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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멘탈리스트/한국인의 행복과 불행

오은영 박사식 상담의 한계

Dirt Mentalist 2022. 8. 8. 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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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영 박사식 상담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방송 등 매체를 통한 상담의 한계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오은영 박사급의 국민 멘토가 출연해 불특정 다수의 국민을 상대로 모든 사람의 비위를 맞추고 누구의 심기도 건드리거나 논란을 일으키지 않으려고 둥글게 둥글게 진행하는 상담은 진실을 진실대로 말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 예를 들어 오은영 박사는 방송에서 부모의 문제 행동을 세심하게 지적하면서도 언제나 하나의 전제만은 견고하게 유지한다. 바로 '모든 부모는 자식을 당연히 사랑한다'는 것이다.

 

이 전제는 사실이 아니다. 잘못된 전제를 깔고 있으면 문제 지적과 해결에도 한계가 있다. 사랑하지 않는, 심지어 싫어하고 미워하는 상대와 한 지붕 아래에서 수도 없는 이해관계 충돌을 겪으며 살아야 한다면 이것은 출구 없는 지옥이다. 부모와 자식 간이라 해도 다를 것이 없다. 감정 자체가 바뀌지 않는 한, 말투와 표정을 바꾼다거나 대화 시간을 갖는다거나 하는 온갖 관계 개선책은 피상적인 차원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세상에는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도 있다.

세상에는 심지어 자식을 미워하는 부모도 있다.

세상에는 자식을 자신의 도구로만 사용하는 부모도 있다.

 

이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현실 인식이 왜곡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곧 죽어도 모든 부모가 자식을 사랑한다고 전제하면 논의는 답정너 수준에서 맴돈다. 부모가 자식을 욕하고, 무시하고, 때리고, 학대하고, 진로를 방해하고, 저주하고, 장애인으로 만들고, 심지어 죽여도 사랑하는 것이라고, 심지어 사랑해서 그랬다고 갖다 붙이려면 논리력과 상황 판단력은 안드로메다로 보내야 한다. 또한 '사랑'에 대한 정의는 뒤틀릴대로 뒤틀려 악명 높은 스토커, 데이트폭력범, 가정폭력범, 강간범, 연쇄살인마들을 '찐사랑꾼'으로 임명해야 할 것이다.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에게 자식은 세상에서 가장 큰 짐이다. 이런 부모는 남몰래 잠재의식 속에서 사랑이 아니라 반대로 자식에 대한 증오를 키우는 경우도 많다. 자식에게 들어가는 노력과 비용을 아까워하고, 자식이 자신보다 젊고 잠재력이 있다는 사실에 위협과 질투를 느끼며, 사회가 부모에게 부여하는 책임은 최소로 축소하되 권한은 최대로 확대 해석하고 싶어한다. 

 

'옆집 아이라면 관심도 없을 텐데 그래도 먹여주고 재워주고 간섭하는 게 사랑한다는 뜻 아니겠냐' 

 

부모가 어린 자식을 먹이고 재우는 것은 부모의 사회적/법적 의무이다. 부모가 최소한의 의무를 수행해야 할 이유는 사랑 외에도 수만 가지가 있다. 정상적 사회 구성원으로 평범하게 살기 위해 결혼하고 자식을 낳았는데 어느날 갑자기 자식이 귀찮다고 죽였다면 감옥에 갈 것이요, 보육원에 보내버렸다면 주변에서 제대로 된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할 것이다. 지인이 '애들은 잘 있고?'와 같이 안부성 질문을 했는데 '밥값 아까워서 보육원에 보내버렸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부모가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가능성은 없다. 게다가 어린 자식 입 하나 덜었다고 부모의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레벨업되는 경우도 거의 없다. 부모로서의 최소한의 의무는 '안 해도 상관없는데 위대한 사랑 때문에 자발적으로 모든 것을 희생한 헌신'이 아니라, '싫어도 다른 방도가 없어 울며 겨자먹기로 할 수밖에 없는 일'에 가깝다.

 

다른 모든 경우와 마찬가지로, 부모의 사랑 역시 부모의 언행으로 증명되어야 믿을 수 있는 것이다. 언행만 보면 애정이 전혀 안 느껴지는데 그래도 '부모니까' 속으로는 자식을 사랑할 것이라는 생각은 그냥 근거 없는 망상이다. '매일 아침 출근길에 마주치는 이름 모를 누군가가 나에게 한 번도 말을 건 적은 없지만 아마도 나를 사랑할 것'이라는 망상과 다를 바가 없다. 생물학적인 부모라는 것은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대단한 의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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