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멘탈리스트

나르시시스트 부모 - 독립적이면서 종속적인 자식을 원한다 본문

흙멘탈리스트/나르시시스트 부모

나르시시스트 부모 - 독립적이면서 종속적인 자식을 원한다

Dirt Mentalist 2021. 6. 30. 07:20
반응형
반응형

지난번 포스트에서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순전히 자기 편의에 따라 자식에 대한 과도한 통제와 방임을 오간다고 썼다. 요약하자면 참견하고 간섭하는 게 본인에게 이익이 되면 그렇게 하고, 본인에게 이익이 될 게 없으면 못 본 체 하는 게 나르시시스트 부모의 특징이라는 것이었다.

이는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실로 단순한 행동 패턴이지만 그들의 ‘부모’라는 타이틀 때문에 사회적으로는 자꾸 ‘철없는 자식 새끼들은 감히 헤아리지 못하는 부모의 깊은 뜻’으로 포장되어 피해자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모순의 세계에서 영원히 풀 수 없는 수수께끼에 매달리게 만든다.

강조하자면 여기에는 아무런 신비도, 수수께끼도, 형이상학도 없다.
나르시시스트 부모의 패턴은 뭔가 털어먹을 게 있다 싶을 때마다 찾아와서 탈탈 터는 일진의 패턴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나르시시스트가 자식에게 제시하는 이상적인 자녀상은 무엇일까?
당연히 본인 편의주의적인 양육 방식에 잘 따라주는 자녀이다.
본인 기분과 입맛에 따라 과도한 통제와 방임을 완벽히 오갈 수 있도록 해주는 자녀,
즉, 어느 순간에는 완벽하게 독립적으로 기능하다가 또 다른 순간에는 자기 주체성을 완전히 버리고 부모의 한 기관처럼 종속되어 부모가 원하는대로 움직여주는 그런 자녀 말이다.

이것은 일반적인 의미에서 자기 주관과 부모에 대한 존중을 조화시키는 그런 건강한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이런 건강한 의미에서의 조화도 때로는 쉽지 않은 일인데, 나르시시스트 부모가 자녀에게 원하는 조합은 쉽지 않은 것을 떠나 아예 고전역학 법칙조차 무시하는 비현실적 조합이기 십상이다.

나르시시스트 부모의 자녀는 밥을 굶겨도 키는 알아서 커야 하고, 책을 안 사줘도 공부는 알아서 잘해야 하고, 누구보다 똑똑하지만 동시에 부모의 틀린 말에 진심으로 동의해야 하고, 부모 없이도 어릴 때부터 모든 것을 혼자서 처리할 줄 알아야 하지만 동시에 부모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존재여야 한다.

요컨대 그냥 대놓고 모순이다. 자식에게 베푸는 것 없이도 번듯한 자식은 갖고 싶고, 그 번듯한 자식에게 노력 없이 절대자로 군림하려니 앞뒤가 안맞는 것이다.

나르시시스트 부모의 자식들은 하나같이 부모를 만족시키기가 너무 힘들다고 말한다.
나는 한다고 했는데 늘 부모님이 모자란 취급을 한다, 언제 부모님이 나를 정말 자랑스럽게 볼 수 있을까, 부모님의 기대는 너무 큰데 나는 능력이 부족해서 만족시켜드릴 수 없는 자식이다 등등의 결핍감을 청년기를 넘어 중년기까지 끌고 가는 사람들이 많다.

사람들은 흔히 이런 상황을 '기준이 너무 높아서' 문제라고 표현하지만, 이런 착각과 달리 기준이 높은 게 문제는 아니다. 자식을 훌륭하게 키우는 좋은 부모 중에서도 기준을 높게 두고 엄하게 키우는 사람들이 있다. 나르시시스트 부모의 진짜 문제는 기준이 높다는 게 아니라 기준이 왔다갔다 한다는 것이다.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자식이 자기 편의에 따라 원하는 것을 채워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사람이 원하는 것이란 게 늘 똑같을 수도, 일정할 수도 없다. 특히나 남의 시선을 중시하는 나르시시스트는 일정한 가치관에 천착하지 못하고 변덕이 심하다. 시시때때로 필요한 것이 바뀌고 그 리스트가 끊임없이 늘어나는 사람의 비위를 완벽히 맞춘다는 것은 불가능의 영역이다.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밖에서 자식 스펙 자랑을 할 때는 의사 자식을 원하고, 본인이 심심할 때면 같이 놀아줄 백수 자식을 원하며, 해변에서 놀다가 갈증이 나면 아이스박스로 변신하는 자식을 원한다. 이걸 노력으로 달성해보겠다고 하면 정신병자가 될 수밖에 없다.


“제 나이 40인데 어릴 때 버리고 간 엄마가 찾아와서 갑자기 친한 척을 하고 미안하다며 눈물을 흘려요. 그래서 좀 친하게 지냈더니 저를 하대하고 부려먹고 자꾸 돈을 요구합니다. 놀라서 다시 멀리 했더니 동정심 유발하는 문자 폭탄을 보내고 전화해서 ‘내 딸 사랑해.’를 삼창하십니다. 40 평생 한 번도 들은 적 없는 사랑 고백을 절절하게 해요.”

나르시시스트 부모의 변덕스러운 욕망은 짦은 호흡으로 시시각각 변하기도 하지만 위의 사례처럼 본인의 생애주기에 따라 변화하기도 한다. 보통 자식이 어릴 때(손이 많이 가는 시기)는 냉정하게 거리를 두고 독립심을 강조하며 방임하다가 나이가 들어갈수록(본인이 의지할 수 있는 시기) 지나치게 가까워지려 하고 가족애를 강조하며 얽히려 하는 게 일반적인 패턴이다.

이는 어릴 때는 철저히 보호하다가 서서히 자식을 놓아주고 결국 완전히 독립시키는 건강한 부모의 사이클과 정반대이다. 이 과정에서 자식의 어릴 때의 상처나 결핍을 일부러 자극해 뒤늦게라도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어하는 자식의 심리를 약점으로 이용하기도 하고, 다 큰 자식에게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 푼돈이나 선물 등으로 자신의 애정을 증명하려 하기도 한다. 제3자의 입장에서 보면 속이 보이다 못해 역겹기까지 한 얕은 수이지만 자식의 마음이 불안정하고 외롭고 약한 상태라면 여기에 말려드는 경우도 많다.

이 모든 것 역시 나르시시스트의 이기심을 채우기 위한 프로젝트의 일환인지라 그 끝이 좋은 경우는 거의 없다.

본인이 젊을 때는 자식에게 얻을 수 있는 것도 별로 없고 손이 많이 가는 자식이 귀찮아서 독립심을 강조하며 내버려두었다가, 노인이 되어 경제적으로든, 정서적으로든, 모종의 이유로 자식의 젊은 에너지가 필요해져 뒤늦게 가까워지고 싶어하는 부모는 악성 나르시시스트 부모라고 보면 틀림이 없다.
이들은 자신의 연기가 통했다는 확신이 드는 순간, 이빨을 드러내고 여지없이 상대를 물어뜯게 되어있다. 자신을 어떤 식으로든 받아주고 즐겁게 해 줄 도구가 필요했을 뿐, 자식의 내면이나 인격에 관심이 없는 것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젊었을 때 자식을 방치했다가 늙어서 갑자기 다가오는 이유는 본인의 인생이 쇠락기에 접어들면서 잃어버린 것, 더 이상 얻을 수 없는 것에 대한 대체품으로 자식 만한 것을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돈을 벌기 힘들어졌을 수도 있고, 친구들이 모두 떠났을 수도 있고, 갑자기 가족과 오순도순 지내는 다른 노인들이 질투났을 수도 있고, 젊은 시절 인생의 낙으로 삼던 이성 유혹이 더 이상 불가능해졌을 수도 있다.


디테일에서는 차이가 날 지언정 심리 상태는 모두 같다.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결코 이런 자신의 ‘진짜’ 진심을 남에게는 물론, 자기 자신에게조차 솔직하게 인정하지 않으며, 따라서 이들과 투명한 소통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본인이 아쉬워져 태세 전환을 해놓고도 한사코 자신은 '자식을 사랑해서', '자식을 위해' 하는 행동이니 오히려 자식에게 감사와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실제로 자식에게 그것을 요구한다. 이를테면 월 100만원의 지원을 요구하면서 '그래도 내가 널 배려해서 200만원이 아닌 100만원만' 요구하는 것이라 주장하고, 무료 간병을 요구하면서 '그래도 엄마가 이렇게 옆에 있어주니까 너도 외롭지 않고 좋지 않느냐'는 식이다.


결국 이렇게 다시 엮인 부모와의 관계의 전개는 다음 중 하나로 흐른다.
막상 자식 본인이 어릴 때는 받아본 적 없는 지원과 관심을 자식이 부모에게 일방적으로 쏟아붓고 좋은 소리도 못 듣는 착취 관계가 되든가, 아니면 견디다 못한 자식이 “부모 진심도 몰라주는 패륜아”라는 낙인을 뒤집어쓰고 손절해 관계를 종결하든가.

어떤 식으로도 아름답고 우아한 결말은 없다. 나이 들어 갑자기 다가오는 부모의 마인드는 스토커의 마인드와 동일하다. 자식을 사랑해서 관계를 맺는 것도 아니면서, 관계를 좋게 끝내줄 생각도 없다. 나르시시스트 부모와의 관계를 종결하는 과정에서 자식은 부모의 음해성 공작과 이간질로 사회적 평판이 크게 망가지거나, 다른 가족 구성원과의 사이가 끝장나거나, 스트레스로 많은 시간과 비용이 낭비될 가능성을 각오해야 한다.

자식은 애초에 부모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사명을 지고 태어난 존재가 아니다. 그것은 부모가 자기 편의대로 심어놓은 생각이다. 본인이 본인 인생을 위해 사는 걸로 부족해 남의 인생 목표마저 자기 인생 만족시키기로 설정해 놓고 살라 하는 것은 인생 강탈이나 다름없다.

만약 본인의 인생 목표가 부모를 만족시키는 것이라거나, 본인이 현재 불행한 이유가 부모를 만족시키지 못해서라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의 부모는 좋은 사람들이 아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놈이 먹는 상황처럼, 당신은 부모가 낭비해버린 인생의 빚을 대신 갚는 역할을 떠맡고 있는 것이다.

그 목표는 이룰 수 없는 목표이며, 이룬다 해도 그 성과는 본인의 것이 되지 못한다.


남의 인생 아바타 노릇의 결말은 허무할 수밖에 없다.
당신이 얼마나 고결하고 도덕적인 의도로 그 인생을 택했는지와 상관없다.
도덕성과 고결함도 한 온전한 인간의 것일 때나 상찬받는 것이지, 독립적 인격체가 아닌 한낱 아바타의 고결함은 실제로 가치도 없다.

반응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