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멘탈리스트
나르시시스트 부모식 베풀기 – 사례편 본문
독립을 해서 부모와 따로 살고 있는 A씨는 요즘 어머니 때문에 골치다. 독립을 한 이후로 어머니가 자꾸 반찬을 준다는 빌미로 잦은 만남을 요구하거나 말도 없이 집으로 찾아오고, 집에 들이고 나면 온갖 살림살이에 간섭을 하거나 A씨의 물건을 뒤지며 정보를 캐내려 하는 등 A씨의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스트레스 유발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반찬을 챙겨준다는 어머니의 명분도 사실 어색한 것이, 막상 A씨의 어머니는 A씨가 어릴 때는 그다지 밥을 잘 챙겨주거나 살뜰히 건강을 신경써준 적이 없기 때문에 A씨에게는 일명 ‘집밥’이나 ‘엄마 손맛’ 등에 대한 추억이 별로 없다. 그러던 어머니가 갑자기 요즘 들어 ‘엄마 집밥을 못 먹어 불쌍한 우리 A’를 운운하며 반찬을 주겠다고 할 때마다 솔직히 A씨는 내색은 못하지만 이 모습이 트루먼 쇼처럼 기괴하게 보인다.
어머니의 이러한 ‘반찬 공격’은 A씨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A씨는 벌이가 꽤 좋은 편이고 원하면 직장에서 점심/저녁을 모두 먹을 수 있다. 건강을 잘 챙기고 운동에 관심이 많은 A씨는 혼자 있는 시간에도 간단하지만 영양 구성이 좋은 메뉴를 잘 챙겨먹는 편이기도 하다. 반면에 어머니는 원래 요리를 잘 하던 사람도 아니고 A씨의 입맛을 모르기 때문에 어머니의 반찬은 맛이 없다. 특별히 성의있게 준비한 반찬같이 보이지도 않는다. 때문에 어머니의 반찬은 처치 곤란이며, 받지 않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러나 아무리 필요없다고 말을 해도 어머니는 그 말을 전혀 듣지 않는다.
주변 친구들에게 이 어려움을 하소연하자 주변 친구들은 하나같이 A씨에게 어머니 심정을 이해하라고 말했다.
“어머니가 뭐라도 해주고 싶어하시는 건데 좀 받아라. 반찬 주시는 게 뭐가 문제냐? 반찬 만드시는 어머니가 힘들지, 네가 뭐가 힘들어?”
“아니, 그러니까 엄마도 힘드니까 안 했으면 좋겠어. 내가 필요없다는데 엄마를 괜히 고생시킬 필요가 없잖아?”
“네 마음도 알겠는데 해주고 싶은 마음을 표현하시게 좀 냅둬. 반찬 만드는 것도 고생이지만 자식한테 아무것도 못해준다는 생각이 더 힘드니까 그러시는 거 아냐? 조금이라도 도움 되고 너 잘 먹이고 싶어서 그러시는 거니까 그거 잘 받아먹는 것도 효도야. 어머니가 하실 수 있는 걸 하시게 하고 도움 잘 받았다고 해야 어머니 기분도 으쓱해지실 거 아냐.”
친구의 조언에 A씨는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다. 사실 어머니의 반찬은 A씨의 식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았고 오히려 반찬을 핑계로 이리저리 연락하고 간섭하는 어머니의 행동이 일상에 방해가 되었음에도, 어머니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드리는 것이 효도이며 옳은 일이라는 친구의 뜻깊은 조언대로 반찬을 잘 얻어먹는 태도를 보이려고 노력했다. 실제로는 먹지 않고 버리는 일이 태반이었지만 어머니를 말리는 대신, 반찬이 맛있었다고 칭찬도 해드리고 달마다 정기적으로 넉넉히 반찬값도 챙겨드렸다. 그러자 A씨의 어머니는 몇 달 간은 정말로 신이 난 듯했다. 어머니는 더 열심히 반찬을 해날랐고 기분도 좋아보였다. A씨는 힘들긴 했지만 효도를 한 듯한 기분에 뿌듯했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나자 어머니의 태도가 사뭇 달라지기 시작했다. 어느 시점부터 반찬 공세가 급격히 뜸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일주일에도 몇 번이고 A씨의 집으로 찾아오겠다고 약속을 잡으려 자주 연락을 하던 어머니가 전화를 하지 않자 A씨는 무슨 일이 있는가 싶어 어머니에게 먼저 연락을 취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문자에도, 톡에도 답장이 없었다. 아버지에게 어머니에 대해 물었지만 아버지는 어머니가 평상시와 다름없이 잘지낸다고 말할 뿐이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일주일 내내 A씨의 연락을 받지 않았고, 늘상 A씨의 집에서 만나기로 한 토요일에도 연락 없이 오지 않았다.
‘엄마, 무슨 일 있어요? 오늘 늘 오시는 날인데 연락이 없어서요.’
답 없이 일방적인 톡 대화문에 또 하나의 질문을 보낸 A씨는 톡을 보낸지 10분만에 동생의 연락을 받았다.
‘언니, 엄마가 뭐 언니 반찬해다주는 사람이야? 지금 엄마가 어떤 상태인지 알고나 이래? 그만 좀 부려먹지?’
깜짝 놀란 A씨는 다시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는 드디어 어머니가 전화를 받았다.
“엄마, 어디 편찮으세요? 연락이 없어서 걱정했어요.”
어머니는 매우 피곤한 목소리로 하소연을 했다.
“몸 이곳저곳 안 아픈 데가 없다. 너 뒷바라지하느라 내가 아주 뼛골 빠지게 일을 했잖니. 내가 사실 진짜 힘들었는데 너한테 말을 안 했을 뿐이지. 나 아니면 네가 어디 가서 밥이라도 제대로 먹겠니? 그 생각 하나로 아주 초인적으로 버티고 있었던 거야.”
죄책감을 느낀 A씨는 어머니에게 이제 반찬을 하실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엄마, 그럼 이젠 반찬 같은 거 신경쓰지 말고 무조건 엄마 건강만 챙기세요. 먹는 건 제가 알아서 먹을게요.”
그러나 어머니는 너무 힘들다고 말하면서도 계속 고집을 부렸다.
“그래도 너 반찬은 해다 줘야지. 내가 반찬을 안 해다 주면 네 생활이 어떻게 되겠니? 내가 쓰러져 죽는 한이 있어도 네 반찬만큼은 꼭 해줄 거야.”
“엄마, 그런 말이 어디 있어요? 엄마가 건강한 게 훨씬 중요하죠. 반찬 필요없어요.”
“그게 아니라니까. 나는 너만 잘 먹을 수 있다면 그거 하다 뼈가 부서져 죽어도 족한 그런 사람이야. 그 정도로 오직 너를 위하는 마음밖에 없는 게 엄마란다.”
“저 정말 혼자서도 잘 챙겨먹어요. 밥 꼭 잘 먹을게요. 제 걱정 안하셔도 돼요.”
그러나 A씨의 말에 어머니는 뜻밖에도 불쾌감을 드러내며 갑자기 급발진을 하기 시작했다.
“네가 뭘 알아서 잘한다고 그러니? 네가 알아서 잘하면 내가 이럴 필요도 없겠다. 어릴 때부터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으면서. 그리고 네가 진짜 엄마 힘든 걸 이해하는 애니? 그런 애가 이 정도밖에 안 되니?”
A씨는 왜 어머니가 화를 내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니, 나는 엄마가 힘드니까 이제 반찬 그만하시고 쉬시라는 건데…..”
“그래서, 그렇게 엄마 힘든 걸 이해하는 애가 그러고 있어? 엄마가 이렇게 너 뒷바라지만 하다가 죽도록 힘들게 됐으면 자식이 돼 갖고 어떻게 해야되는지 감이 안 와? 난 널 위해 뼈를 갈고 목숨을 바치는데 넌 뭐니?”
순간 죄인이 된 듯한 상황에 당황한 A씨는 어머니를 달래기 위해 애쓰기 시작했다.
“엄마, 알았어요. 너무 죄송해요. 엄마 은혜를 모르고 너무 무심했어요. 오늘 저녁에 내가 가서 기분 다 풀어드릴게요.”
그날 저녁 A씨는 본가에 들러 부모님에게 근사한 저녁을 대접하고 특별 용돈으로 금일봉도 드렸다. 그러고는 이제 더 이상 반찬을 하지 말고 당신 건강부터 챙기시라고 어머니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어머니는 흡족해하며 그러겠다고 답했다.
그날부터 어머니의 반찬 공세는 중단되었다. 사실 A씨는 비록 본인이 원하던 계기를 통해서는 아니었으나 어머니의 반찬을 더 이상 받지 않게 되어 일상생활이 훨씬 홀가분해졌다. 어머니를 고생시키지도 않고 본인도 비로소 꿈꾸던 독립생활이 완성되는 것 같아 생활의 만족도는 오히려 더 높아졌다. 그러던 어느날 A씨는 동생에게 뜻밖의 전화 연락을 받았다.
“언니, 엄마한테 좀 잘해드려. 연락도 드리고.”
“며칠에 한 번씩은 전화하는데.”
“예전보다 훨씬 뜸해졌잖아. 예전엔 일주일에 두 세 번씩 엄마랑 만났다며.”
“그거야 엄마가 반찬 주신다고 하니까 만난 거지. 이젠 엄마 건강 때문에 반찬 못하시니까.”
“그래서, 반찬 줄 땐 좋다고 만나더니 이젠 필요없으니까 안 만난다는 거야?”
“뭐? 그런 말이 아니잖아? 솔직히 용건이 없으니까 독립한 풀타임 직장인이 엄마를 그렇게 자주 만나게 되지는 않는 거 뿐이지.”
“반찬 얻어먹을 땐 시간이 남아돌더니 이제 갑자기 시간이 없어? 솔직히 엄마가 요새 언니한테 불만 많아. 반찬해줄 땐 언니가 자주 만나고 살갑게 굴고 용돈도 많이 줬는데 이젠 용돈도 깎았다며? 언니 너무 계산적인 거 아냐?”
“아니, 그건 엄마가 반찬 해주실 때 반찬 비용으로 돈을 드린 건데……”
“암튼, 엄마가 언니한테 단단히 실망하셨으니까 오늘 본가에 좀 들러.”
A씨는 뭔가 모를 억울함에 잔뜩 싸인 채 퇴근 후 본가에 방문했다. 그리고는 어머니의 행색을 보고 깜짝 놀랐다. 평소 외모와 화장에 꽤나 신경을 쓰는 편이었던 어머니는 고의적이다 싶을 정도로 행색이 엉망이었다. 어머니의 머리는 며칠을 감지 않은 것처럼 엉망이었으며, 옷차림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허름하고 구멍난 옷을 입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 어디 아프세요?”
어머니는 손사래를 치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에휴, 자식 새끼 건사하느라 다 늙어서 그렇지 뭐. 이제 언제 죽을지 모른다.”
그 말 한마디만 한 채, 어머니는 A씨에게서 시선을 돌려버렸다. A씨처럼 독립을 한 동생까지 모처럼 다같이 모여 가족이 저녁을 먹는 와중에도 어머니는 이상하리만치 A씨와 직접 대화를 하지 않으려 했다. A씨의 질문에는 대답을 하는 둥 마는 둥이었고, 눈을 마주치려 하지도 않았다. 식사를 마치자 어머니는 방으로 들어가버렸고 A씨의 동생이 A씨를 불러세우고는 어떤 문서를 꺼내 보여주었다. 여행일정표가 빼곡히 적힌 여행상품 안내서였다.
“이게 뭐야? 너 여행가려고?”
“아니, 엄마가 이거 가고 싶어 하셔.”
가격표를 본 A씨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해당 여행상품은 비즈니스석 항공권이 포함된 호화 장기 여행상품으로 A씨가 알고 있는 본인 집안의 경제적 수준에 전혀 맞지 않는 상품이었다. 더군다나 본인과 동생에게는 어린 시절부터 ‘여행은 사치이자 낭비’라며 강조하고 주변에 해외 여행을 가는 사람들을 욕하던 어머니였기 때문에 더욱 믿을 수가 없었다.
“엄마가 이걸 가신다고?”
“아니, 가시고 싶어하신다고. 돈이 없어 못 가는 거지.”
“엄마는 여행 싫어하시는 거 아니었어?”
“엄마가 여행을 싫어하나?”
“옛날부터 우리한텐 여행이 낭비라고 하지 않으셨어?”
“그래서? 지금 유치하게 언니가 여행 못갔다고 엄마도 못가야 된다는 거야? 젊은 우리랑 나이든 엄마가 같아? 돌아가시기 전에 하고 싶은 게 얼마나 많으시겠어? 남들도 다 하는 거 왜 우리 엄마만 못해?”
“아니, 그게 아니라……그래. 알겠어. 가시고 싶을 수도 있지. 그래도 이건 너무 비싼데.”
“언니 이 정도 돈은 있지 않아?”
“지금 이걸 나보고 다 내라는 거야?”
“왜? 돈 아까워?”
“이건 너무 비싸잖아! 내 몇 달치 월급인데!”
“언니 돈 많이 모았을 거 아냐. 엄마가 보니까 언니 적금 통장에 ****원이나 있다던데.”
“엄마가 그걸 어떻게 알아? 내 통장을 보신 거야? 너한테도 말하고?”
“가족끼리 알 수도 있지. 뭐 그런 게 비밀이야? 우리 몰래 돈 모아서 뭐하려고?”
“말도 안 하고 내 물건 뒤졌다는 게 기분나쁘잖아!”
“그러니까 언니가 돈을 얼마 모았는지 꼭 가족 모르게 해야 되는 이유라도 있어? 왜 이렇게 이기적이고 자기밖에 몰라? 가족끼리 나눌 줄 몰라?”
“그래, 나 이기적이다. 그리고 내가 돈을 얼마 모았건 말건 이건 너무 비싸. 안 돼. 좀 싼 걸로 알아보시라고 해.”
A씨는 화가 나서 집으로 돌아왔다. 늦은 밤, A씨는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저녁 내내 폐인같은 모습으로 A씨와 직접 대화를 꺼리던 어머니는 근래 들은 것 중 가장 우렁차고 강한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일방적으로 내뱉고는 전화를 끊었다.
“야, 이 XX년아. 얻어쳐먹을 땐 좋았지? 네가 그렇게 대단해? 너 그 돈 다 나한테 반찬 얻어먹은 덕에 모은 거잖아! 친척들이고 이웃들이고 니년 싸가지없다고 다 욕해도 엄마 입장에서는 못생겨서 연애도 못하는 딸년 불쌍해서 챙겨먹였더니 이제 와서 뭐가 어쩌고 저째? 내 반찬 먹고 싶어서 알랑방귀 오두방정을 다 떨 땐 언제고. 감히 내 반찬 솜씨만 이용해먹고 부모를 팽해? 너같은 거한테는 반찬을 해다 줄 이유가 없었어! 앞으로 국물도 없을 줄 알아!”
* 해석은 다음 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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