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흙멘탈리스트/흙수저 집안의 역학 구도 (16)
흙멘탈리스트
최근 화제가 된 넷플릭스 드라마 에서 게임을 설계한 최종 빌런 오일남은 주인공 기훈에게 돈이 아주 많은 사람과 돈이 너무 없는 사람의 공통점은 ‘사는 게 재미없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오일남이 사는 재미를 본인의 가치관대로 정의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기는 해야겠지만, 현상적으로 이는 상당히 맞는 말이다. 정반대의 경제적 수준이 비슷한 결과를 낳는 상황은 생각보다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단지 문학적 아이러니로 치부할 수 없을 만큼, 경제적 최상류층과 최하류층은 중간층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많은 공통점을 가지며 여기에는 명백한 물리적 메커니즘이 있다. 극단적 상황이 만들어내는 특유의 편벽함으로 인해 중간층에는 잘 보이지 않는 공통된 특징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 중 하나로 개인의 역량, 즉 개인이 보유한 지적 ..
가난해도 인성 좋은 사람, 가난해도 화목한 가정, 가난해도 사랑을 듬뿍 주는 부모 등에 대한 한국 서민들의 클리셰적 환상은 강고하다. 강고하다 못해 가난이 역조건이 아니라 오히려 훌륭한 인격, 화목한 가정, 사랑 넘치는 부모의 필수 요건이자 전구체로 여겨질 정도이다. 가난하지만 올바른 사람과 부유하지만 인격이 파탄난 사람, 가난하지만 행복한 가정과 부유하지만 불행한 가정의 대립 구도는 한국 서민들이 자동반사적으로 떠올리는 방어적 세계관이며, 한국인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뉴스도 보통 이런 입맛에 맞게 취사 선택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환상과 달리 대부분의 흙수저 집안은 중산층 이상에 비해 가정 불화를 겪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인 돈이 부족하니 의견 충돌이 잦을..
인간의 행동 패턴은 선형적 궤도보다는 사이클의 형태로 진행된다. 하나의 행동 및 그에 따른 결과는 별개의 이벤트로 존재하지 않으며, 거의 반드시 그 다음 행동의 동기가 되고 그러한 연쇄반응은 닫힌 고리 안에서 무한 되먹임을 발생시킨다. 어떤 사이클에 진입했느냐에 따라 같은 상황에서도 천차만별의 결과가 나올 수 있으며, 사이클이 깨지지 않는 이상 이 차이는 시간에 따라 더욱 커진다. 사이클의 위력은 모든 것이 연결되어있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시작과 종료 지점을 잡을 수가 없다는 데 있다. 본인도 어떻게 시작했는지를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때문에 선순환이든 악순환이든 한 번 빠지면 쉽사리 나오게 되지 않으며, 내가 속해 있지 않은 사이클은 어떻게 뛰어들어야 하는지를 도통 알 수 없는 미스터리의 영..
자연계의 모든 생명체는 후손 양육에 투자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어미 호랑이가 새끼 호랑이보다 힘도 약하고 사냥 기술도 떨어진다면 새끼를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 새끼가 부모 개체나 조부모 개체를 위해 희생한다면 그 종은 번성할 수 있을까? 성체의 새끼 부양은 자연의 순리이다. 이게 거꾸로 되면 그 종은 생존하지 못한다. 대부분의 흙수저 집안에서는 이 구도가 뒤집혀져 있다. 어린이 보호를 최고의 윤리로 치는 서구권 문화에 비해 한국 문화가 전반적으로 노인 봉양에 치우져져 있기는 하지만, 이러한 문화적 경향성이 흙수저 집안에서는 병리적 수준으로 치닫는다. 흙수저 집안의 구성원들에게서는 보통 지적 수준, 판단 능력, 사회적 지위, 경제적 수준, 도덕성, 사회성 등 인간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나이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