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멘탈리스트

흙부모의 동기 부여에 대한 착각 3 본문

흙멘탈리스트/흙수저 집안의 역학 구도

흙부모의 동기 부여에 대한 착각 3

Dirt Mentalist 2021. 12. 7. 02:25
반응형

3. 타고난 조건이 나빠서 남보다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말해야 동기 부여가 된다

 

 

저는 아이에게 우리집은 가난하니까 네가 두 배 세 배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말해요. 남보다 뒤쳐진 출발을 하니까 남보다 훨씬 열심히 해야 겨우 따라가기라도 한다고 설명하죠. 그렇게 해야 아이가 자신이 처한 상황을 냉정하게 알고 얼마나 노력해야 하는지 깨달을 거 아녜요. 남보다 피나는 노력을 쏟아부어야 겨우 살아남는다는 걸 알아야 정신 똑바로 차리고 게으름을 피우지 않겠죠. 일부러 실제보다도 더 상황을 나쁘게 이야기해요. 많이 뒤쳐져있다고 말해야 더 많이 노력할테니까요. 조금 노력해놓고 금방 상황이 좋아졌다고 생각하거나 칭찬을 받으면 거기에 만족해서 더 이상 노력을 안하게 되겠죠.”

 

 

흙부모가 동기 부여에 대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착각은 자녀의 태생적 조건, 환경, 신분에 대해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남보다 얼마나 뒤쳐져있는지를 강조하면 자녀가 의무감을 가지고 더욱 열심히 노력할 것이라는 기대이다. 그러나 본인의 잘못이 아닌 타고난 물리적 조건, 환경, 계급 등이 불리하니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논리는 동기 부여를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동기 부여를 박탈하는 논리에 가깝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간단하다. 나만 뒤쳐지는 출발선에서 뛰어야 하는 경기에 의욕을 느낄 사람이 있을까? 자신의 잘못이 아닌 조건 때문에 혼자 불공정 게임을 해야 한다면 누구나 억울하다, 이 경기 하기 싫다는 생각부터 먼저 드는 것이 당연하다.

 

 

만약 이런 논리 앞에서 억울함을 느끼지 않고 그저 상황에 복종해 그렇구나, 더 열심히 해야 하는구나라고 넘어가는 아이가 있다면 이 경우야말로 심각한 문제이다. 본인의 잘못이 아닌 불공정 조건에 대한 억울함은 단지 감정적 반응이 아니며, 인간이 본인의 행동으로 인한 책임 범위를 인식하는 능력과 관련되어 있다. 본인 잘못이 아닌 것을 책임지라고 했을 때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은 정체성의 경계와 인과관계에 대한 인식 능력이 심하게 손상된 상태이며, 이를 교정하지 않았을 경우 온전한 인격체로 현대 사회를 살아나가는 것이 불가능하다.

 

 

애초에 부모가 가난한 것은 자식 탓이 아니며, 이를 극복하는 것 역시 자식의 책임이 아니다. 자식의 책임도, 의무도 아닌 것을 책임과 의무로 만들어버리는 것은 부모 본인의 면책과 무심승차를 위한 언사에 불과하다. 내가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내 자식에게 부모인 나의 가난을 극복해줘야 할 의무가 자동적으로 부여된다는 생각은 자식을 도구로 보는 부모의 일방적인 희망사항일 뿐이다. 이는 본질적으로 훈육이나 지도가 아닌, 기만과 조종이다. 이런 방법을 쓰는 부모는 보호자로서 자식의 노력을 유도하거나 그 과정에 동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식에게 본인 잘못이 아닌 부정적 상황 조건을 알아서 책임지라는 협박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교육적 의도가 없으며, 오로지 화풀이 및 투사의 의도만 있을 뿐이다.

 

 

물론 타고난 조건이 불리한 경우에, 상당수는 이를 그저 받아들이고 노력으로 보충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는 경우가 많다. 상황을 현실적으로 수용하고 적절히 대처하는 능력은 생존과 직결된다. 공정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은 옳지는 않지만 세상의 여러 모습 중 하나이며, 우리는 이를 결국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불가피한 수용일 뿐이지 불리한 조건 자체가 사람에게 의욕의 원천이 될 리는 만무하다. 게다가 이 불가피한 수용조차도 자발성에 근거하지 못하고 제삼자에 의해 억지로 강요되는 상황이라면 의욕은 한층 더 꺾일 수밖에 없다. 불공정 조건이 무기력과 동기 박탈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이를 극복하기 위한 목표의 설정부터 극복의 결심과 계획에 이르기까지 모든 결정 과정이 온전히 자발성에 근거해야만 한다.

 

 

불공정 조건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대처에 집중하는 것은 본인 스스로가 세상에서 살아나가기 위한 어쩔 수 없는 타협일 뿐이지, 불공정 조건의 수용이 그 자체로 옳은 것이어서가 아니며, 불공정 조건의 극복이 부모나 사회에 대한 모종의 도덕적 의무일 수도 없다. 자발적인 문제해결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강요로 인해 억지로 불공정 조건을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에서는 동기 부여가 아닌 분노와 무기력만이 발생한다. 그러나 많은 수의 어리석은 부모가 자식의 자발적 문제해결 과정을 기다리거나 인정하지 못하고, 자식의 책임이 아닌 태생적 불리함을 부모를 위한 자식의 책임과 의무로 속여 들이민다. 이러한 기만과 조종은 동기 부여가 아니라 동기 박탈로 이어지며, 가족 관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사고에서는 불리한 조건을 극복하기 위한 자식의 노력에 대한 보상 역시 당사자에게 온전히 돌아가지 않는다. 애초에 불리한 조건의 극복이 부모 및 사회를 위한 도덕적 의무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군가가 본인 책임이 아닌 불리한 조건을 극복하든 말든, 그것은 타인의 소관이 아니며 타인의 평가와 심판 대상도 아니다. 불리한 조건을 극복하는 데 실패하였다면 그 실패의 괴로움을 안고 사는 것은 당사자일 뿐이며, 반대로 성공하였다면 그것 역시 당연히 당사자에게 좋은 일일 뿐이다.

 

우사인 볼트가 5m 뒤쳐진 출발선에서 뛰어도 금메달을 딴다면, 그것은 우사인 볼트가 뛰어나서이고 우사인 볼트의 공로로 돌아갈 일일 뿐이다. 이것을 빌미로 5m 뒤에서 출발하는 조건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당사자가 극복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단지 이 조건을 극복하지 못하는 이들에 대한 부당한 비난과 책임 떠넘기기일 뿐 아니라, 이 조건을 극복해낸 우사인 볼트의 성취마저도 부정하는 말이다. 3자는 타인의 불공정 조건에 대해 네가 이를 수용하고 극복해서 성공적인 성과를 내야 한다고 당위를 지정할 아무런 권한이 없다. 조건의 불리함에 대한 극복을 부모를 포함한 타인, 또는 사회에 대한 모종의 도덕적 의무로 보는 것은 매우 이상한 시선이며, 타인의 인생에 무임승차하거나 책임을 떠넘기려는 의도가 없다면 할 수 없는 생각이다.

 

- 다음에 계속

 

흙부모의 동기 부여에 대한 착각 1- 결핍 정도와 동기 부여가 비례한다

흙부모의 동기 부여에 대한 착각 2 - 처벌에 대한 공포가 있어야 동기 부여가 된다

흙부모의 동기 부여에 대한 착각 4 - 부정적 평가와 비난을 많이 들을수록 동기 부여가 된다

반응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