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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Q - 나르시시스트 부모와 의견이 다를 때 설득하려면 어떻게 하나요? 본문
자식의 나이가 어느 정도 들고 독립이 가능해지면 나르시시스트 부모와는 연을 끊는 것이 최선이지만, 독립이 불가능해 어쩔 수 없이 부모와 동거해야 하는 시기라면 부모에게 최대한 피해를 덜 받도록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아직 부모에게 의존적인 아동/학생 시기에는 부모가 상당 부분 자식의 결정권을 대리로 행사하기 때문에 그만큼 부모로부터 받을 수 있는 피해도 큽니다. 원치 않는 결정, 옳지 않은 결정을 강요당하고 그로 인해 인생의 방향 자체가 영구적으로 뒤틀리는 경우도 매우 많습니다.
미성년 시기에 올바른 의사 결정 과정을 배우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아직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부족한 미성년자의 판단력은 주변 성인의 도움과 보완을 받아 신장되어야 합니다. 부모와 자식은 이 과정에서 단지 의견이 같다/다르다 여부를 확인하고 서로의 입장만 내세울 게 아니라, 자식의 인생에서 무엇이 최선인지에 대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 각자의 아이디어를 공유한다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양측이 ‘자식의 인생을 위해 무엇이 좋은지’를 결정하는 것을 공동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 핵심 목표만 잊지 않는다면 의견 충돌도 심각한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 목표에 대한 합의가 없으면 양쪽의 대화는 동상이몽 상황이 됩니다.
나르시시스트 부모와 자식 인생에서 중요한 여러 의사결정을 놓고 대화할 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나르시시스트 부모가 바로 이 목표를 공유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언제나 본인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지, 자식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본인은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거나 주장하지 않습니다. 자식이 아니라 부모 본인의 이기심을 최우선으로 삼는다고 공개적으로 인정하는 부모는 거의 없지만, 그런 부모는 실제로 존재합니다.
가족을 연좌제식으로 묶어 생각하는 한국인들은 흔히 부모와 자식의 이해관계가 자동으로 함께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자식과 부모 간의 이해관계 충돌을 인지하는 능력이 떨어지며, 나르시시스트는 이 문화적 맹점을 최대한 이용합니다. 실제로는 본인에게 좋은 것을 주장하면서 아니라는 것을 강변하기 위해 ‘다 널 위한 거다.’, ‘너도 나이 먹고 부모 되면 다 이해한다.’,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거지 설마 내가 너 못 되라고 이러겠냐.’, ‘부모 말 들어서 손해 볼 게 있겠냐.’ 등등의 화법을 주로 이용합니다. 정말로 무엇이 최선인지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이런 말을 하지 않습니다. 자기의 의견이 진짜 최선인지를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지 본인의 의도만 주구장창 강조하는 것은 매우 유아적이고 무책임한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직장 업무를 위한 회의에서 자신의 제시한 아이디어에 동료들이 선뜻 동의해주지 않고 의견 충돌이 일어나는 상황에서 ‘어쨌든 제가 회사 잘 되라고 한 말이지 못 되라고 한 말이겠어요?’라고 말하는 직원이 어떻게 보일지 생각해보면 쉬운 문제입니다.
나르시시스트 부모와 의견 충돌이 있는데 아직 독립한 상태가 아니라 나의 의견을 관철할 수 없고 부모의 의견을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이를 해결하는 것은 난이도가 매우 높은 문제이며, 솔직히 말해 해결이 불가능할 때도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나르시시스트 부모의 잘못된 진로 강요, 결혼/이혼 강요 등으로 인생에서 치명적이며 불가역적인 피해를 입습니다. 심지어 자식에게 물리적으로 위험한 일을 시켜 죽게 하거나 크게 다치게 하는 부모도 있습니다. 아무리 결과가 안 좋아도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끝까지 ‘다 잘 되라고 그런 거다’며 자신의 의도만을 강조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결국 내 인생의 결과를 오롯이 책임져야 하는 것은 나 자신입니다.
분명 한계가 있지만 의견 충돌 시 나르시시스트 부모의 의견을 꺾거나 변화시켜 내가 원하는 바를 성취할 가능성을 높여주는 몇 가지 트릭은 있습니다.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고집불통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지만 이 고집은 어디까지나 본인의 이익, 그리고 본인이 옳다는 자의식을 지키기 위한 것이므로 이를 높여줄 수 있는 다른 결정이 있다면 기꺼이 의견을 바꾸기도 합니다. 바꾼 의견이 정말로 더 좋은 옵션이라는 생각이 들면 번개보다 더 빠른 속도로 바꿀 뿐 아니라, 그 의견이 애초에 자신의 생각이었고 다른 생각은 한 적이 없는 척 하기까지 합니다. 일종의 아이디어 도둑질입니다. 그러나 어떻게든 나르시시스트 부모의 허락과 동의가 있어야만 중요한 일의 추진이 가능한 상황이라면 이렇게라도 해서 일단 본인의 의사 결정을 관철시키는 게 나을 때가 있습니다. 나르시시스트 부모를 설득해 의견을 바꾸도록 하는 트릭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부모 입장에서 직접적 이익 또는 손해가 될 수 있는 부분을 중심으로 이야기하기
나르시시스트 부모의 귀에 바로 꽂힐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화법입니다. 자식의 결정이나 의견에 동의해주면 무엇을 얻을 수 있겠다는 환상적인 기대를 심어주는 것입니다. 또는 자식의 의견을 꺾고 부모의 의견을 강요할 경우, 부모에게도 치명적인 불이익이 있을 것으로 우려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어차피 미래에 대한 것이니 근거는 필요하지도 않고 있을 수도 없습니다. 부모가 모를 만한 거짓이나 과장도 필요하다면 섞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진로를 부모가 반대할 때 ‘요즘 이쪽 전공자를 자식으로 둔 부모들이 제일 호강한다더라’고 하거나, 원치 않는 상대와의 결혼을 강요할 때 ‘그런 집안 사람이랑 결혼하면 나중에 백퍼 사돈이 책임질 일이 생긴다더라’와 같이 부모 입장에서의 이익/손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제가 이 전공을 너무 좋아해요’, ‘나 그 사람 너무 싫어요’처럼 본인을 강조해서는 안 됩니다. ‘제가 이걸 원하니 이거만 허락해주시면 다른 건 제가 양보할게요’ 식의 눈에 보이는 거래를 시도하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이렇게 하면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오히려 더 강한 불쾌감과 적대감을 나타냅니다. 나르시시스트는 상대의 자유의지에 반하는 일을 강요할 때 가장 큰 쾌감을 느끼며 페어 게임을 싫어하기 때문에 이런 접근은 모두 역효과를 불러옵니다. ‘나’는 삭제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나르시시스트 부모의 입장만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나의 의견이 오로지 부모의 이익만을 고려한 결정인 척 해야 합니다.
잠재적 이익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는 나르시시스트 부모에 대한 아부를 곁들이는 것도 좋습니다. 나르시시스트의 특권 의식과 나의 의견을 묶어서 한 편으로 만들면 나르시시스트는 흔쾌히 동의해줄 가능성이 높습니다. 나르시시스트는 누구보다도 본인 자신이 미래에 대한 공수표를 날리며 남에게 무언가를 뜯어내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분명 미래의 환상에 스스로도 취약한 부분이 있습니다. 나르시시스트 부모가 미래의 이익을 얻을 수 있을만큼 자격이 있고 대단한 존재이므로 자식인 내가 그에 맞는 대접을 해드리겠다, 그러려면 이 결정에 동의해주셔야 한다, 하늘도 훌륭한 부모를 알아보기 때문에 나를 도울 것이다 식의 판타지같은 접근이 좋습니다.
2. 내가 원하는 방향이 애초부터 부모의 의견이었거나 부모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처럼 이야기하기
내가 한 결정이 실제로는 부모와 무관하지만 어떻게든 부모와 연관되어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방법입니다. 어릴 때부터 받은 부모의 교육 때문에 내가 이런 결정을 하게 되었다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야기하거나, 부모처럼 훌륭하게 되고 싶어서 이런 결정을 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나르시시스트 부모로 하여금 자식의 의견이 반쯤은 본인 의견인 것처럼 소유 의식을 갖게 만듭니다. 무조건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야기해서 나르시시스트 부모가 해당 의견에 소유욕을 느끼게 해야 합니다.
또는 나르시시스트 부모가 예전에 비슷한 의견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고 (거짓)말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1번 방법과 마찬가지로 의견에서 ‘나’를 빼고 나르시시스트 부모를 관심의 초점으로 두는 것이 핵심입니다. 1번 방법이 ‘이 의견은 부모를 위한 것이다’라고 이익을 강조하는 것이라면 2번 방법은 ‘이 의견은 본래 부모의 것이다’라고 주인 의식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정말 자기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 나르시시스트는 당연히 해당 의견을 훨씬 소중하게 여기게 됩니다.
3. 권위에 호소하기
관철하고자 하는 의견이 부모의 것이거나 부모에게 이익이 된다고 주장하기 힘들 때에는 차선책으로 '나' 대신 내세울 의견의 주체로 외부 권위를 끌어오는 것이 좋습니다. 제3의 권위를 끌어오는 것에 열등감을 느낄 나르시시스트 부모도 적지 않으나, 적어도 자식 본인의 이익과 취향 등을 기준으로 내세울 때보다는 이쪽이 승산이 있습니다. 나르시시스트는 기본적으로 강약약강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에 자식의 필요나 욕구는 쉽게 무시해도 사회적 권위는 쉽사리 무시하거나 잊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노트북을 사려고 하는데 부모가 마뜩찮아하면 ‘내가 필요하다’고 말하는대신 ‘교수님이 무조건 사라고 했다’는 식으로 말하는 게 좋습니다. 자식 본인의 의견이라면 만만하니까 무조건 반대하거나 의심하고 볼 부모도 제3의 권위자가 한 말은 조금 다르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꼭 설득이 필요하지 않을 때에도 나르시시스트 부모에게는 늘 이런 식으로 본인의 욕망이나 의지는 삭제하고 제3자를 프록시로 사용해 말하는 게 좋습니다. 자식이 본인만의 자유의지로 하는 일은 나르시시스트 부모에게는 모두 부채로 계산되기 때문입니다.
4. 다른 사람들의 시선 및 사회의 트렌드 강조하기
3번과 비슷한 방식이지만 단일 권위자 대신 불특정 다수의 대중, 최신 유행, 남의 시선 등을 끼워넣는 방법입니다. 나르시시스트는 스스로의 이미지에 목숨을 걸기 때문에 남의 시선에 따라 거의 모든 것을 결정합니다. 따라서 ‘요새 이런 거 안 하면 바보래’ 식의 말에 굉장히 예민하게 반응합니다. 겉으로 아무리 줏대있는 척 해도 사회적 대세나 유행에 신경쓰지 않고는 못 견디는 게 나르시시스트입니다.
자식은 나르시시스트 부모의 이런 점을 이용해 본인이 원하는 바를 일종의 ‘거스르지 못할 사회적 대세’로 포장해 이야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반대하면 타인들에게 매우 나쁜 부모로 보일 지 모른다는 우려를 심어주는 것도 효과가 좋습니다. 나르시시스트는 본인이 좋은 부모인지 나쁜 부모인지에 대해 본질적으로는 관심이 없지만 ‘남들’에게 뒤쳐지는 부모로 ‘보이는’ 것에는 극도로 예민합니다. 본인이 사회 평균보다 뒤떨어지는 부모임을 자식이 깨닫게 되는 것에 대해서도 두려워합니다.
따라서 이런 접근법을 쓸 때에는 괜히 조심스럽게 간 보듯이 해서는 안 되고 오히려 뻔뻔하게 ‘당연히 해주실거라고 믿는다’와 같은 태도와 표정을 보이는 것이 좋습니다. 그 편이 나르시시스트에게 더 큰 압력을 줍니다. 조심스럽게 간 보듯이 하는 태도는 자식이 순전히 본인만 원하는 바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으로 보이지만, ‘당연히’ 여기는 태도는 사회적 평균과 대세가 그 뒤를 받치고 있다는 뜻으로 읽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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