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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부모 나르시시즘의 특징 - 이중메시지

Dirt Mentalist 2022. 7. 24. 0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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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의 부모는 둘 다 좋은 대학을 나오지 못했으며 현재 전형적인 흙수저 가정을 이루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성공하지 못하고 가난한 이유를 '학벌주의 대한민국'의 탓으로 돌리며 자식인 A 앞에서 학벌주의 문화를 자주 비판한다.

 

"한국은 실력이나 인성이 아니라 학벌만 보는 곳이야. 아주 썩은 곳이지. 그래서 내가 요 모양 요 꼴로 사는 거다."

 

텔레비전에 좋은 학교를 나온 유명인이 출연하면 부모는 이런 사람들을 자주 욕한다.

 

"저런 것들 실력도 없는 주제에 다 학벌만 믿고 까부는 거야. 주입식으로 달달달 외우는 거 하려고 덤비면 누군 못하냐? 학창 시절에 시키는대로 달달달 외우는 거 좀 잘 했다고 평생 저렇게 호의호식하는 게 말이 돼?"

 

그런데 A의 부모는 A에게는 늘 좋은 대학을 가야 한다며 A의 성적에 집착한다. 부모의 앞뒤 안 맞는 태도에 논리적으로 혼란을 느낀 A가 항변을 하면 A의 부모는 '현실'과 '부모 마음'을 운운하며 이것이 모순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학벌 좋은 거 실력이랑 상관없다면서요? 학벌 보는 문화는 썩은 거라면서요?"

"그래서 한국이 그렇게 썩은 학벌주의 사회니까 어쩔 수 없이 학벌을 따야 된다고! 그래서 우린 억울하게 밀려났지만 너라도 잘 살라고 이렇게 교육시키는 거잖아! 왜 말귀를 못알아듣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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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저 부모와 비교했을 때 흙수저 부모의 나르시시즘이 가지는 큰 특징 중 하나는 자식 앞에서 자신의 낮은 사회적 지위와 능력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없어 발생하는 부모의 방어심리이다. 나르시시즘의 요체는 '세상의 중심이 나'라는 것인데 당연히 실제 사회적 능력이 있을수록 이 생각과 실제 현실 간 괴리를 숨기기 쉽고 반대로 사회적 능력이 없으면 이 괴리를 설명하기가 어려워진다. 흙수저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자식 앞에서 무소불위의 권위자이자 절대신으로서 권력을 휘두르려고 하지만 실제 자신의 객관적 지위가 이를 전혀 따라오지 못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궤변을 동원할 수밖에 없다.

 

앞뒤가 맞지 않는 궤변은 이를 수용하는 자식 입장에서는 완벽한 이중메시지가 된다. 학벌주의 사회를 욕하고 학벌이 좋은 사람들을 비난하면서 자식에게는 좋은 학교에 가라고 떠미는 위와 같은 사례는 비단 학벌에만 국한되어 발생하지 않는다. 본인은 돈 많은 사람들을 악마화하고 자본주의를 비난하면서 자식에게는 돈을 많이 벌어오도록 요구하고, 본인은 계산적인 사람들을 욕하면서 자식에게는 계산적인 사고방식을 심어주려고 하는 등 흙수저 부모의 나르시시즘은 세상의 거의 모든 것에 대해서 이중메시지를 전달한다. 과대망상적 자의식과 불일치하는 현실 속 자기 모습이, 자신의 지향점과 현실 정당화 논리를 충돌하게 만드는 것이다.

 

자식에게 가치관의 혼란을 심어주기 십상인 이런 이중성에 대해 흙부모들이 가장 많이 내세우는 변명은 바로 위의 사례에서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이 현실에서 잘 살기 바라는 부모 마음' 때문이라는 것이다. 비록 썩은 사회의 농간으로 인해 부모 본인은 억울하게 실패했을지라도, 자식만큼은 잘 살길 바라는 마음에서 본인과 다른 길을 걸으라고 권한다는 말이다. 자신이 실패해봤으니까 더더욱 자식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라는 마음에 그런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과연 그럴까?

 

자신이 실패해봤으니 자식은 같은 실수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그래서 본인을 타산지석 삼아 다른 선택을 해 성공했으면 좋겠다는 심리는 충분히 합리적이며 비난받을 만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정말로 그런 부모라면 위의 경우처럼 어린 자식을 혼란에 빠뜨리는 이중메시지를 전달하지 말아야 한다. 자식이 진짜 부모 본인의 인생을 타산지석으로 삼길 바란다면 먼저 자신의 선택이 '실수'였다는 걸 인정해야 가능하다. 공부는 꼭 필요한 것이니 열심히 하라고 하고, 열심히 하면 노력에 따른 보상을 받는 것은 좋은 것이라고 가르쳐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했다간 본인 인생이 쓰레기가 될 판이니 본인은 하나도 잘못하지 않았고 오직 남들이 나쁜놈이고 세상이 썩을 곳이라 주장하면서 자식에게는 세상의 가치관에 맞추라고 요구하면 이는 자식을 그 '썩을 세상'의 일부가 되라고 떠미는 것이나 다름없다.

 

평소에 그렇게 악감정을 가득 담아 세상과 남들을 저주해놓고는 자식에게 그 저주받을 '남들'처럼 살라고 하면 자식은 부모에게 정말 인정받기 위해 무슨 선택을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태에 빠진다. 부모가 말로는 공부 열심히 해서 성공하라고 하지만 평소에는 늘 그런 사람들을 증오하지 않는가? 부모에게 생존 여부를 절대적으로 의탁하고 있는 어린 자녀들에게 이런 이중메시지가 끼치는 해악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언어적으로 표현되는 부모의 메시지를 대놓고 거부할 수도 없지만, 부모가 진심으로 표현하는 감정적 메시지에도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에는 자신의 가난을 정당화하고 심지어 모에화하면서 자식에게 가난 극복의 부담을 떠넘기는 부모가 매우 많다. '가난해도 화목한 가정'을 지향하는 것은 나쁘다 할 수 없으나, 상당수의 한국 부모들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가난한 부모는 본인의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가난과 부유함을 각각 선과 악에 대입한 후 자식에게 이분법적 세계관을 설파한다. '가난해도 훌륭한 부모', '가난해도 화목한 가정'을 지향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가난하기 때문에 더 훌륭한 부모', '가난하기 때문에 더 화목한 가정'이라는 공식을 통해 거짓 권위를 만드는 데 힘을 쏟는다. 그래놓고 자식들에게는 가난에서 벗어나라고 하니 자식 입장에서는 부모가 자신을 '타락한 존재'로 만들려 한다는 혼란이 발생하고, 어쩌다 정말 가난에서 벗어나게 되면 오히려 죄인이 된 것 같은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이중메시지를 받으며 자라난 자식들은 노력과 성공은 좋은 것이라는 부모의 표면적 메시지를 받아들이더라도, 잠재의식 속에서 정반대의 모순된 지향을 함께 가지게 된다. 이상하게도 노력하면 할수록 이상하게 부모를 배반하는 것만 같고, 성공을 하면 어딘가 죄책감이 느껴지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스스로 불편해서 내려오고 싶어하는 욕구를 함께 느끼게 된다. 아무리 의식적으로 자신을 다잡으려 해도 흙부모와 같이 흙바닥에서 비참하게 뒹굴고 게으르게 자신의 인생을 망가뜨려야 주제와 분수에 맞는 것 같이 느껴지고 마음이 편해지는 관성이 형성된다. 이는 단순한 게으름이나 의지 박약으로 인한 노력 포기와 다르다. 익숙함과 습관, 특히 어릴 때 형성된 익숙함과 습관은 그만큼 강력하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실패가 아닌 '성공을 두려워하는' 흙멘탈이 되는 이유이다. 또한 흙부모 밑에서 성공한 개룡들이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바보같이 가족들에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마냥 '자발적' 착취를 당하고 사는 이유이기도 하다(ex. 장윤정, 박수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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