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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 경제 관념의 문제 – 현실 부정

Dirt Mentalist 2021. 9. 28. 0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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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 경제 관념 진단 테스트의 항목 중 해당 항목: 10-13, 25-28, 30-31

 

 

한국의 국평오에게 자본주의 사회, 한국 현대 사회 등에 대해 의견을 말해보라고 하면 십중팔구 매우 이데올로기적이고 감정적인 답변이 나온다. 현대 사회는 지상 최악의 지옥이며,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가장 끔찍한 체제라는 듯 악담과 저주가 쏟아지기 일쑤다. 진짜 능력있고 성실하고 도덕적인 (본인같은) 월급쟁이나 영세 자영업자들이 부자가 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천민 자본주의 사회, 돈만이 최고라 인간성이 말살되고 도덕적 가치관이 무너진 세속적 사회, 앞으로 갈수록 더욱 나빠지기만 하는 희망 없는 사회 등등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한 극단적 성토는 다분히 정치적인 의도를 가진다. 좌파 정치적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무언가를 가리거나 호도하려는 사심 가득한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현대 한국의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격앙된 비난은 수많은 팩트와 맞는 말이 포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진실이 최종적으로는 거짓말에 이용되는 경우가 많다. 어떤 거짓말이냐고? 나의 불행은 오직 자본주의 게임에서 승리하지 못했기 때문이고, 내가 이 게임에서 승리하지 못한 것은 전적으로 부당한 이유 때문이며, 따라서 대다수 인류의 패배와 불행은 본질적으로 돈과 자본주의로 인한 것이라는 거짓말이다.

 

정말로 천민 자본주의가 만악의 근원인 걸까? 더럽고 세속적인 돈이 아니라 다른 가치를 최상의 교환 수단으로 삼으면 좀 나아질까? 종교가 최고인 사회는 어떨까? 특정 종교에 대한 신앙심에 따라 식량 배급에 차등을 두면 사람들이 좀 더 우아해지고 신성해질까? 한국인들이 그토록 오매불망 중요하다고 외치는 도오덕은 어떨까? 도덕심을 양적으로 판단해 그 기준에 따라 사회적 위치가 정해진다면? 도덕성에 대한 평판을 점수화해 그에 따라 의식주를 제한한다면 도덕이 바로 서고 따뜻한 사회가 될까?

 

대다수 인류의 패배와 불행은 자본주의 때문이 아니다. 최저시급을 받으며 일한다 하더라도 현대 한국인의 삶의 질은 유교적 질서와 도리가 가장 중요한 사회적 화폐로 통하던 조선시대 노예에 비해 절대적으로 우월하다. 경제적 면에서만이 아니다. 도덕무새가 가득했던 조선시대라고 해서 그 사회가 진정 현대사회보다 더 도덕적이고 인간적이었다고 주장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 시대의 기득권층에게는 유교적 도덕이 돈과 서비스의 움직임을 조종하던 상위 화폐였을 뿐이다.

 

자본주의에서 돈이 열심히 일한 댓가따위와 무관하게 게임 머니처럼 움직인다고 한탄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상 인간의 문명 사회는 언제나 중심적 가치를 게임 머니처럼 물신화시켜왔다. 많은 종교적 사회에서 성직자나 신학자들은 최고의 계급을 차지했으며, 유교 조선 사회에서 열녀가 죽음으로 증명한 도덕심은 가문의 물질적 영광으로 돌아왔다. 현대 사회가 돈으로 도덕적 이미지까지 살 수 있는 시대라면 전근대 시대는 도덕적 이미지로 돈을 사던 시대였을 뿐이다.

 

무엇을 중시하든 그것을 물신화하여 본질과 무관한 게임 머니로 만드는 것은 인간 자체의 결함 때문이지 돈의 결함 때문이 아니다. 수많은 종교 전쟁과 마녀 사냥을 거친 후, 인류는 그렇게 모든 걸 물신화해버릴 거면 차라리 아무 이데올로기를 내재하지 않은 정량 기준인 화폐로 숫자 놀음이나 하는 게 그나마 덜 폭력적이고 덜 기만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실제로 자본주의 체제는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최초로 수많은 인간의 거의 절대다수가 생물학적으로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는 사회를 가능하게 만들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최신판 사회 체제로 군림하고 있는 것이다.

 

이 모든 역사적 과정을 무시하고 온 우주 만악의 근원이 자본주의라고 생각하는 것은 현실 부정이다. 현실 부정 상태에서는 세상을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다. 현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문제 해결을 시도해야 하는데 현실 부정 상태로 빠져들면 문제의 원인과 양상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개인적 문제든 사회구조적 문제든 마찬가지이다. 인간 사회와 인간성의 본질적 결함, 다양한 인간 군상의 다양한 정보 한계와 잘못된 적응 방식, 개인적 문제와 관계 등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갈등 등이 어우러져 발생하는 괴로움을 그저 이데올로기적인 체제 비판으로 모두 설명해내겠다고 한다면 이는 다분히 의도적인 정치질이다.

 

때로는 자본주의 체제 비판보다 좀 더 로컬한 현실 정치적인 거짓말이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특별히 문제가 심한 후진국이라서, 또는 한국의 특정 정권이 나라를 완전히 망쳐놔서 우리 집안이 망했으며 나의 인생에서 희망이 사라졌다는 식의 주장이다. 근래에는 많이 줄어들었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엄연히 OECD 가입국인 한국을 선진국이 아니라 헬조선이라 주장하고, 존재하지도 않는 유토피아적 해외 선진국을 들먹거리며 한국을 성토하던 사람들이 많았다. 한국을 비판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나, 대개 이런 비판의 목적이 결국은 본인 상황에 대한 변명 또는 본인 감정 본위의 살풀이라는 게 문제다.

 

물론 경우에 따라 본인의 성향이나 상황이 한국이라는 나라, 또는 특정 정권의 정책과 맞지 않을 수 있고 이런 상황이 있다면 이 또한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한국이라는 나라의 본질적인 문제와 개인적 상황을 어떻게든 드라마틱한 필연으로 엮어보겠다는 태도가 습관이 되면 인생에서 큰 문제가 된다. 무엇이든 사적으로 보고 자기 중심적으로 해석하려는 유아적 사고는 상황 판단력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는 본인의 개인적 상황을 거대한 사회적 상황과 연동시키면 본인의 책임을 피할 수 있고, 수십만에서 수백만에 이르는 우군을 손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본인의 열악한 상황이 이명박근혜 정권 때문이라고 주장하면 인터넷에서나마 손쉽게 깨시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고, 반대로 문재인 정권 때문이라고 주장하면 우파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 굵직한 아젠다나 큰 세력과 연동될수록 심리적 우군도 많아지니 어떻게든 가장 크고 본질적인 사회 문제와 본인을 연결시키려고 한다. 그럴수록 본인이 처한 상황이나 문제의 디테일을 놓치게 되고, 직접 팔 걷어부치고 살아내야 할 본인 인생은 버려둔 채 본인이 어쩔 수 없는 거대한 사회를 가리키며 이를 본인의 행동 부재에 대한 변명으로 사용하게 된다. 방어 심리가 점점 더 큰 거짓말을 낳는 것이다.

 

특히나 흙수저 집안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본인과 본인의 가정이 겪어 온 인생의 문제를 섣불리 자본주의 체제나 한국 경제 구조의 모순 따위로 연결시키기 전에 보다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다른 원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냉정하게 말해 현재 젊은이들의 부모 세대 이상(대개 50대 이상)의 경우, 자식들에게 부담을 얹어줄 정도의 빈곤은 자본주의의 모순 이전에 개인적 결함으로 인해 발생하고 유지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우리집은 언제나 가난했어요. 아버지는 계속 직장을 다니셨고, 온 식구가 나쁜 짓 하지 않고 근면 성실하게 절약하며 살았지만 집 한 칸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하고 먹고 싶은 것도 제대로 먹을 수 없었어요. 어머니는 세상이 잘못된 거라 하셨죠. 아버지가 비록 의사 이런 건 아니지만 성실하게 꾸준히 직장을 다니시는데 세상이 이런 대접을 해주면 안 되는 거라 하셨습니다. 아버지 정도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도 굉장히 힘든 거라고 늘 강조하셨어요. 아버지의 월급은 세월이 지나도 늘지 않았고 제 계산으로는 최저시급도 되지 않았어요. 저는 잘못된 세상에 분개하는 동시에 아주 어린 시절부터 삶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게 되었어요. 푼돈에 전전긍긍하다 파김치가 되곤 하는 어머니를 보면서 훌륭한 우리 부모님도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세상이니 나 역시 그 이상은 되지 못하겠구나 싶었어요. 그러다 성인이 되어 아버지가 실은 수십년 간 월급의 상당 부분을 밖에서 혼자 취미와 유흥에 써버리고 집에 가져온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사회 생활에 무지했던 어머니와 아직 어려 세상 물정을 모를 수밖에 없었던 자식들만 그걸 모르고 최저시급도 주지 않는 회사와 한국 사회만 욕하고 있었던 거죠. 정말 허탈했습니다. 실제로 성인이 되어 직접 돈을 벌어보니 세상 살이가 힘든 건 사실이지만 제가 어릴 때 부모님을 보며 생각했던 그런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어릴 때 스스로를 이미 제한하던 습관이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저는 아버지보다 스펙도 좋고 능력도 있지만 제가 아버지의 실제 월급 이상을 벌 수 있다는 생각이 매우 어색합니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아버지가 속여온 월급 이 저와 우리 가족 수준의 상한선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았고, 그런 아버지를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았고, 그런 우리 가정이 정상인 줄 알고 살았으니까요. 그래서 세상을 비관하고 스스로를 과소평가하게 됩니다.”

 

이 사례가 극단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생각보다 흙수저 집안에서는 이처럼 황당하리만치 잘못된 정보를 곧이곧대로 믿고 엉뚱한 대상을 향해 분노를 키우거나 지레 희망을 포기해버리는 경우가 매우 많다. 흙수저들이 이런 잘못된 정보를 믿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자본주의 게임에서 스스로 패배했다고 생각하거나 자식에 대한 책임을 지기 싫어하는 부모가 자신의 실체를 들키지 않고 체면치레를 하려고 거짓말을 하기 때문이다. 얄궂게도 부모가 이런 거짓말쟁이인 경우에는 자녀가 고지식하고 착실한 유형일수록 더 큰 피해를 본다.

 

건강한 가정에서 자란 이들은 믿기 힘들겠지만 서울대를 합격해 놓고도 가정 경제에 보탬이 되기 위해 포기했다거나, 연락이 끊긴 친척 또는 실체도 확인할 수 없는 먼 친척이 집안 재산을 부당하게 가로채 우리가 지금 가난한 것이라고 하거나, 형사 범죄를 저질러 옥살이를 해 놓고 독재정권 때문에 전과자가 됐다는 등의 뻔뻔한 주장도 흙수저 집안 부모들이 상당히 흔하게 애용하는 날조 플롯들 중 하나이다. 이런 거짓말을 수십 년 하고 살다보면 부모들 스스로도 이를 믿게 되며 현실 부정의 매트릭스에서 빠져나오기는 점점 더 힘들어진다. 자식 역시 이러한 거짓말을 빨리 알아채고 전혀 다른 세계관을 체득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부모가 심어놓은 현실 부정의 습관을 그대로 답습하게 된다.

 

따라서 흙수저들은 본인의 가정과 부모를 객관적으로 보고 뭔가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자기도 모르게 세뇌당한 집안의 거짓말이 있는지를 파악하고 여기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경제적 빈곤에 건강하지 못한 의식 세계까지 겸비한 가정에는 반드시 수많은 거짓말이 오가게 되어 있으며, 이는 가정 파탄의 원인이자 결과이기도 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악순환을 통해 더욱 심화된다. 부모가 거짓말로 구성한 매트릭스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면 흙수저들은 평생 존재하지도 않는 대상을 미워하고, 존재하지도 않는 목표를 향해 뛰는 헛소동의 인생을 살게 된다.

 

위의 사례처럼 의식적인 거짓말까지는 아니라도, 충동적이고 감정적인 현실 부정이나 무지함으로 인해 결과적인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경우는 더더욱 많다. 흙수저 경제 관념 진단 테스트의 11번 항목인 한국은 십 년이 넘는 기간 동안 불경기가 지속되어 모두 경제적으로 고통받고 있다.”를 살펴보자. 한국 서민들 중 상당수, 특히 영세 자영업자들은 실제로 이런 주장을 곧잘 하는데 워낙 피해자 코스프레가 국민 전략이다 보니 불경기라고 불평하는 것이 버릇이 되어 별 뜻 없이 내뱉는 말일 수 있겠지만, 실제 이 말을 계속 하고 또 주변에서 듣다 보면 이를 진실로 믿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실상 팩트는 정반대이다. 팬데믹 이전의 10년간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경제는 활발한 경기를 자랑하고 있었고, 한국의 상대적인 위상 또한 지난 10년간 올라가면 올라갔지 내려간 적은 없었다. ‘전 세계가 호황이고 한국 위상이 올라간들 나랑 무슨 상관이냐!’는 생각이 든다면 왜 그 와중에 나는 힘들어지는가를 찬찬히 분석할 일이지 내가 힘드니 전 세계가 불황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힘든 것에 더해 스스로를 바보로 만들겠다는 선택에 불과하다.

 

이런 선택을 하는 이유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스스로의 패배를 확정하고 나의 잘못과 열등함을 만천하에 공인하는 것이라고 오해하기 때문이다. 사회는 전반적으로 호황인데 나만 힘들다고 하면 내가 뒤쳐지거나 뭘 잘못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특히나 열등감이 심할수록 이를 절대로 용납할 수 없기 때문에 더욱 더 가열차게 현실을 부정하려 든다.

 

하지만 딱히 크게 잘못한 것이 없어도 때로 힘든 상황은 찾아올 수 있다. 또한 잘못을 했다 해도 그 여파가 영원히 갈 이유도 없다. 대기업이 늘 시장 조사를 하고 연구 개발에 투자하고 미래에 유망한 사업 분야를 발굴하려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대기업도 선택을 잘못해 경쟁사에 밀리기도 하고 부도 직전에 몰리기도 하며, 그러다 회생하기도 한다. 한 번의 잘못이나 운 없음을 받아들이는 것만으로 영원한 패배자가 되는 것처럼 열등감과 공포심에 사로잡혀 나는 절대로 잘못 살지 않았다!’고 부르짖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이런 방어 심리는 당사자를 구원하지 못하며 오히려 더욱 사지로 몰아간다.

 

힘든 상황을 사적으로 받아들이는 대신 일종의 궂은 날씨처럼 담백하게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관대하게 볼 수 있게 되면 현실 부정도 더 이상 필요가 없게 된다. 비대한 자아의 필터를 제거하고 세상을 투명하게 볼 수 있게 되면 그제서야 비로소 문제의 원인도 보이고 희망도 보인다. 현실 인정은 모든 문제 해결의 첫 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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