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멘탈리스트
흙수저들이 흙탈을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 본문
사람은 누구나 어릴 때는 부모와의 강한 일체감을 느끼다가 사춘기 이후가 되면 비로소 부모와 자동으로 연동되지 않는 본인만의 정체성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이 시기에 도달한 흙수저들이 더 나은 인생을 추구한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본인의 부모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보호자 없이 생존 자체가 불가능한 인간 어린이는 자신의 보호자를 절대적 존재로 인식한다. 어린아이들이 부모를 절대적 존재로 여기는 것은 동물적인 생존 본능상 당연하며 불가피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어릴 때는 지구가 네모나다는 거짓말조차 부모의 입에서 나오면 무조건 믿었던 아이들은 커갈수록 외부 레퍼런스를 이용해 부모의 언행을 평가하게 되며, 이는 성인의 판단력을 갖추기 위한 성장의 당연한 절차이다. 어린 시절 부모에게 권위를 느꼈던 기억이 정상적인 성장을 통해 진화를 하지 못하고 자식의 성인기에도 여전히 절대적 그림자를 드리운다면, 이는 자식의 판단력을 심각하게 훼손시킨다. 최악의 경우에는 영화 <사이코>의 노먼 베이츠처럼 부모의 비정상적 가치관을 체화시켜 사회화에 완벽하게 실패할 수도 있다.
부모가 비정상일수록, 사회적 위치가 낮을수록, 사회에서 소외된 정도가 높을수록 부모를 객관화하는 것은 더더욱 중요해진다. 부모의 잘못되거나 편향된 정보, 세계관, 가치관을 물려받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부모를 객관화하는 것은 금수저보다 흙수저에게 더 절실한 문제이다. 흙부모들은 또래들 사이의 경쟁에서 뒤쳐진 존재들이기 때문에 흙수저들이 부모에 대해 객관화 없이 무조건 의지, 신뢰, 순종의 마음만을 가질 경우, 판단을 그르치고 잘못된 길로 들어설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물론 한국 문화는 이러한 사고에 대해 매우 격렬한 반감을 가지고 있다. 모든 부모가 부모라는 이유로 완전체와 동일시되는 한국 문화에서 부모에 대한 객관적 평가는 자본주의적 욕심에 찌든 못된 자식들의 철없는 배은망덕, 단지 돈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부모의 권리를 박탈당하는 부조리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돈 많고 성공한 부모 아니면 무시당해도 싸다는 거냐? 모든 부모는 위대하다!”
물론 민주주의 사회 체제의 모든 시민은 존재론적인 면에서 평등하며, 무능력한 부모도 유능한 부모와 법 앞에서 평등한 존재이다. 그러나 평등권은 생명권, 투표권 등에나 적용되는 것이지 본인이 받고 싶은 모든 사회적 대접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전문가의 의견과 좆문가의 의견이 동일한 영향력을 가지고 동일하게 존중받아야 평등일까? 문맹자도 의사나 변호사를 할 수 있고, 백만 유튜버와 삼백 유튜버가 수입이 같아야 평등일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명예, 영향력, 권력 등은 기본권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자식에게 존경받고 순종받을 권리’, ‘자식의 인생을 통제할 권리’ 등은 부모의 기본권이 아니므로, 민주 사회의 깨시민적 울부짖음으로 호소할 영역이 아니다. 예를 들면 과학적 상식이 없는 부모가 근거 없는 민간 요법을 강요하면 자식은 당연히 이를 거부할 권리가 있다. 이를 '배운 거 없는 부모라고 무시하냐', '부모가 의사였어도 네가 그렇게 불손했겠냐' 식으로 해석하면 곤란하다.
냉정하게 말해 흙부모들은 어떤 이유로든 적응력과 생존 능력 면에서 하위권의 점수를 받은 사람들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학습 능력이 낮고, 판단력이 떨어지며, 기본적 성실성 또는 도덕성에 문제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흙부모가 자식에게 강한 통제권을 행사하면서 자식의 인생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면, 도움보다는 방해가 되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다. 타고난 자질 문제가 아니라 정말 운 없게, 예를 들어 사건/사고나 질병 등으로 인해 사회적 지위가 낮아진 경우라 해도 미래를 살아갈 자식에게 필요한 각종 자원과 정보로부터 소외당한 상태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다만 부모의 정신이 건강한 편일수록 악영향이 덜할 수는 있다). 근본 원인이야 어찌되었건 현재 시점에서 부모의 판단력과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다면, 정보와 자원 부족은 자식에게 제한 요소로 작용한다. 부모가 본인만 떳떳하다고 해서 자식에게 부족한 자원이 저절로 생겨나지는 않기 때문에 부모의 구구절절한 변명이 본인 면피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현재 흙수저 자식의 문제 해결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환경을 극복할 수 있고 어쩌고 하는 문제 역시 차후 자식에게 달린 문제이지 부정적 영향력의 발생 자체를 부정할 수 있는 근거는 되지 못한다.
흙수저가 태생적 환경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 발전하고자 한다면, 자신이 배경 조건을 부모의 관점이 아니라 본인의 관점에서 냉정하게 볼 수 있어야 한다. 사회 어디에서든 부모의 관점만이 과도하게 수용되고 이해받는 한국 문화에서 이는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흙수저들은 사회 고정관념에 따라 무조건적으로 부모의 말에 순종하고 부모의 가치관을 내재화하기 전에, 과연 부모가 자신의 인생에서 코치 노릇을 할 만한 그릇인지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 그리고 부모의 판단력이 떨어진다고 생각될 경우, 최대한 빨리 부모의 영향력을 차단해야 한다. 판단력이 떨어지는 부모의 조언은 심지어 의도가 좋은 경우에도 도움이 되기는커녕 독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냉정하게 깨달아야 한다.
이는 부모를 원망하라거나 부모와 싸우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부모를 사랑하고 존경한다고 해도 모든 것에 복종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라 해도, 심지어 능력이 넘치는 재벌급 부모라 해도 실질적으로 자식의 모든 일을 해결해 주거나 인생을 대신 살아줄 능력은 없다. 내가 내 인생에서 행하는 모든 일은 그것이 온전히 부모가 원해서, 부모를 위해 한 일이라 해도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내가 질 수밖에 없다. 부모님 때문에 선택한 일이라고 해서 사회가 이를 정상참작해 두 번째 기회를 주는 일은 없으며, 잃어버린 시간을 되돌릴 방법도 없다. 때문에 본인 인생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 결정은 무조건적 자기 자신만의 관점에서 보고 결정해야 한다.
부모-자식 관계에서도 책임과 권리의 한계는 명확하다. 제아무리 죽고 못 사는 껌딱지 같은 부모-자식이라 해도 서로가 서로를 대신해 직장에 출근해줄 수도, 감옥에 가줄 수도, 아파줄 수도, 죽어줄 수도 없다. 자식과 부모는 단지 서로 간의 거리가 가까울 뿐 연동되어 있지 않고 엄연히 분리된 개체이며 이는 생물학적으로나 법적으로나 자명한 사실이다. '부모가 설마 자식 못되라고 하겠어?', '어른들 말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데?' 라는 생각에 부모가 원하는 것이라면 적어도 나에게 나쁠 것은 없을 것이니 덮어놓고 해도 괜찮다는 생각이 습관이 된 사람이라면 반드시 이 습관을 끊어내야 한다. 부모와 윗사람에 대한 존경심에 그들의 바람을 무작정 따라봤자 나중에 결과가 좋지 않을 때 당신이 들을 말은 '누가 법적으로 강요한 것도 아니고 결국 네가 스스로 결정한 거다' 라는 식의 발뺌 발언 뿐이다.
부모라는 권위를 내세운다고 없던 능력이 저절로 생기지는 않는다. 공부라고는 최하위권을 도맡았던 경험밖에 없는 흙부모라면 자식의 공부에 직접 개입해서 도움이 되기 힘들고, 일평생을 반백수로 산 흙부모는 자식의 사회 생활과 진로에 대해 조언을 하기 힘들다.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부모 본인이 해당 사항에 대해 아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 스키를 타 본 적도 없는 사람은 스키 코치를 해서는 안 되고, 지리를 모르는 사람은 누군가에게 길을 안내하면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자식이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로 나아가고 있는데 흙부모가 옆에서 제한적인 지식으로 자꾸 간섭을 하고 조언을 하려 한다면 이건 자식에게 장애물을 던져주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또한 흙수저가 ‘착한 자식’이 되겠다는 일념으로 무능한 부모의 지도에 모두 순종하면서 이 모든 도덕적 행동에 대한 보상을 받아 인생의 결과가 좋게 나오리라 기대하는 것은, 지옥행 열차에 몸을 싣고 얌전히 꿋꿋하게 버티다보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과 같다. 방향을 바꾸려면 열차를 바꿔타야지 잘못 탄 열차 안에서 열심히 선행을 하고 기원을 한다고 해서 열차의 행선지가 바뀌는 일은 없다. 흙탈은 본인이 본인의 물리적 환경을 바꿈으로써 가능한 것이지, 나의 효심에 감동한 산신령이 옛다 하며 내려주는 복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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