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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보다 더 중요한 것, 절대로 빼앗기면 안 되는 것 - 시간 본문

흙멘탈리스트/흙수저 집안의 역학 구도

돈보다 더 중요한 것, 절대로 빼앗기면 안 되는 것 - 시간

Dirt Mentalist 2023. 12. 17.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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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사람 목숨에는 값을 매길 수가 없다고들 한다. 

 

하지만 비록 목숨의 철학적 가치를 정량적으로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할지언정, 목숨의 물리적 속성을 정량 측정할 수 있는 단위는 있다. 그것은 바로 시간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의 여명이 50년 남은 상태에서 1년의 시간을 어딘가에 투자했다면, 이것은 자기 목숨의 1/50을 투자한 것이나 다름없다. 길을 지나가다가 '도를 아십니까'를 피하는 데 10분을 낭비했다? 그렇다면 목숨의 1/2,628,000을 낭비한 것이다.

 

이처럼 시간은 내 목숨을 실질적으로 구성하는 단위이다. 시간은 모두가 인정하는 중요 자원인 것 같은데, 또 한편으로는 '킬링 타임'이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때로 아무렇지도 않게 여겨지는 자원이기도 하다. 하지만 '10분의 시간'이 아니라 '10분의 목숨'이라고 생각하면 시간의 중요성이 한층 더 와 닿는다.

 

자본주의 사회이다 보니 다들 돈에 시선이 쏠려 있지만 사실 시간이야말로 돈보다 훨씬 더 중요한 자원이자 자산이다. 사실상 우리는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어느 정도인지도 알 수 없다. 또한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는 건강 관리와 노화 방지를 통해 최장수 인생을 사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해도 현재의 의학 기술 수준으로서는 그다지 획기적인 수명 연장을 할 수 없다. 재산 차이는 수백 배, 수천 배, 수만 배까지도 우습게 벌어질 수 있지만 수명은 그렇지 않다. 무슨 수를 써도 큰 탄력성을 확보할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시간은 돈과는 상당히 반대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보통 돈은 나이가 먹을수록 많아지기 쉽지만 시간은 반대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그대로 두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자가 붙고 늘어나지만, 시간은 시간이 흘러갈수록 점점 더 희소해지고 귀중해지는 자원이다.

 

또한 돈은 한 번에 크게 벌 수도, 잃을 수도 있지만 시간은 그렇지 않다. 영리한 투자 한 방에 돈을 쉽게 벌 수 있을지는 몰라도 한 방에 시간을 벌어들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의 모든 관리를 돈 위주로 하다 그게 습관이 되어버리면, 시간 관리에는 미숙해지는 경우도 많다. 누적이 가능한 물질에 가장 큰 가치를 두다 보면 한 번 흘러가버리면 그만인 시간이란 자원의 누적 불가능한 속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흙수저들은 대개 어릴 때부터 돈의 압박과 제한을 크게 느끼기 때문에 무엇이든 돈을 기준으로 생각하기 쉽다. 당장 돈의 제약을 느끼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당장 돈의 출입만을 신경쓰라고 교육받았기 때문에 돈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는 생각을 하기 힘들어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심지어 흙수저가 아니라도 그런 경우가 많다. 사회에서 습관적으로 오가는 이론적으로 뻔한 말들, 이를테면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거나 돈보다 가족이 더 중요하다거나 하는 말들이 진심으로 와 닿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면 지금 사회는 우리가 아는 사회가 아닐 것이다.

 

사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거나 돈보다 가족이 중요하다는 말 등은 아예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맞는 말도 아니다. 맥락에 따라 판단이 크게 달라지는 말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돈보다 시간이 더 중요하다는 것만큼은 좀 더 절대적으로 적용할 필요가 있다. 이 말은 '돈보다 노는 시간 확보가 중요하니 돈은 최소한으로 벌고 최대한 놀아라'거나 '돈 한 푼 없어도 시간만 있으면 된다'는 말이 아니다. 내 수명을 줄이거나 내 목숨의 일부를 갖다바치는 짓을 해놓고도 돈은 안 빼앗겼으니 손해가 없다고 착각하거나, 내 목숨의 일부를 헐값에 팔아넘겨놓고 공돈을 벌었다고 착각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이렇게 발상을 전환하면 내게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사람의 영양가 없는 수다를 들어주고 있거나, 전혀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을 오로지 상대방이 조른다는 이유로 만나준다거나, 남이 권한다고 해서 특별한 이유도 없이 도움도 안 되는 콘텐츠를 소비한다든가 하는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직접 돈을 안 썼으니 손해가 없는 것 같은가? 아니, 쓸데 없는 일을 하는 순간 당신은 돈 주고도 못 사는 탄력성 제로의 귀중한 자원인 시간을 써버린 것이고 나아가 자신의 목숨 중 일부를 갖다 바친 것이다.

 

자신에게 재충전과 회복을 가져다줄 적극적 휴식이나 오락에 해당되는 일은 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환경에 수동적으로 휩쓸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딱히 해야 할 일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그저 타인과 대중매체의 가벼운 옆구리 찌르기만으로도 무심코 쓸데 없는 짓에 시간을 투자해버린다. 쉬는 날이랍시고 집에 있으면서 아무 생각 없이 가족 구성원의 동네 사람 뒷담화를 하염없이 듣고 있다든지, 큰 재미도 없는 것 같은데 넷플릭스 추천에 뜨는 영상을 아무거나 눌러서 멍하게 시청한다든지, 온라인 커뮤니티에 접속해서 정체불명의 믿을 수 없는 사람들 의견을 읽고 반응한다든지 하는 일들이 다 그런 것이다. 대개 이런 것은 휴식이 아니라 더 큰 피로를 가져온다.

 

쓸데 없는 시간 낭비를 막기 위해서는 나에게 시간, 즉 내 목숨의 일부를 요구하는 사람들 역시 반드시 끊어내야 한다. 한국인들은 자신의 돈을 빼앗아가는 것에는 꽤나 민감하게 굴면서도, 아직 시간을 빼앗아가는 것은 상대적으로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한국이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이후부터는 나르시시스트 흙부모들조차도 자식의 돈보다 시간을 착취하는 경우가 크게 늘어났다. 이들은 자신이 자식에게 적어도 (큰) 돈을 빼앗지는 않는다는 점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며 이를 자식에게 인정받으려고 어필하는 경우가 많다. 돈의 중요성을 너무 크게 생각하는 흙수저들은 이런 나르시시스트 흙부모의 생색에 속아넘어가기도 한다. (큰) 돈만 안 빼앗아가면 그래도 손해가 없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천만에 말씀이다. 돈에 대한 요구가 크지 않은 나르시시스트 흙부모들은 보통 자식의 시간을 요구한다. 대개 이 시간은 교환 과정을 거치면 적지 않은 돈으로 환산이 가능하며, 여기에 +α(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까지 얹혀져 있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주말마다 와서 자신과 놀아달라는 요구나, 매일 전화해서 친척과 동네 사람 뒷담화를 한 시간씩 들어달라는 요구는 어떤가. 돈 요구가 아니니까 욕심 없고 순수해 보이는가? 나한테 손해가 없는 것 같은가?

 

감정의 교류가 없고 마음 가는대로 부릴 수 없는 단순 대역 알바만 고용하려 해도 하루에 얼마가 들지 생각을 해 보라. 거기다 하물며 자식이라 편하답시고 막말에 잔소리에 남 앞에서는 차마 창피해서 할 수 없을 온갖 더러운 뒷담화까지 쏟아내는 부모라면? 밖에서는 억만금을 줘도 자신의 어쭙잖은 권력욕과 통제욕을 받아줄 이런 심리적 샌드백 같은 것은 고용할 수 없다. 타인의 이런 욕구 충족을 위해 자신의 시간을 갖다 바치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것이 얼마나 엄청난 자원 제공인지를 알아야 한다. 이런 목적에 동원되는 인생은 자신의 목숨을 아무 보람도 없이 남에게 조금씩 갈아바치는 인생이다. 돈만 안 빼앗긴다고 다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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