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멘탈리스트
한국인의 과도한 통제욕 - 답정너가 많은 이유 본문
주변 환경을 통제하는 것은 인간 본연의 활동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 환경에서 살 수 없었던 인간의 통제 활동이 모인 결과가 바로 인류 문명이다. 자신과 주변 환경을 원하는 방향으로 이끄는 통제력은 인간을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핵심적인 속성이며, 이 통제력을 잘 훈련할수록 성취할 수 있는 일도 많아진다.
통제력을 발달시킬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답은 많은 사람들이 놓치는 부분에 있다. 바로 무엇을 통제할 수 있는지와 없는지를 구별하는 일이다. 이 인지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통제력은 발휘할 수 없다. 목적지가 없으면 아무데도 갈 수가 없는 것과 같다.
상당수의 한국인들은 자신이 통제력이 강하다고 생각한다. 사실을 말하자면 한국인들은 통제력이 강한 것이 아니고 통제욕이 강하다. 당연한 말이지만 통제욕만 강하다고 통제력이 우수하지는 않다. 또한 한국인들은 자신의 과도한 통제욕을 자신감, 자존심, 의지, 의욕, 야망 등으로 오해하거나 포장하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과도한 통제욕을 가진 사람들은 통제 대상이 딱히 정해져 있다기보다는 자신의 눈에 띄는 '모든 것'을 통제하려고 한다. 가족이나 친구의 진로 결정이나 연애사도 통제하려 하고, 자신이 던진 농담에 대한 지인들의 반응 하나하나조차 자기가 원하는 종류의 반응으로 통제하려 하며, 인터넷에서 본 전혀 모르는 사람의 정치적 의견도 통제하려 한다. 그리고 이게 잘 되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받는데, 이는 상대방과 캐삭빵을 벌여 승리하지 않고는 해결이 되지 않기 때문에 거의 해소가 불가능한 종류의 스트레스라 할 수 있다.
눈에 띄는 것 모두를 통제하려 하다가 그게 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고 현실을 수용하지도 못하니, 하루종일 눈 뜨는 순간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세상이 스트레스 지뢰밭이고 극딜 대상 투성이일 수밖에 없다. 해소도 안 되는 유형의 스트레스를 계속 받다 보니 살면 살수록, 즉 나이가 먹을수록 스트레스는 누적된다(이는 왜 한국 노인들이 늘 노여움에 가득 차 있는지를 설명해준다). 마치 개통령 강형욱이 말한 진돗개마냥 어제 스트레스로 인해 쌓인 심리적 옐로카드가 시간이 흐르고 다음날이 되어도 리셋되지 않는 상황이라 볼 수 있다. 문제는 한국인 대부분이 자신이 과도한 통제욕을 가진다는 사실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고, 인지한다 한들 그게 나쁜 거라고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고칠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과도한 통제욕으로 쉴새 없이 투덜거리면서 그러한 자신의 모습이 마치 부하 직원들에게 명령질을 해대는 기업 오너의 모습과 비슷하게 느껴지는지 자신의 통제욕을 모종의 알파 속성으로 받아들이기도 하는데 이는 완전한 착각이다. 과도한 통제욕은 실질적 통제력과 반비례하면 했지 절대로 비례하지 않으며, 실제의 상황 개선에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기업 오너는 실제로 회사와 직원을 거느리고 있는 것으므로 이런 오너가 비즈니스 상황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이런저런 방법을 쓰는 것은 실제적인 통제력이 맞다. 그러나 친구의 연애사부터 웬 모르는 사람의 생각까지 자기 입맛에 맞게 통제하겠다고 달려드는 것은 망상적 통제'욕'에 불과하다. 심하게 말하면 정신병원에서 자기가 왕이라며 주변에 이리저리 명령질을 해대고 의사에게 삿대질을 하는 정신병 환자와 본질적으로 다를 바가 없다.
물론 이는 개인의 탓만은 아니며, 한국인의 유전자 탓은 더더욱 아니다. 한국에 과도한 통제욕을 부리는 사람이 많은 이유는 개인 간 경계가 불문명하고 따라서 책임 소재도 불명확한 한국 문화의 특성이 건강하지 못한 통제욕을 지속적으로 자극하기 때문이다. 한 명이 잘못하면 특정 정체성을 공유하는 한 집단이 단체로 욕을 먹고, 한 가족의 이해관계는 모두가 공유한다는 걸 당연시하는 등 집단주의 문화가 만연한데다, 개인별 기준이 아닌 상대적 비교가 판단의 잣대가 되는 사회이다 보니 옆 사람 일이 단지 옆 사람 일만으로 끝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한국 네티즌 중에 유독 답정너가 많은 것도 그래서이다. 답을 속으로 정해놨으면 그냥 그렇게 생각하면 될 일이지 왜 이를 굳이 남의 입을 빌려 재생하고 싶어하는가? 원래부터 한국 사회가 개인의 결정과 책임이 온전히 개인에게 귀속되는 사회가 아니어서 그렇다.
집단주의적 문화 속에서 건강치 못한 적응 전략으로 발달하는 과도한 통제욕은 이기주의의 집단주의적 표현형이라고 볼 수 있다. 이기주의가 개인주의의 사촌이고 따라서 집단주의와 이기주의는 함께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이다. 이기주의는 개인주의/집단주의 중 그 어느 쪽에도 가깝지 않으며 다만 개인주의 사회와 집단주의 사회 버전의 이기주의가 따로 있다고 보는 편이 맞다. 타인의 의견이나 머릿속 생각까지도 자기가 원하는대로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과도한 통제욕은 집단주의 사회에서 더 심하게 나타나며, 개인주의 사회에서는 비교적 덜 나타나는 종류의 이기적 행태이다. 개인 간 분리가 당연시되는 개인주의 사회에서는 타인의 존재와 자유를 직접적 위협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나의 언행만을 통제할 수 있을 뿐, 남의 반응이나 결정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은 세계 어디에서나 같다. 때문에 아무리 한국 문화가 집단주의적 관점을 강요하더라도 자기 통제력이 미치는 범위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통제력이 미치는 한계를 알고, 무엇을 통제해야 하는지 대상을 잘 선별해야 통제력을 발휘할 수 있다. 모든 것을 다 통제하겠다는 말은 실상 아무것도 통제하지 않겠다는 말과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찾아 거기에만 집중하면서 실질적인 통제력을 발휘해야 과도하게 웃자라는 통제욕도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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