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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투자를 어렵게 만드는 습관 – 비관주의

Dirt Mentalist 2022. 3. 21. 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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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투자의 정석이자 불패의 방법론으로 여겨지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우량주 또는 지수에 장기 투자하라는 것이다. 건강한 방식의 투자로 전문가들이 권장하기도 하거니와 결과도 좋다는 것이 검증되었기 때문에 거의 모든 투자자들이 적어도 처음에는 반드시 이렇게 하리라 다짐하며 투자를 시작한다. 그러다가  상당수가 여러가지 이유로 도중에 항로에서 이탈한다. 그리고 대부분 항로 이탈은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진다.

 

투자의 정석에서 벗어나게 되는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하나가 비관주의이다. 장기 투자를 하라는 것은 결국 시장이 우상향이라는 믿음을 가지라는 뜻이다. 비관주의에 빠졌다는 것은 근본 믿음이 흔들린다는 뜻이기 때문에 당연히 장기 투자가 불가능해진다.

 

이러한 비관주의는 시간이 갈수록 세상이 점점 나빠지기만 것이라는 식의 세상에 대한 비관일 수도 있고, 인생이 턱이 없다는 식의 자기 자신에 대한 비관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은 어차피 자신이 바라보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게 되므로 가지는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가지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처럼 서로가 서로를 지탱하며 부추긴다.

 

일반적으로 흙수저일수록, 그리고 자신감/자존감 등이 낮을수록 비관주의에 취약하다. 성공의 경험이 일천하고 실패의 경험이 많을수록 그러한 개인 통계치의 필터를 통해 세상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없는 미래를 예측해보라고 했을 사람이 무의식적으로 하게 되는 예측은 대개 자신의 과거 기억을 반영한 투영일 수밖에 없다. 누구에게나 익숙하지 않고 경험해보지 않은 것을 굳게 믿기란 매우 힘든 일이다.

 

게다가 그러한 믿음 유지에 기회비용(투자금) 있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쉽지 않다. 과거의 패배주의에 의존하면 최소한 현재 눈에 보이는 시장 가치라도 건질 있는 상황이지만, 성공에 대한 막연한 믿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잠재적 추가 손실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경제적 사정이 넉넉하지 않을수록 상대적 기회비용은 더더욱 커지므로, 낙관적 믿음을 유지하기 위한 고통 역시 배가된다.

 

때문에 장기 투자를 실제로 가능하게 하려면 자기도 모르게 패배주의적 내러티브를 생성하는 감정적 습관부터 버려야 한다. 자본주의의 원리, 동안의 주식 시장 패턴, 복리 계산의 결과를 보면 정석적인 장기 투자가 불패인지 이성적으로 쉽게 판단할 있다. 문제는 여러 이성적 근거를 보고도 믿어지지 않는 ‘왠 모를불안감이다. 불안감은 어떤 다른 합당한 근거가 아니라 개인의 감정 습관에 기인한 것이다. 어떤 일을 기억이 없거나, 장기간에 걸쳐 무언가를 진행해 적이 없거나, 그러한 사례를 주변에서 거의 적이 없거나, 주변인들이 본인의 미래에 대해 악담을 적이 많거나 하는 경우에 이런 밑도 끝도 없는 비관주의적 감정 습관이 생기기 쉽다.

 

특히 흙수저들은 부모가 자신의 실패를 정당화하기 위해 심어놓은 거짓 내러티브 때문에 이러한 비관주의적 감정 습관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 부모가 돈벌이의 힘듦, 인생의 어려움 등을 강조하며 자신이 특별한고난의 인생을 살아왔다고 주장하는 경우, 대부분 그러한 서술은 과장이거나 거짓이다. 자신의 잘못으로 무언가가 잘못되었거나 또는 남들도 겪는 수준의 일반적인 불운이었음에도 이를 대단한 사회 부조리로 설명하거나 탓으로 돌리는 부모는 자식에게 인생에 대한 쓸데없는 공포를 심어준다.

 

이런 쓸데없는 공포는 세상에 대한 잘못된 정보이기도 하다. 시도때도 없이 불경기라고 주장하는 부모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다면 경기 사이클을 제대로 파악할 없으며, 아무리 열심히 해도 일이 되는 경우가 없었다는 부모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다면 어떤 일에도 희망을 가지거나 낙관을 수가 없다. 부모가 이러한 거짓 정보로 자신을 포장할 경우, 아이러니하게도 부모의 말을 잘 듣는 '착한' 자식일수록 더 삐뚤어진 세계관을 가지게 되고 결국 세상사를 제대로 파악하고 헤쳐나갈 능력을 잃게 된다.

 

비관주의는 사실 생존에 백해무익한 심리이다. 어차피 결과가 나쁘기만 거라고 생각한다면 노력을 이유가 없고, 극단적으로 보면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답이 없는 질문이라고 생각하면 문제풀이에 대한 의욕이 사라지는 것과 같다. 사람은 희망을 가질 있어야 답을 적극적으로 찾게 된다. 아무리 쉽고 뻔한 답도 의욕이 완전히 사라진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비관주의에 빠지는 이유는  이것이 실질적 생존에는 기여하지 않음에도 자의식을 방어하는 데는 가장 쉽고 효율적인 방식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실질적 생존 확률을 높이거나 실질적 발전을 이루어내려면, 결과에 따라 실망을 하든 말든 끊임없이 이런 저런 시도와 행동을 계속 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생존이나 발전이 아니라, 실망에서 비롯된 불쾌감을 필사적으로 피해다니는 것이 목표라면 어떤 행동도 아예 하지 않는 편이 낫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결과가 나올 일이 없으니 실망할 일도 없기 때문이다.

 

장기 투자를 어렵게 만드는 비관주의 역시 다르지 않다. 많은 이들이 분명 초심은 그렇지 않았는데 손해 액수가 찍힌 계좌를 성적표마냥 보고 있으면 그 순간의 불쾌감을 이기지 못하고 이를 근시안적인 방법으로 해소하려 든다.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현재의 계좌 상태가 자신의 영구적인 실패를 예고한다는 비합리적인 두려움을 믿게 된다. 그래서 처음의 결정을 철회한다. 그리곤 이딴 다시는 한다며 투자를 아예 때려치우거나, 상처받은 자의식을 지금 당장 회복시켜줄 도박성 단기 거래에 뛰어들게 된다.

 

자신의 인생에 대해 장기적인 낙관을 하지 못하는 것의 대가는 크다. 내일을 믿지 않는 사람의 판단력은 파괴적이고 소모적인 방향을 향하 때문이다. 미래에 대해 희망을 갖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자신에게 해가 되는 결정을 내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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