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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 집안의 역학 구도 1 - 새끼가 성체를 부양한다

Dirt Mentalist 2021. 7. 28. 0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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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계의 모든 생명체는 후손 양육에 투자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어미 호랑이가 새끼 호랑이보다 힘도 약하고 사냥 기술도 떨어진다면 새끼를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 새끼가 부모 개체나 조부모 개체를 위해 희생한다면 그 종은 번성할 수 있을까?

성체의 새끼 부양은 자연의 순리이다. 이게 거꾸로 되면 그 종은 생존하지 못한다.

대부분의 흙수저 집안에서는 이 구도가 뒤집혀져 있다. 어린이 보호를 최고의 윤리로 치는 서구권 문화에 비해 한국 문화가 전반적으로 노인 봉양에 치우져져 있기는 하지만, 이러한 문화적 경향성이 흙수저 집안에서는 병리적 수준으로 치닫는다.

흙수저 집안의 구성원들에게서는 보통 지적 수준, 판단 능력, 사회적 지위, 경제적 수준, 도덕성, 사회성 등 인간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나이와 반비례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또한 아이들은 집안에서 불만 표현이나 투정이 허용되지 않는 반면,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시도때도 없이 불평과 화풀이를 하는 경우가 많다.

결과적으로 가장 어린 세대가 가정 유지의 책임 주체가 되는 기현상이 벌어진다. 자식이 아직 어려 형식적으로나마 부모가 의식주를 책임지고 있는 시기라 해도 마찬가지이다. 흙수저 집안의 부모는 대개 언제나 아프고, 피곤하고, 억울하고, 불쌍하고, 이미 희망과 에너지를 잃은 존재이며, 그래서 아무것도 책임질 수 없는 존재이다. 상당수의 흙부모들은 본인들이 직접 낳은, 법적으로 아직 노동이 불가능한 어린 자식들에게 기본 의식주를 제공하는 것을 자연의 순리가 아니라 특별한 희생, 버거운 부조리, 부당한 피해의 범주로 인식한다. 따라서 자식이 어릴 때 먹이고 입혔던 모든 것은 곧 돌려받아야 할 임시 대출에 불과하다.

반면에 신체적으로 더 싱싱한 자식은 즉각적인 에너지 면에서 뽑을 수 있는 것이 더 많으므로 경제적으로 더 능력있는 것으로, 정서적으로도 부모를 챙겨야 할 부양의무자인 것으로 여겨진다.

이것은 자연의 원리에 전혀 맞지 않는다. 아무것도 축적할 시간이 없었던 가장 어린 새끼 개체가 한 집단의 책임 주체로 여겨지는 것은 해당 집단이 병들었다는 증거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더 오랜 세월을 살아왔다면 모든 면모에서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어딘가는 어린 개체보다 우위를 보이는 면이 있어야 정상이다. 인간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야생 동물과 달리 물리적 힘이 아닌 축적된 문명에 의해 더 많은 영향을 받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특히 경제력과 사회적 위치는 돈이 돈을 버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이에 따라 유리해지는 게 정상이다. 신용 거래 사회에서 시간 확보는 절대적인 부의 원천이 되기 때문이다. 괜히 워런 버핏 같은 투자자가 자신의 엄청난 부의 비결 중 하나로 ‘오래 산 것’을 꼽은 게 아니다.

그러나 흙수저 집안에서는 반대로 나이든다는 것이 더 무능해지고, 가난해지고, 게을러지고, 자기 통제력이 떨어지고, 미숙한 자기중심성이 강화되는 '정당한' 핑계로 통한다. 이는 흙수저 자식들에게 현실과 맞지도 않고 윤리적으로도 옳지 않은 왜곡된 세계관을 심어주게 된다. 흙부모가 자기 변명을 위해 현실을 왜곡한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경제적 가난 자체는 장애, 사고 등 정말 피치 못할 이유로도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제대로 된 부모라면 비록 피치 못할 이유로 경제적으로는 가난해졌다 해도, 최소한 자식에게 전수할 정신적/무형적 자산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어야 정상이다. 제정신을 유지하는 성인이라면 누구든 새끼에게 가르쳐줄 만한 것이 있을 수밖에 없다. 요컨대 자식에게 '나는 너무나 불행해 너한테 아무것도 베풀어 줄 수 없고 네가 우리를 알아서 하드캐리해야 한다'는 무거운 압박감을 세뇌시키는 부모는 사실상 성인의 정신 상태를 가지지 못한 '무늬만 어른'이다. 이런 책임감 부재는 빈곤의 결과가 아니라 원인이라고 보아야 한다. 실제 반세기 동안 진행되어 온 한국 사회 성장과 안정성 정도를 고려할 때, 신체적 장애가 없는 부모가 자식에게 부담을 줄 정도의 절대적 빈곤을 벗어나지 못한 이유가 온전히 사회에만 있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흙부모의 다수는 '불가피한 가난' 사례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의 거의 모든 흙부모는 자신이 ‘열심히 올바르게 살았지만 엿같은 세상의 농간 때문에 가난을 면치 못한 훌륭한 부모’라고 주장하지만, 까놓고 말해 상당수는 그냥 거짓말이다. 언제나 아프고, 피곤하고, 억울하고, 불쌍해서 자신은 아무것도 책임질 수 없다고 주장하는 부모는 그냥 책임감이 없는 부모이며, 그들은 그 결과로 가난해진 것이다. 그들의 가난은 세상의 문제도 아니고, 더더구나 자식 탓은 아니다. 자식에게 자신을 끊임없이 이런 존재로 묘사하는 부모들은 대부분 특별히 진단된 병도 없이 이른 중년의 나이부터 자신의 신체적 고통을 끊임없이 어필하고, 특별한 근거 없이 자신이 '이러고 살 사람이 아닌데' 부당한 인생이 주어졌다며 보상을 바란다.

여기에 세뇌된 흙수저들은 자기 집만 유별나게 불운하고 자기 부모만 남들이 상상도 못하는 고생을 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실제로는 본인 부모만 유별나게 불쌍하고 불운한 운명을 겪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한민국에만 수백만 명이 존재한다. 괜히 인간극장식 불행 배틀이 전 국민에게 높은 인기를 얻는 게 아니다. 재력과 권력을 통해 실제적 특권을 획득하는 것이 부유층의 전략이라면, 불행 과시를 통해 심리적 특권을 획득하는 것은 흙 계급의 흔해 빠진 전략이다.

반 세기가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점프하면서 어마무시한 고속성장을 겪은 한국인들의 역사적 경험으로 인해 한때 ‘부모보다 많이 배우고 잘 사는 자식’의 이미지가 자연스러웠던 시기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2021년 현재의 세상은 그 고속성장이 이미 한참 전에 끝난 세상이며, 고속성장의 열매를 활용해 자산 버프 기회가 있었던 세대는 오히려 부모 세대이지 지금의 젊은 세대가 아니다. 무식하고 곤궁한 부모 밑에서 훨씬 번듯하고 훌륭하게 자라 집안을 건사하는 자식의 이미지는 아직도 한국인들에게 습관적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만, 현실은 그 게으른 무의식과 정반대로 흘러간 지 오래이다.

이 사회 변화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중산층 이상의 부모는 가성비 따지지 않는 자식 지원에 이미 익숙하다. 거액을 들인다는 게 아니라 본인 입장에서의 이익과 자식의 미래를 비교해 따지지 않고, 자식 본인의 인생을 중심으로 보고 지원을 한다는 것이다. 이들이 딱히 더 도덕적이어서는 아니다. 드라마틱한 계급 이동이 과거의 산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애초에 자식을 계급 상승 사다리로 이용하겠다는 동화같은 목표를 가지지 않는 게 당연할 뿐이다.

그러나 경제 생활과 사회 생활의 반경이 매우 좁아 사회 변화에 둔감한 흙부모들은 아직도 자식에게 ‘라면만 먹고 금메달을 땄다’고 (잘못) 알려진 임춘애 시절의 신화를 강요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한국의 많은 흙수저들은 이미 결과가 꽝으로 정해져 있는 게임에서 이기지 못했다는 이유로 부모 앞에서 평생 죄인이 되는 인생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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