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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거 없고 실체 없는 세뇌가 더 무서운 이유

Dirt Mentalist 2022. 8. 11.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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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은 누구나 자기가 꽤나 교양있고 합리적이라고 자부하며, 따라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은 근거 없고 실체 없는 명제를 믿지 않는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형식적으로 근거와 실체를 결여하고 있어 아예 증명 절차를 진행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명제들이야말로 대다수의 사람들을 평생 쥐고 흔드는 세뇌의 축인 경우가 많으며, 이를 벗어나는 것은 생각보다 매우 힘들다. 

 

형식적 근거와 실체를 갖춘 명제의 인식 절차는 이렇다.

 

명제: 지난 몇 년간 여러 지점에서 여러 망원경으로 천체를 관찰한 결과, 태양계에 행성이 하나 더 있다.

검증: 다른 사람들도 관찰하고 데이터 살펴봤는데, 그런 거 없었다. (반증 성공)

 

위와 같은 명제는 '관찰 결과'를 형식적 근거로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이들이 동일하게 관찰을 통해 이를 수긍하거나 또는 반박할 수 있다. 따라서 내용적으로 다소 틀린 주장을 하더라도 큰 문제가 되는 경우는 드물다. 논리적 형식을 따르고 있으므로 논쟁을 통해 검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형식적 근거와 실체가 없는 명제는 사정이 다르다.

명제: 내가 뭘 좀 아는 선지자한테 들었는데 태양계에 행성이 하나 더 있고, 현재 기술로는 발견이 불가능해서 다른 일반 사람들은 한 백 년 쯤 지나야 그 사실을 알게 될 거래.

검증: 불가능 (반증 실패)

 

듣기에 황당하니까 저런 말을 어떤 바보가 믿을까 싶은가? 그러나 실제로는 저런 주장이 사회적으로 훨씬 더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 명제의 출처는 '선지자'이며 이 명제에 대한 검증 시도는 '현재 기술로 발견이 불가능하다'는 말로 원천봉쇄되어있다. 대부분의 사기꾼과 사이비 종교가 이런 식의 주장을 바탕으로 자신들만의 이론을 만든다. 과학보다 음모론이 더 인기가 있는 이유도 동일하다. 이와 같은 명제는 논리 형식을 갖추지 않았기 때문에 증명도 반증도 불가능하다. 결정적 반증이 안 되니까 독버섯처럼 자꾸 퍼져도 박멸이 안 된다. 아무리 웃기게 들려도 사실상 논리적 반증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세뇌는 훨씬 더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개인에 대한 다음의 두 가지 평가를 비교해보자.

 

평가 1

"너는 일할 때 집중하는 버릇이 부족한 것이 큰 문제다. 1분마다 휴대폰을 확인하는 걸 보니 휴대폰 중독이 심각하다."

평가 2

"내가 사람 좀 볼 줄 아는데 너는 내가 딱 보니까 애저녁에 글러먹은 놈이다."

 

둘 다 부정적인 평가이지만 질적으로는 판이하게 다르다. 평가 1과 같은 명제는 명백히 확인과 측정이 가능한 구체적 근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런 명제 역시 반복을 통해 평가 대상자에게 '나는 휴대폰 중독자'와 같은 세뇌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나, 명백한 반박 또는 개선 가능성이 있으므로 세뇌 범위와 강도는 매우 제한적이다. 반박은 일할 때 휴대폰을 1분마다 확인하지 않았음을 증명하면 되는 일이며, 개선은 휴대폰 중독을 고치면 되는 일이다. 만에 하나 개선이 되었거나 사실이 아닌 경우에도 평가자가 계속 해당 명제를 주장한다면 이는 명백히 의도적 세뇌이지만, 이런 경우에는 평가자의 세뇌 의도가 숨길 수 없이 명백히 드러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세뇌의 효과는 그렇게 치명적이지 않다.

 

진짜 문제가 되는 것은 평가 2와 같은 명제이다. 이런 명제에는 구체적인 근거가 없고 실체도 없다. 이는 반박 가능성이 원천봉쇄되어 있으며, 상황 개선을 통해 벗어나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말만 놓고 보면 신랄한 평가를 하는 것 같지만, 애초에 정확하게 비판 지점을 명시하지 않았고 논리적 판단 과정도 생략해버렸기 때문에 듣는 사람으로서는 사실상 이 평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가 없다. 따라서 벗어날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책도 없다. 그냥 상대가 마음을 바꿔먹기 전에는 평가 대상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발화자가 무슨 뜻으로 한 말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세뇌 의도 역시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장기적/영구적이거나 강도 높은 세뇌는 주로 이런 명제의 형태를 띤다. 명제 자체의 뜻이 명확하지 않으니 해석을 뒤틀어 언제든 상황에 맞게 끼워맞추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명제 자체의 논리적 형식 결여로 인해 반박이 불가능한 것인데(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반박의 가치가 없는 것) 이런 명제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런 '형식적' 반박 불가능성을 주장의 타당함으로 인한 반박 불가능성으로 바꿔치기하는 야바위를 부리곤 한다. 

 

우리는 이런 비교를 통해 도움이 되는 피드백과 아닌 피드백을 구별할 수 있다. 당사자에게 도움이 되는 피드백은 최소한 1번과 같은 구체적이고 논리적인 형식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타인에게 2번과 같은 평가를 내리는 이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이니 최대한 피해야 한다. 이런 부정확하고 모호한 피드백은 대개 이기적이고 악의적인 목적의 궁예질이기 때문에, 팩트와 아무 상관이 없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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