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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Q - 나르시시스트 부모에게 잘해드리면 어떻게 되나요? 본문
나르시시스트 부모에게 잘해드리면 어떻게 되나요?
결론:
나르시시즘이 더 심해집니다.
구체적으로:
한국은 자식을 포함한 젊은 세대에게 비합리적인 요구를 하거나 생떼를 쓰는 ‘어른들’에게 매우 관대합니다. 상식적으로 분명 잘못된 언행인데도 상대가 나이 든 어르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어떻게든 궤변적인 해석을 통해 잘못되었다는 판단을 피해가거나, 기껏해야 ‘그냥 네, 네 하고 넘어가라.’는 정도의 조언을 하곤 합니다.
그게 지혜로운 거라는 이상한 통념도 있습니다. 겉으로나마 비위 맞춰드리고 충돌을 피하는 게 어르신들의 미움을 사지 않고 사회적 평판도 지키는 길이니까 본인에게도 이익이라는 논리입니다.
그러나 이는 소탐대실을 불러오는 전형적인 사고방식입니다. 나르시시즘의 비위를 맞추는 행위는 절대로 비위를 맞추는 당사자에게 이익을 가져다 주지 않습니다.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미 본인의 존재를 나르시시스트의 노예로서 나르시시스트가 던져주는 떡고물에 만족하는 수준으로 제한해놓고 있고, 그런 인생 외에 다른 인생을 모르기 때문에 남에게도 이런 말을 조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까놓고 말해 그나마 해당 나르시시스트가 스티브 잡스 급이라도 된다면 이 ‘떡고물’이 사회적 시선으로 봤을 때 꽤 커보일 수도 있겠습니다. 실제로 이런 계산속 때문에 거물급 나르시시스트의 비위를 맞추는 자리에 자발적으로 들어가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계산조차도 일반인들이 생각하는것보다는 배신감 느낄만한 결과를 매우 자주 불러옵니다. 세계 시총 1위의 애플 창립자이자 CEO였으면서도 친딸에게 대학 등록금을 가지고 치사하게 굴었던 스티브 잡스의 일화를 기억해야 합니다. 애플의 초창기 제품을 개발한 ‘실질적’ 주인공인 스티브 워즈니악의 현재 사회적 위치가 잡스에 비해 어떤지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르시시스트는 그 누구에게도 본인이 빼앗을 수 있는 것 이상을 주지 않으려 합니다. 때문에 능력 좋은 나르시시스트 옆에서 비위만 대충 맞춰주면 꿀 빨 수 있겠지 하는 얄팍한 계산은 금물입니다. 나르시시스트는 본인이 그런 도둑 심보를 누구보다도 강하게 가지고 있고 나아가 세상 모두가 그런 도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에 대한 경계가 엄청나게 심합니다. 나르시시스트에게서 꿀을 빨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본인이 더 심한 나르시시스트가 되어 상대보다 훨씬 출중한 권모술수를 발휘하는 것 뿐입니다.
하물며 상대가 잡스도 아니고 기껏해야 웬 10만원짜리 용돈 봉투로 상대를 휘두르려는 동네의 흔한 노인 1이라면, 그런 그의 비위를 맞춰주며 본인이 ‘현명하고 지혜롭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 자부심을 재고해보는 게 좋습니다. 그런 노인이 무슨 말을 하든 순종적으로 ‘네, 네’ 하고 넘어가는 것은 고작 ‘욕먹지 않는’ 대가로 평생 그 노인 이하의 인생을 살겠다는 계약서를 쓰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본인의 가치가 정말 그 정도밖에 안 된다고 생각한다면 상관없지만, 그렇지 않다면 본인이 현재 처해있는 상황이 불공정 계약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르시시스트와의 관계에서 애초에 공정 계약은 불가능합니다. 상대와의 관계가 공정 계약이라는 게 느껴지면 나르시시스트 쪽에서 먼저 난리가 나거나 관계를 끊어버립니다.
상대가 자신보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함부로 대하거나 선을 넘는 요구를 하는 ‘어르신’은 다른 상황에서 어떤 성격을 보이는지와 무관하게 젊은이들에게는 명백한 나르시시즘을 발현하는 것입니다. 나르시시즘은 특정 상대에 비해 자신에게 타고난 특권이나 우월함이 있다고 믿고 자기에게는 해당 없는 사항을 상대에게만 요구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성을 말합니다. 나는 예의를 안 지켜도 되지만 너는 나에게 예의를 차려야 한다, 나는 하기 싫은 일이지만 너는 열심히 해야 하는 도리와 의무를 타고난 존재이다 등등의 사고방식은 모두 나르시시즘의 발현입니다. 나르시시즘은 바이러스 감염 마냥 음성/양성으로 나뉘는 게 아니라 스펙트럼으로 존재하고 사회적 상황에 따라 적응 양상이 달라집니다.
따라서 지금 당장 싫은 소리 듣기 싫고 충돌하는 게 두렵다는 이유로 나르시시스트의 요구를 최대한 맞춰주면, 나르시시스트의 특권의식은 한층 더 높아져 나르시시즘의 발현 강도도 함께 강해집니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는 말에 딱 맞는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나르시시즘의 원인인 특권의식에 계속 기름을 들이부으면서 결과가 좋을 것이라고 믿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원하는 것을 계속 들어주다 보면 요구의 기준은 한층 높아지고, 잔소리를 계속 들어주다 보면 잔소리는 끝도 없이 늘어나게 됩니다. 어느 정도 충족시켜주면 고마운 줄 알고 물러나는 게 아니고 그만큼 기준만 높이는 꼴이 됩니다.
어르신들을 상대로 ‘그냥 겉으로만 순종하는 척 하고 뒤로는 나 하고 싶은대로 한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관계가 모든 경우에 가능한 건 아니지만 내 생활 일거수일투족을 실제 관리할 권한이 없는 어른들에게는 이런 식으로 하는 게 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 방법도 썩 좋지는 않습니다. 아무리 나의 일을 직접적으로 좌지우지할 능력이 없는 상대라지만, 겉으로만 순종하는 척 속이는 것도 상대의 특권의식에 기름을 붓는 것은 매한가지입니다. 특권의식이 강해질수록 기대 수준도 높아지게 되어 있고, 상대는 기회가 될 때마다 어떻게든 이 높아진 기대 수준에 따라 물리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빚을 청구하려 듭니다.
기대 수준이 높아져 있는 나르시시스트는 나를 노리고 있는 잠재적 범죄자와 같습니다. 사람은 어려운 부탁을 거절당했을 때보다 ‘당연한’ 부탁을 거절당했을 때 더 큰 분노를 느끼게 되어있으며, 평소 자기 비위를 잘 맞춰주던 사람은 나르시시스트에게 무슨 부탁도 당연하게 들어줘야 하는 사람으로 인식됩니다. 때문에 나르시시스트가 무언가 충족되지 않아 분노를 터뜨릴 때 그 화풀이 방향은 평소 자신에게 냉정하게 굴던 사람이 아니라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던 사람에게로 향합니다. 이런 사람과 교류를 하는 것은 심지어 그것이 잠깐의 대화 뿐이라 해도 본인에게 도움 될 것이 없습니다. 충분히 더 나은 것을 할 수 있는 시간에 특권의식에 찌든 나르시시스트의 나날이 심해지는 비하적 언사를 듣고 있는 게 정말 ‘현명한’ 삶의 방식인지 재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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