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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시스트 부모 – 동일시하거나 적대시하거나

Dirt Mentalist 2022. 3. 30.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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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자꾸 방문을 닫니? 방문 닫고 하려고 그러니? 방문 열어놔라. 답답해 죽겠다.”

방인데 닫으면 돼요? 열어 놓으면 집중도 안되고 불편할 때가 있어요.”

그게 무슨 말이니? 이해가 된다. 이상한 하는 아니면 숨겨야 하는데? 너만 당당하면 닫을 이유 없다. 식구들이 잡아먹기라도 하니? 가족끼리 뭐가 불편하다는 거야?”

남이 계속 보고 있는 기분이 들면 안정감이 없다고요!”

가족이 남이니? 그럴거면 나한테 엄마라고 부르지도 말고, 당장 하숙비 . 이제 가족 없어. 멋대로 혼자 살면서 무슨 가족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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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을 종일 열어놓지 않으면 가족이 아니라는 엄마의 극단적인 반응은 한국형 나르시시스트 ()부모에게 매우 흔하게 보이는 특유의 양상이다. 방문을 닫는다는 행위는 자체로 아무런 부정적 의미를 띠지 않는 행동이며 당연히 종종 필요한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나르시시트 ()부모는 자녀가 방에 들어가 문을 닫는 행위에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기이할 만큼 많다. 이러한 가정 분위기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일지 모르겠으나 이는 사춘기 이후 자녀 및 성인 자녀에게까지도 예외없이 적용되는 경우가 많다.

 

엄마의 주장에 따르면 자식의 선택권은 방문을 항상 열고 자신의 모든 것을 공유하거나 아니면 가족과 연을 끊는 , 하나밖에 없다. 방문을 닫는다는 행위가 그토록 엄청난 것일까? 자식이 방문을 닫고 사제 폭탄이라도 만들어 세계를 멸망시키라도 한다는 것일까? 그래서 가족의 연을 걸고서라도 막지 않으면 절대로 되는 극딜 대상인 것일까?

 

이런 양극적/배타적 사고방식과 대인관계는 경계성 성격 장애의 시그니처로 알려져 있으나, 자기애성 성격 장애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난다(원래 클러스터 B 함께 묶이는 이들 성격 장애는 교집합이 매우 크다). 문제도 아닌 것에 얼토당토 않은 양극단적 구도를 세워 놓고 중간 지대나 타협의 여지가 없다는 듯이 말하는 이런 화법은 나르시시스트가 본인이 원하는 바를 100% 관철시키고 상대에게는 하나도 양보하지 않기 위해 사용하는 프레이밍 전략이다. 자기 프라이버시를 위해 방문을 닫고 싶다는 자식의 말이 가족과 연을 끊겠다 말과 동일하다는 엄마의 주장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말은 절대로 같지 않지만 다만 자식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관찰하겠다는 엄마의 욕망을 위해 같은 것이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물론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이를 나름대로 논리적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애를 쓴다. 자식의 과거 잘못을 들먹이며 자식을 믿을 없다거나, 자신은 그저 자식과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 그런다고 하거나 하는 식으로 나름의 이유를 댄다. 그러나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자식이 객관적으로 밖에 나가서 자랑할 만한 엘리트 모범생이라 해도, 신뢰를 져버린 없는 책임감 있는 성향이라 해도 마찬가지로 행동한다.

 

나르시시스트 부모가 자식의 방문 닫기를 싫어하는 이유는 자식이 믿을 인간이어서도, 자식을 사랑해서 계속 보고 싶어서도 아니다. 그들이 느끼는 불쾌감의 진짜 원인은 본인이 자식의 개별성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르시시스트는 자녀와 자신 사이의 거리를 조금도 인정하지 않는다. ‘어느 정도의 거리’, ‘적당한 거리’, ‘최소한의 거리’, ‘건강한 거리라는 자체가 성립 불가능이다. 왜냐하면 정도와 무관하게 거리가 조금이라도 존재하는 순간 상대가 개별 개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되고, 이는 나르시시스트 부모가 생각하기에 자식 정의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나르시시스트에게 개별성을 가진 모든 주체는 악당 또는 외적에 불과하다.

 

때문에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자신이 있는 한으로는 최대한 자식의 일거수일투족을 파악하고 통제하려고 한다. 본인이 자식의 모든 것을 알고 있고 통제하고 있으며,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때문에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자식이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 자기 마음대로 무언가를 결정하고 추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무리 사소한 결정도 자신의 허락 없이 내린 것이면 트집을 잡기 일쑤이고, 아무리 옳은 결정도 자신이 시켜서 것이 아니면 진심으로 좋아하지 않는다. 성과에 자신이 소유권 또는 지분을 주장하거나 숟가락을 올릴 있다는 확신이 생기지 않는 말이다.

 

한국인들은 원래 문화적으로 개인 거리두기가 되지 않는 편이지만, 문화적 약점이 나르시시스트 부모에게는 훨씬 심화되어 나타난다. 서양에서도 나르시시스트는 개인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으로 유명한데, 한국과의 차이점이라면 서양 문화에서는 개인 거리를 무시하는 것이 죄악시되기 때문에 서양 나르시시스트들은 매우 조심스럽고 교활하게 빌드업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한국에서는 원래 개인 경계 무시가 용인되는 경우가 워낙 많기 때문에 한국의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서양에 비해 훨씬 편하게 사회적 검열의 리스크 없이 자녀의 영역을 침범할 있다.

 

대인관계에서 건강한 거리를 유지할 안다는 것은 나와 타인의 차이 분리 수용한다는 뜻이다. 타인은 나와 다른 존재라는 , 따라서 타인은 나와 감정이나 이해관계가 같지 않을 있다는 , 타인은 나와 자동으로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지 않는다는 , 그리고 모든 것은 타인의 부도덕이나 죄악이 아니라 그저 사람의 존재 인한 것이며 나는 그에 대해 아무런 권한도, 의무도 없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물론 거꾸로 타인 역시 나의 존재 대해 아무런 권한이나 의무가 없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정답 없는 문제에서 의견 차이가 발생했는데 차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못하고 정답을 자꾸 가려내려 하거나,

자신의 이해관계만이 절대적인 선이라 생각해 나와 이해관계가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나와 다른 선택을 사람을 보면 마음이 불안해져 근거없는 비난 저주를 퍼붓거나 반대로 자책하며 자신의 결정을 쉽사리 뒤집는 등의 태도는

모두 개인 거리를 인지하지 못하는 태도이다.

나는 나이고 남은 남이라는 단순한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자식이 한사코 이런 나와 타인 간의 분리 차이 인식하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자식을 자신의 수족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자식의 의식적 독립/분리는 물론이거니와, 그냥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차이까지도 거부한다.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차이는 자식과 자신이 별개의 존재라는 증명이 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진로나 결혼 문제 중대 사안에 대한 적극적 의견 차이에만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식의 의지로도 어쩔 도리가 없는 신체 감각의 차이, 체질 차이, 취향 차이, 외모 차이까지도 부정하거나, 불쾌해하거나, 비난하는 경우가 많다.

 

나르시시스트 부모에게 부모 본인의 의견, 감정, 욕망은 자식의 의견, 감정, 욕망과 동일시된다. 부모가 좋아하는 것은 자식도 자동으로 좋아해야 하고, 부모가 원하는 것은 자식도 자동으로 원해야 한다( 때문에 부모의 나르시시즘은 근친 성폭력 발생 또는 정신적 근친상간 관계의 원인이 된다). 부모와 동기화되지 않는 행위는 탈선으로 간주된다. 나르시시스트 부모와의 관계에서 자식 개인의 의사, 자식 개인의 자유의지는 내용과 무관하게 존재 자체가 문제시된다.

 

나르시시스트를 부모로 자식은 이런 개인 간의 자연스러운 차이 분리 인정받지 못하고 자라기 때문에 자신의 경계에 대한 인식이 모호해질 위험성이 크다. 말은 스스로의 정체성과 프라이버시를 지킬 있는 능력의 저하를 의미한다. 때문에 타인의 비난이나 후려치기에 매우 취약해지며, 사회에서 만난 다른 착취형 인간에게 세뇌, 착취를 당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나르시시스트 부모와 동일한 프레이밍으로 접근하는 나한테 빌려주면 친구도 아니야’, ‘ 사랑한다면 취향에 맞춰줘야 하는 아니야?’, ‘네가 진짜 열심히 하려고 한다면 모든 희생할 알아야지.’ 같은 말을 들었을 , 자신의 진정성과 정당성을 증명하겠다는 일념으로 온갖 부당한 책임을 떠안게 가능성이 높다.

 

그건 생각이고.”

나르시시스트 부모를 자식들이 만트라처럼 상기해야 말이다. 타인이 뭐라고 생각하든 당신은 그것을 따를 의무도, 반증할 의무도 없다. 너는 너이고 나는 나다. 그것 하나면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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