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멘탈리스트
나르시시스트 부모+흙부모일수록 시대착오적인 이유 본문
사람은 보통 나이를 먹을수록 일면 보수적인 태도를 장착하게 된다. 그러나 나이 먹는 것에 따라 필연적으로 생기는 보수성은 본질적으로 흔히 말하는 정치적 보수성과는 좀 차이가 있다. 물론 정치에서의 보수와 진보가 개인 일상 생활과 연관이 없는 것은 아니므로 아주 연관성이 없다고는 볼 수 없으나, 젊었을 때 창조론의 공교육 커리큘럼 진출을 반대하고 동성 결혼에 찬성하던 사람이(즉, 미국 민주당 포지션) 갑자기 어느날 나이 마흔/오십/환갑을 먹었다고 의견을 정반대로 돌리는 경우는 별로 없다.
나이를 먹어서 보수화된다는 것은 좀 더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이야기이다. 나이를 먹으면 기본적으로 사고가 패턴화되는 경향이 강하다. 핵심은 사고 내용이 아니라 '패턴화'에 있다. 오랜 시간 동안 반복하여 습관화된 뇌의 경로대로 자동적인 판단을 내리거나, 새로운 정보를 새로운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기존의 틀에 맞춰 생각하거나, 모든 것을 자신이 과거에 보고 들은 것과 비교해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개인적 사고 처리 면에서의 보수성은 정치적 입장의 보수성과는 내용 면에서 판이하게 다를 수도 있다. 젊은 시절부터 정치적 포지션이 진보 정당 지지였다는 이유만으로 그냥 무지성적으로 그 관성을 유지하는 사람이 있다면 정치적으로는 '진보'일지 모르겠으나 개인적인 사고 과정 면에서는 매우 보수적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보수성에는 양면성이 있다. 새로운 정보를 기존의 틀에 따라 패턴화 경로에 박아넣어 생각하는 것은 좋은 일일까, 나쁜 일일까? 이는 한마디로 어떻다고 결론을 내리기가 힘들며, 사안에 따라 크게 결론이 달라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어린 아이들의 눈에 세상 모든 것이 신기해 보이는 이유는 모든 것을 처음 접해보기 때문이다. 이는 강력한 호기심, 생기, 순수함의 원천이 되지만 반대로 명백한 무지를 뜻하기도 한다. 세상에는 분명히 패턴이라는 것이 존재하며, 이러한 패턴을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어떤 일을 맡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떤 일의 베테랑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은 대부분의 일을 자신의 머릿속에서 빠르게 패턴화하여 해결 방법을 효율적으로 찾는다는 데 있다. 과거 경험의 데이터베이스와 이를 바탕으로 자신이 세운 기준 없이 베테랑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처럼 패턴화된 사고는 좋은 효과를 발휘할 수도 있다. 물론 아무리 좋은 틀이라 해도 모든 틀에는 한계와 리스크가 있으며, 그 한계와 리스크는 틀의 연식이 오래될수록 커진다. 운영체제와 소프트웨어의 보안 업데이트처럼, 사고의 틀에도 업데이트와 유지보수는 당연히 필요하다.
나이와 함께 보수성이 강화되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에 대부분의 자녀들은 부모가 자신보다 보수적이라는 사실을 당연시한다. 당연시하기 때문에 부모의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고 무시하는 경우도 있지만, 당연시하기 때문에 그 말 속에 어떤 위험성이 있는지 잘 인식하지 못하기도 한다.
부모의 시대착오적 생각은 언제나 자녀의 미래를 망치는 주요 요인 중 하나이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나르시시스트 부모와 흙부모의 시대착오성은 위험하다. 나르시시스트 부모와 흙부모의 시대착오성에는 나이를 먹으며 불가피하게 강화되는 패턴화 경향의 일반적 위험성을 크게 넘어서는 여러 독소 요인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를 대략적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나르시시스트 부모와 흙부모의 시대착오성에는 매우 강력한 방어심리가 포함되어 있다. 즉, 이들이 자신이 믿고 따르던 옛날식을 자꾸 고집하고 강요하는 이유는 그 옛날식 틀이 정말로 현실에서 문제해결에 실제로 도움이 되는 유용하고 효율적인 도구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본인이 개인적으로 세대적 정체성을 규정하는 그 옛날식 틀에 자아 의탁을 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이런 틀에 집착하는 이유는 그것이 잘못되었거나 시효가 다했다고 인정하는 순간 자식 앞에서 자신의 권위와 우월함을 주장할 근거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때문에 나르시시스트 부모와 흙부모는 자식에게 엄연히 틀린 것, 잘못된 것을 가르치고 강요하면서도 뻔뻔하게 수정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본인이 말하는 내용이 옳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강요할 수 있는 자신의 권위가 더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부모의 나르시시즘과 흙멘탈 정도가 심할수록 그들이 집착하는 패턴은 내용상 질적으로 보편성이 떨어지고 비합리적인 경향이 강하다. 즉, 그들이 삶의 방식이자 지혜로 여기면서 고집하는 패턴이 보편적인 눈으로 봤을 때 전혀 그럴싸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세상의 패턴을 파악하는 능력은 개인별로 천차만별이다. 그런데 애초에 흙부모는 전반적으로 세상의 패턴을 파악하는 능력이 모자라 흙부모가 되는 경우가 많고, 나르시시스트는 특유의 자기 중심적 세계관 때문에 필연적으로 패턴을 잘못 보는 영역이 존재한다. 이는 역기능이 강한 가정에 타 가정에서는 볼 수 없는 고유의 이상한 규칙과 작동 원리들이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모종의 이유로 비가 오는 날 빨간 옷을 입은 사람만 보면 미친듯이 화를 내는 패턴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자신의 분노에 타인, 특히 가족이 알아서 적응하기를 바라는 아버지를 가졌을 경우, 자식은 비와 빨간 옷의 조합을 피하는 것을 어린 시절부터 가장 중요한 생존 전략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생존 전략은 외부 사회에서는 아무런 쓸모가 없으며, 당연히 지혜로 인정받지도 못한다. 올바른 사회적 규범이나 스킬을 체화하기에도 바쁜 와중에 이런 무의미한 적응에 시간과 노력이 낭비되니 이런 집안에서 가난과 실패가 대물림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도 당연하다. 나르시시스트 부모와 흙부모는 애초에 본인의 이상한 세계관과 판단력 결여로 인해 사회에서 제대로 된 적응을 하는 데 실패한 이들이며, 이들이 가진 패턴은 대개 매우 자의적이거나 역기능적이다. 따라서 자녀들의 인생을 방해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세 번째, 나르시시스트 부모와 흙부모의 시대착오성은 건강한 부모의 보수성보다 정도 면에서 훨씬 더 심한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건강한 부모의 보수성이 자녀의 소셜 미디어와 유튜브 사용 시간을 걱정하며 그런 게 없었던 자기 어린 시절의 장점을 다소 과장해서 생각하는 수준이라면, 나르시시스트 부모나 흙부모는 '인터넷 따위'의 무용론을 주장하며 인터넷과 관련된 현대 사회의 모든 것이 허영에 불과하다고 부르짖는 수준이다. 모두가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자신조차 실제로는 그것 없이 상상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으면서도, 남들에게는 여전히 스마트폰 따위 없어도 살 수 있다, 살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카페에서 노트북을 켜고 있는 젊은이의 모습을 보면 필시 쓸데 없는 짓만 하는 허영 덩어리일 것이라고 지레 넘겨짚어 비난하는 식이라고 볼 수 있다. 나르시시스트 부모/흙부모는 사회를 있는 그대로 보지 않으려 하고, 사회 현실에 적응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실제 세상에서 최신 기술이 어떻게 이용되는지 모르는 경우, 또는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흙부모의 경우는 대개 사회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지 않기 때문에 업데이트에서도 늘 뒤쳐진다. 학생/청년 신분의 젊은이들은 계급과 무관하게 교육 기관과 또래 집단으로 인하여 알고 싶지 않아도 사회의 최신판 지식 및 경향성을 어느 정도 파악하게 된다. 그러나 나이를 먹으면 강제로 교육을 시키는 학교를 다니는 것도 아니요, 또래 집단도 개인 수준별로 이미 갈라진지 오래이기 때문에 이런 자동 업데이트 메커니즘이 생활에서 상당 부분 사라진다. 그만큼 개인의 의식적 노력이 중요해지는데 나르시시스트 부모와 흙부모는 이런 액티브한 노력을 자신의 모자람을 인정하는 치욕으로 여기고 시도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당연히 시대착오성이 건강한 부모보다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
네 번째, 나르시시스트 부모와 흙부모는 사고의 내용상 시대착오성의 정도만 심한 것이 아니라, 시대착오성을 나타내는 항목도 건강한 이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광범위하다. 그 이유는 이들이 패턴화할 수 없는 것 또는 패턴화할 필요가 없는 것까지 패턴화하려 들기 때문이다. 즉, 과도한 통제욕이 발현되는 것인데, 정말 쓸데 없는 것까지 모조리 패턴화하려 드는 바람에 거의 귀신을 보는 수준으로 말도 안 되는 규범을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다. 나르시시스트 부모와 흙부모는 불안감 수준이 높고 자아상이 불안정하다. 이런 심리 상태는 세상의 패턴을 과도하게 읽어내도록 만든다. 불안하니까 자꾸 틀과 공식을 만들어 거기에 의존하려는 것이다.
때문에 나르시시스트 부모와 흙부모의 자녀들은 부모의 말이 자신의 잠재의식에 새겨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자녀가 아주 어릴 때부터 부모가 늘 '직업으로는 공무원이 최고다', '여자는 무조건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따 둬야 한다'라는 식으로 노래를 불렀다면 아무 판단력이 없는 어린 자식은 그런 말들을 세상 어디에서나 통하는 상식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부모가 자신에게 욕을 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것 등은 명백히 '싫다'고 느끼면서도 생활 속에서 부모 본인이 굳게 믿고 뱉어내는 이런 신조를 걸러내기는 쉽지 않다. 부모를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나이가 되기 전에는 불가능한 미션이기도 하다. 자신의 부모가 나르시시스트 부모이거나 흙부모라면, 또는 둘 다에 해당된다면 특히 더, 부모가 어릴 때부터 주조해 온 자신의 잠재의식 속 '상식'을 비판적으로 점검해보아야 한다. 부모가 말한 그 상식은 당신 부모에게만 상식이고 타인에게는 몰상식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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