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한국문화 (9)
흙멘탈리스트
한국의 부모-자식 관계가 워낙 안전 거리나 경계선 없이 밀착되어 있어 개인의 정체성에 파괴적인 영향을 줄 정도인 이유는 한국인들이 사실이 아닌 두 가지 명제를 의심 없이 사실로 믿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모든 부모는 자식을 사랑한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부모와 자식의 이해관계는 일치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명제 중 한국인들의 머리에 더 뿌리깊이 박혀 있는 것은 후자이다. 놀랍게도 첫 번째 명제를 불신하는 사람들마저도 두 번째 명제는 철썩같이 믿고 있는 경우가 많다. 어쨌든 모두가 알고 있는 부모-자식 관계에서 어떤 자식이든 잘 되면 부모에게는 자랑거리가 생기며, 연을 끊은 상태가 아니라면 자식이 성공했을 때 떡고물이 떨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리 애정 없고 나쁜 부모라도 자식..
누군가가 다른 사람에게 불쾌한 언행을 저질렀을 때 상황을 무마해보겠다고 제3자 입장에서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이 나쁜 뜻은 없었을 거야. 그냥 생각 없이 한 거지.” 이 말을 최대한 좋게 해석하자면 불쾌한 언행을 저지른 사람이 상대방에게 특별한 악감정을 가지고 있거나 해치려는 의도가 없고 행동에 고의성이 없으니, 사안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거나 사적으로 받아들이지 말라는 뜻이다. 이는 언행의 실질적 내용이나 결과와 무관하게 ‘의도’에 초점을 둔 해석이다. 때문에 이 해석은 본질적으로 가해자 중심적이며, 제아무리 예쁘게 포장해서 말한다 해도 애초부터 공정한 해석이 아니다. 많은 경우에 의도 유무는 당사자 외의 다른 사람들에게는 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세상에서 사회인으로 생활하..
한국인들은 소위 ‘현실적’인 사고를 좋아한다. 뭐든 현실적으로 생각하라는 조언을 흔하게 하고, 뭔가에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딱지가 붙으면 부담 없이 쉽게 조롱하고 비난한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본인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진짜 현실적일까? 한국에서 흔하게 들을 수 있는 다음 대화를 살펴보자. 아버지: 넌 앞으로 뭘 할 거냐? 아들: 사업을 해보려고요. 아버지: 그게 되겠냐? 요새 어려운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리고 우리 집안에 대대로 성공한 사업가가 없거든! 현실적으로 생각해라! 아들: 제가 생각해놓은 계획이 있어요. 철저히 준비했고 자본금도 얼마 안 들어서 리스크도 적어요. 아버지: 얘가 이렇게 현실을 모르네. 사업하다가 망한 사람이 더 많아! 위의 에서 아버지는 아들이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비난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부모-자식 관계를 부모가 자식에게 일방적으로 헌신하는 관계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실제로 대단한 애정과 헌신을 보여주는 모습을 근거로 그렇게 생각한다기보다는 자식을 낳고 길렀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이미 부모가 일방적인 희생을 한 것이라고 규정하는 것에 가깝다. 밥 굶기지 않고 학교 꼬박꼬박 보내줬으면 다른 것이야 어찌 됐든 부모로서 할 일은 다 한 것이며, 그것만으로도 자식으로서는 갚을 수 없는 어마어마한 은혜를 입은 것이라고 과대포장하는 경우도 흔하다. 사람마다 천양지차로 다른 부모-자식 관계를 이렇게만 설명하는 이유는 자식이 부모로 인해 얻는 이익은 큰 데 반해 부모가 자식으로 인해 얻는 이익은 없다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 인식은 자식이 어린 시절 부모가 제공한 기본 의식주 비용에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