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멘탈리스트
그 부모가 자식의 친구를 악당으로 모는 이유 본문
“우리 부모님은 어릴 때부터 제 모든 친구들에 대해 부정적인 톤으로 말합니다. 어떤 친구 이야기를 하든 트집을 잡거나 본인만의 상상과 추정을 붙여서 나쁜 애일 거라는 식으로 말해요. 친구 자체에 대해서만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니고 친구의 부모나 집안에 대해서도 싸잡아 말합니다. 가정교육을 못 받았을 것이다, 부모가 엉망이니까 네 친구도 보고 배운 게 그 모양인 거다 이런 식으로요. 제가 사귀는 친구는 거의 전부 다 마음에 안 든다고 하면서 친구를 똑바로 사귀라고 잔소리를 해요. 제가 친구를 변호하면 저를 멍청이로 몰아갑니다. 세상 물정을 모른다느니, 걔가 널 아주 잘 이용해먹겠다느니, 그런 놈한테 호구 노릇해줄 시간에 부모한테나 잘하라느니 하면서요. 어릴 때는 몰랐지만 크면서 그게 패턴이라는 걸 알고 친구 이야기를 아예 안 하게 됩니다.”
나르시시트는 대개 타인에 대해 부정적인 말을 즐겨한다. 타인에 대한 칭찬보다는 비난이 여러모로 본인의 위치를 올려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점수 매기고 평가질하는 재미에 중독되어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듯 자신의 위치를 까맣게 잊고 남의 흠만 커다랗게 확대 재생산하는 것은 나르시시스트들의 공통적인 주특기 중 하나이다. 그러나 이는 나르시시스의 타인에 대한 태도가 일관되거나 동일하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나르시시스트는 매우 기회주의적이고 계산적이기 때문에 철저히 강약약강의 공식을 따르며, 자신이 인식하거나 지정한 서열에 따라 주변인을 차등 대우한다. 본인이 절대 이길 수 없거나 무언가 이익을 가져다 줄 것 같은 사람에게는 정반대로 지나치게 비굴한 태도로 비위를 맞추려 하고, 비난 대상이 되는 사람들에게도 비난의 수위를 서열에 맞게 조절한다.
자식의 친구를 무조건 비난하고 비하하는 나르시시스트 부모의 태도는 기본적으로 자식에 대한 무시와 비하를 자식의 친구에게까지 확장하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잘 알지도 못하는 남의 집 자식을 깔아뭉개는 이유는 단 하나, 그 대상이 ‘자식의 친구’라는 사유 뿐이다. 나르시시스트 부모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존중하지 않는 자식이 사귀고 있는 친구이니, 그 친구 역시 별볼일 없는 존재라는 단순한 공식이 적용된다. 막말로 내 빵셔틀의 친구도 빵셔틀로 보이는 것과 같다. 실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알지도 못하고 중요하지도 않다.
영문도 모르고 부모의 이런 시선을 내면화하게 되는 자식은 자아 존중감에 심각한 손상을 입게 되고, 자신의 판단력과 사람을 사귀는 안목에 대해서도 자신감을 잃는다.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위의 사례에서처럼 말로는 ‘친구를 똑바로 가려 사귀라’고 말하겠지만, 이 말은 심리적 쾌감을 위해 자식의 친구를 비하하는 본인의 진심을 위장하려는 거짓말이기 때문에 자식에게 아무런 교육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 어떤 친구를 사귀라는 것인지 기준을 제시해 줄수도 없고, 사람을 판단하는 근거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르시시스트가 자식의 친구를 비난하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자식을 외부로부터 고립시키고 단절시키기 위해서이다. '착취자의 노하우 - 권력 없는 자가 권력을 만드는 방법' 포스트에서 설명했듯 나르시시스트에게 외부인의 존재는 매우 위협적이다. 외부인과의 접촉은 피착취자에게 착취자가 통제할 수 없는 독립적인 영역이 만들어진다는 뜻이다.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어릴 때부터 자식에게 무수한 거짓말로 자신의 세계관을 세뇌시키기 때문에 자식이 외부 세계를 접하는 것에 대해 심하게 경계한다. 자식이 외부 세계를 불신하고 부모만을 맹신할 수 있도록, 본인의 통제 영역 바깥에 있는 것은 무엇이든 위험하고 사악한 것으로 묘사하는 경향이 강하다. 사이비 종교 집단에서도 자주 사용되는 이런 고립 기법은 한국 부모에게는 보통 보수성과 가족애라는 허울을 쓰고 나타난다.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가족에게 딱히 잘해주지도 않으면서 말로는 가족애를 강조하고 가족 외에 아무도 믿지 말라는 식의 폐쇄적 태도를 강요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 이는 자식에 대한 애정 표현이 아니라, 자식에게 본인 외에 다른 사람이 영향을 끼칠 수 없도록 하려는 독점욕의 표현이다.
자식의 친구에 대한 비난과 비하가 자식의 모든 주변인을 대상으로 확산되는 것도 매우 흔한 현상이다. 자식의 연인, 배우자, 자식의 자식인 손자녀, 학교 선후배, 직장 동료, 상사와 부하 직원, 심지어 자식이 단골로 가는 상점의 주인, 자식이 좋아하는 연예인, 자식의 반려견/반려묘까지도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특히 자식의 연인/배우자에 대한 나르시시스트 부모의 적대적 반응은 비합리적인 것을 뛰어넘어 정신병적인 수준으로 치닫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연인과 배우자가 자식의 성년 및 독립을 상징하며 부모와의 분리를 가져올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대인관계이기 때문이다.
자식이 호감을 나타내는 외부인과 자식 사이를 이간질하기 위해 나르시시스트 부모가 가장 즐겨쓰는 화법 중 하나는 상대를 악당으로 묘사하며 ‘네가 속고/사기당하고/착취당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는 자식에게 비합리적인 의심과 공포를 심어주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많은 부분은 나르시시스트가 숨기지 못하는 투사 방어기제의 결과이기도 하다. 즉, 실제 자식을 속이고 착취하는 당사자는 본인인데 이를 남에게 투사함으로써 비난 대상을 외부로 옮기고 자신은 마음의 부담을 덜어내는 것이다. ‘X 눈에는 X만 보이는’ 현상의 전형적인 사례로, 본인이 자식을 그렇게 보고 있으니 남도 그런 시선으로만 볼 것이라는 전제가 자동으로 깔린 결과이다. 또한 자신만이 독점적으로 착취하고 싶은 대상을 나눠 가져야 한다는 분노와 질투의 표현이기도 하다.
꼭 자식과 연관된 경우가 아니더라도 나르시시스트 부모가 근거 없이 타인을 모함하고 지나친 추정을 동원할 때는 십중팔구 투사인 경우가 많다. 자기도 모르게 본인이 그런 존재라고 고해성사를 하는 것인데, 본인 나름으로는 남에게 그런 비난을 돌림으로써 본인은 안전해진다고 느껴지기 때문에 반사적으로 나오는 저차원의 방어기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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