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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 집안의 역학 구도 3 – 불화를 일으키고 불화에 의존한다

Dirt Mentalist 2021. 8. 26.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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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해도 인성 좋은 사람, 가난해도 화목한 가정, 가난해도 사랑을 듬뿍 주는 부모 등에 대한 한국 서민들의 클리셰적 환상은 강고하다. 강고하다 못해 가난이 역조건이 아니라 오히려 훌륭한 인격, 화목한 가정, 사랑 넘치는 부모의 필수 요건이자 전구체로 여겨질 정도이다. 가난하지만 올바른 사람과 부유하지만 인격이 파탄난 사람, 가난하지만 행복한 가정과 부유하지만 불행한 가정의 대립 구도는 한국 서민들이 자동반사적으로 떠올리는 방어적 세계관이며, 한국인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뉴스도 보통 이런 입맛에 맞게 취사 선택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환상과 달리 대부분의 흙수저 집안은 중산층 이상에 비해 가정 불화를 겪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인 돈이 부족하니 의견 충돌이 잦을 수밖에 없고 이에 따른 불화가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런데 흙수저 집안을 위협하는 진짜 문제는 경제력 부족으로 인한 불가피한 갈등이 아니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집안 구성원들의 가난에 대한 잘못된 대처와 방어 심리가 발생시키는 미필적 고의의 가정 불화이다. 즉, 흙수저 집안 구성원들의 상당수는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갈등에 수동적으로 휘말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심리 방어 기제로써 가정 불화를 적극적으로 조장하거나 방조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구성원들의 적응 방식이 가정 불화의 구도에 맞게 최적화되고, 이렇게 최적화된 적응 방식은 가정 불화의 구도에 의존적이기 때문에 잠재의식적으로 불화를 더욱 조장하게 된다. 결국 가정 불화는 악순환을 타고 점점 더 심해진다.

안 그래도 힘든 조건을 가진 이들이 가정 불화를 최대한 피하는 것도 아니고 일부러 조장한다는 것을 믿을 수 없어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실제로 흙수저 가정의 가정 불화는 상당 부분이 인위적 발생으로 인한 것이다. 가난 환상론자들의 말마따나 흙수저 가정의 문제가 오로지 경제적 가난 뿐이라면, 모든 문제가 경제적 가난으로 인한 불가피한 상황에 그친다면 흙수저 가정이 중산층 가정에 비해 현저하게 불행해질 이유는 없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흙수저 집안에서는 다음과 같은 메커니즘을 통해 가정 불화가 적극적으로 조장된다.

첫 번째, 본인의 불쾌감을 다른 가족 구성원에게 전가하는 경우이다. 이를테면 가난으로 인해 자가용을 구비하지 못하고 출퇴근 시마다 지옥철에 시달리는 가족 구성원 1이 본인의 상황과 피로감에 분노를 느끼고 이를 집에 와서 가족 구성원 2에게 화풀이한다면, 가난으로 인한 이 집안의 피해는 단지 자차가 없는 불편함에 그치지 않는다. 구성원 1의 불편함이 화풀이를 통해 다른 가족 구성원의 마음에 상처를 남기는 방식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상처를 받은 가족 구성원 2 역시 분노와 불쾌감을 느끼게 되므로 이는 언젠가 반드시 구성원 1에게 피드백으로 돌아가거나 다른 구성원 3, 4에게 재생산된다. 결국 1명의 구성원이 타인에게 불쾌감을 전가함으로써 모든 구성원이 불쾌감을 서로에게 떠넘기는 악순환의 고리가 생기는 것이다.

이처럼 불가피한 상황으로 인한 본인의 불편을 스스로 해소하거나 통제하지 못하고 다른 식구들에게 화풀이하는 것은 가족 내로 불화의 악순환을 들여오는 미련한 짓이지만 이를 자력으로 통제할 수 있는 인구의 비율은 그다지 높지 않다. 식구들에게 화풀이를 한다고 해서 없던 자차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문제가 실제적으로 해결되지도 않는데 이런 행동을 하는 사람이 많은 이유는, 이러한 화풀이가 심리적인 면에서 단기적인 이익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4살 가량의 꼬마들을 대상으로 했던 마시멜로 만족 지연 실험에서 끝까지 15분을 기다려 마시멜로 하나를 더 받았던 아이들이 소수였던 것처럼, 성인 중에서도 장기적으로 문제의 근본을 해결할 줄 아는 이들은 소수이다. 문제의 근본 원인을 보기보다는 본인의 무력감을 당장 충족시키기 위해 가장 만만한 대상을 골라 화풀이를 하는 경우는 무수히 많다. 흙수저 집안에서는 이 메커니즘을 통해 불편이 단지 불편에서 끝나지 않고 수많은 심리적 상처로 확장된다.

두 번째, 과도한 보상심리로 다른 가족 구성원에게 무리한 것을 요구하는 경우이다. 장기간에 걸쳐 감정적으로 축적된 불만을 이성으로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는 이들은 비현실적인 수준의 보상심리를 발동시키곤 한다. ‘가난해도 화목’한 가정에 대한 환상은 비록 가난해서 화려하고 비싸고 좋은 것을 가지지 못하더라도 소박한 물질에 만족하고 행복해하는 가족 구성원들의 상호 애정과 배려를 전제로 한다. 그러나 현실의 흙수저 집안에서는 반대의 일이 더 많이 일어난다. 장기적으로 축적된 불만과 피해의식은 사람을 작은 것에도 감사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상상 속 보상 금액을 천문학적으로 높이는 역할을 한다.

더 큰 문제는 병적인 보상심리의 경우, 최상급의 보상이 실제로 주어져도 만족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보상심리의 발현은 실제로 무언가가 정말 필요해서 원한다기보다는 본인의 무너진 정체성과 자존감을 대체할 무언가를 끊임없이 찾는 현상에 가까우며, 여기에 익숙해진 사람은 불만족 자체에서 삶의 동력을 찾는다. 따라서 무엇이 주어지든 불평을 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고 이는 다른 가족들의 삶의 의욕을 전반적으로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 또한 무한한 욕망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가정 내에는 상호 불만과 뒷담화가 끊이지 않게 된다.

세 번째, 자기 방어 심리로 인해 가정 내 정치질이 만연해지는 경우가 있다. 본인의 빈곤함을 건강하지 못한 방식으로 숨기려는 이들은 대인관계에서 자신이 무시당할까 두려워 본인에 대한 진실을 숨기고 허세를 떨거나 협박을 하거나 편가르기 등의 심리 조종 전략을 쓰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러한 전략은 놀랍게도 제3자보다 당사자의 가족에게 훨씬 더 많이 사용되는데, 사회적 시선으로 인한 두려움 때문에 제3자에게 사용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자식이 자신을 무시할지도 모른다는 무의식적인 두려움에 아예 자식의 판단력을 공포로 마비시키려고 폭군처럼 구는 부모나, 제한된 경제적 지원을 차지하기 위해 본인의 형제자매를 헐뜯으며 부모와의 사이를 이간질하는 자식 등이 그런 경우이다.

이런 정치질 중 가장 끔찍한 양상 중 하나는 일부러 가족 내에 희생양의 존재를 만들고 다른 가족 구성원들이 함께 희생양을 비난하며 ‘끼리끼리’의 공고한 유대감을 쌓는 경우이다. 집안 구성원들이 있는 그대로의 본인 모습에 자신감이 없어, 누군가를 비난 대상으로 깔지 않고는 강력한 유대감을 형성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런 가정은 가정 유지의 원동력을 가족 구성원의 상호 애정이 아닌 희생양에 대한 공통적인 증오에서 찾기 때문에 가정의 물리적 유지를 위해 반드시 희생양을 만들어야만 한다. 이론적으로는 집단 증오의 대상이 외부인이 될 수도 있지만, 서로 간의 거리 유지가 중시되는 현대 사회에서 병리적 가정의 배타성을 만족시킬 만큼 외부로부터 증오 대상을 안정적으로 공급받기는 힘들다. 사회적 권력과 수단이 부족한 흙수저 집안이면 더욱 그렇다. 때문에 안정적인 배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희생양이 가족 내에 있는 것이 여러모로 효과적이다. 전통적인 한국 사회에서 이 희생양 자리에 가장 많이 처해 온 존재는 며느리였는데, 그도 그럴 것이 며느리라는 존재는 경우에 따라 한 집안의 완벽한 부속품이 되었다가 수틀리면 외부인이 되기도 했기 때문에 희생양으로는 안성맞춤이었다. 이 때문에 구박덩어리이던 며느리 자리에 있던 여성이 이혼이나 사별을 하고 나면 생뚱맞게 전 남편 집안의 가정 불화가 악화일로로 치닫는 경우가 심심찮게 있다. 희생양이 없어진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를 향해 화살을 겨눌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희생양으로 낙인 찍혀 구박받던 특정 자녀가 가족과 연을 끊었을 때도 이와 같은 현상은 동일하게 일어난다.

이처럼 흙수저 가정 내의 불화는 단지 경제적 빈곤으로만 발생하지 않는다. 더 큰 불화는 빈곤에 대한 구성원들의 비뚤어진 대처 방식으로 인해 2차, 3차적으로 재생산된다. 이러한 비뚤어진 대처 방식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흙수저 집안 구성원들은 이런 역기능적 적응을 유일한 인생 방식으로 습관화하고 있는데다가, 그럴싸해보이는 명분으로 정당화까지 시키고 있기 때문에 웬만한 노력 없이는 인지 자체가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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