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멘탈리스트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과연 진심으로 자식의 성공을 바라는가 본문
A씨에게는 위로 아들 둘, 막내딸 이렇게 세 명의 자녀가 있다. A씨는 '자식 농사'를 잘 지었다고 주변의 부러움을 받는 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자녀 세 명이 모두 공부를 잘 했고 사회적으로 번듯하게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아들 둘은 모두 A씨가 바라마지 않던 의사가 되었고 막내딸은 IT를 전공했는데 얼마 전 미국의 가장 유명한 IT 대기업 중 하나의 본사에 취업을 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A씨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지인들 앞에서 겉으로는 모든 게 만족스러운 것처럼 이야기하며 자식 셋을 모두 자랑한다.
그러나 실제 A씨의 마음 속에는 요새 불만이 한가득이다. 이유는 막내딸의 하는 짓이 마음에 안 들기 때문이다. 막내딸은 국내 최고의 대학에서 AI 전공으로 석사까지 마치고 미국으로 건너간 것이니 어쩌면 나중에 박사 과정을 미국에서 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또한 가장 핫한 분야에 취업한 만큼 바쁘기도 엄청나게 바쁘다. 전문직이 아닐지언정 현재 연봉은 의사인 오빠들보다 높다. 애초부터 고집이 셌던 딸은 자신의 적성에 맞는 분야를 자기 주관대로 찾아서 간 것이기 때문에 직업 만족도도 높아 보인다.
남이 봤을 때는 불평할 이유를 찾을 수 없는 상황인 것을 알지만 A씨는 이 모든 상황이 묘하게 짜증이 난다. 딸이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모두 망치고 있기 때문이다. 아들 둘이 의대에 다닐 때부터 의사는 업무 강도가 높은 편이기 때문에 A씨는 딸이 향후 한가한 직업을 택하거나 전업 주부가 되어 자신과 시간을 많이 보내줬으면 싶었다. 이미 아들을 둘씩이나 의사로 만들어 적잖이 두둑한 용돈도 받고 있는 A씨는 돈과 명예 부분에서는 이미 욕구가 어느 정도 찬 상태라 딸에게 그런 것을 더 얻고 싶은 생각이 없다. 어차피 IT 전공자인 딸은 아무리 잘나봤자 한국에서 A씨 지인들에게 '의사'보다 더한 위압감을 주기도 힘들다. 그가 딸에게 원하는 것은 딸이 자신과 놀아주고 자신의 수다를 들어주는 것이다. 그래서 대학 시절부터 딸에게 하급 공무원이 되라고 강하게 밀어부쳐보기도 했지만 딸은 A씨의 말을 듣지 않았다.
A씨는 지금도 딸에게 틈만 나면 돈과 성공이 다가 아니며 인생 별 거 없다는 설교를 늘어놓는다. 가족과 함께 오순도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최고이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복작거리는 것이 인생 최고의 재미라고 주장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글로벌 대기업의 횡포와 착취 문제에 대해서도 잊지 않고 비판한다. 전화 통화를 할 때마다 그 사악한 기업의 노예 노릇을 평생 할 거냐고 그만두기를 종용한다. 뉴스에 해당 기업에 대해 안 좋은 소식이 조금이라도 나오면 즉시 링크를 달아 카톡을 보낸다.
해당 분야를 아는 누군가는 A씨에게 미쳤다고 손사래를 쳤다. A씨의 딸이 현재 가진 직업은 누구나 선망하는 직업이라고 했다. 하지만 A씨에게는 그러거나 말거나 의미가 없다. 그래봤자 A씨 딸의 직업은 주변인들에게 오빠들의 직업인 '의사' 만큼의 경탄을 끌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 주변에서 알아주질 않는데 저 혼자 잘 나가봤자 나에게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게다가 자식 셋이 모두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바빠 자신이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배려해줘야 하는 사람이 돼야 하는 것도 싫다. 스테이크를 두 끼 먹었으면 한 끼는 라면을 먹고 싶은 심정이랄까. 이미 의사 아들을 둘씩이나 가진 A씨는 막내딸 하나쯤은 자신을 그림자처럼 쫓아다니며 자신의 노후를 세심하게 돌봐 줄, 젊고 건강하고 믿을 수 있는 24시간 간병인처럼 편하게 부리고 싶다. 이건 돈이 아무리 많아도 해결이 잘 안 되는 부분이다. 그것만 해결되면 자신의 후반생은 완벽할 것이다. 그러나 딸의 고집 때문에 그 하나의 퍼즐 조각이 맞춰지지 않고 있다. 그래서 A씨는 딸이 몹시 얄밉고 짜증이 난다.
A씨는 이미 의사 아들들로 인해 화려함과 명예에 대한 욕구를 채웠으니, 막내딸 하나만큼은 실생활에서 자질구레하고 지저분하고 남에게 말 못할 부분을 처리해줄 존재가 되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게 올바른 성별 정체성에 맞는 구도이고, 아들, 딸을 골고루 낳으려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세상이 뭔가 잘못 돌아가는 바람에 딸이 이상한 존재로 컸다는 생각만 든다. 요새 성별 구분이나 성적 지향을 무너뜨리는 이상한 사상도 많다는데 가끔은 딸이 자신을 남자로 착각해서 괴물같은 존재로 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된다. 그래서 A씨는 딸을 만날 때마다 딸의 생리주기 등에 대한 문제를 집착적으로 꼬치꼬치 캐묻고 딸은 이런 A씨를 이상하게 여기며 짜증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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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시스트 부모는 일반적으로 자식의 성공을 바란다. 또는 적어도 자식의 성공을 바라는 것처럼 말하거나 행동한다. 그러나 그것은 자식 본인이 잘 살았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부모인 본인의 이익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이 자식의 성공을 바란다는 것은 자식이 자신의 트로피가 되거나, 돈이나 서비스 등을 베풀어줄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뒤집어 말하면 본인에게 도움이 되지 않으면, 자식의 성공에도 관심이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거나 위의 사례처럼 자신의 원하는 그림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에는 심지어 자식의 앞길을 방해하고 저주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나르시시스트 부모가 말하는 자식의 '성공'은 자식 당사자의 입장에서 인생을 만족스럽게 사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나르시시스트 부모가 말하는 자식의 '성공'은 부모인 본인의 만족도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지 자식 당사자의 의사는 무관하다. 나르시시즘의 속성상 나르시시스트 부모의 자식 만족도를 결정하는 기준은 1. 자식이 남의 눈으로 봤을 때 번듯하거나 적어도 자신의 계급 또는 이미지를 깎아먹지 않는 수준이 되는 것, 2. 부모 자신의 인생 계획에서 쓸모있는 역할을 하는 것, 이 두 가지가 된다. 위의 사례에서 A씨의 막내딸은 자기 나름대로 훌륭한 커리어를 일구었지만 이는 이미 한국에서 의사 아들을 둘씩이나 가진 A씨의 계급을 '더' 높여주지는 못한다. 막말로 막내딸의 성공은 A씨에겐 중복 할인을 받을 수 없는 쿠폰처럼 쓸모가 없다. 따라서 철저히 A씨의 이해관계 관점에서 보자면 막내딸의 사회적 능력은 그에게 전혀 좋은 일이 아니다.
A씨에게 현재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동성 친구처럼 자신의 말귀를 잘 알아듣고 관심사를 공유할 수 있으면서, 혈육이라 자신을 배신하거나 떠날 염려가 없고, 서열상 자신보다 아래라 체면 차리거나 조심할 필요가 없고, 사회적 지위가 높지 않아 편하게 함부로 대해도 흠 잡힐 일이 없고, 젊고 건강해서 자신이 마음껏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마음껏 의지할 수 있고, 시간이 많아 아무때나 원할 때 부를 수 있고, 지적 수준이나 취향 수준 역시 자신보다 딱히 높지 않아 점잖은 사람들 앞에서는 창피해서 말 못할 주제도 자유롭게 호들갑 떨며 이야기할 수 있는 상대이다. '적당히 키운 딸'은 이 모든 것에 들어맞는 존재이며, 현재 한국의 중노년 부모들은 자신이 그런 딸을 가졌다며 자랑하는 경우가 많다. '딸이 있어야 좋다'는 중노년층의 딸 선호론은 사실 딸을 귀하게 여겨서라기보다는 딸을 만만하게 보기 때문에 등장했다고 봐야 한다.
만약 막내딸이 백수라거나 그보다 더 심한 트러블메이커라 집안 재산을 축내거나 오빠들의 명예에 흠집을 낼 정도라면, A씨 역시 막내딸의 무능력을 문제 삼았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A씨 입장에서 막내딸의 뛰어난 커리어는 그저 자신에겐 중복이자 잉여일 뿐이고, 오히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지 못하게 만드는 방해물에 불과하다. 핵심은 부모인 A씨 입장에서의 '효용'이다. 막말로 A씨는 딱 자기의 효용이라는 관점으로 봤을 때 막내딸이 적당히 잘나되 너무 잘나진 않고, 적당히 못나되 너무 못나진 않았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다. 자기가 가진 침대에 사람을 맞춰보고 길면 잘라 죽이고 짧으면 늘려 죽였던 그리스 신화 속 프로크루스테스마냥, 자의적인 자기만의 기준에 다른 사람의 인생을 쑤셔넣고 싶어하는 것이다.
물론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이런 자기 심정을 솔직하게 말할 수 없기 때문에 늘 다른 핑계를 댄다. A씨가 딸 앞에서 현자 타임이 온 것 마냥 전지적 시점의 철학자 흉내를 내며 성공 무용론, 가족 사랑 최고론, 마르크스주의자 뺨치는 자본주의 비판에다 최근 성정치학 경향에 대한 우려까지 늘어놓는 것은 다 이런 이유이다. 만약 누군가가 위의 A씨처럼 특정인을 조종하거나 폄하하기 위해 평소에는 관심도 없던 심오한 근본주의 철학을 늘어놓는다면, 그 사람은 매우 사적인 이유로 버튼이 눌려 나르시시즘을 발동시키고 있다고 보면 틀림이 없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대개 자신의 자식들에게 이러한 모습을 보이는데, 심지어 골든 차일드마저도 해당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자식도 본인에게 도움이 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니 자신의 통제권을 벗어나는 것 같은 길을 무조건 반대하기 때문이다.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진다든지, 자신보다 크게 유식해진다든지, 일하는 시간이 길다든지, 본인의 준거집단과 종류가 매우 다른 사람들이 모인 업계로 진출한다든지 하는 것은 나르시시스트 부모의 두려움을 자극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부모의 사회적 계급이 낮고 자원이 부족할수록 통제 권역도 좁아지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이 현상은 같은 수준의 나르시시스트라도 흙부모에게 더 강하게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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