어적 세계관이며, 한국인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뉴스도 보통 이런 입맛에 맞게 취사 선택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환상과 달리 대부분의 흙수저 집안은 중산층 이상에 비해 가정 불화를 겪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인 돈이 부족하니 의견 충돌이 잦을..
코로나19 팬데믹 전후로 유럽, 미국 등지의 서구 선진국의 민낯을 봤다, 실망했다는 한국인들이 많다. 엄연히 한국도 선진국이 된 마당에 굳이 ‘서구 선진국’의 모습 하나하나에 집착하는 관점 자체가 민망하고 좀스러운 일이나, 급격한 발전 과정으로 인해 아직 깨지지 않았던 그들에 대한 근거 없는 환상이 사라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대주의의 소멸과는 별개로 다른 문화권에 대한 오해, 나아가 문화가 작동하는 방식 자체에 대한 오해는 짚고 넘어갈 만하다. 헬조선 타령에 익숙한 한국인들이 쉽게 자국 비판을 하기 위한 비교 대상으로 끌려오는 ‘서구 선진국’이 유토피아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것은 중요하지만, 팬데믹 선언 이후 국가 통제 정책에 잘 따라오지 않는 그들의 무질서한 면모를 보고 ‘알고..
인간의 행동 패턴은 선형적 궤도보다는 사이클의 형태로 진행된다. 하나의 행동 및 그에 따른 결과는 별개의 이벤트로 존재하지 않으며, 거의 반드시 그 다음 행동의 동기가 되고 그러한 연쇄반응은 닫힌 고리 안에서 무한 되먹임을 발생시킨다. 어떤 사이클에 진입했느냐에 따라 같은 상황에서도 천차만별의 결과가 나올 수 있으며, 사이클이 깨지지 않는 이상 이 차이는 시간에 따라 더욱 커진다. 사이클의 위력은 모든 것이 연결되어있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시작과 종료 지점을 잡을 수가 없다는 데 있다. 본인도 어떻게 시작했는지를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때문에 선순환이든 악순환이든 한 번 빠지면 쉽사리 나오게 되지 않으며, 내가 속해 있지 않은 사이클은 어떻게 뛰어들어야 하는지를 도통 알 수 없는 미스터리의 영..
“어릴 때 제대로 보살핌도 못 받고 자랐지만 늙은 부모 안쓰러워서 지는 게 이기는 셈 치고 최선을 다해서 효도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름 최선을 다해서 해드려도 늘 불만이시고 칭찬 한 번 해주시는 법이 없네요. 거기다가 맨날 카톡으로 자기 살 베어서 부모 봉양한 효자 얘기같은 극단적 효 사상 강요 메시지를 줄기차게 보내셔서 정말 정 떨어집니다. 조금만 살갑게 해주셔도 훨씬 힘이 나서 더 잘해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그걸 모르실까요? 이런 태도가 오히려 역효과난다는 걸 정녕 모르실까요?” 이런 사례를 보고 부모가 어리석다, 자기 복을 자기가 차고 있다는 식의 평가를 하기는 쉽다. 무리한 요구로 반감이 들게 만들면 그것 자체가 '역효과'가 일어난 것이라고 판단을 끝내버리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