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멘탈리스트

그 부모가 자녀를 병원에 데려가지 않는 이유 본문

흙멘탈리스트/나르시시스트 부모

그 부모가 자녀를 병원에 데려가지 않는 이유

Dirt Mentalist 2021. 9. 20. 07:42
반응형

어느 날 저녁에 제가 갑자기 기절한 적이 있는데 별 일은 아니었어요. 침대에서 떨어져서 머리를 바닥에 찧긴 했는데 침대가 높지 않았고 몇 초만에 깨어났죠. 깨어나서 무슨 상황인지 저도 황당해서 그냥 나 왜 이러지?’ 했는데 그걸 쳐다보던 엄마가 굉장히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시더군요. 병원에 갔다 왔는데 의사가 별 거 아니라고 그냥 안정을 취하게 해 주고 편히 쉬라고 했어요. 그런데 엄마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화가 나는 것처럼 보이더니 급기야 다음날에는 넌 대체 내가 뭘 어떻게 해줘야 하니?’ 이러시는 거예요. 전 엄마를 탓한 적도 없고 아프다고 징징거린 적도 없는데요.”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자식이 자신의 위상을 올려주거나 자신에게 직접적인 이익을 가져다주는 경우에만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기 때문에 자식의 실패에 관대하지 못하다. 그리고 이 실패에는 자식의 질병, 부상, 죽음도 포함된다.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자식의 모든 종류의 실패에 대해 당사자보다 더 못 견뎌하며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자식의 실패로 인해 본인이 받을 수 있는 불이익 또는 불명예를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자식이 실패했을 때 자식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식에게 분노하며, 이런 부모를 둔 자식은 안 그래도 힘든 일을 맞딱뜨린 상황에서 부모로 인해 더 심한 고통을 당하게 된다.

 

나르시시스트 부모 중에는 자녀가 아플 때 자녀의 상태를 부정하며 병원에 잘 데려가지 않거나, 병원에 데려갔다 해도 의사의 처방과 주의사항을 잘 따르지 않거나, 따른다 해도 뭔가 화가 난 것처럼 자녀에게 거리를 두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요컨대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자녀가 아플 때 자녀를 제대로 케어하지 않는 것은 물론, 도리어 평소보다도 더 냉랭한 태도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 사람을 도구로 보는 나르시시스트의 관점에서 아픈 사람은 망가진 물건과 동급이기 때문이다. 나르시시스트 부모에게 아픈 자녀란 더 이상 본인이 원하는 기능을 제공하지 못하는 물건, 또는 부모의 유전자나 양육 방식의 약점을 남들에게 노출시키는 집안 망신의 원흉이다.

 

이는 정신이 건강한 부모들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며, 때문에 이런 관계를 경험하지 못한 이들은 그저 나르시시스트 부모의 히스테리를 자식에 대한 걱정으로 스트레스를 받은 것으로 해석하곤 한다. 그러나 나르시시스트 부모의 스트레스는 자식에 대한 걱정이 아니라 자식의 병으로 인해 본인이 짊어지게 된 책임과 부담에서 발생한 것이다.

 

자식을 자신의 인생에서 어떻게든 유용한 생산 도구로 사용하려던 나르시시스트 부모에게 자식의 병은 본인의 사업 계획을 망치는 짜증나는 사건에 불과하다. 본인의 계획에 들어있지 않던 질병 또는 부상에 시달리는 자식은 나르시시스트 부모의 관점에서는 반항하고 탈선하는 자식과 다를 바 없다. 불가항력적인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자식이 감히 내 허락 없이 제멋대로 병들었다고 느끼는 것이다. 나르시시스트 부모에게 본인의 인생 계획과 통제 영역을 벗어난 모든 상황은 부모의 권위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여진다. 내가 병든 건 고의가 아니었다는 자식의 항변이 아무리 논리적으로 정당해도, 논리가 나르시시스트 부모의 감정을 바꾸지는 못한다.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의사의 처방과 주의사항 역시 부모의 전면적 통제권을 강제로 빼앗아가는 부당한 외부 권력으로 느낀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전문가가 자신이 반박할 수 없는 지식으로 무장하고 자식에 대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지시하는 것은 자식의 세계에서 유일한 절대신으로 군림하려는 나르시시스트 부모에게 불쾌한 일로 여겨진다. 특히 의사의 처방이 부모의 평소 양육 방식이나 생활 방식과 충돌하는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이 경우,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자식의 질병이 자신을 모함하고 고발하는 비열한 고자질과 비슷하다고 느낀다. 남들은 자녀의 치료를 맡은 의사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할 법한 상황에서, 의사와 대놓고 싸우는 기막힌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물론 위와 같은 생각은 누가 봐도 비합리적이기 때문에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이를 스스로도 투명하게 인정하지 못하며, 어떻게든 자신의 분노를 우회해서 표출할 수 있는 명분을 찾아내려 한다. 사회적 통념이 흔히 오해하는대로 자식이 걱정되어 그런 것인 척하거나, 자식의 건강을 위해 필요한 훈육을 한 것이라고 둘러대거나, 의사가 돌팔이이거나 과잉진료를 하는 것 같아 그랬다고 하는 식이다.

반응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