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멘탈리스트

역기능 가족의 딸이 엄마를 동정하면 안 되는 이유 2 본문

흙멘탈리스트/나르시시스트 부모

역기능 가족의 딸이 엄마를 동정하면 안 되는 이유 2

Dirt Mentalist 2023. 5. 8. 01:55
반응형

2030 여성들 덕분에 이제 많이 완화된 현상이지만, 10년 전에만 해도 각종 강력범죄 사건이 화제가 되면 언론과 뉴스 소비자들이 증거도 없이 펼치는 '가해자 서사'가 여론을 점령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특히 피해자가 여성일 때일수록, 피해자가 이미 사망한 경우일수록, 가해자가 이른바 '국민 정서'의 버튼을 잘 알아서 이에 맞게 자기 포장을 잘 할수록 심각했다. 일방적으로 살아있는 가해자의 말만 믿고 그에 따라 사건을 어디에서 많이 들어본 듯한 익숙한 이야기로 만들어 사람들이 보자마자 친숙함과 안정감을 느끼고 믿어버리게 만든 것이다. 

 

모든 서사는 사람이 특정 의도를 가지고 만드는 것이다. 팩트 순도 100%의 서사라 해도 그렇다. 팩트가 개별로서만 존재하면 이야기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를 가지고 사람의 감정을 휘몰아치게 하는 기-승-전-결 구조를 짜는 것은 명백히 사람이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가능한 일이다. 동일한 팩트를 가지고도 얼마든지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하다. 역사가들은 이러한 이야기의 속성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미 수십 번 쓰여진 역사라 해도 또 다른 방향에서의 연구가 가능하다. 굳이 팩트를 뒤틀지 않아도, 새로운 팩트가 발견된 것이 아니어도 그렇다.

 

전근대 후진국 시절의 한국인들은 이걸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세상에는 단 하나의 서사만 있는 줄 알았으니 먼저 서사를 만들어 세뇌시키는 자가 여론을 독점하고 승자가 되었다. 극단적으로 <사랑과 전쟁> 같은 드라마의 터줏대감 배우인 민지영 씨가 오프라인에서 '불륜녀'라 불리며 봉변을 당한 적이 많다는 일화를 보면 알 수 있다. 드라마 속 배우와 실제 캐릭터의 구별은 삼척동자도 할 수 있는 일 같지만, 멀쩡히 나이를 먹고도 명백한 드라마적 허구와 실제 현실을 구별 못해 배우에게 화풀이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국민 정서 수준이 서사적 세뇌에 취약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대놓고 드라마인 경우에도 서사의 외연을 알아보지 못해 이런 문제가 생기는데 무려 뉴스에서 쳐먹이는 서사를 어떻게 걸러내겠는가.

 

서사에는 롤러코스터같은 힘이 있다. 한 번 그 궤도로 들어가면 그 궤도만 쫓아가며 거기에 적합한 요소만 취하게 된다. 관객을 롤러코스터에 태우는 것이 목표인 오락 영화를 너무 많이 보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저 궤도에 올라타 따라가는 것에만 익숙해진 뇌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는 능력을 잃어버린다. 현실은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절대 고도의 의도를 가지고 편집된 영화처럼 매끈한 서사로 진행되지 않는다. 그런 현실 속에 자꾸 영화같은 서사를 갖다 대면 판단을 그르치게 된다.

 

역기능 흙가정의 딸들에게는 엄마에 대한 동정심이 최후의 함정이자 가장 큰 함정이 되는 경우가 많다. 나름 타고난 계급의 한계를 스스로의 힘으로 벗어나고, 아빠에 대한 환상을 벗어던진 후에도 엄마에 대한 환상만은 끝까지 버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이 원래 아무리 자신의 타고난 족쇄를 벗어나는 것을 목표로 삼아도 익숙한 것이 전혀 없는 생경하기만 한 환경에서는 불안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자신이 가진 것 중 적어도 믿고 심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한 두 가지는 남겨놓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자꾸 익숙한 서사를 찾아내 의지하려는 습성 때문이다. 역기능 흙가정의 자식들 눈에는 대개 엄마가 최약체이자 가장 큰 고생을 한 사람으로 보이고, 특히 딸들은 그렇게 생각하기가 쉽다. 게다가 역기능 흙가정의 자식들은 대개 강한 인정욕구를 가진다. 그래서 이 최약체인 엄마를 보호하고 엄마에게 나름의 해피엔딩을 선사하면서 인정을 받는 것이 자신의 진정한 환경 극복 또는 인생 성공의 징표라고 생각하게 된다. 모든 과거 인연에서 벗어나 완전하게 홀로 서는 것에 비해 누군가와 해피 엔딩을 공유하는 것이 사회 기존 정서상 더 인정받기 쉬운 서사이고 미학적으로도 웬지 아름다운 느낌이 들기 때문에 자꾸 그쪽으로 끌려들어가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엄마가 객관적으로 어떤 사람인지를 판단하지 못하는 것이 큰 문제가 된다. 근거도 없이 자신의 엄마가 익숙한 극영화 같은 데서 나오는 인간 승리 또는 인간 각성 스토리의 최종 주인공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노력하면 적어도 그 비슷한 결과라도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실제 현실 속 역기능 흙가정의 엄마들은 능력도 없는 것은 물론이요, 대개 2인자 나르시시즘을 체화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겉으로 불행해 보여도 속으로는 자신의 선택이 옳다는 자부심에 딸을 포함한 다른 여자들의 인생을 비난하고 있을 가능성이 훨씬 더 높음에도(일명 '흉자' 마인드) 그렇다. 서사에 중독되고 눈이 멀게 되면 눈 앞에서 엄마가 대놓고 가능성 없는 언행을 일삼아도 이를 있는 그대로 보지 않으려 하게 된다. 자신이 성공해 유능한 딸로서 최약체인 엄마를 기사처럼 구해내고 두 여성이 함께 해피엔딩을 맞는 그런 서사를 마음 속에서 아름답게 치장하고 거기에서 힘을 얻을수록, 현실은 더더욱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교과서식으로 배운 정치적으로 올바른 버전의 (한국) 페미니즘 역시 여기에서는 도움보다 해가 되는 경우가 많다. 미국식 개인주의와 자본주의를 혐오하는 데다 유물론적 좌파 세계관에 종속되어 있는 한국식 깨시민 페미니즘은 보통 노동계급의 기혼 여성을 최약체로 보고 이들을 중심으로 한 피해자 서사를 강화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딸들의 탈출을 독려하기보다는 엄마의 짐을 나눠지길 강요하는 쪽으로 흐르기 십상이다. 그나마 서양 문화권에서는 개인에게 불이익을 감수하라고 강요하는 것이 금기시되기 때문에 이것이 어느 정도 차단되지만, 개인 간 경계 위반에 둔감한 한국에서는 '최약체'인 엄마를 위해 젊은 딸이 자신의 잠재력과 자유를 희생시키는 것이 당연시된다.

 

젊은 딸들은 자신의 엄마들이 겉으로는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면서도 속으로는 전혀 다른 서사를 따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2인자 나르시시즘을 체화해 그것을 동력으로 수십 년 동안 역기능 흙가정 체제에 동의하며 살아온 대개의 기성세대 엄마들은 딸들로서는 전혀 상상도 못할 음흉한 서사를 남몰래 간직하고 있다. 그 서사 속에서 엄마인 자신은 절대로 최약체가 아니며, 심지어 잘못된 사람이나 선택에 휘말린 피해자도 아니다. 그들의 서사 속 자신의 모습은 사회 주류 정서와 강자에 대한 외형적 절대 복종, 그리고 가장 큰 자원이자 도구인 자식을 활용하여 가부장제의 개념녀 인증을 획득함으로써 말년에 복을 몰아 받겠다는 계획을 단계적으로 착실하게 수행 중인 '현명한' 여성들이다. 그들의 그런 서사 속에서 딸은 절대로 나를 구원해줄 기사님이나 나를 계몽시키는 새 시대의 현자가 아니라 내가 인정받는 데 사용해야 할 도구, 더 심한 경우에는 '개념녀'인 나를 상대적으로 빛내줄 '못된 젊은 여자' 중 하나일 뿐이다. 

 

 

*서사를 팔아먹는 상품이면서도 아이러니하게 특정 서사에 빠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알려주는 영화로 최근에 나온 <더 원더>가 있다. 

 

영화 자체는 아름다운 마무리로 끝나지만 멀쩡한 목숨을 왔다갔다 하게 만드는 인간의 내러티브 중독 증세는 일견 무시무시하게 느껴진다. 지구상의 그 어떤 다른 생명체가 이렇게 같은 상황에서 내러티브에 따라 전혀 다른 전개를 보일 수 있을까? 아이는 거식증에 걸린 것도, 삶의 의지를 완전히 잃은 것도 아니었다. 다만 자신이 삶을 이어나갈 수 있는 사회적 내러티브를 찾지 못했을 뿐이다. 자신의 존재를 정당화할 수 있는 정신적 출구를 찾지 못하자 육체조차 지워버리기로 한 것이다.

.....

내러티브 중독, 그것도 단 하나의 내러티브에 대한 장기간의 중독은 약물 중독과 동일한 결과를 가져온다. 특정 내러티브를 지키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제아무리 우리가 자신만의 내러티브를 독창적으로 창조하고 지키려 해도, 모든 사회화된 인간은 우리가 태어났을 때부터 주입당한 수많은 주류의 내러티브 속으로 자꾸 미끄러져 들어간다. 이론상 사상과 취향의 자유가 보장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100명의 사람이 각자 100개의 내러티브를 가질 수 있지만, 실상은 대부분이 사전 프로그래밍된 내러티브 속에서 반강제로 주어진 역할만을 수행할 뿐이다. 

https://dirtmentalist.tistory.com/182

반응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