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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 집안의 역학 구도 2 – 노력할수록 손해 본다

Dirt Mentalist 2021. 8. 10.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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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행동 패턴은 선형적 궤도보다는 사이클의 형태로 진행된다. 하나의 행동 및 그에 따른 결과는 별개의 이벤트로 존재하지 않으며, 거의 반드시 그 다음 행동의 동기가 되고 그러한 연쇄반응은 닫힌 고리 안에서 무한 되먹임을 발생시킨다. 어떤 사이클에 진입했느냐에 따라 같은 상황에서도 천차만별의 결과가 나올 수 있으며, 사이클이 깨지지 않는 이상 이 차이는 시간에 따라 더욱 커진다.

사이클의 위력은 모든 것이 연결되어있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시작과 종료 지점을 잡을 수가 없다는 데 있다. 본인도 어떻게 시작했는지를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때문에 선순환이든 악순환이든 한 번 빠지면 쉽사리 나오게 되지 않으며, 내가 속해 있지 않은 사이클은 어떻게 뛰어들어야 하는지를 도통 알 수 없는 미스터리의 영역이 된다.

아무리 대단한 것처럼 보여도 단 한 번의 이벤트가 인생을 영구적으로 결정 짓는 경우는 많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하나의 이벤트가 선순환과 악순환 중 어떤 스노우볼의 씨앗이 되는가이다. 겉으로 보기에 작고 별볼일 없어보이는 일도 선순환과 악순환 중 하나를 만들어낸다면 결과적으로는 큰일이었던 셈이 된다.

현대의 교육 이론은 어린이들이 자아 정체감, 사회성, 인생관 등 다양한 내적 면모에서 이런 선순환의 원형을 만들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것을 중요한 목표로 삼는다. 보상(물질적인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을 통해 좋은 행동의 선순환 고리를 강화하고, 처벌(폭력을 의미하지 않는다)을 통해 나쁜 행동의 동기 부여 순환 고리를 끊는 것은 교육의 기본이다.

어린이에게 이 교육을 가장 먼저 하게 되는 존재는 당연히 부모이다. 부모가 인생 초기에 어떤 순환 체계를 강화시켰느냐는 한 인간의 내면을 평생토록 좌우할 수 있는 기본 틀이 된다. 어린 시절에 이 선순환의 고리가 바르게 형성될수록 평생 굴려나갈 긍정적인 스노우볼의 크기가 커지게 되고, 악순환 역시 마찬가지이다.

좋은 행동을 보상으로 강화해 선순환의 동기 부여를 일으키고, 나쁜 행동은 반대로 순환 고리에 들어가지 않도록 처벌한다는 것은 듣기에는 간단하지만 쉬운 일만은 아니다. 교육자가 좋은 행동에 대해 보상을 하긴 하되, 궁극적으로 이 보상은 아이의 내적 보상이 되도록 자극해야만 한다. 외부의 상벌로 통제되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선순환이 아니기 때문이다.

제대로 해도 쉽지만은 않은 이 교육이 흙수저 집안에서는 정상적인 방향과 반대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는 많은 흙수저들을 어린 시절부터 내적 악순환에 빠뜨린다.

대부분의 흙수저 집안에서는 노력이나 책임감 등 개인 능력 신장을 위한 핵심 요소부터 준법 정신, 배려, 관용 등 사회가 권장하는 올바른 시민의 요소에 이르기까지, 선순환의 씨앗이 될 아이의 건강한 면모가 기껏해야 부모의 외적 과시를 위한 치장에 소모되어 아이의 내적 보상에 쓰이지 못하거나, 심지어 처벌 대상이 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흙수저 집안은 흙수저 집안의 역학 구도 1 - 새끼가 성체를 부양한다 포스트에서 언급한 것처럼 나이가 들수록 책임감을 어린 세대에게 미루는 경향이 나타나고, 부모는 이를 자식에게 ‘나는 고생해서 널 낳고 먹여살렸으니 이렇게 해도 된다’는 특권 논리로 설명한다. 즉, 노력은 힘과 권위가 없는 구성원이 짊어져야 할 짐으로 여겨진다.

부모의 이런 태도는 결과적으로 자식에게 ‘노력과 책임이라는 것은 (자식으로 태어난) 죄에 대한 처벌’라는 무시무시한 공식을 심어주게 된다. 노력과 책임감을 고통스럽고 불쾌하기만 한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부모에게 효도하기 위해 싫어도 노력한다'는 식의 사고방식은 '효'라는 미명 하에 한국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내적 보상에 쓰여야 할 노력의 결실을 타인을 위한 의무로 바꿔놓는다는 점에서 굉장히 위험하다. 

노력을 보상 없는 의무 또는 부채로 여기는 세계관이 각인되면 뇌는 본능적으로 점점 노력 기피증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부모가 아무리 말로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해도 실질적으로는 노력을 해봤자 본인에게 돌아오는 보상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인간의 당연한 생존 본능은 노력을 최대한 기피하는 쪽으로 발달될 수밖에 없다. 의식적으로 벗어나려 해도 뇌와 신체에는 부정할 수 없는 이해관계가 각인된다. 이는 도덕에 대한 강박만으로 찍어누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결국 어린 시절부터 노력에 대한 자연스러운 동기 부여를 원천 차단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생성되는 것이다.

노력과 책임감은 인간이 인생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내고 최고조의 고양 상태를 느끼기 위해 필수적인 부분이다. 그 어떤 높은 수준의 발전이나 사회적 위치도 노력 없이 획득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책임이 따라오지 않는 권한과 직책이라는 것도 없다. 따라서 노력과 책임을 고통으로만 입력하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치명적인 악순환의 씨앗을 심는 일이며, 정상적인 부모라면 절대적으로 피해야 하는 일이다.

자녀에게 부모로서의 책임감이 버겁다고 불평하고, 본인 인생의 실패와 결함까지 도매금으로 더해 통째로 자식에게 부채로 떠넘길 궁리를 하는 부모는 아무리 본의가 아니라 해도 그 씨앗을 이미 심어준 것이나 다름없다. 이미 본인이 노력과 책임을 고통이라 생각해 남에게 떠넘기고 있으면서, 말로 아무리 노력과 책임감의 좋은 점을 떠들어봤자 의미가 없다.

집안의 어른이 노력은 최대한 안 할수록, 책임은 최대한 안 질수록 편하고 좋은 것이라는 인생관을 가지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모든 구성원이 그런 인생관을 공유하게 된다. 어쩌다 드물게 한 사람이 그런 문화에서 벗어난다 하더라도 그런 사람들과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이해관계를 같이 하게 되면 그로 인한 피해를 피할 수가 없게 된다. 그런 집안 내에서 노력하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모든 책임을 다 떠안는 호구가 되고, 노력하지 않는 이들은 그 과실만 효율적(?)으로 누리는 특권층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구도의 흙수저 집안 내에서 노력하는 자는 보상이 아닌 짐만 계속 떠안게 되고 집안 내 서열도 점점 내려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를 보는 구성원들의 노력에 대한 동기 부여는 점점 더 깎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바깥 세상에서는 누가 더 노력하느냐를 두고 경쟁하고, 좋은 부모가 자식의 노력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으며 정신적 선순환의 엔진에 연료를 넣어줄 때, 흙수저 집안에서는 악으로 깡으로 서로 더 노력을 안 하기 위해 기싸움을 벌이는 기막힌 현상이 나타난다. 당연히 흙수저 집안 구성원의 사회적 경쟁력과 위치는 점점 더 뒤쳐진다.

흙부모 입장에서야 자연스러운 동기 부여가 되든 말든, 노력으로 얻는 이익이 없다고 느껴지든 말든, 자식이 부모에 대한 효의 일념만으로 고분고분 노력을 지속하는 상황을 원하겠지만 앞에서 말했듯 이는 대뇌의 도덕관념과 의무감만으로 어찌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노력할수록 힘들어지는 상황에서도 지치지 않고 노력하는 자식을 바라는 것은 생명체의 본능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며, 본인이 사람으로서의 자식이 아니라 On/Off 할 수 있는 기계를 바란다는 증거나 다름없다.

중산층 이상이 보았을 때 때로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할 수 있는 것조차 하지 않는’ 흙수저 집안 구성원들의 무기력증은 이처럼 가정 내에서의 도착적 보상 체계가 노력할 수 있는 능력을 떨어뜨린 결과이다. 노력에 따른 결과가 손해나 처벌로 돌아오는 사이클이 돌다 보면 시간이 갈수록 노력할 수 있는 능력은 더 떨어지게 되고, 결국 작은 노력이라도 기울이고 나면 소모적으로 지쳐 나가떨어지거나 과도한 보상심리가 폭발하는 흙멘탈이 된다. 기원 면에서는 단순한 나태함과는 다르지만, 지속되어 습관이 되어버리고 나면 나태함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에 한시 바삐 벗어나야 하는 증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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