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멘탈리스트
모든 나르시시스트 부모와의 관계는 근친상간적 관계이다 본문
관련 포스트 - https://dirtmentalist.tistory.com/125
나르시시즘은 스펙트럼이고 어느 정도 누구나 가진 성향이기 때문에 스스로에 대한 통제를 포기하면 얼마든지 '평범' 축에 속하던 사람도 악성 나르시시스트가 될 수 있다. 특히 본인이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특정 관계에서만 악랄한 나르시시스트가 되는 경우는 생각보다 흔하다. 일반적으로 자신의 나르시시즘 성향이 강해지는 순간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상황 중 하나는 누군가를 건강하지 못하게 질투할 때이다. 어느 정도의 부러움, 선망, 동경까지는 굳이 나르시시즘 발현이라 하기 힘들지만 집착적으로 질투하게 되거나 질투심으로 상대에게 적대감이 느껴질 정도라면 당연히 자아가 위협받기 때문에 나르시시즘이 발현된다.
영화 <블랙 스완>에는 백조 역할은 잘 하지만 흑조 역할을 잘 못해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엘리트 발레리나인 주인공 니나(내털리 포트만)가 흑조 역할을 기가 막히게 잘 하는 라이벌 릴리(밀라 쿠니스)에게 성적으로 접근하는 동성 섹스 씬이 나온다. 이 장면은 니나가 억압된 레즈비언이라는 뜻일까?
그렇지 않다. 이 장면은 동성 섹스 씬이지만 니나의 심리상 본질적으로는 동성애와 별 상관이 없다. 레즈비언도 아닌 애가 그럼 왜 그런 것에 휘말리느냐고? 이 장면은 니나의 릴리에 대한 집착적 질투의 표현이다. 릴리는 니나가 갖지 못한 자유로운 영혼을 가지고 있으며, 그로 인해 니나가 하지 못하는 흑조 연기를 기가 막히게 해낼 줄 안다. 니나는 이로 인해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니나는 릴리에 대한 집착적 질투와 자기 혐오를 어쩌지 못해 멘탈이 나가버린 상태이다. 여기에서 정체성 탈취의 욕구가 생긴다. 그런데 바퀴벌레 외계인도 아니고 어떻게 상대의 정체성을 탈취하는가? 물리적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나르시시즘적 집착을 사라지게 만들지는 못한다. 불가능한 것을 어떻게든 유사하게라도 성취해야 한다.
이 때 가장 많이 사용되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성적 접근이다. 왜냐하면 대인관계에서 성적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우리가 아는 관계 중 가장 사적이고 비밀스러우며, 물리적으로 가장 가까이 침범할 수 있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공적 관계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선을 넘는' 관계, '너는 내 것'이라는 소유권 주장에 가장 어울리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블랙 스완>의 동성 섹스 씬 마지막에 니나와 관계를 맺던 릴리의 얼굴이 결국 니나 자신의 얼굴로 변하는 것은 이게 그러한 나르시시즘적 감정의 표현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때문에 <블랙 스완>의 이 동성 섹스 씬은 상징적인 장면인 동시에 또한 원초적인 장면이기도 하다. 이게 니나의 성적 지향과 본질적으로 아무 관련이 없는 데서 시작하기 때문에 '상징적'이지만 그렇다고 이런 일이 '현실에서는 절대 없는 순수 추상적 장면'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실제로 자신의 타인 정체성 탈취 욕구가 너무 강해 감당이 안 되면 이런 일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일은 인구 비율상 동성보다 이성 간에 훨씬 더 많이 일어난다. 워낙 이성애 중심 사회다보니 가려져 있는 경우가 많지만 이성 간에도 자신이 갖지 못한 어떤 것에 대한 질투와 탈취 욕구가 성적 욕구와 만나 '이성적 호감'으로 포장되는 경우가 많다. 나이 차이, 권력 차이, 경제력 차이 등이 심하게 날수록 관계가 자극적으로 보이고, 실제로 당사자들의 감정도 (보통 일시적이지만) 강렬해지기 쉬운 이유(동시에 위험해지기 쉬운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
다른 영화인 <네온 데몬>에는 비슷하면서도 훨씬 더 폭력적인 장면들이 나온다. 이 영화에는 모델 업계를 다룬 영화 특성상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 대거 등장해서는 동성 간 성적 접근은 물론이요 나중에는 여성끼리의 시간, 식인 장면까지 적나라하게 묘사된다. 이건 무슨 뜻일까? 모델들은 동성애와 식인 취향이 있다는 뜻일까? 모델 업계가 이 정도로 개판이라는 걸 보여주려는 극단적 설정에 불과한 걸까?
이런 설정도 <블랙 스완>과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주인공 제시(엘 패닝)는 영화에서 그야말로 가장 주목받는 슈퍼스타 모델이다. 그를 욕망하고 질투하고 소유하고자 하는 모든 심리가 극단으로 치달아 분출할 곳을 찾지 못하자 다들 어떻게든 제시를 '물리적'으로 탈취하려 든다. 이는 처음에 성적 접근으로 시작해서 나중에는 집단 식인 행위로까지 이어진다. 제시의 정체성을 탈취하고자 하는 욕망을 아예 제시를 실제로 먹어버리는 행위로 묘사한 것이다.
이 역시 상징적인 장면인 동시에 실제로도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연쇄살인마들의 행위는 바로 이런 심리를 기저로 깔고 있다.
때문에 나르시시즘을 설명할 때는 그 관계가 전혀 연인 관계가 아니더라도 성적 비유가 잘 맞는 경우가 많다. 나르시시스트 부모와 자식 간 관계를 기본적으로 '근친상간적 관계'라고 부르는 것은 웬만한 심리학자들에게는 익숙한 비유이다. 이때의 근친상간 역시 상징적이면서 동시에 실제적인 표현이다. 선을 넘는 모든 관계는 결국 상대방의 프라이버시를 무시하고 정신과 육체를 지배하려 들기 때문에 둘 간에 어떤 성애적 요소가 없더라도 결과적으로는 스토킹, 성폭력 등과 거의 학대 내용이 동일해진다. 만약 그 관계가 성욕이 끼어들 수 있는 관계라면 실제 근친상간 폭력도 당연히 벌어진다.
상징적 근친상간과 실제적 근친상간 사이에 차이가 아예 없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 차이가 어느 정도이건 간에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둘 간의 거리는 멀지 않다. 게다가 인간은 복잡한 동물이고 인간의 정신은 사이클로 돌아가기 때문에 나르시시즘적 집착이 실제로 자신의 타고난 성적 지향이나 기타 조건을 뛰어넘어 성욕 대상이 될 수 없을 것 같았던 상대방에 대한 진짜 성욕으로 발화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한 번 선을 넘어 탈주하기 시작하면 인간 정신의 붕괴에 하한선이란 것은 없다. 흔히 근친상간 범죄 등을 저지르는 이들을 두고 '짐승'을 운운하지만 이런 정신 붕괴는 오히려 짐승에게는 불가능한, 인간이기 때문에만 가능한 타락이다(짐승이 저지르는 근친상간은 그냥 자신들의 관계를 기억하지 못 해서 일어나는 해프닝이지 의도적인 행동이 아니다).
위에 올린 포스트에서 나르시시스트 시어머니에게 휘둘리는 남편이 '딜도를 붙이고 온 시어머니'처럼 보일 거라는 내용이나, 한국의 결혼 문화가 '집안 대 집안의 난교'라고 말한 이유도 같다. 위의 포스트는 진짜로 난교를 벌이는 특정 막장 집안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 아니다. 개인 간 경계를 지키지 않는 관계의 결과는 모두 본질적으로 똑같다는 의미에서 나온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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