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멘탈리스트

흙부모가 합리적 사고가 아닌 미신적 사고에 의존하게 되는 이유 본문

흙멘탈리스트/흙수저 집안의 역학 구도

흙부모가 합리적 사고가 아닌 미신적 사고에 의존하게 되는 이유

Dirt Mentalist 2022. 12. 18. 07:21
반응형

흙부모 중에는 사고 체계 자체가 미신적 사고에 점령당한 이들이 많다. 그래서 절망에 사로잡히든 희망에 사로잡히든 중간이 없이 매우 극단적인 절망회로/희망회로에 갇히는 경향이 강하며, 그 근거도 적절치 못한 경우가 많다. 물론 부유층이나 상류층에서도 미신과 징크스 등을 믿는 사람들은 많지만 그래도 가진 것이 있으면 최소한의 유물론적/기계적 사고와 미신적 사고를 같이 할 수밖에 없는 데 반해서, 흙부모는 관리할 물질이 없기 때문에 아예 미신적 사고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경향이 심하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자면 부유층의 미신적 사고가 자식에게 필요한 물적 지원을 모두 하면서 동시에 점쟁이에게서 받아온 부적을 지니고 다니라고 요구하는 식으로 발현된다면, 흙부모의 미신적 사고는 자식에게 아무런 지원을 하지 않으면서 '될놈될'의 막연한 믿음에 따라 즉흥적으로 자기만의 기대와 실망을 오가는 식으로 발현된다.

 

흙부모들이 자식에게 하는 지원이 부유층보다 적을 수밖에 없다는 것은 필연적이지만, 대개 흙부모의 문제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흙부모는 단지 어쩔 수 없어서 지원을 못 해주거나, 현실적 리스크에 대한 걱정을 하는 것을 뛰어넘어 자식이 애초부터 근본적으로 어떤 도전을 하거나 희망을 가져서는 안 되는 존재인 것처럼 여기곤 한다. 마치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다는 듯, 애초부터 '될 놈'이 아니고 주제와 분수가 안 되기 때문에 은연중에라도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 말란 식의 교육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자식이 근본적으로 어떤 것에 도전해서는 안 되는 존재인 것처럼 여기는 이유는 단 하나, 바로 '내 자식'이라는 것 때문이다. 부모와 자식 간 경계를 인지하지 못하게 만드는 전근대적 유교 문화는 오랜 시간 동안 사회에서 무시당하며 자존감이 낮아진 흙부모에게 막말로 '내 자식' 역시 잘 될 팔자가 아니며 투자 받을 가치가 없는 존재라는 연좌제적 생각을 심어주기 십상이다. 자식의 성공을 바란다고 말은 하면서도, 실제로는 그것이 정말 가능할 것이라고 믿지 않는 것이다.

 

특히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자기 주변 사례만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아집에 사로잡히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주변에서 잘나거나 성공한 사람을 별로 만나보지 못한 이들은 늙어갈수록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자신이 접촉하는 모든 사람을 근거도 없이 후려치게 된다. 인생에서 본인이 만나 온 사람들을 바탕으로 디폴트 값이 낮게 잡히기 때문이다. 자식 역시 예외가 아니다. 그래서 흙가정에서는 부모에게 손을 벌리지 않고 자식 본인이 번 돈으로 무언가를 배우거나 시도하려 해도, 자식이 나름대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한 후 상식적으로 해 볼 만한 도전을 한다고 해도 이를 방해하거나 비난하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자식이 합리적으로 설득을 하려고 해도 주변에서 본 사례가 실패 사례밖에 없기 때문에 그것만이 본인에게 유의미한 현실로 다가오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분명히 낮은 계급에서 출발해 자수성가한 사례도 존재하고, 또한 아무리 절망이 습관화되었더라도 순간적이나마 희망과 기대를 품지 않는 인생 또한 불가능하게 마련이다. 때문에 아무리 패배주의에 찌들어서 이를 자식에게까지 전가하는 흙부모라 할지라도 자식에게 잠깐이나마 '혹시나...' 하는 기대를 품는 경우는 흔하다. 문제는 패배주의자의 이런 기대가 즉흥적이고 감정적이기 때문에 일관된 계획이나 전략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꾸준한 노력과 투자는 '하면 된다'는 믿음 없이는 불가능하므로 패배주의자에게는 어려운 걸 넘어서 거의 불가능한 태스크에 가깝다. 그런데 생물학적으로 목숨은 붙어있어서 살기는 살아야겠고 모든 생명체는 살려고 하면 실낱같은 낙이라도 잡으려 하는 것이 본능이니, 결과적으로 어떤 노력을 통해 성과를 기대하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전략보다 혹시나 내 팔자에도 우연히 로또 당첨같은 대박이 터지려나 하는 미신적 사고가 인생을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자식에게 투자를 하지 않고, 심지어 자식의 앞길을 적극적으로 방해하면서도 동시에 얼토당토 않은 높은 수준의 기대를 하는 흙부모의 모순적 태도는 이렇게 탄생한다. 어차피 내 자식이니 노력해서 성과를 이룬다는 일반적이고 평범한(?) 방법으로는 인생이 펴지기 어려울 것 같고, 일종의 기적 같은 것이 필요한데 기적은 말 그대로 기적이니 선천적으로 점지된 운명을 타고났다면 노력도 필요없고 최소한의 지원도 필요 없을 거라 생각하는 것이다. 요컨대 흙부모 다수가 자식에게 품는 희망이란 정공법적으로 장기적인 노력을 통해 자식이 잘 될 수 있으리란 식의 기대가 아니며(대부분의 흙부모는 인내심의 부족으로 이런 장기 프로젝트를 진행하지 못한다), 내가 혹시 로또 자식 당첨자가 아닐까 하는 잠깐의 설렘을 느끼는 것에 불과하다. 이런 태도를 가진 부모는 작은 징후에 일희일비하며 자식의 정서를 불안하게 만들기 때문에 자식에게 일관되게 안정된 환경을 제공할 수 없다.

 

이러한 사고는 물론 자식과 관련된 문제 뿐 아니라 흙부모 본인의 인생 전반에 걸쳐 나타난다. 이런 흙부모는 평소에는 당장 최저 시급에 몸을 갈아 일하는 것이 옳다고, 직업은 공무원 같은 것 아니면 안 된다고, 바로 수입 연결이 될 수 없는 것은 배우면 시간 낭비라고 주장하면서, 막상 결정적인 순간에 평범한 사람들은 수상해서 쳐다보지도 않을 얼토당토 않은 사기에 말려들거나, 드라마같은 감언이설과 증명되지 않은 화려한 말잔치를 내세우는 기만적인 사람들을 철썩같이 믿고 따르는 황당한 선택을 하곤 한다. 미신적이고 운명론적인 사고 체계로 인해 정확하게 계산되는 리스크는 피하면서, 정확하게 계산되지 않는 리스크(이쪽이 훨씬 더 위험하다)에는 겁도 없이 뛰어드는 것이다. 

 

자원이 모자랄 때 사람이 리스크에 민감해지고 투자에 과감해지지 못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인지상정이다. 자원이 풍족한 상황에 비해 조금 더 투자에 보수적이고 제한적으로 되는 것 또한 당연한 현상이다. 그러나 자원 부족 상황을 전략적으로 고려할 여건의 하나로 냉정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감정적으로 받아들여 자의식을 좀먹게 내버려 둘 경우, 무엇을 조심해야 할 지 판단을 정확하게 하지 못해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큰 리스크에 노출되고 만다. 그나마 현실적 확률이 있는 일에 대한 투자는 전부 다 '위험하다'면서 외면해놓고, 정작 가능성이 거의 없는 유니콘 같은 환상에는 올인하게 되는 것이다. 

반응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