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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부모의 동기 부여에 대한 착각 2

Dirt Mentalist 2021. 11. 25. 0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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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처벌에 대한 공포가 있어야 동기 부여가 된다

 

아이들은 세상 물정을 모르고 부모가 먹여살려주니까 인생이 편하고 쉽잖아요? 전 그래서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고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으면 매를 들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시키는대로 하면 상을 주고 시키는대로 하지 않으면 따끔한 벌을 받는다는 명확한 상벌 규칙이 있어야 훈육이 되죠. 매라도 맞아야 정신을 차리지 부모가 다 먹여살려주는데 아무런 처벌이 없다면 정신차리고 살 이유가 없잖아요?”

 

현명하지 못한 부모가 동기 부여에 대해 가지는 또 다른 큰 착각 중 하나는 외부에서 주어지는 상벌에 대한 반응이 곧 동기 부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들은 상벌로 조건을 걸고 무언가를 시키는 것을 훌륭한, 또는 유일한 교육 방법이라고 여긴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외생적 압력이 인간의 행동을 좌우하는 유일한 요인이라고 생각하는 세계관에서 나온다. 이런 세계관을 가진 부모는 자식이, 나아가 인간 자체가 그저 외력에 의해 이리저리 휩쓸려다니는 물건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주체적 판단, 내적 동기, 내적 보상 등의 개념은 이 세계관에서 존재할 자리가 없으며, 입 바른 전문가들이 떠드는 추상적 개념일 뿐 실생활과는 무관한 것으로 취급받는다.

 

이런 생각을 하는 부모는 본인부터가 내적 통제력이 떨어져 오로지 외부의 압력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본인이 내적 동기로 충만한 사람이라면 자식을 훈육하기 위한 수단으로 외적 상벌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가능성은 매우 낮아진다. 미성년인 자식에 대한 교육 수단을 선택할 때 자식을 어떤 존재로 전제할 것인가는 부모의 자기 인식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보편적인 인간관은 자기 인식을 가장 큰 참고 자료로 하며, 특히 어린 자식에 대해 부모가 기본적으로 가지는 전제는 거의 투사나 다름없을 정도로 자기 인식을 절대적으로 반영한다.

 

단적으로 말해 외부적 상벌에 의한 동기 부여는 매우 낮은 수준의 동기 부여이다. 단기적으로도 큰 효과는 기대할 수 없거니와, 장기적으로 사용하면 부정적인 영향이 훨씬 크다. 간혹 그저 단순한 계기 생성을 위해 일시적으로 사용하는 것까지 문제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를 교육의 주된 방법론으로 삼는 것은 아이를 절대적으로 망치는 길이다. 그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일단 인생에서 해야 하는 모든 일에 대해 외부의 상벌을 설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 또한 특정 행동에 대한 상벌이 일단 주어지고 나면 동기가 없어지기 때문에 지속성을 요하는 일에는 소용이 없다는 것 등이 눈에 가장 쉽게 띄는 문제들이다.

 

그러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외력에 의존한 행동 통제가 근본적으로 인간의 내적 동기 부여, , 진정한 의미의 동기 부여 메커니즘을 반영구적으로 파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부에서 자연스럽게 생성되어야 할 삶의 의지가 생성되지 않아 외부에서 강제로 주입해야 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이를 신체에 비유하자면 인슐린과 같은 필수 호르몬의 체내 합성이 불가능해져 평생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만 하는 당뇨병의 상황과 비슷하다. 외부 상벌 조건으로 지속적인 통제를 가하다 보면 아이 뿐 아니라 성인도 이런 내적 합성 능력을 잃어버린다. 원래부터 그런 능력이 없었다면 모를까, 일부러 멀쩡한 정신에 외부 주입 없이는 살 수 없는 병을 유도해놓고 이를 교육으로 착각하는 것은 궁극의 어리석음이라 할 만하다.

 

타고난 내적 동기 부여 능력이 없는 사람은 없다. 동기 부여 능력은 삶에 대한 본능의 일부이며, 생존 본능이 없는 생명체는 없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은 자신의 인생을 위해 옳은 판단을 하고 싶어하며, 자신의 취향대로 흥미를 느끼는 곳에 에너지를 발산하고 싶어한다. 다만 이것을 어떻게 키우고 활용하는지는 후천적인 교육과 노력에 달려있다. 아직 사회화가 완성되지 않은 아이들은 특히 자신의 내적 동기 부여를 어떻게 키우고 사회적으로 적용시킬지를 잘 알지 못한다. 보호자의 교육은 바로 이 부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내적 동기의 방향타를 제대로 설정해주고 그 능력이 계속 자라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 특별한 지식이나 스킬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인간의 내적 동기 부여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와 아이에 대한 최소한의 관찰이라는 두 가지는 반드시 필요하다. 이 두 가지를 결여한 보호자는 무지 때문이든 귀찮음 때문이든 유기체적으로 움직이는 아이의 내적 동기와 상호작용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런 방식의 교육을 할 수 없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이를 결여한 부모의 수가 적지 않다.

 

심지어 본인이 마음대로 들여다보고 통제할 수 없는 아이의 내적 동기로 인한 자발성이 계산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 싫어서 이를 의도적으로 불도저처럼 말끔히 밀어버리고 대신 이거 하면 상 주고 저거 하면 벌 준다식의 외부 명령에만 반응하도록 만들려는 부모들도 존재한다. 본인 편의적인 자식 통제를 위해 일부러 자식의 정신 세계에 병을 심어주는 것이다. 자식 의존도가 심한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자식의 내적 동기를 적대시한다. 예를 들어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공부에 흥미를 느껴 열심히 하는 자식은 얼핏 들으면 한국 부모들의 꿈처럼 들리지만, 우수한 성적이라는 결과를 쉽게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만 그럴 뿐이다. 자식의 내적 동기의 역학 면에서는 자식의 출중한 자발성과 자생력을 두려워하고 적대시하는 부모가 결코 적지 않다.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하는자발성의 기저에 단지 공부가 재미있어서라든가, 어느 분야에서 출중한 연구자가 되고 싶어서라든가 등등의 내적 동기만 있으면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이를 대놓고 매우 불쾌하게 여긴다. 자식의 인생에서 최종 권위자가 자신이 아니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나르시시즘이 강한 부모는 결국 자식이 무언가를 자발적으로 하더라도 그 자발성의 최종 목표가 결국 부모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또는 부모에게 혼나고 싶지 않아서라는 외부 지점(부모)으로 향하기를 바란다. 자식의 성과를 본인의 소유로 주장하고 자식의 인생에서 본인이 주인공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심보이다. 공부에 흥미가 있어 알아서 공부를 잘 한 우등생 개룡 자식을 두고 너 나한테 효도하려고 공부 열심히 했잖아라는 식으로 자식의 동기를 뒤틀어 해석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한국에 상당히 흔하다. 인간의 내적 동기 부여 능력은 사회 적응력 및 생존 능력과 직결되는데,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이런 자식의 자연스러운 생존 본능이 없어지길 바라거나, 당사자인 자식을 제끼고 부모인 자신의 생존에 기여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또한 한국에서는 상벌 중에서 벌에 의존하는 비중이 불균형적으로 높다는 점도 문제이다. 점차 개선될 일이라고는 보이지만, 한국이 교육과 통제를 위해 상대적으로 보상에 대한 욕구보다 처벌과 비난에 대한 공포를 더 많이 사용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경향이다. 여기에는 처벌에 대한 공포를 이용할 경우 보상을 줄 필요가 없어 아무런 투자 없이 성과를 뽑을 수 있으므로 가성비가 좋다는 통제자의 계산속이 깔려 있다. 그러나 통제당하는 사람 입장에서 공포 회피를 위한 노력은 얻는 것 없이 잃는 것만 많은 게임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같은 외부 요인이라 해도 포상에 대한 긍정적 욕구보다 처벌에 대한 공포와 회피 욕구가 사람에게 훨씬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발생시킨다. 공포로 정신적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사람은 여유가 없기 때문에 판단력이 마비될 가능성이 높아지며, 공포 때문에 어찌저찌 일을 처리했다 하더라도 임무 완수 후에 번아웃이 올 가능성이 훨씬 높다. 이러한 패턴이 반복되면 일시적으로는 생산성을 짜내는 데 성공하더라도, 당사자는 장기적으로 같은 일을 해놓고도 훨씬 더 쉽게 피곤해하고 보상심리를 발동시키는 비생산적인 인간이 된다. 스스로를 처벌에 숨죽이며 사는 존재로 인지하게 됨으로써 발생하는 자존감 저하, 작은 일에도 무의식중에 목숨 걸고 극딜하게 되는 과대망상/피해망상 발현은 덤이다. 따라서 누군가에게 공포 유발로 동기를 발생시키려는 시도는 단기적으로 상대의 단물만 빼먹고 내쳐버리려는 의도적 행동이거나, 그런 의도가 없었더라도 결과적으로 황금알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듯 잠재력을 말살하는 근시안적 행동이 된다.

 

외부 상벌에 의한 통제가 장기적으로 정신 건강과 판단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러한 동기 부여가 사람의 노력을 질적인 면에서도 저하시킨다는 점 역시 유념해야 한다. 내적 동기는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의 내적 본질을 보고 그것에 집중하게 만들지만, 외적 상벌은 최종 시선을 상벌에 잡아두기 때문에 집중력 저하는 필연적이다. 외부 상벌에 의해 통제되는 사람은 목표에 대한 이해도와 추구 과정에서의 문제 해결 능력이 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것은 강한 욕망을 발동시켜 의지로, 악으로 깡으로 해보려 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목표의 내적 원리에 흥미를 느껴 자발적으로 매달리는 경우에만 얻을 수 있는 핵심 정보는 잿밥에 욕심을 부린다고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잿밥에 대한 사적 욕망에 가득차 있을수록 목표 성취에 중요한 내적 정보가 잘 보이지 않게 되는 경우도 많으며, 조급한 마음에 일을 그르칠 가능성 역시 높아진다.

 

- 다음에 계속

 

흙부모의 동기 부여에 대한 착각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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