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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꾼에 가장 잘 넘어가는 MBTI 유형은?

Dirt Mentalist 2025. 3. 23. 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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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몇 물 간 트렌드인 듯하면서도 여전히 인기 키워드이기도 한 MBTI는 심리학의 많은 기준과 개념들이 그렇듯이 주관적 해석의 여지가 너무 많고 오해의 소지도 다분해 맹신하거나 과몰입하면 모르는 것만 못한 인간 분류기준이다. 사실 분류는 인간의 문명적 본능같은 것이다. 인간이 축적한 많은 지식이 합리적이고 유용한 분류를 통해 만들어졌다. 주변 환경을 통제하고자 하는 통제욕의 일부이기도 하다. 때문에 분류에 대한 욕구 자체는 완전히 죽일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문제는 불합리한 분류가 일어날 때이다. 분류가 인간의 근원적 욕구 중 하나이고 무의식중에 우리는 늘 분류를 하며 살기 때문에 인간은 분류 때문에 흥할 수도, 망할 수도 있다. 독버섯과 식용 버섯을 잘못 분류하면 어떻게 될지 생각해보라. 제대로 된 분류는 나를 살리는 지식이 되지만 틀린 분류는 나를 죽이는 잘못된 정보가 된다. 물론 어떤 분류가 맞고 틀린지는 절대적이지 않은 경우도 많다. 특히 인간에 대한 분류가 그렇다.

 

개인적인 의견으로 MBTI의 이분법x4제곱의 16개 유형이 현실에서 분류법으로 썩 그렇게 유용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오늘 여기에서는 MBTI에 대한 오해부터 먼저 언급하고 싶다. MBTI는 개인이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의 차이, 즉 인생을 살면서 환경적 정보를 어떤 방식으로 소화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결정을 내리는 방식이 어떤지를 말하는 것이지, 그 사람의 구체적인 결정 내용이 어떤지를 말해주거나 그 결정 내용의 질적 수준이 어떤지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가 아니다. 그러니까 MBTI로 취향, 직업, 의견, 정치 성향, 성적 취향 이런 걸 알거나 예측하기에는 좋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의 통계적 경향성을 보일 수는 있는데 유용한 지표로 사용하기에는 너무 애매해다.

 

인터넷에서는 자신의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MBTI의 어떤 유형이 좋다, 싫다, 똑똑하다, 멍청하다, 호감이다, 비호감이다를 비롯해서 심지어는 예쁘다, 못생겼다까지 판가름하려는 말이 넘쳐난다. 사실 MBTI의 유형을 나누는 4가지 기준인 내향성/외향성, 직관/감각, 사고/감정, 판단/인식은 상당히 추상적인 개념인데 이 추상적 개념을 지나치게 자신이 아는 특정 표현형으로 좁게 해석해서 일어나는 일이다.

 

이를테면 '독서를 할 때 사고형인 사람은 과학 서적을 선호하고 감정형인 사람은 로맨스 문학을 선호할 것' 이런 식으로 예측하는 것은 '사고'와 '감정'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각각 과학 서적과 로맨스 문학 서적이라는 매우 구체적인 물건에 귀속시켜 해석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하지만 사고형인 사람도 모종의 이유로 로맨스나 로맨스 문학이라는 테마에 꽂혀 이것을 분석하려는 목적으로 해당 장르를 탐독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모종의 이유로 과학 서적을 좋아한다고 하기는 하는데 읽는 족족 독법이 희한하게 감정에 치우쳐 있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많다. 이 모든 게 자가 보고에 기인하기 때문에 중간에 거짓말, 허세, 과장, 인지부조화, 현실 부정이 끼어들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두말할 여지도 없다. 

 

그렇다면 제목의 질문에 답을 해 보자. 사기꾼에 잘 넘어가는 MBTI 유형은 무엇일까?

 

한국은 사기 공화국답게 사기나 사이비 등에 잘 넘어가는 유형이 어떤 유형인지에 대한 관심이 많다. 비단 MBTI 뿐 아니라 사기에 고학력자가 잘 넘어간다, 아니다 반대로 저학력자가 잘 넘어간다, 부유층이다, 아니다 빈곤층이다 등등에 대한 설왕설래도 많다.

 

재미없는 말이지만 사실 그런 유형이란 게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각 유형별로 공략법이 다르다. 게임을 할 때 선택하는 종족이나 캐릭터에 따라 전략이 달라지는 것처럼 너무 당연한 얘기다. 지적인 사람은 지적인 방식으로 공략해야 하고, 감정적인 사람은 감정적인 방식으로 공략해야 한다. 건강하지 못한 사이비 세계관에 빠지는 것이 일견 지식이 부족한 저학력자의 문제로 보일 수 있지만, 논리적으로 강력한 세계관이라면 고학력자가 더 위험하다. '코로나 백신에 빌 게이츠가 심어 놓은 칩이 있다'거나 '911 테러는 오바마 전 대통령의 잘못이다'와 같이 논리적으로 허무맹랑한 이야기라면 저학력자가 빠져들기 더 쉽겠지만, '인간의 기술 문명이 너무 사악해서 인간 자신 뿐 아니라 이 행성 자체를 해치고 있으며 지금 현재 체제 내에서는 이에 대한 해결이 불가능하다' 같은 세계관을 순수 논리의 극단까지 몰고 가면 사고형의 사람들이 더 취약하기 때문에 요즘 영화 등에서도 심심찮게 등장하는 극단적 환경론자나 유나바머 같은 고학력 테러리스트 유형이 탄생할 수있다.

 

사기에 특히 잘 넘어가거나 또는 넘어가지 않는 유형이 갈리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건 보통 해당 사기꾼이 자신이 낚시질을 하려는 인구 풀에서 가장 흔한 유형에 맞는 방법, 또는 자기 입장에서 공략하기 제일 쉬운 방법을 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를테면 외향적이고 감각적인 사람들이 많은 곳이거나 그러한 기질이 환영받는 곳에서라면 사기꾼은 옷차림과 외적 매너 등에 상당한 신경을 쓰고 평판 관리에 힘을 쏟을 것이다. 반면에 내향적이고 직관적인 사람들이 많은 곳이라면 그럴싸해 보이는 지적이거나 영적인 언어로 무장해 자신의 내면이 특별함을 어필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런 특정 어필 방향과 잘 맞지 않는 반대 성향인 사람은 당연히 그런 사기에 덜 넘어갈 수밖에 없다. 실제로 미국 남부 레드넥 동네에서 활동하는 사기꾼과 샌프란시스코 실리콘 밸리에서 활동하는 사기꾼은 사업적(?) 접근법이 판이하게 다르다.

 

제대로 된 분류의 핵심은 분류의 한계를 명확히 인지하는 데 있다. 많은 사람들은 심리적 불안감 때문에 성급하거나 과도한 분류를 하려 든다. 분류를 하고 나면 자신이 제대로 주변을 파악/통제하고 있다는 착각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류가 힘을 발휘하려면 분류 방법 자체를 분류할 수 있어야 한다. 한계를 인지하지 못하는 분류는 약이 아니라 독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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