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멘탈리스트
금수저와 나르시시스트 부모 본문
1. 금수저 부모도 나르시시스트일 수 있을까?
이 블로그의 2가지 메인 키워드는 '나르시시스트 부모'와 '흙수저'이다. 따라서 편의상 독이 되는 부모의 원형을 흙부모이자 동시에 나르시시스트인 부모로 설정한 경우가 많다. 나르시시스트는 무엇이든 자기중심적인 정신승리 해석을 하고 약점도 유리하게 이용하려 하기 때문에, 나르시시스트 흙부모 역시 사실상 자랑거리가 될 일이 아닌 자신의 실패, 빈곤, 낙오 등을 적어도 자식 앞에서만큼은 유리하게 활용하며 이 블로그에 등장하는 사례에도 그런 내용이 많다. 이런 구체적인 표현형에 집착하면 마치 흙부모와 나르시시즘 간에 필연적 인과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부모가 가난하니까 자식인 네가 돈 벌어서 줘야지.'와 같은 말을 금부모가 할 수는 없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금/흙 여부는 나르시시즘 자체와 인과관계가 없다. 당연히 금수저 부모도 나르시시스트일 수 있다는 말이다. 금은 금대로 흙은 흙대로 자기 계급을 이용하는 것이 나르시시즘이다. 흙수저 부모가 효 사상 강요나 동정심 유발을 통해 자식으로부터 원하는 바를 얻는다면, 금수저 부모는 보다 직접적으로 자신의 능력과 자원을 활용해 자식에게 원하는 바를 얻어낸다. 상황 조건이 다른 만큼, 금수저 부모와 흙수저 부모는 통제 방식 뿐 아니라 자식으로부터 원하는 바 역시 다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상당수의 흙수저 나르시시스트 부모가 자식에게 당장 다음달의 생활비를 직접 지원기를 원한다면, 금수저 나르시시스트 부모가 자식에게 그런 푼돈을 원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금수저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물질을 이용해 무형적인 것을 얻어내려는 경우가 더 많으며, 따라서 자식이 싫다고 거절해도 강제로 돈을 떠안기는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2. 금수저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흙수저 나르시시스트 부모보다 나은가?
거의 절대적으로 자식에게 돈을 빼앗아가려고 하는 흙수저 나르시시스트 부모만 겪다가 반대로 돈을 강제로 떠안기는 금수저 나르시시스트 부모를 보면 당장은 좀 더 나아 보일 수도 있다. 그래도 돈을 주고 자식을 통제하려 하니 나름 공정 거래 아니냐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르시시스트 사전에 공정 거래란 없다. 나르시시스트는 공정 거래를 혐오하며 따라서 자신이 무언가를 베풀었으면 반드시 그 이상의 것을 빼앗아가려 든다. 아무리 능력있는 금부모라 해도 나르시시스트인 부모가 돈을 떠안겼을 때는 자식이 이미 그 이상의 것을 빼앗긴 상태이거나, 조만간 내놓아야 하는 상황이 오게 돼 있다는 것이다. 금수저 나르시시스트 부모가 무엇을 주든 그것은 후에 더 큰 것을 빼앗아가기 위한 명분 빌드업일 뿐이다.
금수저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자식의 인생과 존재를 통째로 자신의 부분집합으로 만들어버린다. 외부의 기준과 가치관은 철저히 배제되며 자식의 우주에는 오로지 부모 외에는 존재하지 않게 된다. 흙수저 나르시시스트 부모도 마찬가지 아니냐고 물을 수 있는데, 흙수저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비록 동일한 것을 바란다 해도 능력과 자원이 딸리기 때문에 나이를 먹을수록 자식에 대한 실질적 통제력이 급격히 저하된다. 당근과 채찍을 골고루 사용하는 금수저 나르시시스트 부모에 비해 당근을 제시하기 힘든 흙수저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자식이 어릴 때는 공포 양육과 세뇌로 그럭저럭 자식을 통제할 수 있지만, 성인이 된 자식에게 같은 방식을 적용하는 것은 부작용이 심하다. 일단 먹고 사는 문제 자체를 흙수저 부모가 해결해줄 수 없기 때문에 흙수저 자식은 좋든 싫든 외부 세계로 나가서 최소한의 인정을 받아야만 하며, 이는 아무리 부모가 세뇌를 해도 외부의 기준과 가치관이 자식의 인생으로 파고들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흙수저 나르시시스트 부모가 성인이 된 자식에게까지 어릴 때 수준으로 자신의 사고만을 강요하면 자식과 사이가 나빠지거나 연이 끊어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이와 달리 대부분의 금수저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자식이 성인이 된 이후에도 상당한 통제력을 유지한다. 금수저들은 부모의 사회적 지위와 평판 때문에 함부로 부모의 권위에 도전하지 못함은 물론, 부모를 감히 의심하거나 싫어할 표면적 명분이 부족해 자신의 감정과 판단을 믿지 못하고 인지부조화에 빠지는 경향이 크다. 가업을 물려받거나 부모의 사회적 네트워크와 연결된 진로를 택했을 경우에는 사회적 정체성과 부모와의 관계가 직결되기 때문에 부모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한층 더 힘들다. 비록 의도는 저열했을지언정 물질적으로라도 부모 쪽에서 베푼 것이 많다면, 그만큼 자식의 실제적 의존도도 높아진다. 금수저가 철이 없어서가 아니다. 의존하고 싶어서 의존하는 의식적 의존성이 없어도, 어릴 때부터 인생에서 부모가 차지하는 물리적 지분이 높을수록 부모와 분리된 자신만의 정체성을 확보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또한 금수저 나르시시스트 부모 중에서 부모의 경제 사정이 넉넉한데도 (특정) 자식에게만 흙수저 수준으로 인색하고, 필요도 없으면서 자꾸 자식에게 한푼이라도 더 뜯어가려는 경우도 의외로 종종 존재한다. 이 때의 금수저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사실은 돈 자체를 원하는 게 아니라 다른 목적이나 효과를 위해 자식에게 돈을 뜯는 것이다. 이를테면 특정 스케이프고트 자식에게만 용돈을 받아내는 방식으로 자식 간 서열과 차별을 공고히 하거나, 돈을 통해 자식에게 부모 대접을 받는다는 기분을 느껴 자기 자존감을 채우려 하는 경우가 그렇다. 돈 자체는 필요 없지만 자신에게 돈을 바치도록 하여 미운 자식을 괴롭히거나, 집안의 역학관계를 원하는대로 조절하거나, 특권의식을 채우고 싶은 것이다. 이런 방식을 사용하는 나르시시스트 부모의 스케이프고트 자식은 금수저 집안 내에서 나홀로 흙수저처럼 자라게 된다. 남들이 봤을 때는 금수저 계급이지만 막상 속을 들여다보면 전혀 금수저로서의 이점을 누리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는 것으로, 어찌 보면 최악의 경우라고도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흙수저 나르시시스트 부모와 금수저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착취의 방식과 시스템 유지 방식이 달라 어느 쪽이 더 나쁘다고 말하기 힘들다. 착취의 심각도는 개별 사례마다 판단할 일이지, 금인지 흙인지에 따라 판단할 일은 아니다. 다만 일반적으로 보았을 때 흙수저 나르시시스트 부모의 경우 자녀의 제대로 된 성장에 필요한 최소한의 경제적 지원 결핍이 가장 위험한 부분이라면, 금수저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자녀가 부모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가 힘들다는 점이 가장 위험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3. 그런데 왜 이 블로그에서는 흙수저 나르시시스트 부모 사례를 더 많이 드는가?
한국적 상황 때문이다. 한국에서만큼은 흙수저 나르시시스트 부모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것이 (서양 선진국에 비해) 좀 더 중요하다. 이유는 한국이 선진국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20대 젊은이들의 부모 세대는 아직도 한국이 선진국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조부모 세대는 더 말할 것도 없이 '후진국' 한국에 더 익숙하기 때문에 그들의 마인드는 실제 경제력과 상관 없이 여전히 흙수저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이 말은 실제로는 중산층 이상의 경제력을 가졌는데도 자식에게 발현되는 나르시시즘 양상이 흙수저 부모와 별다를 것 없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때문에 자신의 부모가 경제력과 사회적 위치 면에서 평균 이상인데도, 자신의 가정이 이상하게 내적으로는 흙수저 가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이는 그렇게 느끼는 사람이 예민하거나 징징거리는 성격이라서가 아니라 반대로 부모가 여전히 예민하게 징징거리는 낙오자 정서 나르시시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질적으로는 이미 풍족해졌지만 과거의 전략을 못 버리고 남에게 늘 앓는 소리, 죽는 소리를 하며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는 것을 삶의 방식으로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양상은 급격하게 바뀌고 있기는 하다. 한국의 경제력과 소비력이 급상승한 것을 피부로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요즘에는 정반대로 명백한 흙수저 나르시시스트 부모조차 금수저 나르시시스트 부모의 '일단 강제로 먹여 명분을 확보한 후 이자 붙여서 빼앗아가기' 전략을 흉내내는 경우가 있다. 이들은 '나르시시스트 부모식 베풀기' 사례에 나온 것처럼, 기껏해야 싸구려 선물, 소액의 현금, 밑반찬, 그저 기본에 지나지 않는 매너 등을 베풀어 놓고 자신이 대단히 많은 것을 베푼 것처럼 착각을 하며, 그로 인해 자식이 자신의 손아귀에서 옴짝달싹 못 할 것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히곤 한다.
타인과 세상에 대한 이해도가 크게 뒤떨어지며 정신승리와 마법적 사고가 습관인 흙수저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자신의 과거 경험과 입장만을 기준으로 삼는다. 예를 들어 자식의 생일에 본인이 10만원을 주었다면 시대 보정도 없이 그 10만원이 만화 '검정 고무신' 시절의 가치로 계산되어 수백만원의 효과를 낼 것을 기대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2020년대에 10만원으로 자식을 매수해 금수저 나르시시스트 부모의 전략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1억으로 재벌 대접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착각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한국이 전체적으로 발전했고, 따라서 남들도 그만큼 성장했으며, 자식들은 자신과 다른 세대라는 사실은 무시한 채, 본인 혼자만 계급 상승을 이룬 듯 소액으로 '베푸는 자'의 대열에 끼겠다는 같잖은 계산법이다. 배를 곯으면서도 '덮어놓고 낳아 거지꼴'이던 국가가 반백년 만에 세계 10위권 경제 강국이자 출생률 최저 국가로 드라마틱하게 변모하면서 한 시대에 공존하게 된 양극단적 세계관의 격차를 이용한 사기라고 볼 수 있다.
'흙멘탈리스트 > 나르시시스트 부모' 카테고리의 다른 글
흙부모 나르시시즘의 특징 - 이중메시지 (7) | 2022.07.24 |
---|---|
나르시시스트 부모의 걱정을 빙자한 조종/저주 구별법 (12) | 2022.07.10 |
나르시시스트 부모식 베풀기 - 해석편 3 (9) | 2022.06.20 |
나르시시스트 부모식 베풀기 - 해석편 2 (2) | 2022.06.08 |
나르시시스트 부모식 베풀기 – 해석편 1 (13) | 2022.06.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