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멘탈리스트

'적당한 거리두기'나 '기본만 하기'가 해결책이 안 되는 이유 본문

흙멘탈리스트/나르시시스트 부모

'적당한 거리두기'나 '기본만 하기'가 해결책이 안 되는 이유

Dirt Mentalist 2022. 5. 28. 01:18
반응형

나르시시스트 부모 뿐 아니라 독이 되는 모든 종류의 대인관계에 대해 비교적 명확한 실체를 알게 되었지만, 아예 연을 끊기보다는 거리만 둔다거나 기본 도리만 한다는 식으로 타협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도 실체를 알고 의식적으로 거리를 두니 조금은 낫지 않겠느냐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 방법의 효과에 대해 매우 회의적이다. 더 나빠지지는 않겠지만, 효과가 있어도 미미한 수준에 불과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유는 흡연자나 마약/알코올 중독자의 재활 과정에서 중독자가 담배나 마약/술을 '적당히', '기본만' 하겠다고 다짐하는 것이 어불성설인 것과 같다. 관계 설정 자체가 건강하지 못한 대상과는 '적당히'가 되지 않는다. 중독자들은 담배, 술, 마약 자체를 완전히 끊어버림은 물론 그것에 대한 직/간접적인 트리거까지도 주변에서 완전히 몰아내도록 해야 한다. 독이 되는 대인관계 역시 마찬가지이다. 본인은 꽤나 의식적으로 밀어낸다고 다짐해도, 적당히 밀어내는 것 정도로는 의미가 없는 경우가 많다. 이는 특히 시간이 흐를수록 더 그렇다.

그 이유는 첫 번째, '적당한 거리'와 '기본 도리'가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정의가 불명확하기 때문이다. 불명확성은 나르시시스트와 사기꾼들이 가장 좋아하는 속성 중 하나이다. 명확한 규정이 있는 상황에서는 해석을 이리저리 비틀거나 회색지대를 만들어 부당 이익을 챙기기 어렵지만, 불명확성은 반대로 그러한 여지를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나르시시스트와 사기꾼들은 언제나 추상적 가치나 미래 가치 등을 내세워 사람들을 설득하려는 경향이 있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기본만 하겠다'라고 해봤자, 적당한 거리와 기본 도리에 대한 정의가 특정인의 입맛대로 바뀌면 의미가 없다.

더구나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원래부터 추상적 가치에 대한 분명한 상을 가지고 있지 않은 편이다. 나르시시스트와 오래 관계를 맺어온 사람이라면 세뇌를 통해 자기확신이 허약해져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본인이 나름대로 무언가에 대한 정의를 가지고 있다가도 누가 옆에서 이를 비난하거나 주변인들의 여론이 이를 인정해주지 않는 것 같으면 흔들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나르시시스트와의 관계를 지속하는 한, 나르시시스트는 주변인들까지 동원해 끊임없이 착취 대상자들에게 본인이 원하는 '기본'의 정의를 세뇌하려 들며, 이는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게 매우 효과가 좋다.

착취 피해자는 나르시시스트 및 그와 관련된 대인관계를 모조리 몰아내고 머리를 디톡스하지 않으면 세뇌에 취약해져 있는 본인의 인생 구조를 바꿀 수가 없다. 나르시시스트가 '주변인' 중 하나로 남는 한, 나에게 적용되는 사회적/문화적 압력도 동일하게 유지되기 때문에 노력을 한다 해도 늘 거꾸로 흐르는 물살을 역류해 헤엄치는 것처럼 힘겹고 노력의 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환경에 오래 노출되면 제아무리 강철같은 의지도 퇴색된다. 자유로운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사회적 압력에 굴하지 않겠다는 꿋꿋한 태도를 가지는 것도 좋지만, 그 이전에 쓸데없이 부당한 사회적 압력을 받아야 하는 곳에 본인을 구겨넣지 않는 것이 진짜 현명한 태도이다.

두 번째, 본인이 적당한 거리와 기본 도리에 대한 절대적 기준을 가지고 있고 이를 끝까지 유지한다 해도 나르시시스트가 여기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 갈등과 충돌을 피할 수 없다. 나르시시스트는 상대방으로부터 얻는 부당 이익을 당연시하기 때문에 쾌락 한계 효용의 법칙에 따라 점점 더 많은 부당 이익을 원하게 된다. 그래서 적당히 먹고 물러나는 법이 없으며, 상대방이 자기만의 기준을 가지고 있어 착취에 한계가 있다고 느끼면 견디지 못한다. 상대가 계속 자기만의 기준을 꿋꿋하게 유지한다면 결국은 외적으로 큰 충돌과 싸움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물론 자기만의 기준을 정해놓으면 눈에 띄는 정량적 자원인 돈과 같은 것은 당장 덜 빼앗길 수 있지만, 이것이 나르시시스트와의 안정적 관계 유지를 보장해주지는 못한다. 시간이 갈수록 크레센도가 될 게 뻔한 나르시시스트와의 갈등은 결국 언젠가 최종 해결책을 필요로 하게 마련이다.

세 번째, 무의미한 시간 및 의지 낭비이기 때문에 결국은 그 자체로 당사자에게 큰 손해이다. '그래도 기본은 해야 한다'는 말은 누가 했는가? 안 하면 판사가 사형 선고를 내릴 상황인가? 그렇다면 목숨 구제를 위해서 해야 할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왜 스스로에게 족쇄를 채우고 보상도 없는 챌린지를 하고 있는가? 상황에 대한 쓸데없는 순응성은 쓸데없는 고생으로 이어진다. 오직 이기적인 욕심 채우기에 골몰한 나르시시스트에게 진심도 아닌데 울며 겨자먹기로, 상대는 나를 배려도 하지 않는 비대칭적 권력 구조에서 한없이 베푸는 쪽이 되어, 온갖 잔머리와 트릭을 써가며, 시간과 노력과 자존감을 투자해 평생 그 관계를 유지보수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것은 나에게 이익이 되지 않을 뿐더러 도덕적으로도 전혀 좋은 선택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제대로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 상태에서도 '그냥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아서' 현 상태를 유지하려고 애쓴다. 인간은 습관의 동물이며 현재 상태가 최적이 아닌 경우에도 무의식적으로 현재 상태를 기준으로 삼는다. 나르시시스트와의 관계를 무의식적으로 유지하는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특히 가족 관계인 경우에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본인의 소속이 정해지기 때문에 이 무의식적 습관이 매우 강고하다. 무의식적 실수는 의식으로 훈련해 고치는 수밖에 없다. 어떻게든 현 상태에서 멀어지지 않으려고 노력하기 전에, 그러한 자기 모습이 제 발로 지옥에서 안 나오겠다고 버티는 미련한 모습은 아닌지부터 점검할 일이다.

반응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