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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시스트 부모에 대한 대처 – 회색 돌 되기와 연 끊기 본문
부모가 나르시시스트일 때 나의 인생을 지키기 위해 적절한 대응 방법은 무엇일까에 대한 대답은 연인이나 친구가 나르시시스트일 때의 대응 방법과 다르지 않다. 말인즉슨, 연을 끊는 게 유일하게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것이다. 연을 끊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든 대처를 해보려고 한다면 피해를 약간 덜 보는 방법은 있어도 아예 안 보는 방법은 없다는 것, 그리고 그런 상태가 평생을 갈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걸 인정하지 않겠다면 아직 나르시시스트와의 관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며, 이러한 이해 부족은 오히려 대처를 어렵게 만든다.
나르시시스트에 대한 이런저런 자료들을 찾아보면 여기에서의 주장과 마찬가지로 연을 끊는 게 무조건 최선이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지만, 연을 안 끊은 상태에서도 얼마든지 자기 하기 나름으로 모두가 행복한 위아더월드가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후자의 조언은 “폭력 남편을 만났다고 해서 꼭 이혼녀가 되고 불행해지라는 법은 없죠. 그런 남편도 얼마든지 초인적인 노력과 바다같은 이해심으로 보듬으며 훌륭하게 백년해로하신 분들이 계십니다.”와 같은 이야기라고 보면 된다. 즉, 후자에서 말하는 행복한 상태는 착취 관계 자체를 해결해서 누구나 생각하는 일반적인 의미의 행복하고 자유로운 영혼으로 사는 상태를 말하는 게 아니고, 겉으로 시끄럽게 충돌하는 상황 없이 착취적 관계가 피착취자의 ‘자유의지’로 죽을 때까지 유지되었다는 뜻일 뿐이다.
그런 상황이 가능하려면 착취당하는 사람이 본인의 괴로움을 뭔가 종교적 차원의 고행으로 보도록 관점을 바꾸어, 어떤 경우에도 그저 착취자를 절대 떠나지 않고 백년해로하는 것만이 인생의 성패를 결정하는 최종 게임이라고 인식하는 인생관을 가져야만 한다. 막말로 김기덕의 <나쁜 남자>, 라스 폰 트리에의 <브레이킹 더 웨이브>, 나카시마 테츠야의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같은 여성 수난 영화 말미에 공통적으로 반드시 등장하는 (주체성이 완전히 파괴된) 여주인공의 성녀 모에화같은 것이라고 보면 된다. 본인이 그런 인생을 원한다면 알아서 할 일이지만 ‘나르시시스트와의 관계도 자기 하기 나름으로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다’와 같은 언사에서 그 행복이 일반적 정의의 행복이 아니라는 걸 언급하지 않는 한, 저런 조언은 매우 악질적인 사기이다. 종종 상대방의 나쁜 상황이 지속되면서 자신에게 상담료를 갖다바치길 원하는 무책임한 심리 상담사들이나, 자격증은 있다지만 실제 인간에 대한 이해가 없어 긍정충이 되는 것 외에 다른 조언을 할 줄 모르는 상담사들이 저런 말을 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아직 연을 끊지 않은 나르시시스트를 대할 때 적절한 방법이라고 세간에서 권하는 것들을 보면 효과도 없거니와 심지어 더 위험할 수 있는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 일반적인 조언의 대부분은 그냥 맞서지 말고, 적당히 기분 맞춰주고, 기대 수준을 낮추고, 대신 받아들일 수 없는 행동의 한계 설정을 하고, 잃는 것과 잃어서는 안 되는 것의 구별을 확실히 한 뒤, 다소간의 희생과 타협을 인정하라는 내용들이다. 간단하게 말해 최소한의 선만 긋고 그 외에는 포기하라는 얘기다. 남의 인생에 대해 최소한만 제외하고는 다 포기하라고 함부로 말하는 것도 문제이고, 그 선이 어디에 그어져야 하는지 모호한 것도 문제이지만, 나르시시스트 착취의 핵심이 바로 타인의 그은 ‘최소한의 선’을 계속해서 위반하는 것이라는 감안하면 그야말로 실소가 나오는 모순적 조언이다. 상대가 어떤 한계선을 가졌다는 걸 느끼는 즉시 나르시시스트의 주요 파괴 목표물은 바로 그 한계선이 된다. 사람의 정신을 사냥하는 재미로 사는 나르시시스트에게 타인이 그은 '최종 한계선'은 오히려 과녁을 지정해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적당히 포기해주고 한계선을 낮게 그으면 나르시시스트가 좀 봐주겠지(?) 하는 어처구니없는 믿음은 오히려 위험을 자초한다. 따라서 이러한 방법들은 ‘피해를 덜 보는’ 대처 방법도 아니고, 심지어 정신승리 방법도 아니고, 오히려 나르시시스트에게 ‘나 잡아봐라’며 도발하는 방법에 가깝다.
시중에 알려진 방법 중 가장 효과가 있는 것은 ‘회색 돌 되기(grey rock method)’이다. 그런데 이 방법이 효과가 있는 이유는 이것이 결국은 연 끊기와 다름없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회색 돌 되기의 정의는 돌과 같은 무생물처럼 재미없는 존재가 되어 상대방이 흥미를 가지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나르시시스트는 정신적으로 생명체의 에너지를 빨아먹는 뱀파이어와 같으니, 생명체처럼 보이지 말라는 주문이다. 한 마디로 연을 끊는다는 게 내 쪽에서 멀어지는 것이라면, ‘회색 돌 되기’는 나르시시스트 쪽이 물러나게 만들어 연이 끊기게 하는 수동 공격 방법이라고 보면 된다. 내 쪽에서 멀어지든 나르시시스트 쪽에서 멀어지든, 멀어져서 관계가 사실상 끝나게 되는 결론은 같다.
이 방법의 핵심은 나르시시스트에게 ‘재미없는 존재’로 보이는 것이다. 뱀파이어와도 같은 나르시시스트에게 재미없는 존재란 빨아먹을 영양가가 없는 존재를 뜻한다. 막말로 나르시시스트에게 못난이, 낙오자, 지겨운 사람, 옆에 있어서 득 될 것 없는 사람으로 보여야 한다는 뜻이다. 때문에 ‘회색 돌’처럼 보이겠다는 목적으로 매우 다양한 방법이 동원된다. 무뚝뚝하게 반응 안 나타내기, 머리 나쁘고 센스 없는 척 하기, 돈 없는 척 하기, 칙칙하고 못난 옷 입기, 딱 중간만 하기, 아픈 척 하기 등등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기계적 적용이 불가능하며 맥락과 강도 조절이 중요하다. 이를테면 육체적 활력이 중시되는 환경에서 ‘적당히’ 비실비실한 사람은 회색 돌처럼 무시당할 수 있지만, 나르시시스트가 ‘돈 많고 명 짧은’ 이성을 찾아헤매고 있는 와중에 만나게 되는 희귀병 환자나 시한부 환자는 최고로 ‘재미있는 존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돈이 없다는 것 또한 일반적으로는 재미있을 게 없는 조건이지만, 오징어 게임이라도 주최하려는 나르시시스트의 레이더에 든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또한 너무 명백히 못난 것처럼 보이면 본인의 상대적 우월감을 고취시키는 용도의 샌드백으로서 ‘재미있다고’ 보일 수 있기 떄문에 이것도 조심해야 한다. 이처럼 뭐가 재미있고 없는 존재인지는 나르시시스의 취향, 현재 원하는 조건, 소속된 준거 집단의 성향 등에 따라 달라진다.
그래도 일반화시킬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속한 환경에서 어느 쪽으로든 튀지 않고 군중 속에 숨으면 티가 안 날 만큼 무색무취한 ‘중간’ 존재이면서, 나르시시스트가 가장 원하는 메인 표적 자원 부분에서는 크게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돈 많은 친구를 만들고 싶어하는 나르시시스트라면 당연히 돈이 없는 척을 해야 하고, 이성에게 추근덕대는 나르시시스트라면 이성적인 매력이 없도록 보여야 한다.
때문에 웃기게도 어떤 피해자들은 이 회색 돌 되기 방법을 썼다가 ‘더 이상 나르시시스트에게 사랑과 인정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고 불평하기도 한다. 이 방법이 명백히 연 끊기의 일종이라는 것을 모르고 사용한 경우이다. ‘더 이상 나르시시스트에게 사랑과 인정을 받을 수 없게’ 되는 것이 바로 이 방법을 쓰는 핵심 이유이다. 나르시시스트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에게는 설명이 필요없는 부분이지만 나르시시스트에게 사랑받는 대상이라는 건 곧 착취 대상이라는 뜻이며, 회색 돌은 사랑을 받을 수 없는 못난 존재를 뜻한다. 사랑을 받을 수 없는 존재가 되어야 착취도 안 당하니 이런 고육지책을 쓰는 것이다.
위의 문단에서 언급한 ‘맞서지 말기, 맞춰주기, 타협하기’ 등과는 달리, 회색 돌 되기 방법은 나르시시스트와 무난하게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이 아니다. 회색 돌 되기는 나르시시스트와 연을 끊고는 싶은데 자발적으로 끊어내려는 시도를 하는 것이 불가능할 떄, 나르시시스트의 세상에서 자발적으로 파문당하기 위해 쇼를 벌이는 방법이다. 때문에 만약 나르시시스트 상사의 폭언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 방법을 사용하면서 인사고과를 잘 받을 수 있다고 기대한다면 그런 기대는 접는 게 좋다. 이 방법은 나르시시스트를 살살 구슬려 점수 따는 방법이 아니라, 나르시시스트에게 일부러 낙제점을 받는 일종의 이미지 자폭이다.
나르시시스트 부모에게 회색 돌이 되려면 일단 나르시시스트 부모가 가장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거의 대부분의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자식이 일단 세속적으로 자신의 이미지를 빛내주길 바라고, 또한 자식이 물질적/정신적으로 자신에게 베풀어주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이것을 뒤집어 이 부분에서 매우 ‘재미없는’ 자식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아무리 좋은 일이 있어도 알리지 않는 것이 좋다. 취업을 했다든가, 승진을 했다든가, 보너스를 받았다든가 하는 일을 부모에게 알리지 않을 수만 있다면, 알리지 않는 편이 좋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더라도 앞으로 일어날 일은 알리지 않아야 한다. 필요하다면 거짓을 보태 이미 성취한 일이 좋지 않은 사건으로 엎어졌다고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또한 현재의 상황과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서도 다소 어둡게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 여유가 전혀 없는 것처럼 행동해서 나르시시스트가 밀고 들어올 틈을 주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본인의 인생을 너무 극단적으로 과장해 나쁘게만 몰고 가는 것도 주의해야 한다. 특히 이로 인해 감정적으로 격한 모습을 보이거나, 부모에게 의지를 하는 것처럼 보이거나, 상의를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좋지 않다.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자식의 용도를 트로피 또는 쓰레기통으로 정해놓았으며, 만약 자식이 초라하고 별볼일없으나 만만하게 내 말은 좀 들어줄 것 같으면 쓰레기통으로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때부터는 반대로 나쁜 소식만을 선택적으로 원하게 되고, 자식을 자랑하는 재미가 아니라 씹는 재미에 의존하게 된다. 씹는 재미도 재미이기 때문에 나르시시스트는 이런 자식에게도 자꾸 연락을 취한다. 회색 돌이 되려면 그 중간 어딘가에 위치하는 것이 좋다.
다만 좀 더 극단적인 연기가 가능한 경우에는 대놓고 부모에게 먼저 부담/위협이 될 것처럼 연기하는 방법도 있다. 쓰레기통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아예 폭탄이 되는 것이다. 빼앗을 수 있는 것은 없고 빼앗길 것만 있다는 위협을 느끼면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알아서 거리를 두게 되어 있다. 실제로 나르시시스트 부모의 자식들 중에는 사회생활은 칼같이 모범적으로 하면서 부모에게만 폐인인 것처럼 연기하며 사는 경우가 없지 않다. 부모에게 연락이 오면 먼저 선수 쳐서 더 깡패처럼 폭언을 하고 부모에게서 오히려 뭔가를 뜯어갈 것처럼 연기해 부모가 먼저 질리게 만드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나르시시스트 부모에게는 나에 대한 정보를 아예 주지 않고, 가끔 의도적 거짓말로 나의 진짜 상황을 가리는 것이 좋다. 부모 입장에서 봤을 때 더 이상 자식 자랑할 맛도 안 나고, 떡고물 떨어질 것도 없고, 어쩌면 나한테 도움이 되기는 커녕 나한테 더 짐이 되지는 않을까 싶은 걱정도 든다면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자식과 가까워지고 싶어하지 않는다. 이렇게 별로 가까이 하고 싶은 마음이나 대화하면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안 들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쟤는 이미 희망 없이 지루하게 제 입 풀칠이나 하고 사는 수준이라 나한테 더 이상 좋은 소식을 물어다주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하는 것이다. 지인들의 기를 팍 죽일 빛나는 트로피도 아니고 만만할 때 화풀이를 쏟아낼 쓰레기통도 아닌 자식은 나르시시스트에게 재미없는 자식이다.
건강 상태도 적당히 안 좋은 것으로 말할 필요가 있다.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자식의 젊음과 건강을 부러워하고 질투하며, 그 젊음의 에너지를 어떻게든 빼앗아오고 싶어한다. 늙어가는 나르시시스트 부모에게는 자식이 젊고 건강하다는 이유만으로도 재미 만점의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런 자식의 질병이나 허약함은 자식의 세속적 실패와 동일시되며, 나르시시스트 부모가 자식에게 흥미와 매력을 잃는 큰 사유가 된다(더 자세한 관련 내용은 ‘그 부모가 자식을 병원에 데려가지 않는 이유’ 포스트 참조).
그 외에도 나르시시스트 부모와 대면하게 될 때 절대 새 물건이나 튀는 옷 등을 보여주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자식에게서 나오는 새 소식이 없을수록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아주 작은 변화에도 민감해지며 이를 침소봉대해 자신만의 의미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심해진다. 지나친 자기검열을 하라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나르시시스트 부모에게는 자신에 대한 그 어떤 업데이트나 단서도 주지 않겠다는 기본적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회색 돌 되기 방법의 치명적 단점은 이 방법을 사용하면 자신의 모습대로 살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나르시시스트 직장 상사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일부러 외모도 추레하게 하고 다니고 튀지 않으려 자기 의견 표명도 안하고 다닌다면 이 사람의 직장 생활은 어떻게 될까? 스스로를 매력 없고 튀지 않는 존재로 어필하려면 그게 특정 대상만을 위한 것일지라도 인생 전반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24시간 솔직하게 내 모습대로 살아갈 수 있는 이들에 비하면 자유가 크게 제한당하는 것은 물론, 자신을 억압하면서 손해를 봐야 하는 부분도 생긴다. 이는 단지 불편하기만 할 뿐 아니라 자아 정체성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회색 돌 되기 방법은 생각보다 사용이 불가능한 경우도 많고, 사용할 수 있는 상황이라 해도 장기적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본인이라는 사람이 정말로 회색 돌같은 존재가 되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나르시시스트가 무서워서 평생 신분을 숨기고 자신의 매력과 능력도 숨긴 채 숨죽여 밥만 먹고 사는 존재가 되고 싶지 않다면 이 전략에는 반드시 종료 지점과 출구 전략이 있어야 한다. 인생의 유일한 목표가 '나르시시스트 요리조리 피해다니기'가 아니라면 말이다.
또한 회색 돌 되기 방법은 근본적으로 나르시시스트 부모가 알아서 멀어지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식 입장에서 콘트롤에 뚜렷한 한계가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막말로 나르시시스트 부모가 알아서 멀어지려고 하지 않으면 어찌할 수가 없다. 타인의 마음은 내가 조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영향을 미치기 위해 이런저런 수를 쓴다 해도 마음의 최종 결정권은 마음의 주인에게 있지 나에게 있지 않다. 결국 아무리 회색 돌 되기를 열심히 해봐도 부모가 여기에 반응하지 않으면 그 뿐이다.
부모가 도저히 자발적으로 멀어지지 않는다면, 내 쪽에서 적극적으로 연을 끊는 방법밖에는 없다. 자식이 손수 나서서 연을 끊는 방법의 단점은 겉으로 보이는 충돌이 일어나고 나르시시스트 부모가 일을 매우 시끄럽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나 가족 및 친척들 사이에서는 일이 매우 크게 번질 수 있다. 자식은 이런 경우, 부모 뿐 아니라 다른 가족과 친척 구성원들도 잃어버릴 각오를 해야 한다. 주변 지인 집단을 이용해 압력을 행사하고 자식의 평판을 인질 삼아 거래를 하려는 것은 나르시시스트 부모의 기본 특징 중 하나이므로, 가족과 친척들이 부모 편에 서서 자식에게 부담을 줄 것이라는 것은 거의 불 보듯 빤한 상황이다.
게다가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할 수만 있다면 가족, 친척 뿐 아니라 자식의 다른 대인관계에까지 손을 뻗친다. 따라서 나르시시스트 부모에게는 평소부터 나만의 대인관계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친구, 선후배, 직장 동료 및 관계자 등을 포함한 모든 사회적 지인에 대한 정보는 부모로부터 철저히 숨기거나, 적절한 설명으로 지인들을 예기치 못한 상황에 대비 시키는 것이 좋다. 그렇지 않으면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자식의 직장 상사와 동창들에게까지 연락해 말도 안 되는 발언을 하며 자식의 사회 생활을 망치려 들 것이다.
나르시시스트 부모들의 지인 활용은 그 기상천외함이 일반인들의 상상 범위를 뛰어넘는다. 개인적으로 목격한 어떤 사례에서는 심지어 결혼한 딸을 가진 어떤 어머니가 평상시에는 정상적인 친정 엄마 이미지를 연기하면서, 딸이 마음에 들지 않게 행동할 때마다 딸의 시어머니에게 몰래 전화를 걸어 딸에 대한 비난을 긁어부스럼으로 유도하고 ‘마음껏 혼내주시라’고 부탁하는 경우도 있었다. 딸을 괴롭히고 싶지만 대놓고 그렇게 할 명분이 부족하고 딸에게 나쁜 엄마로 보이기도 싫으니, 며느리가 쉽게 약자가 되는 한국 문화의 특징을 이용해 시어머니를 대리자로 내세운 것이다. 그렇게 자신은 손에 직접 피를 묻히지 않고도 딸을 괴롭히는 사디스트적인 희열을 느끼면서, 동시에 사돈에게는 자신의 딸도 거리낌없이 고발(?)하는 도덕적인 여인으로 이미지 메이킹을 하고, 영문도 모르고 시어머니에게 괴롭힘을 당한 딸에게는 모르는 척 위로를 건네며 ‘역시 하나밖에 없는 친정 엄마’로 자리매김하려는 것이 이 어머니의 목적이었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어느 부모가 그런 짓을 하느냐’고 믿을 수 없어하지만, 나르시시스트 부모의 입장에서 이는 당연한 선택이다. 들키지 않는 한, 이 어머니는 이런 행동을 통해 얻을 것은 많고 손해 볼 것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언제나 이런 손익계산서를 통해 행동하며, 이들의 손익계산서는 자식의 이해관계와 가끔 우연히 일치할 수도 있지만 아닌 경우가 더 많다.
부모가 이런 짓을 하고 다닐 경우, 자식은 당연히 대인관계에서 손해를 보게 될 수 있다. 지인이 당사자에 대한 믿음이 굳건한 경우에는 설명을 통해 이해시킬 수 있겠지만 모든 관계가 그 정도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 손해가 발생하더라도 이번을 끝으로 손절을 마무리한다고 생각해야지, 부모의 협박에 굴복했다가는 손절이 아니라 지속적인 손해를 입게 된다. 부모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하든, 아니면 다른 핑계를 대든 당당하게 설명하고 본인은 그에 대해 잘못한 것이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사방의 부당한 처사에 선을 그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 그나마 양식 있는 지인들에게 존중을 받고 부모가 떠난 후의 인생을 재건할 수 있게 된다. 괜히 주눅이 들거나 남이 비난할까봐 움츠러들면 오히려 타인들도 부모를 따라 자식을 비난하기 훨씬 쉬워진다. 인간은 당당한 사람을 공격하는 것은 매우 부담스러워하지만, 당당하지 못한 사람은 약자로 보기 때문에 쉽게 공격한다.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연을 끊을 때에도, 회색 돌 되기 방법의 원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나르시시스트 부모에게 부정적인 방향으로라도 모종의 활력을 줘서는 안 된다. 연락을 하지 않고, 받지도 않고, 만나지도 않고 조용히 끊는 것이 최선이다. 불시에 찾아와도 모르는 사람처럼 반응을 최소화하는 것이 좋다. 정말 어쩔 수 없을 때만 반응하고, 기본적으로는 눈길조차 주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애초에 몰랐던 사람 또는 기억상실증에 걸려 오늘부터 모르는 사람으로 여기는 것이 적절하다. 흥분하는 것은 좋지 않으며, 연을 끊을 거니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다 하겠다면서 나르시시스트 부모에게 미주알고주알 감정을 다 털어놓는다든가, 서운했던 것을 폭발시키며 울부짖는다든가, 서로 고함을 지르며 싸운다든가 하는 드라마틱한 상황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 모든 것이 나르시시스트 부모에게는 엄청난 자극, 즉 ‘재미’가 된다. 또한 자식이 자신으로 인해 괴롭다는 것 자체가 본인의 영향력을 확인하는 것이므로 약점을 보인 것과 다름없게 되어 버린다.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이 재미를 위해 똑같은 짓을 다시 저지를 확률이 크다.
나르시시스트 부모에게는 말은 최대한 적게 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물론 부모는 일을 시끄럽게 만들겠지만 연을 끊는 자식 당사자는 최대한 조용하고 냉정하게 행동해야 한다. 부모가 순전히 보여주기 위한 소란을 피운다면 외면하고 지나쳐버리고, 가는 길을 막는다든가 하는 식으로 내 행동에 직접 제약을 가하면 점잖게 경찰을 부르겠다고 경고하는 식이 좋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사람의 마음은 당사자만이 움직일 수 있으므로, 내가 연을 끊고자 한다면 궁극적으로는 나르시시스트 부모라도 별 수가 없다. 내 마음은 어디까지나 내 것이고 그것을 타인이 원하는대로 바꿀 수는 없다. 오로지 문제가 되는 부분은 설득으로 안 되면 협박과 테러도 불사하겠다는 나르시시스트 부모의 탈선으로 발생할 수 있는 피해이다. 무슨 수를 써도 내 마음이 바뀌지 않는다면 민주주의 사회에서 나르시시스트 부모가 택할 수 있는 옵션은 점점 더 위법적 수단 외에는 없어진다. 많은 나르시시스트 부모가 이런 상황에서 설마 부모인데 자기가 어쩌겠어 하는 믿음으로 위법적 수단도 개의치 않는다. 지속적으로 업무를 방해하거나 지인들에게 스토커처럼 연락하는 행위에도 위법적 요소가 충분히 있으며, 이럴 때 공권력의 활용은 매우 좋은 옵션이다. 이는 특히 부모가 중산층 이하 계층일 때 효과적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공권력 자체를 무력화시킬 수 있거나 법을 유리하게 활용할 만한 지식과 자원이 있는 고위 권력자라거나 재벌 정도의 계급이라면 공권력도 별 소용이 없을 수 있다.
그러나 평범한 수준의 사람들에게 공권력은 아직도 상당한 공포를 줄 수 있으며, 대부분의 평범한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자식이 공권력을 동원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상상 자체를 하지 못한다. 애석하게도 한국은 자식이 부모를 상대로 고소하는 것이 불가능하기는 하나, 접근 금지 가처분 신청 등은 가능하다. 어떤 경우를 위해서라도, 부모의 비합리적인 언행과 학대 내역 등은 가능한 한 물증으로 보관하는 것이 좋다. 꾸준히 일기 형식으로라도 기록을 하면 도움이 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나르시시스트 부모와 멀어지고 싶으면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에 따라 내 쪽에서 적극적으로 나서는 연 끊기와 상대를 멀어지게 만드는 회색 돌 되기 두 가지 방법을 경우에 맞게 사용하는 것이 좋다. 어떤 경우에도 일단 연을 끊고자 하는 자식의 입장에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물리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최대한 보호해야 한다. 나르시시스트는 쓸모가 없다고 판단되면 자발적으로 외면해버리지만, 쓸모가 있어서 가지고 싶은데 가지지 못하게 하면 증오를 품는다. 정말 가질 가능성이 없다 싶으면 다 망쳐놓겠다는 앙심을 품을 수도 있다. ‘설마 그래도 부모인데 그렇게까지 하겠어?’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자기 보호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나르시시스트 부모가 자식의 생존과 건강을 성공을 바라면서 그나마 부모로서의 최소한의 정체성을 흉내낼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 자식이 자기 손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자기에게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다고 믿을 때까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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