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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멘탈리스트/한국인의 행복과 불행

사후 약방문식 진심에 대한 한국인들의 무의미한 집착 (feat. 시청 사고)

Dirt Mentalist 2024. 7. 7. 0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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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며칠 한국을 시끄럽게 만든 시청 교통사고에 대한 뉴스 몇 개를 보면서 거슬리는 취재 경향이 있었다. 바로 운전자 또는 운전자 부부의 '사후 태도'에 지나치게 돋보기를 들이대며 그들을 악마화하려는 태도였다. 어떤 뉴스는 급발진이 의심될 정도로 결과가 극악하고 기이했던 사고에 대해 그 경위를 중립적으로 궁금해하는 척 하면서, 사실상 그들의 태도를 문제 삼아 사고에 범죄적 의도가 있다는 가설을 무리하게 승인하려는 취재 경향을 보였다. 과연 그 사고가 급발진인지 아니면 살인마의 질주인지를 밝히는 데 운전자 및 그 가족의 '사후 태도'가 그렇게 중요할까?

 

여기에서 하고자 하는 말은 운전자가 억울할 수도 있으니 헤아려주자거나, 사고 이후의 태도가 무의미하다는 뜻이 아니다. 때로 범죄자들의 사고 이후 태도는 수사 담당자들에게 중요한 단서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또 어떤 한편으로 사후 태도 따위는 연기하면 그만이기도 하다. 또한 설사 진정으로 뉘우치는 태도를 보인다고 해서 그 순간적 진심이 장기적인 책임 인정으로 반드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똑같은 내용의 사고인데 단지 운전자가 석고대죄를 한다고 해서 사건 분석을 하지 않고 책임에서 면하게 해줄 것인가? 아니면 심지어 의도적 범죄가 의심되는 물증이 있는데도 단지 '태도'만 양순해보인다고 사고려니 하고 넘어가줄 것인가? 사고 직후부터 운전자 부부가 울고불고 우짜면 좋냐고 발을 동동 굴러 자신들의 '진심 어린 유감'을 표현한다고 그 자체가 죽은 피해자를 부활시키거나 다친 이들의 회복에 도움을 주는가?

 

물론 사이코패스처럼 냉랭한 태도를 보이는 게 좋다거나 정상이라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실제 현실 속 사이코패스는 거꾸로 자신의 잘못을 가리기 위해 진심도 아닌 감정을 과장되게 꾸며내고 연기하는 경우도 많고(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들이 피해자들을 제외한 이들에게는 '좋은 이웃'인 경우가 많다는 것을 기억할 것), 여기에 속아넘어간 사람들이 실제 사건의 해결과 책임을 지연시키기도 한다. 한마디로 사고의 정확한 경위를 가리고 책임 범위를 정하는 데에 운전자의 태도는 그다지 큰 지분이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

 

따라서 사고를 낸 후의 운전자 및 가족의 태도에 대해 샅샅이 분석하면서 그들이 만족할 만큼의 '죄스러움'을 보이는지를 감시하는 것은 사건 해결에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취재와 보도가 그런 방향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사람들이 그만큼 그쪽에 관심이 많다는 방증일 것이다. 이 사건 뿐 아니라 많은 사건/사고에서 사람들은 가해자들의 태도에 지나친 관심을 갖곤 한다. 각종 사건/사고 기사에서 가해자의 악함을 표현하는 클라이맥스 표현으로  '사과 한마디 없었다'는 문장을 택하는 것은 거의 클리셰 수준이다. 때로는 '진심 어린 사과'가 있었느냐가 원래 행위의 잘잘못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 같을 정도이다.

 

사과하지 않는 가해자를 보고 비난의 수위를 높이는 게 가해자에 대한 더 강력한 비판이고 단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이는 그렇지 않다. 진심이든 아니든, 실제적 책임이 아닌 말 뿐인 가해자의 사후 약방문 몇 마디에 비판 수위나 여론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은 오히려 가해자에게 지나친 권력을 부여하는 일이다. 가해자의 사후 태도에 지나친 관심이 쏠리는 것은 가해자에게 최종 서사 통제 권력을 지나치게 일임하는 짓이다.

 

하지만 가해자가 사건/사고 및 피해자에 대해 어떤 감정과 생각을 가졌는지가 사건에 대한 책임과 무슨 상관이며, 궁금하다 한들 그걸 어떻게 알아낼 것인가? 가해자가 '진심으로' 사과하면 피해자는 용서해야 하는가? 진심 여부는 어떻게 판별할 것인가? 보배드림 따위의 커뮤니티에서 투표로 판별할 것인가? 가해자더러 피해자 또는 사회에 사과하라 요구하는 것 자체가 어떤 의미에서는 가해자의 생각과 감정에 지나친 의미와 권위를 부여하는 일이다.

 

가해자가 할 일은 밝혀진 사건 경위에 따라 책임과 보상 행위를 성실히 이행하는 것 뿐이다. 그 와중에 그가 어떤 감정을 가지고 사건을 어떻게 해석하는지는 당사자한테나 중요한 일이다. 제삼자는 그것에 대해 알 수도 없고 그것에 별다른 의미를 부여할 필요도 없다.

 

현대 사회에서 가해자의 책임과 보상 형태는 대개 징역형, 사회 봉사처럼 시간적 대가이거나 금전적 대가로 결정된다. 그 외에는 눈에 보이지도 않고 정량적 평가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완벽하진 않더라도 그 이상의 해결책이 현재로서는 나와 있지 않다. 그럼에도 아직도 사람들은 자신이 돈만 밝히는 속물이 아님을 증명하려는 무의식적 욕구인지, 자꾸만 보상을 애매모호한 형태로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다. 각종 사건/사고에서의 '진심 어린 사과' 운운도 그런 맥락에서 자꾸 소환되는 것이다. 막말로 '돈이 아니라 마음이 중요하다'는 선언인데 하물며 가족이나 연인 간에도 기만을 위해 악용되는 경우가 태반인 가치관을 심지어 범죄적 사건/사고에 적용한다? 시간이나 금전 보상이 아닌 다른 형태의 이상적이고 고매하고 유토피아적인 책임/보상 형태가 있는 것 같다면 그 시스템을 정확하게 묘사한 공약을 들고 나와 입법가로 출마하길 바란다. 그 전에는 '돈이 중요한 게 아니고 진심 어린 반성과 사과...' 같은 말은 유아퇴행적 세계관일 뿐이다. 이미 저지른 행위의 결과는 사후 감정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 시험 치고 나서 제아무리 지금은 공부 안 한 걸 진심으로 후회하네 해봤자 점수를 다르게 해 줄 수 없는 것과 같다. 그게 부정할 수 없는 성인 세계의 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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