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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리뷰 <우린 폭망했다(WeCrashed)> - 사기의 경계는 어디인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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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리뷰 <우린 폭망했다(WeCrashed)> - 사기의 경계는 어디인가

Dirt Mentalist 2022. 5. 3. 0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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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시작한 공유 오피스 사업체인 위워크(WeWork)의 창업자이자 전 CEO인 애덤 뉴먼(Adam Newman)은 세상 모든 나르시시스트들의 선지자와 같은 존재였다. 비록 본인이 창업한 위워크에서 쫓겨나는 바람에 모양새가 좀 빠지기는 했으나, 내용 없는 허세, 근거 없는 자신감, 타인 조종 능력만으로 별다른 아이디어나 노력도 없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억만장자가 된 그의 이력은 알맹이 없는 나르시시스트가 나르시시즘적 개수작만으로 성취할 수 있는 것의 최고봉을 보여주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스티브 잡스와 같은 레전드급 실리콘 밸리 거물들의 나쁜 유산이기도 하다. 잡스의 성공에 대한 분석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그의 모든 특성이 신격화/낭만화되면서 ‘자기만의 현실왜곡장을 가지고 있다’는 평을 듣던 스티브 잡스의 지독한 자기 중심적 세계관과 이를 어떻게든 관철시키고야 말았던 집요한 집착은 그의 중요한 성공 요인으로 꼽히게 되었다. 즉, 오직 잡스 중심적 관점에서 보면 나르시시즘은 나쁜 게 아니고 오히려 천재의 특질이며 성공의 필수 요건처럼 보이게 되어버린 것이다.

이에 영향을 받은 후대의 수많은 덜 떨어진 잡스빠들은 본인을 잡스와 동일시하며 잡스의 나르시시즘을 그대로 흉내내기 시작했고 세상이 자신들을 괴짜 천재로 봐주길 바랐다. 잡스의 창의적 아이디어보다는 잡스의 타인 조종 능력을 집중적으로 배운 이들은 이익이 나지 않는 회사의 사업 구조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을 ‘비전 없는 인간들’로 몰아부치고, 주장의 근거를 묻는 사람들에게는 ‘일단 믿어라, 그러면 보일 것이다’를 외쳤으며, 부하 직원을 부당해고하거나 추행하거나 협박하면서 ‘나같이 대단한 사람에게는 까방권을 달라’고 요구했다. 일단 무조건 뻔뻔하게 과장과 거짓말로 나 자신을 대단하게 묘사해 자아가 허약한 수많은 사이비 신도를 모아 몸집을 불리고 나서, 유명세와 힘과 대마불사의 원리에 기대는 것이 이들의 공통적인 사업 모델이었다.

이러한 유형의 사업가로 가장 자주 언급되는 삼대장이라면 우버(Uber)의 창업자이자 전 CEO인 트래비스 캘러닉(Travis Kalanick), 테라노스(Theranos)의 창업자이자 전 CEO인 엘리자베스 홈즈(Elizabeth Holmes), 그리고 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애덤 뉴먼을 꼽을 수 있다(그러나 아마 이들보다 유명세 급이 떨어지는 무명씨들까지 합치면 이런 유형의 양아치들은 셀 수 없이 많을 것이다). 사실 이들처럼 증명된 패착이 부족하다 뿐이지 늘 미래에 대한 공수표를 남발하고 이미지메이킹과 언플로 투자금 모으는 데 도가 튼 일론 머스크(Elon Musk)와 같은 사업가도 위와 같은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따라서 <우린 폭망했다>는 단지 애덤과 레베카(애덤의 아내)라는 웃기는 나르시시스트 커플에 대한 개인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애덤 뉴먼과 위워크의 흥망성쇠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 사회 체제의 딜레마와 문제점을 첨예하게 드러내는 중요한 이야기이다. 위워크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어마어마하게 큰 빙하의, 수면 위로 드러난 아주 작은 일각일 뿐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욕망에는 익숙하지만 아직 자본주의의 작동 방식에 대한 지식은 부족하고, 윤리관이 철저히 사적 관계 중심이라 공적 윤리나 직업 윤리에 대한 마인드가 결여되어 있는 한국에서는 이 드라마를 봐도 대체 애덤과 레베카 부부가 왜 악당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게 <우린 폭망했다>가 한국에서 관심을 받지 못하는 큰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 부부는 ‘남편은 입신양명하여 가족 건사하고, 아내는 남편 기 살려주고 아이 잘 낳아 교육하는’ 가족 경제 공동체의 유지 외에 다른 모든 것 따위는 알 바 아닌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뿐 아니라 심지어 롤 모델이 될 법한 인물들이다.

아닌게아니라 실제 이들 부부에게 자기 가족의 이익 외의 다른 모든 것은 알 바 아니었다. 애덤과 레베카는 서로에게 진심이며, 역경 앞에서 어마어마한 단결력을 자랑한다. 드라마는 제3자가 보았을 때 기묘하게 비위가 상하는 이들의 자기만족적 로맨틱함을 묘사하는 데 특별히 공을 들였다. 애덤이 출중한 경력의 임원을 자르고 그 자리를 레베카에게 주었을 때 이는 사실 레베카의 과대망상적 사업 계획이 본인의 비대한 자아상과 딱 맞아떨어져 본인의 허세를 만족시켜주었기 때문이었고, 레베카가 ‘여자의 역할은 남자의 꿈 실현을 돕는 것’이라고 말하며 조강지처 코스프레를 했을 때 이는 사실 자신이 평생 동안 질투하던 사촌(기네스 팰트로)을 이겨먹어보려다 실패한 자신의 형편없는 커리어를 변명하기 위함이었다. 결국 외부인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이들의 로맨틱함은 서로의 특권의식을 정당화하고 자신들만의 판타지 충족 비용을 모두 제3자들의 피땀으로 지불하도록 하기 위한 더러운 동맹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이것이 자본주의 체제 하의 합법적 사업체라는 구조 내에서 성공적으로 설계될 수 있었다는 점은 분명 사회적 문제이다.

물론 자본주의 하에서 생산 수단을 가진 기업가들이 착취자라는 비난을 받는 것은 하루이틀 문제가 아니지만, 대부분의 기업체들은 수익을 내 주주들에게 이익을 돌려주고 고용을 창출하며 국가 GDP에 기여한다는 명목이라도 가지고 있다. 생산 수단 소유주로서의 권위를 누리려면 그만큼 부가가치 창출 능력을 증명해야 한다는 것이 전통적 자본주의 윤리이다. 그런데 이들 부부의 사업체인 위워크는 심지어 이익을 창출하지도 못하고 자주 부도 위기에 봉착하며 돈 쓰는 하마 노릇을 했다. 위워크는 자본주의 윤리에도 전혀 맞지 않는 회사였던 것이다.

그 와중에 다수의 직원들은 말도 안 되는 저임금과 적대적 업무 환경 속에서 착취당하거나 부당한 공격 대상이 되었다. 회사는 이익을 내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두 부부는 엄청난 돈을 소비하며 호화로운 라이프스타일을 누렸다. 이들은 막말로 허우대만 멀쩡한 회사를 매개체로 남의 돈을 받아 써제꼈다. 투자금이란 이들에게 ‘안 갚아도 되는 돈’의 다른 표현이었을 뿐이다. 닷컴 버블 시절, 부실한 아이디어로 회사만 차려놓고 눈 먼 투자금을 받아먹었던 90년대 ‘한푼 줍쇼 닷컴’ 수준의 모럴 해저드가 위워크에서 재현된 것이다.

이토록 부실한 회사가 어떻게 언론을 연일 장식하는 스타 기업이 될 수 있었느냐고? 이들과 한 배를 탄 이들이 손정의 같은 거물 투자자이거나 JP 모건같은 월스트리트의 맹주였기 때문이다. 혹자는 애덤 뉴먼이 특유의 카리스마로 거물들까지 속여넘겼다고 평가하지만 이는 다소 나이브한 생각이다. 거물급 투자자들은 그에게 속았다기보다는 그가 더 많은 개미 투자자들을 속여 자신들에게 큰 돈을 벌어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을 것이다.

드라마 후반부에 이들은 드디어 오랜 기간 동안 빌드업을 해왔던 다단계식 투자금 회수를 위해 뉴먼에게 IPO를 하라고 줄기차게 요구하지만 뉴먼은 이를 저어한다. 기업이 상장을 하게 되면 재무 상태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투자금을 자기 주머니돈처럼 쓰던 이전의 생활을 지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IPO를 거대한 개미핥기 게임 또는 합법적 폰지 사기로 활용해 부도를 막고 돈잔치를 하려던 다른 투자자들과, 본인에게 큰 변화를 요구하는 IPO를 어떻게든 피하고픈 뉴먼과의 이해관계가 어긋나기 시작하고 이것이 뉴먼 퇴장의 단초가 된다. 우여곡절 끝에 IPO에 동의한 뉴먼은 IPO 역시 다른 투자자들의 의견을 무시한 채 자기 방식대로 진행하려다 이사회 만장일치 의결로 CEO 자리에서 쫓겨나고 그를 회사에서 완전히 배제하려는 손정의에게 주식 및 의결권을 넘기게 되지만, 어쨌거나 그 댓가로 어마어마한 금액의 돈을 받기로 동의한다. 다소 불명예를 얻기는 했어도 돈만 따졌을 때는 폭망은커녕 최종 승자가 된 셈이다.

 

이대로 끝내기엔 찜찜했던지 드라마는 연출진의 의도와 희망사항을 조금 반영해 실제보다는 매운 맛의 손정의를 보여주며 끝을 낸다. "넌 그 돈 한 푼도 구경 못할 거야." 현실에서 둘은 법정 공방을 벌이기는 했으나 뉴먼은 큰 잡음 없이 거액을 받고 물러났다. 그러나 드라마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끝난다. 현재 뉴먼은 미국 전역에 무려 4,000여채의 건물을 소유한 탑티어 갓물주이다. 과연 현 체제에서 돈은 어떻게 흐르고 있는 것인가? 규칙은 있는 것이며, 이 규칙은 공정하게 적용되고 있을까? 드라마가 지나치게 쓴 뒷맛을 없애기 위해 다소 감추어야 했던 현실의 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위워크가 뜨던 시절부터 위워크에 대해 비판적인 것으로 유명했던 뉴욕대 교수이자 이 드라마의 원작이 된 팟캐스트 <WeCrashed>의 진행자인 스캇 갤로웨이는 위워크 사태가 남긴 핵심 질문을 이렇게 정리한다.

“사기와 비전의 경계는 어디인가? 거물급 재계 인사들도 이를 알아보지 못한다면 당신은 알아볼 수 있을까?”

사기공화국인 한국에는 사기 피해자가 그 어떤 국가보다 많지만 동시에 희한하게도 자신만은 사기에 당하지 않을 거라고 근거 없이 자신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기는 멍청하거나 욕심 많은 사람만 당하는 거라고 생각하거나, 사기꾼은 겉으로 티가 나서 금방 판별해낼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도 많다. 과연 그럴까? 갤로웨이 교수는 대중의 흔한 결과론적 사고에 이의를 제기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사람들은 테라노스의 엘리자베스 홈즈가 증명 불가능한 주장을 떠들고 다녀서 잡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이유라면 일론 머스크도 그 점에서는 다를 바가 없다. 둘의 차이는 그들의 주장이 증명되었는지 여부가 아니라, 이들을 끝장내기로 결심하고 이를 실행할 만큼 화가 많이 난 거물급 투자자가 있느냐 없느냐 아니냐의 차이일 뿐이다. 애덤 뉴먼 역시 체면을 중시하는 손정의의 (물러 터진) 대응이 아니었다면 돈 한 푼 없이 쫓겨나 법정에 불려다니는 홈즈 같은 상황이 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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