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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멘탈리스트/한국인의 행복과 불행

한국형 나르시시즘의 특징

Dirt Mentalist 2022. 6. 15. 0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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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시스즘의 번역어는 자기애성 성격장애이며, 나르시시즘이라는 용어는 물에 비친 자기 모습과 사랑에 빠져 익사한 그리스의 나르키소스 신화에 기인한다. 정의와 기원의 표면적 설정에만 집중할 경우에는 나르시시즘에 대한 많은 오해가 생길 있다. 이를테면 나르시시스트가 자기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든지, 자기의 외모에 자부심이 넘친다든지, 파티나 모임을 좋아하는 사교적 매력덩어리라든지, 이성에게 엄청난 인기를 얻는다든지 하는 것들이다.

 

하지만 나르시시스트의 겉모습과 스펙은 생각보다 매우 다양하다. 물론 천상천하 유아독존 타입의 인기 매력인들 중에서도 나르시시스트가 있겠지만, 인기도 없고 성격도 소심하며 누가 봐도 찐따 타입인 사람도 얼마든지 나르시시스트일 있다는 말이다. 대중매체에서는 나르시시스트/소시오패스/사이코패스 타입을 냉혹하고 부도덕하지만 뛰어난 능력과 매력을 지닌 무서운 캐릭터로 그리곤 하지만, 이러한 성격적 특질은 지능, 재능, 매력과 무관하다.

 

뿐만 아니라 나르시시즘은 자신이 소속된 문화권 환경 조건에 따라서도 카멜레온처럼 다른 모습을 발현시킨다. 나르시시스트는 진정한 자아가 일종의 반응 기계이기 때문에 자기가 처한 상황에 따라 옷을 갈아입듯 천차만별의 정체성을 연기한다. 한국에서는 누구보다도 한국적이고, 미국에서는 누구보다도 미국적인 모습을 보이려고 한다. 또한 실제보다 있어보이는 캐릭터를 연기해 사기를 치는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실제보다 없어보이는 전략을 통해 이익을 취하는 경우도 만만찮게 많다. 때문에 다른 국가에서 표면적으로 이루어진 나르시시스스트 관찰 분석 내용은 한국 상황과는 맞지 않을 있다. 다음은 주로 서양권 문화와 비교했을 한국형 나르시시즘에서 강하게 보이는 특징적인 표현형을 정리한 것이다.

 

1.       순교자/희생자/피해자를 자처해 동정심과 죄책감을 자극하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다

 

서양에서는 대개 나르시시스트라고 하면 자신감이 넘치고 뻔뻔하며 주변인들에게 안하무인처럼 구는 인물형을 떠올린다. 서양인들은 자신감에 대한 기본적 기대치가 동양인들보다 훨씬 높기 때문에 동양권에서는 건방지다고 욕을 먹을 법한 태도도 사회적으로 수용이 되는 경우가 많다. 자신감에 대한 사회적 역치가 높으므로 서양 문화에서는 외현적 나르시시즘을 발현시킬 있는 자유도가 한국 문화보다 높다. 따라서 서양의 나르시시스트들이 한국에 비해 외형적 오만함이 더 앞서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반면에 한국은 겸손함과 착함을 강조하는 문화이다 보니 나르시시즘도 이에 맞는 형태로 발달한다. 따라서 본인이 남들보다 능력있고 잘났다는 식의 어필보다는 남들보다 많이 희생했고 봉사했다는 식의 어필이 압도적으로 많이 사용된다. 한국에서는 주변이나 상대방에게 무리한 요구를 관철시키거나, 자신의 잘못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거나, 자신의 특별함을 주장하는 근거가 본인이 과거에 고생을 많이 하고 살았으니까식인 경우가 유달리 많다.

 

2.       유교 가부장제에 기초한 보수성이 강하며 취향과 태도가 과거지향적인 경우가 많다

 

서양 문화는 여러 면에서 한국보다 젊음을 선호하며, 사회 문화에서 젊은이들의 정서와 에너지가 차지하는 지분도 높다. 반면에 한국에서는 젊은 세대만의 문화라는 것이 생겨난지가 얼마 되지 않고, 사회의 기득권을 쥐고 있는 윗세대가 젊은이들의 문화를 경시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따라 서양의 나르시시즘은 자신의 나이듦을 거부하고 젊음을 추구하려는 방향으로 가는 경향이 훨씬 심하다. 서양의 나르시시스트들은 나이가 들수록 과도하게 운동과 성형에 집착하고 젊은 연인을 사귀려고 애를 ( 못해 자식의 친구들이나 연인에게까지 손을 뻗치), 스포츠카를 구입하거나 문신을 새기는 막말로 나이에 어울리는 주책을 부리는 경향이 한국 나르시시스트보다 심하게 나타난다. 물론 계산적으로 기존 체제를 악용하려는 본능이 매우 강한 나르시시즘 특성상 진정으로 새로운 문화의 흐름이나 변화를 지지하는 경우는 별로 없지만, 서양 나르시시스트들은 적어도 겉으로 봤을 현대 트렌드와 멀어진 고리타분한 존재로 보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반면에 한국의 나르시시즘은 과거와 전통의 틀을 있는 그대로 고집하고, 이러한 문화의 지지를 받으려는 경향을 훨씬 강하게 띤다. 한국의 전통적 가치관은 조직 윗자리 서열에 대한 존중/순종을 자동적으로 옳은 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한국 나르시시스트에게는 젊음보다 나이듦을 이용하는 것, 또는 나이든 사람의 비위를 맞춰 이익을 추구하는 쪽이 훨씬 효율적이다.

 

미국과 같은 사회에서는 문화적 얼리 어답터가 되거나 조직 내에서 튀는 존재 되었을 리스크를 상쇄할 만한 이익이 발생하는 경우가 한국보다는 많기 때문에 나르시시스트가 반드시 전통의 수호자가면만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아직도 전통적 체제의 지지를 받는 편이 노력 가성비 면에서 더 유리하므로, 한국형 나르시시스트들은 압도적으로 복고를 지향하는 편이다. 물론 그 어떤 철학에도 본질적인 관심이 없는 나르시시스트의 특성상, 남몰래 전통적 가치관에 크게 어긋나는 이중생활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한국형 나르시시스트의 절대다수는 적어도 일탈의 순간이 아닌 메인 페르소나만큼은 철저하게 한국 사회 통념이 지향하는 전통적 유교 질서에 맞춘 이미지메이킹을 지향한다.

 

3.       매력과 능력보다는 도덕과 도리를 내세우고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서양 나르시시스트가 주변인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고 자신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최고의 무기가 개인의 매력과 능력이라면, 한국 나르시시스트가 동일한 목적을 위해 사용하는 최고의 무기는 도덕/도리 등의 명분이다. 이런 차이 역시 문화권의 자신감 수용 역치의 차이에 기인하는 면이 크다. 서양의 나르시시스트는 매력과 능력을 바탕으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높이고 이를 직접 어필해 상대방을 종속시키려 들지만, 한국인 중에서 이런 방식을 자신있게 사용하는 사람들은 매우 적다. 한국에서는 자신의 능력과 매력으로 상대방을 설득하거나 속이는 것보다, 자신의 요구사항을 네가 지켜야 당연한 도리 포장해 절대적 도덕률을 강요하는 편이 훨씬 안전하고 효과도 좋다.

 

부분 때문에 서양의 나르시시즘 관련 /자료 등을 보면 한국형 나르시시스트에 대한 관찰 결과와는 차이가 나는 경우가 많다. 서양에서는 나르시시스트의 특징을 묘사할 나르시시스트는 매우 매력적(*참고로 사용되는 표현은 ‘charming’인데 이는 외모가 잘났다는 말이 아니라 태도가 사람의 호감을 산다는 뜻이다)’이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한국 상황에는 맞지 않는다(특히 나이든 나르시시스트일수록). 이는 한국형 나르시시즘의 자기 중심성이 개인적 매력보다는 사회적 도리와 고정관념을 가장 강력한 지렛대로 삼아 발휘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양 나르시시스트가 적어도 겉으로는 (또는 초기에는) 최대한 가꿔진 외모와 세련된 매너, 온갖 감언이설, 누가 들어도 혹할 만한 거짓 약속 등으로 사탕발림을 유지하려 애쓰는 반면에 한국형 나르시시스트는 그런 최소한의 치장을 위한 노력도 없이 그냥 막바로 극약을 발사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해도 사회적 도리라는 압박 카드를 쓰면 원하는 바를 얻을 있기 때문이다.

 

이는 나르시시스트에 대한 방어책 또한 문화권으로 달라져야 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서양인들이 나르시시스트의 비현실적이거나 과도한 이미지메이킹 사탕발림을 조심해야 한다면, 한국인들은 사회적 압박이나 도덕적 강요 등의 카드를 무엇보다 조심해야 한다. 서양인들이 나르시시스트가 내세우는 외형적 매력/능력(대부분 거짓) 속는 것이 문제인 반면에, 한국인들은 나르시시스트 개인에 대해서는 온갖 역겨움을 느끼고 전혀 좋아지도 않으면서 웬지 모르게 순응적이어야만 같은 무의식적 의무감과 주변의 압박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꾸역꾸역 억지로 참고 착취당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나르시시즘은 상황 조건에 따라 카멜레온처럼 전술을 바꾸기 때문에 이를 절대적 규칙으로 수는 없다. 본인의 위치가 남에게 도리 운운할 있는 부분이 전혀 없는 상황이라면 한국 나르시시스트도 남에게 자신의 매력과 능력을 강조하는 식으로 훨씬 연성화된 유혹 전략을 사용하며, 반대로 서양 나르시시스트도 자신이 사회적으로 까방권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되면 귀찮은 허례허식(?) 따위 생략하고 바로 직접 강요와 착취의 본론으로 진입한다.

 

4.       상대를 공격할 직접적 공격보다 궤변, 거짓말, 기만 등의 수동공격적 전략을 선호한다

 

나르시시스트는 기본적으로 모호한 소통 방식을 선호한다. 말을 명확하게 하면 나중에 발을 빼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확실하고 정확한 의사 표현을 놓으면 후에 원하는대로 상황에 따라 기회주의적으로 행동할 없기 때문에 나르시시스트는 고의적으로 명확한 표현을 피하고 말을 돌리거나 애매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 차후에 말은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등등의 말로 책임을 피하고 상황을 마음대로 해석하기 위한 초석이다.

 

경향은 한국 나르시시즘에서 유독 강하게 나타나는데, 이유는 한국 문화 자체가 수동성이 강해 궤변, 거짓말, 기만 등의 수동공격적 전략을 사용하기가 훨씬 용이하게 때문이다. 의견 차이나 가치관 충돌이 발생했을 서양 나르시시스트는 자신이 똑똑하고 논리적이므로 자신의 의견이 언제나 옳다는 식의 메시지를 보다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면이 있다. 반면 한국 나르시시스트는 상황을 이상하게 해석하거나 거짓말을 통해 상황의 본질을 변질시킴으로써 자신의 의사대로 상황을 조종하려 하는 경향이 강하다. 대놓고 상대방을 무시하며 잘난척을 하는 경우는 서양 나르시시스트 쪽이 많고, 말도 되는 궤변을 억지로 만들어 말이 되는 하는 경우는 한국 나르시시스트 쪽이 많다고 있다.

 

예를 들어 편애하는 자식에게만 재산을 몰아서 상속해주고 스케이프고트 자식에게는 하나도 주지 않으면서 마치 칭찬하듯 너는 혼자 야무지게 알아서 사니까 내가 워낙 걱정할 필요가 없다 말하는 것, 미워하는 자식에게 명백히 피해가 가는 행동을 해놓고 근거도 없이 '이게 다 널 위한 것'이라고 우기는 것 한국 나르시시즘의 종특이라 있다. 또한 본인이 무엇을 원하는지 분명하게 말하지 않고 자식이 자동으로 갖다 바친 모양새를 만들기 위해 자식에게 끝도 없이 사소한 트집을 잡거나 엉뚱한 일로 계속 신경질을 내면서 자식이 자기 마음을 알아맞힐 때까지 들들 볶아대는 유형 역시 한국에 압도적으로 많다.

 

실제로는 내가 이걸 원한다’, ‘ 의견이 언제나 옳다’, ‘ 생각에 순종해라라고 말하고 싶지만 이를 직접적으로 주장해서 관철시킬 자신이 없으니, 행동은 그렇게 하면서도 말로는 한사코 그런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막말로 말인지 막걸리인지  없는 궤변이 속출할 수밖에 없다. 서양 나르시시스트가 나쁜 짓을 저질러놓고도 뻔뻔하게 어쩔티비 시전해 주변인을 아연실색하게 만드는 경향이 강하다면, 한국 나르시시스트는 분명히 본인이 의도적으로 저지른 짓을 두고도 그게 그런 아니라는 둥 '(말로 설명 못 할) 깊은 뜻이 있다'는 둥 모호한 현실부정으로 버티며 논리 체계를 해괴하게 만들어버리는 경향이 강하다.

 

5.       방종이나 태만으로 인한 문제보다 과도한 통제로 인한 문제를 많이 일으킨다

 

개인주의적인 서양 문화권에서는 개인에게 타인과의 관계에서 그다지 많은 의무를 지우지 않는다. 반면에 한국 사회는 서양 문화권보다 관계지향적이기 때문에 타인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이벤트가 훨씬 많다. 본인 집안에 좋은 일이 하나 있으면 식구가 밖에서 자기 지인들에게 밥이라도 사라는 요구를 받는 공동체에서 요구하는 관계 유지의 조건이 매우 많고 까다로운 편이다.

 

서양의 나르시시스트는 개인주의 문화의 대세를 거스르지 않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오지랖을 부려 남을 통제하고 이용하는 대신, 자신의 책임과 관리 범위를 멋대로 줄임으로써 결과적으로 이를 남이 해결하게 만드는 방식의 착취를 선호한다. 서양인들은 본인이 잘난척하는 , 심지어 남을 공격적으로 놀리거나 모욕하는 것도 일종의 개인의 자유 영역으로 인지하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대하지만 남에게 이래라저래라 명령하거나 직접적으로 자유를 침해하는 것에는 굉장히 민감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집단주의를 선호하는 한국의 나르시시즘은 자신의 책임과 관리 범위를 근거없이 확장시켜 남의 영역을 침범하는 유형으로 발현된다. 본인이 나이가 많거나, 또는 모종의 이유로 도덕적으로 당당한 위치에 있다고 판단될 ,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설교와 훈장질을 퍼붓는 등의 경우가 그러한 예다. 한국 사회 구성원 다수는 개인의 생각이나 권리보다 중요한 공통적 도리 사회통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남에게 이래라저래라 설교하는 또한 당연시하는 경우가 많으며, 나르시시스트는 자신의 진짜 의도를 들키지 않기 위해 이러한 구조를 이용하게 된다.

 

물론 여기에서 범위를 줄이거나 확장한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본인이 유리할 때만 그렇다는 것이다. 서양 나르시시스트가 본인의 책임과 관리 범위를 줄인다는 것이 결과적으로 남의 일에 통제를 가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며, 마찬가지로 한국 나르시시스트가 자신의 책임과 관리 범위를 확장한다는 실제 많은 것을 진정으로 책임진다는 말도 아니다. 서양에서나 한국에서나 남을 이용하거나 깎아내려 상대적 이익을 추구한다는 나르시시스트의 목적은 동일하다. 다만 한국와 서양의 윤리 기준이 달라 무엇이 가장 선호되고 무엇이 가장 비난받는지에 대한 기준도 다르기 때문에, 나르시시즘도 이에 따라 가장 비난받는 방식으로 발현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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