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멘탈리스트
나르시시스트 부모식 베풀기 - 해석편 3 본문
원본 사례: https://dirtmentalist.tistory.com/86
7. 모든 게 다 너 때문이야 – 보험 사기꾼같은 부당 청구
A씨의 어머니는 자신의 몸이 아픈 이유를 첫째에게 반찬을 해다 주느라 고생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것은 한국에서 너무 많이 쓰여서 지겹다는 말로도 모자랄 나르시시즘 전략이다. 한국의 거의 모든 부모는 무조건 몸이 아프며, 그것은 모두 자식 때문이다. 한국의 부모는 무조건 세상에서 가장 고생하고 세상에서 가장 골병 든 존재들이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이 명제가 사회에서 가장 잘 통용되는 상식으로 고정되어 있다.
물론 사람은 모두 노화와 더불어 신체 능력이 퇴화하지만, 문제는 정말로 죽을 날이 가까워진 80대 노인만 이러한 말을 하는 게 아니라 ‘부모’라는 타이틀만 달고 나면 30대건 40대건 덮어놓고 이런 주장을 한다는 것이다. 기성세대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징징거린다고 불평하지만 사실 어른 세대의 징징거림은 문제 인식조차 되지 않아 더 문제다. 현대 한국과 같은 선진국에서는 50/60대도 사회에서 한창 활동할 나이에 불과하며, 실제로 건강에 문제가 있는 경우도 많지 않다. 그런데 부모가 하도 징징거리니 특히 젊은 자식들 입장에서는 정말 부모의 나이가 모든 책임에서 벗어나 휴양을 해야 할 나이인가 혼동이 올 수 있다. 본인들이 그 나이가 되어보질 않았으니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자식 본인의 나이가 30대 중반에서 40대 초반(대략 어린 시절의 본인이 기억할 수 있는 부모의 가장 젊은 나이)을 넘어서기 시작하면 징징거리는 부모를 둔 자식들은 대부분 부모의 연기를 눈치채게 된다.
게다가 실제로 몸이 아프다고 해도 그 원인을 자식이라고 지명하는 것은 명백한 악의가 담긴 프레임이다. 건강이 나빠지는 것, 특히 노화 진행과 더불어 진행되는 신체 능력 저하에는 수만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는 동시에 특별한 원인이 없을 수도 있다. 수십 년간 살아오면서 누적된 건강 악화 요인 중 무엇이 결정적인지는 세계 최고의 명의가 와도 가려내는 게 불가능하다. 또한 영원히 사는 사람은 없으므로 노화가 자연스럽다는 것 역시 불가항력적 진실이다. 이런 복잡계적 상황에서 하필 자식 한 명을 콕 집어 ‘얘 때문에 내가 아파졌다/늙었다’고 말하는 것은 팩트가 아니라 본인의 해석이다. 원인으로 지목된 사람에게 죄책감과 책임을 뒤집어씌우기 위한 의식적 전략인 것이다.
8. 내 반찬 덕에 돈 모은 주제에 - 본인에 대한 과대 평가
사실 A씨에게 어머니의 반찬은 처치 곤란한 인생의 방해물이었다. 그럼에도 A씨는 어머니의 기분을 좋게 해드리기 위해 반찬이 맛있다고 거짓말을 하며 잘 받아먹는 척만 했을 뿐이다. 여기에서 ‘기분을 좋게’ 해드린다는 것은 곧 어머니의 자기 효능감과 자부심을 향상시켜드렸다는 뜻이다. 실제 A씨의 어머니는 요리도 잘 하지 못했고 타인을 배려할 줄도 몰랐기 때문에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A씨는 옷 가게의 마술 거울이나 소셜 미디어용 사진 보정 프로그램처럼 어머니가 원하는 자아상(자식에게 도움 되는 훌륭한 어머니)을 반영해주는 연기자 노릇을 한 것이다.
A씨의 어머니는 나르시시스트답게 마술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진짜 모습으로 착각했다. 그리고 자신이 정말로 A씨의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이 되었다고 확신하게 되자, 그것을 권력으로 이용하기 위해 본색을 드러낸 것이다. 몇 달 간 지속되었던 반찬 공세는 어디까지나 상대를 의존하게 만들어 자신의 영향력을 높이기 위한 빌드업이었을 뿐이다. A씨에게 자신의 반찬 공세가 먹힌다고 믿은 어머니는 심지어 A씨가 그 동안 저축한 돈까지도 자신의 반찬 덕에 가능했다는 말도 안 되는 과장을 일삼기까지 했다. 남의 성취나 능력은 항상 별 것 아닌 것처럼 비하하면서 본인의 노력은 손톱만한 것이라도 공룡만큼 부풀려 생색을 내는 전형적 나르시시즘 증상이다.
그런데 사실 A씨의 어머니는 A씨의 ‘착한 거짓말’에 속은 것에 불과했다. A씨는 어머니의 반찬에 진정으로 의존한 적이 없었으며, 오히려 자신이 생활하기에는 그게 없는 편이 나았다. ‘그래도 어머니니까 잘해드려야 한다’는 일말의 도덕적 의무 명제만 아니라면 A씨는 어머니에게 아쉬울 것이 없으며, 어머니가 절실하게 필요하지도 않다. 오히려 의존적인 쪽은 어머니이다. A씨의 어머니는 아쉬운 쪽이 자신이라는 것을 필사적으로 가리기 위해 A씨가 자신의 반찬을 먹고 싶어 안달복달했던 것처럼, 자신의 반찬 없이는 회사 생활도 못하고 돈도 못 모았을 것처럼 심한 과장을 했다. 지난 몇 달 간 A씨가 보여준 고분고분한 모습에 이러한 과장도 먹힐 것이라고 기대한 것이다.
이처럼 나르시시스트는 본인에 대해 비현실적으로 과대 평가를 하기 때문에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자식을 진심으로 배려하고 도우려는 부모였다면 A씨에게 반찬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 정도는 금방 파악했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 본인 자신도 다른 사람들에게 많이 속기도 한다. A씨와 같이 배려해주기 위한 사람들의 착한 거짓말을 진짜인 줄 알고 기고만장하는 경우도 많고, 나르시시스트의 심리적 약점을 파악한 이들에게 입에 발린 칭찬을 듣고 들떠서 사기를 당하는 경우도 많다.
9. 나는 되지만 너는 안 돼 – 내로남불과 특권의식
A씨의 어머니는 자식들에게는 여행이 사치라고 말해왔다. 당연히 어린/젊은 시절의 자식들을 데리고 여행을 간 적도, 자식들의 여행을 지원해준 적도 없으며 자식들이 직접 번 돈으로 여행을 가는 것조차도 비난하며 막았다. 그러면서 본인은 비싼 해외여행을 보내달라고 말하고 있다. 이유는 단 하나, ‘젋은 너희와 늙은 나는 다르다’는 것이다.
늙은 부모의 버킷 리스트가 앞으로 더 많은 시간이 남은 젊은이들의 욕구보다 더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이 정도의 우선순위 조정은 인간 사이의 기본 배려로서 필요하기도 하고 권장할 만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우선순위 조정이 될 일이지, ‘내가 가는 여행은 좋은 여행/네가 가는 여행은 나쁜 여행’의 이분법으로 완전히 상반되는 평가가 적용될 일이 아니다. A씨가 여행을 가겠다는 어머니의 욕망에 놀란 이유는 동생의 악의적 표현처럼 ‘나도 못 간 여행을 엄마가 가는 게 싫어서’가 아니라, 어머니가 여행을 본질적으로 사악한 것처럼 설명해왔기 때문이다. 여행 자체가 본질적이고 사치이고 낭비라 가치가 없는 것이라면, 이는 늙은 사람이라고 해서 예외가 적용될 일이 아니다. 늙어가는 사람의 다급한 버킷 리스트에 왜 그런 가치 없는 시간 낭비 행위가 들어가 있는가? 이는 결국 어머니의 말이 거짓이었다는 뜻이다.
A씨 어머니는 내로남불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거나, 자식에게 배려를 ‘부탁’하는 모양새 빠지는 모습을 취할 수 없었기 때문에 여행 자체가 나쁜 행위인 것처럼 도덕적 설교를 동원한 것이다.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이처럼 겉으로만 그럴싸한 이유를 대면서 자신이 자식에게는 해주지 않았던 일들을, 나중에 자식이 성인이 되고 나면 자신에게 일방적으로 베풀어주기만을 바라는 경우가 많다. 생일이 뭐 대수냐면서 자식의 생일을 챙기지 않던 부모가 자식이 자신의 생일은 화려하게 챙겨주길 바란다거나, 외식을 금기시하던 부모가 자식이 돈벌이를 시작하자 자꾸 외식을 하자고 졸라댄다든가 하는 경우가 대표적인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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